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9)화 (9/63)

#9

“혹시 마법사십니까?”

“마법사?”

“방금 보여 주신 거 말이에요. 환각 마법치고는 상당히 현실적이었어요. 대단하시네요.”

“웬 환각?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난 에스퍼예요, 황자님.”

빈정대는 말투였다. 여자가 손바닥을 위로 오게 하며 손을 치켜들자, 푸른 불꽃이 손바닥 위에 오목하게 고여 일렁였다. 경이로웠다.

“진짜 불인데 그쪽 보기엔 이게 가짜 같나 봐? 만져볼래요?”

“아, 좀 꺼요…. 뜨겁습니다.”

여자의 옆에 앉아 있던 이가 그녀를 피하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진짜 불이라고? 환각이 아니라?’

불은 손바닥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영롱한 빛을 띠는 불길에 나인은 입술까지 살짝 벌린 채로 넋이 팔렸다. 내내 멍하기만 했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에스퍼….’

나인은 이곳에서의 마법사를 ‘에스퍼’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화염 에스퍼인 여자와 위기 감지 대책 팀장은 나인에게 게이트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 정면에 화면을 띄워 설명해 주었다.

“저기 있는 요원님 같은 분을 에스퍼…. 좀 더 크게 분류해서 각성자라고 부릅니다.”

한때 신인류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각성자들은 ‘게이트’의 등장과 역사를 나란히 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각성자가 태어난 때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각성자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는 갓 태어난 아이도 있었고 십대 소년에게서 갑자기 이능이 발현되기도 했다.

“게이트는 각성자들이 태어난 해로부터 4년 뒤 갑작스레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공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금이 가더니 공간이 일그러지기도 했고, 땅이 싱크홀처럼 푹 꺼지며 생겨난 구멍에서는 기이한 형태의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균열에 휘말려 실종되고 괴물들에 의해 처참한 꼴로 살해당했다.

전 세계에 산발적으로 생성된 균열은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파괴하기도 했고 괴물이 국가의 수장을 해치며 심각한 정치, 경제적 위기를 불러왔다.

한 국가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도시민의 절반이 사망했다. 재앙의 시작이라며 세계 각국에서 멸망론자들의 수가 급증했다. 초토화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을 기다렸다.

막을 수 없는 재앙. 도시의 파괴. 경제 인구의 소멸.

학살, 약탈, 살인….

인류가 문명의 끝을 바라보던 순간, 기적처럼 해결책이 생겨났다. 훈련받은 군인들이 투입되어도 그들을 죽이고 계속해서 끔찍한 괴물들을 뱉어 내던 게이트를 잠잠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주 우연한 기회로 밝혀진 것이다.

그 방법은 바로 각성자의 투입이었다.

이능을 사용할 줄 아는 각성자가 들어간 순간부터 균열의 바깥쪽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잠잠해진다. 균열 너머로 들어간 각성자가 사망하지 않는 한 게이트는 외부에 피해를 끼치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각성자의 균열 투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아니, 애초에 균열 발생의 원인이 각성자들 탓이라는 극단적인 말도 나왔다.

붕괴된 도시가 기능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모든 국가에 각성자 관리 기관이 신설되었다.

각성자는 각성 직후부터 태어난 국가가 아닌 국제 각성자 관리 센터에 소속되게 되었다. 본인을 소개할 때 국적을 말하는 대신 센터 소속임을 밝히게 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게이트가 발생하든 간에 출신 국가의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미 한차례 세계 종말의 시작을 맛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의견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게이트들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공간 균열을 감지하면 미리 요원… 그러니까 에스퍼들을 그쪽에 대기시키는 거죠. 위험한 게이트라면 미리 사람들도 대피시키고요. 그 후에 수습에 들어갑니다.”

“게이트를 없애는 방법도 있는 겁니까?”

