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30)화 (30/63)

#30

‘총체적인 의료 수준은 여기가 더 낫지만 단번에 낫는 약 같은 건 없었어.’

마법이 없는 세계라 그런지 이곳은 의료 기술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고위급의 마법도 없는데 잘린 팔을 접합하는 경이로운 수술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나인이 살던 세계의 의료 기술은 외과 수술적인 방면으로는 비교적 떨어졌지만, 웬만한 상처는 단번에 낫게 할 정도로 빠르고 효과 있는 마법 약이 널려 있었다. 두 세계 모두 각자 방면에서의 장점이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나인은 마력 반응 용액이 실패한 이유를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재료.’

마력 반응 용액의 재료는 다른 마법 약들에 비해 무척 간단했다.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깨끗하게 정제된 물과 마법사, 그리고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성질을 띠는 재료.

여기에 마법사는 없지만 마법사가 만든 마법 약은 가지고 있었으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러니 자체 발광 재질의 재료만 찾으면 되는데 문제는 이곳에서 그러한 재료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뜻밖의 난관이었다.

‘왜 없지? 여긴 천연 마석도 없는 거야?’

이곳의 밤은 온통 깜깜할 뿐이었다. 빛이 나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 나인은 밤늦게까지 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비슷한 것이 없는지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그러다 비슷하다 생각되는 물건을 구하기는 했다. 누군가 벤치에 버리고 간 야광 장난감…. 물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익숙한 재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애초에 여기서 약을 제조하는 방법도 내가 아는 개념과 아예 달랐잖아. 그걸 생각해 보면 익숙한 재료를 구하는 건 포기하는 게 나을거야.’

그래서 나인은 다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화방에서 물건을 몇 개 시켜 보았다.

형광 잉크 리필제. 형광 염료. 야광 도료….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산 물건들로 실험해 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마력 반응 용액이 만들어지기는커녕 희석된 회복 약에 의해 기존의 효과인 상처 치유 효과만 고스란히 남아 에스퍼들에게만 좋은 일을 하고 말았다.

수많은 실험체… 아니 에스퍼들에게 실수인 척 얼굴에 용액을 뿌리거나, 겨우 긁힌 상처를 보며 ‘어쩌면 다리가 썩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어 상처 부위에 비해 훨씬 넓은 범위를 다 적시듯 해도 마력 회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싼 걸 사서 그런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말이 덧붙은 염료들은 죄다 너무 비쌌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은데 말이다.

‘돈 필요한데.’

돈이 정말 급했다. 당장 돈 나올 데가….

“나인, 저 깁스 풀었어요.”

나인은 불시에 나타나 다 나은 팔을 돌리며 자랑을 하는 애쉬를 보고 고민했다.

‘저 사람 부자라던데 돈 빌려 달라고 할까.’

그러한 나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리 없었던 애쉬는 본인이 하던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엑스레이로 찍어 보니 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게 붙었더라고요.”

“…….”

“대답이 없네요. 표정은 또 왜 그래요?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애쉬에게 돈을 빌렸다간 인생이 고달파질 것 같았다. 흐려졌던 나인의 판단력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팔면 부르는 게 값이었을텐데.’

나인이 입맛을 다셨다. 돈이 급한 상황에서 저런 마법 약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애쉬에게 넘겨 버렸다는 게 좀 걸렸다. 애쉬에게 뼈가 붙는 마법 약을 건네주는 것은 나인에게 일도 아니었다. 무색무취인 마법 약을 물이라고 하며 그대로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입에 단것을 달고 사는 애쉬의 습성을 떠올려 낸 나인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법 약과 혼합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 분도 되지 않아 마법 약을 탄 음료를 가져가 마신 애쉬는 물을 탄 것처럼 밍밍하다며 앞으로 해당 음료의 불매를 결심했다. 그게 어제 날짜였다.

“잘 나아서 다행이에요. 이제 훈련받아도 된대요?”

나인이 물었다. 애쉬는 질문에 대답하지는 않고 자신의 회복력이 엄청나지 않냐며 제 자랑이나 해 댔다. 나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누구 덕인 줄 알고.’

내 덕에 팔도 멀쩡해졌으니 이제 그만 오면 좋겠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더 피곤했다.

애쉬는 그의 담당의가 어떻게 뼈가 사흘 만에 붙냐고 혀를 내둘렀다며 몇 번이고 자랑했지만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나인으로서는 그의 말이 우스워 보일 뿐이었다.

* * *

나인은 턱을 괸 채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쇼핑몰 장바구니에 넣어 둔 재료들을 모두 사기 위해서는 주급으로는 턱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뭐라도 팔자.’

그는 연락 달라고 했던 에스퍼에게 만성 피로 해소와 활력 충전에 효과적인 마법 약을 가지고 있다고 넌지시 말을 전했다. 그가 요새 영 피곤하다고 중얼거린 말을 기억한 덕이었다.

“기력 회복제라고요?”

