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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34)화 (34/63)

#34

‘에이, 한 명에서 둘로 늘어나는 건 상관없겠지.’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수입이 두 배.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안일했다. 두 번째 에스퍼는 약속을 지키는 놈이 아니었다. 기력 회복제를 사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같은 팀 에스퍼 세 명을 데리고 와 거래량을 늘렸다.

가지는 계속 뻗어 나갔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의 규모가 점차 불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 덕에 지갑은 순조롭게 두꺼워져 눈독 들이고 있던 재료를 하나 살 수 있었다.

야광 도료나 형광 잉크 같은 조잡한 재료가 아니라 무려 숲에서 자연 발생한 ‘자체 발광 버섯’ 종이었는데, 생물 내의 효소가 공기와 결합하여 발광하는 원리였다. 게다가 무려 해외에서 배송되는 제품이었다. 지금까지 생물을 가지고 실험해 본 적은 없었기에 나인은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잔뜩 들떠 있었다.

나인은 ‘오늘 도착 예정’이라고 쓰여 있는 화면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즐거워했다. 그는 이 택배가 진척을 보이지 않는 연구에 전환점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택배가 도착하면 당장 받아서 발광 물약을 만들어 볼 생각에 들떠 있던 나인에게 벼락같은 불행이 닥치고 말았다.

“단순 운반이나 중간책도 아니고 제조업자라고?”

“그렇다네. 아까부터 마법이니 뭐니 자꾸 뭐 이상한 소리 하는데, 쟤도 한번 혈액 검사 해 봐.”

“…….”

나인은 현재 경찰서 유치장 안에 갇혀 있었다. 옆방에는 낯익은 얼굴들도 함께였다. 어떠한 예고조차 없이 들이닥친 경찰은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하는 나인에게 마약 제조 및 유통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마약상이 아니라니까! 그냥 기력 회복제예요!”

나인은 기력 회복제의 원리를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마법’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경찰들은 관자놀이 옆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가 거래 현장에서 체포된 지 한 시간쯤 지나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애쉬였다. 그는 본인이 나인의 보호자임을 자청했다.

“오랜만이네요.”

“아, 넵….”

그는 여전한 얼굴로 먼저 말을 건넸다. 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태연한 어조는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언쟁도 오가지 않았다는 듯 일상적이었다. 그가 보란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인….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지 사람들한테 불법 최음제를 팔면 어떡해요.”

“……?”

최음제라니? 불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양심적인 포션 메이커 나인은 억울한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그냥 기력 회복제…!”

“그러니까 다른 기력이 회복이 된다니까요? 당신이 말한 것과는 효과가 영 딴판이라고요….”

그의 말에 경찰관들이 낄낄거린다.

“서, 설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 발생 시에는 100% 환불해 드려요. 전 양심적인 가격에 당일 만든 약만 판다고요. 제가 알려 드린 방법대로만 복용하면 성별 나이 관계없이 결전의 그날, 24시간 내내 최상의 컨디션으로 집중력과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

남자의 손가락이 나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당신, 지금 되게 인터넷으로 약 파는 사기꾼같이 말하고 있는 거 알아요?”

“…….”

“남들이 나인이 만든 약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기력 회복제요.”

“‘불끈강장제’라고 불러요.”

“누가 그럽니까? 난 그딴 이름 붙인 적 없거든요!”

경찰서 안에 나인의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들은 물론이고 애쉬도, 그리고 옆 유치장에 갇혀 있던 에스퍼들조차. 특히 경찰들은 서를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나인을 위대한 대마법사님이라고 비꼬며 놀려 댔다.

특히 얄미운 건 이 남자였다. 그는 벙찐 나인의 귓가에 웃음기 어린 말투로 속삭였다.

“욕구 불만이면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요.”

내가 이 한 몸 바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줬을지도 모르는데요. 그 말에 나인의 얼굴이 한껏 붉어졌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시잖아요, 저는 진짜…!”

“그래서 그새 갈아탈 사람은 찾았나요?”