“그럼요. 게이트 내부의 핵을 파괴하거나 괴생물체의 우두머리나 모체를 죽이면 공략이 완료되고 게이트의 생명이 다합니다. 하지만 통로형 게이트는….”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나인의 눈치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나인이 휘말린 종류는 특별했다. 이런 식으로 공략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통로형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또 언제 닫힐지도 예측이 어렵습니다. 당신이 휘말렸던 게이트가 바로 그런 종류예요. 통로형 게이트는 발생 직후에야 레이더에 잡히는 특성을 지녔거든요. 변덕스러운 녀석이라 게이트 발생 시에도 함부로 에스퍼를 투입시키지 않습니다.”

“네? 하지만 절 그 안에서 구해 준 에스퍼가 있다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같았으면 게이트 소멸 전까지 근처를 통제하며 실종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게 전부입니다. 거기 들어가겠다고 자원하는 에스퍼는… 음, 잘 없으니까요. 그러다 공간미아가 떨어지면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거든요.”

“하지만 저는.”

“예. 정말 다행히도 그날 발생한 게이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에스퍼가 애쉬였죠.”

……애쉬?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같았으면 게이트가 자연 소멸되기 전에 그 안에 사람을 투입시키는 일은 없을 테지만 그가 자원했습니다. 애쉬가 원래 좀……. 아무튼 갓 발생한 통로형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 당신을 꺼내어 온 거죠.”

“…….”

“그 덕에 현재 나인 씨의 상태는 공간미아인 걸 배제하고 봐도 아주 양호하군요. 내부에 오래 방치된 건 아닌 듯해 다행입니다. 통로형 게이트는 사람의 정신을 좀먹는다고들 하거든요.”

그래서 애쉬도…. 남자는 한마디 말을 덧붙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인의 시선이 흔들렸다. 왜 뒷말을 흐리는진 모르지만 좋은 뉘앙스는 아니었다.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던 그 사람인가?’

아무래도 자신 때문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현재 게이트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괴생물체들이 쏟아져 나오는 방출형 게이트. 둘째, 게이트가 발생한 위치의 환경을 그대로 복제해 미로를 형성하는 거울형 게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른 차원이나 행성과 연결되는 통로형 게이트.

통로형 게이트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게이트에 휘말렸던 한 사람이 다시 나타났던 사건 때문이었다. 이에 얽힌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을 ‘공간미아’라는 단어로 일컫는다.

인류 최초의 공간미아는 30대 동양인 여성이었다. 여자는 이미 가족들에 의해 사망 처리가 된 후였는데, 그녀가 사라지고 20년이나 지난 어느 날. 살던 곳과 15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심지어 여자는 사라졌던 당시와 비교해 전혀 나이가 들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이 고작 한 달 정도를 다른 곳에서 살다 왔다며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20년이나 일찍 앞서 나이를 먹은 상황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게이트 연구원들은 게이트 안과 바깥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겨우 그것뿐이었다. 연구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 상당히 보잘것없는 결과였던 것이다.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구나.”

나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라졌다가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하니 나인은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

그러자 센터 간부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내내 잠자코 있던 11지부 센터장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그건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언제 또 열리는데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 자리에 가서 기다리면 됩니까? 번거롭겠지만 날 다시 거기로 데려다줬으면 하는데요.”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들의 침묵에서 곤란한 기색을 읽은 나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애초에 공간미아로서의 선례가 몇 있었기에 어제의 그런 책자까지 만들어진 게 아니던가? 그럼 지금쯤에는 뭔가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했어야지.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길래 아무것도 장담 못 한다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갔다.

“…만일 통로형 게이트가 다시 열리더라도 그게 꼭 당신이 계시던 곳과 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일단 모든 건 게이트가 열려 봐야 안다는 소리입니다.”

“…….”

그제야 나인은 난처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미아라며. 잠깐 길을 잃은 정도가 아니었다는 말이야? 나인은 금방 여길 떠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기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인, 난 그들을 여행자라고 부른단다.’

나중에 다시 체체를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인은 다시 그녀를 만나면 여행자라는 단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정정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보다는 여기서 자신 같은 자들을 일컫는 단어. 그래…. 미아가 훨씬 적절한 표현이라고 꼭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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