그는 나인이 말을 흘리기 무섭게 흥미를 보였다.

“어제 밤새워 만든 겁니다. 보름초는 달빛을 받으며 다뤄야 효과가 배가 되거든요.”

“……그, 그러고 보니 어제 보름달이!”

“마법이 아주 강력해지는 날이죠.”

나인은 이전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해, 서비스 차원에서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였다. 달과 마법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그러나 나인 외의 사람들은 결코 이러한 진실을 알 리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녀와 오컬트를 숭배했다던 에스퍼는 나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이로워했다.

“또요. 또 뭐가 들어갔습니까?”

“적어드릴까요?”

“좋죠!”

나인은 메모지에 생각나는 재료들을 아무렇게나 갈겨넣었다.

[기력 회복제

재료: 맑은 용암수 100g, 화산 딱딱새 발톱가루 한 꼬집, 50년산 보름초 추출액 2.5g

제조일: 오늘 새벽

제조법: 비밀임.

효능: 기력이 회복됨.]

사실 메모지에 적어넣은 재료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런 하급 마법 약에 보름초 같은 고급 약초를 넣을 일은 없었고 화산 딱딱새의 발톱은 지금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기력 회복제의 비결은 간단했다. 깨끗한 물 한 병에 ‘마법 회복 약’을 한 방울 넣어 희석한다. 이 정도면 신체적인 피로를 푸는 데에는 충분하다.

밤을 새우기는커녕 만드는 데에는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에 넣고 섞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이거면 됐죠? 팔아 줄게요.”

나인이 거짓 레시피와 함께 그럴듯한 공병에 담아 온 기력 회복제를 들어 보였다. 에스퍼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손을 뻗어 기력 회복제를 채가기 전, 나인이 손을 뒤로 물리며 무언가를 당부했다.

“그 전에 조건이 두 개 있습니다.”

“뭔데요?”

“하루 한 병 이상 마시지 않을 것.”

나인이 괜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자 에스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덩달아 조곤조곤 중얼거렸다.

“주의사항이군요. 많이 마시면 어떻게 되는데요? 죽습니까?”

나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효과가 너무 잘 들어요. 그럼 아깝잖아요.”

“아…, 뭐예요.”

남자는 김샌다는 듯 투덜댔다. 그냥 죽는다고 해 줄 걸 그랬나. 어쩐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 더 좋아할 것 같았다. 참고해서 다음번에는 그렇게 말해 줘야지. 나인은 손가락 하나를 더 펴고 괜히 더 은밀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밀 유지입니다. 제가 이런 걸 판다는 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세요.”

그 말에 에스퍼는 이번에야말로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설마 말하면 저주받나요? 마녀의 저주가….”

“저주 없어요. 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법이 뭐냐고 비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사람처럼 지나치게 순수한 맹신론자도 있는 법이다. 말을 하면 저주를 받느냐니, 귀여운 발상이 따로 없어 나인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문 퍼져서 저한테 좋을 것 없을 것 같아서요.”

“예! 비밀은 꼭 지키겠습니다. 하루 한 병. 비밀 유지. 모두 기억했어요!”

나인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사기는 아니었다. 마법 약은 진짜다. 남자가 만족할 정도의 효능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소문이 퍼져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은 게, 고용 계약서에 겸업 금지라는 조항이 있던 것 같아서….

“그런데 제조법은 왜 비밀이라고 적혀 있죠?”

“제 영업 비밀이라서 다 말해버릴 수가 없어요. 원래는 들어가는 재료도 잘 안 알려 주는데 특별히 알려드린 거라고요.”

이런 말을 딱히 미리 생각해둔 것도 아닌데 술술 하다니, 나 사기꾼인가 봐. 나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표정에 미동하나 없이 무고한 눈빛을 유지했다.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홀라당 넘어온 남자는 솔깃해서 중얼거렸다.

“그, 그래요? 영업 비밀이구나.”

“보름초는 특히 남자에게 되게 좋아요. 당신한테만 특별히 팔아 드리는 거니까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마시고요. 만약 효력 못 보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

나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에스퍼의 눈이 부릅뜨였다. 그는 나인이 보는 앞에서 나인이 제조한 가성비 기력 회복제를 단숨에 들이켜 마시고는 벌써부터 효과가 보이는 것 같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음 날.

나인을 다시 찾아온 에스퍼는 효력을 톡톡히 봤다고 호들갑을 떨며 좀 더 구매할 수 없냐고 물었다. 나인은 그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대충 복도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가 그 자리에서 기력 회복 약 열 병을 만들어 냈다. 창조 경제였다.

얼마 안 하는 회복 약을 희석시키고, 또 그것을 물에 한 방울만 타서 팔기까지 하니 마진이 엄청났다. 죄책감이야 조금 들었지만 원래 한정 자원과 희소성을 파는 행위란 이런 것이다.

나인은 에스퍼의 돈을 뜯어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한번 해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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