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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콘서트를 하루 앞두게 되었다.
공연 사흘 전부터 무대 리허설을 진행했다. 샌드 스타디움과 평범한 돔 공연장 중 우리가 택한 곳은 후자였다. 모래 사막이 깔린 무대에서 펼치는 공연은 분명 화려하고 멋지지만, 체력적으로 힘들고 2시간여 모래를 들이마시기 때문에 후유증도 심하다. 멤버들은 내 건강을 고려해주었다.
사실은 권수한의 입김도 있었다. 멤버들과 한번 만났을 때 그는, 이라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1시간 동안 세 번이나..
그때는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지만, 그에겐 고마운 마음이다.
권수한은 아침 일찍 날 연습실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가 저녁에 데리러 오는 하루를 반복했다. 자주 배달음식을 먹는다는 걸 알고서는 꼬박꼬박 도시락도 챙겨줬다. 나 혼자 다른 좋은 메뉴 먹기 민망했지만 티내진 않았는데, 아니 티내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티가 났는지 나중엔 멤버들 몫까지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나 때문에 점심과 간식 도시락을 5개씩 만든 것이다.
난 그걸 다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렸고, 권수한은 그거에 대해 별다른 멘트는 하지 않았지만 꼬박꼬박 공유했다.
┗이라볼따구ㅠㅠㅠㅠㅠ
┗우래기 살 좀 오른 것 가태ㅠㅠㅠㅠㅠ
┗간식마시써써??? 내애기우뀽뀽
┗진짜 귀여워 핸드폰뿌셔
┗권수한쌤이 애기 많이 챙겨주고있나보다 볼살 올랐어
┗수한쌤 팬들보다 공유가 빨라ㅋㅋㅋㅋㅋㅋ
┗위험수준으로 귀엽다...
도시락 인증샷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연습하면서 꼬박꼬박 챙겨먹었더니 살이 좀 올랐나보다. 내 볼살 가지고 지름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도 핸드폰을 뿌수고 싶었다. 멤버들은 대단하다. 팬들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지금까지 거리를 유지했지? 한명 한명 깨물어주고 싶고 막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
앞으로 사진 좀 많이 찍어서 올려야지.. 말 나온 김에 또 유부초밥을 들고서 찰칵 사진을 찍었다.
“또 사진 찍냐? SNS 중독 수준이네. 완전 늦바람 불었구만.”
“팬분들이 올려달라고 하는데 어떡하냐. 넘 귀여워 죽겠어. 왤케 귀여워? 봐봐, 막 우뀽뀽 이래.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야.”
“..야, 따라 읽지 마. 그런 거 나한텐 안 통한다.”
한새가 타박을 하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글을 마저 썼다.
@LEERA_ENDORPHIN
[오늘도 수한선생님의 도시락!! 덕분에 엔돌핀의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내일봐요 모두!
(사진)]
“애교가 넘치네, 아주.”
한새는 내가 올린 글을 보고 푸흐흐 웃었다. 빠르게 올라오는 반응을 읽으며 나도 웃었다.
제이와의 투샷을 원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다. 난 살짝 제이 쪽에 시선을 향했다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마침 날 보고 있었는지. 난 녀석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제이도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미친.. 화해 좀 제대로 해. 니네 겁나 어색해."
한새가 부르르 떨면서 내 팔뚝을 툭 쳤다.
"어, 조만간.."
그때 미뤘던 대답을 해야겠지. 콘서트가 끝나면 말이다.
제이는 곧 스태프가 불러서 마이크를 차러 갔다. 한새도 의상 착용을 위해 불려가고 슬슬 나도 준비해야 하기에 읏차, 하며 일어났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리허설에 돌입했다. 첫 번째 리허설 때의 허술했던 점을 보강하여, 본무대처럼 의상까지 바꿔 입어가며 진행했고, 바로 이어진 3차 리허설 때는 오러도 사용했다.
리허설은 아침 9시부터 계속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치지 않는 기분이었다.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엔돌핀의 무대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을까? 팬분들의 응원 없이 혼자 힘들었던 나날을 떠올리면 지금은 너무나 천국 같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이 들뜨고 기쁘기만 하니 너무 즐겁다.
밤늦게 리허설을 마쳤다. 멤버들이 씻고 가라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차 안에서 세 시간이나 불퉁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을 권수한을 생각하니 저절로 가방 챙기는 손길이 빨라졌다.
