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13)화 (13/63)

#13

* * *

“나인,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줘요. 점심! 점심은 먹었어요?”

“먹었습니다.”

“나가서 저랑 커피 한잔만 해요. 어제 그거 맛있지 않았어요?”

“너무 달아서요.”

“그럼 오늘은 다른 걸로 사 드릴게요.”

나인은 조금 망설였다. 남자는 나인을 찾아올 때마다 소소한 뇌물을 사다 바쳤는데, 맛이 마음에 들고 말고를 떠나 그에게는 모조리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나인의 열망은 작지 않았다.

“C동 통로 중앙 홀에 투명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거기 타면 안에서 밖이 다 보여요. 오늘은 그 길로 가 볼까 하는데….”

남자가 덧붙인 말에 나인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늘 숨을 참는 나인을 위해 덧붙인 말이 정말 효과를 보이는 것 같자, 남자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나인은 잘 숨겼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남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센터 사람들은 나인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고양이도 아닌데 모니터의 까만 화면 보호 창에서 이리저리로 튕기는 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빤히 응시하고 있다거나, 로비나 식당에 놓인 어항에서 뽀글뽀글 기포를 일으키는 산소 발생기를 의식하다 남들 몰래 손으로 수면 위의 기포를 톡 터뜨려 보고, 시간이 빌 때에는 1층 출입구의 회전문 안에 들어가 스무 바퀴쯤을 뱅글뱅글 돌고 건물에 다시 들어오는데…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나인은 저도 모르게 홀려 벌떡 일어나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안 돼요. 업무 시간에 이러지 마세요.”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가이드고 뭐고 안 한다니까요. 저 정말 관심 없어요.”

“아직 가이드 말은 꺼낸 적도 없는데요.”

“곧 꺼내시겠죠.”

“그야 그렇지만….”

나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탁인데 제발 저 좀 따라다니지 마세요. 저 이제 일해야 하니까 가 주시고요. 여기 환자들도 많은데 이러시면 안 돼요….”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줄로만 알았던 일련의 행위 이후 나인은 조금 성가셔졌다.

에스퍼들 훈련에 방해나 되지 말라며 벌써부터 성가신 듯 쳐다보던 사람들이 그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데스크를 찾아와 설득이란 명목하에 무척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이다.

“아, 망할. 딱 한 시간만 결과가 빨리 나왔어도!”

인사 팀 팀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본인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필 나인의 형질 검사 결과보다 그를 억지로 끼워 넣을 부서 책정이 한 시간 정도 일찍 되는 바람에 인사 팀에서 손을 쓰기 애매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가이드 부서로 편성했다면 얼마나 좋아?”

남자는 나인을 면전에 두고 대놓고 중얼거렸다.

‘가이드도 아닌 사람을 왜 가이딩 부서로 편성하겠어요.’

나인은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들은 척도 안 할 것 같았다. 인사 팀 사람들은 귀 자체에 듣기 싫은 말 필터링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인은 이제 좀 그냥 방치되고 싶었다.

“나인, 하나도 아니고, 당신은 무려 멀티예요.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능력인지 모르시겠어요?”

“알아요.”

“아뇨, 모르세요.”

“안다니까요.”

“모르고말고요!”

“……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목소리 큰 사람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인은 조금 주눅 들었다.

“그 능력이 아깝지도 않으세요?!”

아깝긴 전혀. 나인은 이번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나인 축하드려요. 이거 보세요, 멀티예요. 각성자가 되신 거라고요!’

나인을 찾아왔던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그를 축하했다. 나인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박수를 칠 뻔했다.

‘멀티는 가이드와 에스퍼 둘 중 어느 것으로도 각성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대단한 거죠.’

‘제, 제가요?’

나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말을 곱씹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내심 솔깃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나인은 이야기 내용에 빨려 들어갈 뻔하다, 뒤늦게 친구들의 조언을 되새겼다.

‘나인, 넌 누가 솔깃하게 들리는 얘기 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해. 알겠어?’

아, 맞다. 그랬지? 그래서 나인은 삐딱하게 앉아 그의 말을 의심해 보았다. 친구들은 사기꾼에게 잘못 걸리면 속옷까지 탈탈 털리게 될 거라며 수도 없이 경고를 해 주었다.

일단 의심부터 품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 더 그럴듯하게 들렸다.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이 사람… 어쩌면 사기꾼이 아닐지도?’

당시 나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매칭 검사실까지 발을 들여 버렸다.

멀티는 에스퍼와 가이드로서의 능력을 동시에 지닌 종류의 사람이었다.

전체 각성자 인구의 1%에 해당할 만큼 드문 사람들. 하지만 자질을 갖고 태어났어도 한쪽은 아예 죽을 때까지 각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형질 검사 결과 멀티더라도 가이드로 살거나, 혹은 에스퍼로 살거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각성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능 수치가 좀 이상한데? 잠재 능력이 에러로 출력되는 건 처음 봐요. 폭주 수치가 제로에 가까운 걸 보면 에스퍼로는 아직 각성 전이신 것 같네요.’