“또 그 사람이 데리러 왔어?”
“..응. 너 안 씻어? 다들 씻으러 가던데.”
제이가 혼자 안 내려가고 아직 남아 있었다. 난 잠깐 멈칫했다가 마저 짐을 정리했다. 가방을 어깨에 메려하자 제이가 다가왔다.
“나 줘. 무거워 보인다.”
“아니.. 내가 들게.”
난 얼른 꼭 끌어안았다. 제이가 다시 뒤로 물러난 후에야 어깨에 멨다.
나는 제이가 문 쪽에서 비켜주길 기다렸다. 녀석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이었지만 결국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고 자리를 내줬다.
“제이 너도 얼른 들어 가.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야지.”
“..그래. 그래야지.. 잘 자, 이라.”
“응, 너도.”
우리는 아주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까지도 내 머릿속엔 제이의 쓸쓸한 얼굴이 남아 있었는데, 정장 슈트를 빼입은 권수한이 차 옆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사라져버렸다.
“늦었어. 잠은 언제 자려고.”
날 발견한 권수한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 모습조차 멋있어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저 인간한테 들릴까봐 걱정될 정도였다.
콘서트날,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날 공연장에 데려다줘야 할 권수한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새벽에 그는 환자와 관련한 긴급 전화를 받고 다급히 나갔다. 비몽사몽 중에 내게 뭐라 뭐라 속삭였었는데 대충 진호 형이 데리러 와줄 거라는 얘기였던 것 같다.
[일어났어? 찌개 끓여서 먹고 먹기 전후 사진 찍어서 보내]
라는 쪽지가 냉장고에 붙어있었다. 난 왠지 쀼루퉁해져서 굶을까 생각했지만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아 얌전히 불을 켰다.
사진을 세 장이나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무려 내 셀카도 하사했는데.. 환자가 많이 심각한 상태인가? 어쩌면 환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긴급히 오러를 사용할 사건이 생겨서 오러 강화를 위해 부른 걸지도. 권수한은 어댑터 중에서도 무려 S니까.
자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조금 아쉽다. 콘서트를 앞두고 긴장한 마음은 권수한이 옆에 있으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내가 그에게 얼마나 많이 의지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으니 한숨이 나왔다.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시금 연락하기도 뭐 하고, 진호 형이 오기로 한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서 핸드폰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딩동.
벨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파트 현관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울린 초인종이었다. 진호 형인가? 아니면.. 권수한이?
난 잔뜩 들떠서 화면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권수..!”
“..오랜만이구나.”
그곳에는 핏발서린 눈을 한 신동우가 서 있었다.
파리하고 초췌한 안색이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입술은 메말라 갈라졌으며, 머리 염색도 못해 희끗한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있었다. 입은 옷만은 여전히 값비싼 슈트였지만, 권수한의 드레스룸을 구경한 적 있는 내게는 그마저도 낡고 침체되어 보였다.
“언제까지 세워둘 거니. 안으로 들어가자.”
신동우가 당연한 듯이 나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말려야 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뒷걸음질 쳤다. 내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보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지만 내 몸은 거대한 괴물을 마주한 것처럼 겁먹었다. 입술을 깨물며 흔들리는 한쪽 손을 붙잡았다.
정신 차리자. 여긴 권수한의 집이야.
나는 현관 복도를 걸어가는 신동우를 쫓아가 앞을 가로막았다.
“사장..”
그의 하이에나 같은 눈과 마주치자 입술이 바짝 메말랐다. 심장이 쿵쿵 뛰고 목소리가 덜덜 떨렸지만 나는 끝내 소리 내서 말할 수 있었다.
“신동우 씨가 여기는 웬일이죠?”
적막이 흘렀다.
신동우는 자신을 부른 게 맞느냐는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얼음 같은 차가운 눈이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세요. 여기 당신을 초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사이 무척 멍청해졌구나.”
신동우는 내게 다가왔다.
“감히 주제도 모르는 소울 유저가 지금 누구한테..”
“주제도 모르는 F 어댑터한테 뭘 어떻게 더 친절하란 거죠.”
“권수한한테 오러 치유 몇 번 받았다고 내 오러 아래에서도 무사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니?”
신동우가 차갑게 비웃었다. 나는 이 사람과 오래 마주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경멸어린 눈동자에 나도 똑같이 경멸을 넣어서 노려봤다.
“당장 나가요.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나도 어댑터니까 출입증이 있단다. 권수한이 이 아파트의 제일 고층에 거주한다는 건 유명하고 말이야.”
“경비 부르기 전에 나가요. 곧 권수한 씨도 올 거고.”
“여전히 멍청하네. 내가 여길 아무도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왔겠니? 네 어댑터는 환자로 인해 오늘 종일 연락이 없을 거란다.”
순간 오한이 들었다. 일부러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계획적으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자 신동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왜 왔는지 궁금해 해야지, 이라야. 아이돌 아니랄까봐 골이 비었구나.”
그는 여전히 비웃음을 입 꼬리에 걸고 있었다.
“어서 이유를 물어보렴.”
“...왜.. 왜 왔는데요?”
그냥 엔돌핀의 마지막 콘서트 날 훼방 놓으려고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계약 해지 건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인가?
더듬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마 내 얼굴엔 패배감이 스쳤을 것이고, 신동우는 그 기색을 읽었을 것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차도 한잔 내오고. 목이 마르네.”
“.......”
신동우가 저벅 저벅 앞서 걸었다. 마치 제 집처럼 복도를 걸어 거실 소파에 앉는 모습에, 그리고 덜덜 떨기만 할뿐 끌어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모멸감이 들었다.
차를 마시는 신동우는 무척 침착해 보였다. 분명 그 자신도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 날 찾아온 것일 텐데도 항상 믿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여유로웠다.
반면 나는 속이 메스껍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음습하고 질척거리는 오러가 사방에 돌아다녔다. 권수한과의 공간에.. 나의 평화로운 집에.
난 수호 부적처럼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자꾸 식은땀이 흘렀다. 신동우는 자기 내킬 만큼 차를 마시고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좀 하고 싶은데, 너도 바쁘고 나도 급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겠구나.”
“.......”
“너희와 계약 해지 때문에 온 게 아니다. 자꾸 어떤 쥐새끼가 날 들쑤셔서 말이야.”
불쾌함이 느껴지는 말투였고, 나도 그에게 불쾌함을 느꼈다.
“뭘 어떻게 들쑤신다는 건데요. 알아듣게 정확히 말해요.”
“모르는 척 하지 마. 네가 권수한한테 날 들쑤시라고 시켰지?”
권수한..?
그의 이름이 불린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보호 프로그램 받고 있는 어댑터가 능력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어. 그 정도라면 괜찮지만, 연예기획자라는 구체적인 정보가 나돌더구나. 출처가 권수한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왔으니까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나는 당황한 티를 숨기지 못했다.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그러니까, 권수한이 신동우가 어댑터법을 위반한 사실을 소문내고 있다면..
증거가 없어서 당장 고발하지는 못하지만, 소문이 퍼진다면 위원회는 수사를 진행해야만 한다.
어린 소울 유저를 어댑터의 능력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자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러 유저 보호법의 위반 형벌 중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연예계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얼굴이 공개되므로 사회생활도 어렵겠지.
권수한은 나 대신에 복수를 해주려는 걸까.
“증거도 없는 일에 시간 낭비는 그만 하라고 전하렴. 서로 계속 얼굴 보게 될 사이에 뭐하는 짓이니.”
“..싫어요.”
나는 신동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당신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능력으로 내 정신을 조종했어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섰어야 할 일을 그 사람이 대신 해주니 고맙네요.”
“..하하.”
신동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누가 A급의 소울 유저 아니랄까봐. 너도 결국 그들처럼 변했구나. 고분고분한 맛이 사라졌어.”
말을 이어가며 웃음이 점차 사라졌고 마지막에는 차가운 경멸만 가득했다. 날 엔돌핀에 합류시키며 자신감을 북돋아주던 사장님은 없었다. 이 자리에는 능력을 남용한 더러운 어댑터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모든 걸 잃게 되면 가만있을 것 같아? 나는 네 약점을 안다.”
내 약점이라고?
난 한번 나락에 떨어졌던 몸이다.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다. 이 자가 약점이라고 말해봤자, 피해망상 정도일까. 알려져도 전혀 상관없다.
“당신이 말하는 약점이 정말 내게도 약점일지 모르겠네요. 전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말해보라는 얼굴로 쏘아보자 신동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친부모 얼굴도 모르는 천애고아 주제에.”
“.......”
“네가 사고를 일으켜 한번 파양된 적 있는 입양아라는 사실이 알려져도 팬들이 널 좋아해줄 거라 생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