에스퍼는 매개 마도구 하나 없이 이능을 다루며 각지에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한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는 없는 법이라고 본인의 신체를 그릇으로 삼아 능력을 다룬 데 대한 대가는 물론 존재했다.

폭주.

이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에스퍼의 신체에는 과부하가 생긴다. 몸의 부하가 커지면 ‘폭주’의 위험성 또한 높아지는데, 폭주한 에스퍼는 이능을 통제하지 못하고 날뛰다 끝에 가서는 몸이 말 그대로 터져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에스퍼 본인의 안전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에스퍼의 폭주를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에스퍼의 폭주를 억제하며 몸의 부하를 풀어 주는 것이 가이드의 역할이었다.

‘다행히 가이드로는 금방 각성하실 것 같아요. 잠재 능력 보이시죠? 최대 효율까지 뽑는다면 B등급은 훌쩍 넘으실 거예요.’

남자는 나인의 눈앞에 차트 결과지를 들이밀며 설명했다. 가이딩이라는 행위를 통해 에스퍼를 돕는 능력. 나인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오오, 그렇구나. 나인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다 얼떨결에 낯선 사람들과 하루 종일 매칭 검사실에 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검사를 실시한 뒤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검사실 근처에서 서성이던 C급 에스퍼 두어 명을 데리고 와 나인과 성급한 매칭 검사부터 실시했다. 그때의 매칭률이 0%로, 아예 가이딩 능력이 없는 일반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나왔다.

다음 날, 페어 가이드가 없는 에스퍼 다섯과 또 매칭 검사를 실시했다.

0%.

0%.

0%!

매칭률은 죄다 0%에 불과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기계 고장 났어?’

연구원들이 나인보다도 더 혼란스러워했다. 막상 형질 검사를 다시 해 보면 나인은 어김없이 멀티, 그중에서도 가이드 형질이 특출 난 사람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순도도, 예상 총량도 꽤나 높았다. 검사지상에 출력된 수치로만 따지면 충분히 B등급 이상이 되고도 남을 능력이었다.

처음에야 신기했지 검사가 이어질수록 나인은 정신을 차리고 점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내가 무슨 각성자라고…. 난 마력도 없는데 뭐 하자는 거야?

큰일 날 뻔했다. 이들은 사기꾼이 확실했다.

‘제대로 이능 개화를 하기 전이라 그런가 봅니다.’

‘네.’

‘매칭 검사는 성급했나 봐요.’

‘넵.’

‘나인 씨는 아직 가이딩을 다룰 줄 모르니까요. 이상한 거 아니에요.’

‘네넵.’

‘하지만 총체적인 잠재 능력 자체는 아주 훌륭하네요. 아마도요. 자, 나인. 일단 여기 서명부터 하시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인을 꼬드기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광기가 가득한 그들의 눈빛에 나인은 냅다 줄행랑부터 쳤다.

그는 의욕을 잃었다. 그다지 관심 없는 일에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인 것 같은데, 뭐.”

나인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이딴 가이딩인지 뭔지가 아니라 에스퍼들에 대한 연구였다. 있으나 없으나 한 능력을 개화시키고자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할 틈이 없었다.

* * *

오늘도 오전 내내 시달린 나인이 센터 공동 식당에 있을 무렵, 그의 앞에 그림자가 하나 졌다.

“또 여기 있네. 여기가 아주 지정석이지.”

기포가 뽀글거리는 어항과 그 안에서 하늘하늘 헤엄치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멍하게 바라보며 식사를 하던 나인이 고개를 들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황자님, 자리 비었어? 앉아도 되지?”

체드가 건들거리며 걸어와 그가 허락을 하기도 전에 앞자리에 앉았다. 널찍한 어깨가 시야를 가려 어항이 보이지 않자 나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에는 비꼬는 것이었던 호칭은 어느덧 애칭으로 굳어진 지 오래였다. 황자님.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의 별명과 외양을 엮어 말하며 쑥덕거렸다.

섬세하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옅은 속 쌍꺼풀이 진 눈매는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새였으나 끝이 살짝 삐쳐 올라가 있었다. 반듯한 이마에서부터 매끈하게 빠진 콧대를 타고 내려오면 갸름한 턱선이 눈에 띄었다. 여태 수염 자국 하나 없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덕에 그의 얼굴은 유독 어리게 보였다.

홍채는 바다를 한 조각 박아 둔 것과 같이 깊고 푸르렀으며 단정하게 정리된 백금색 머리카락은 설탕으로 뽑아낸 실처럼 반짝거렸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있는 남자가 눈을 접어 환히 웃으면 분위기가 묘해 시선이 절로 가고는 했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행동에서 자연스레 배어나는 우아함마저도 동화 속의 왕자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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