“…….”

“없었죠?”

그 순간 나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이며 지나갔다. 초점이 돌아온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자 애쉬가 목을 울려 작게 웃었다.

“내가 그랬잖아요…. 당신에겐 지금 나밖에 없다고.”

그가 말꼬리를 흐리며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사뭇 달콤한 목소리에 나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애쉬는 그런 그를 보면서도 그저 방긋거릴 뿐이었다.

“지금도 봐요, 나인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은 나뿐이잖아요?”

“…….”

“도와줄까요?”

나인은 이번 일의 주모자가 애쉬였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물질적 증거는 없지만 심증이 너무 확실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적당한 타이밍에 이런 일이 터지고, 자신이 곤란할 때 그가 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리가 없다.

‘어쩐지 한 며칠 얼굴도 잘 안 비치더라니 뒤에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아니, 사실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불안하기는 했는데 이런 일로까지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뜻이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나인은 애쉬가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배신감이 더 컸다.

하루 종일 서를 들락거리며 경찰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도시락까지 사 들고 오며 나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보이는 애쉬의 태도에 경찰들은 이미 반쯤 넘어간 지 오래였다.

설마 본인들이 먹은 ‘불끈강장제’가 마약이었느냐며 역으로 역정을 내던 에스퍼들은, 반나절이 지나 나온 ‘불끈강장제’의 성분 검사 결과 순수한 물일 뿐 어떠한 위험한 성분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단 하나의 마약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

“마법 약 맞다니까.”

그러자 에스퍼들은 자신들에게 그냥 맹물을 판 거냐며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마법 약의 효능은 아마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나인은 돈은 좀 받아먹었을지언정 결코 불량품을 팔지 않았으니까.

그는 인간 혐오를 느꼈다. 이를 갈며 다시는 저 배은망덕한 놈들에게 기력 회복제를 만들어 주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

“왜, 왜 쳐다봐요?”

처음 그의 마법 약을 사 가기 시작한 에스퍼가 나인의 앞을 지나가며 물었다. 나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지레 찔려 중얼거린 것이었다.

“일주일의 마녀가 저주를 내릴지어다.”

“예?”

“불운이 그대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앞으로 하는 일은 족족 미끄러지고 흐린 날만 그대의 인생에 가득하리라. 요행은 바라지도 말지어다.”

나인은 생각나는대로 아무렇게나 대충 지껄였다. 부릅뜬 눈이 남자와 마주쳤다. 나인의 말뿐인 저주에, 근거 없이 마녀와 마법을 맹신하는 에스퍼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다른 놈들에게 끌려 나가면서도 “나, 나중에 연락할게요! 나인! 꼭이요!” 하고 간절하게 외쳤다.

‘등신, 그걸 믿네.’

나인은 그가 서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소심한 화풀이에도 화가 덜 풀린다. 남이 만들어 준 마법 약에 해괴망측한 이름이나 가져다 붙이고….

‘뭐? 불끈강장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에스퍼들은 무혐의로 일찍 풀려났지만 나인은 그리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경찰들은 절차라는 게 있는 법이라고 충고하며 나인의 항의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아온 애쉬의 손에는 서류 한 장이 달랑 들려 있었다.

‘해임 통지서.’

예상한 바였다. 나인은 고용 계약을 위반했고 필수 인력이 아닌 말단 직원이기에 해고 통지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었더라도 뒤에서 애쉬가 손을 쓰지 않았나 싶었다. 정확한 과정까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억울할 일은 아니었기에 나인은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고 서류를 빤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이미 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깎인 이상 가장 먼저 잘려 나갈 것은 그였다. 해고 통지는 시간문제였다는 뜻이었다. 나인이 크게 동요하지 않자 애쉬는 의외라는 듯 “괜찮아요? 정신 나간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제는 이게 아니야.’

태연할 수 있었던 게, 사실 해고 자체는 크게 상관없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에서 잘리고 난 자신이 각성자 센터에 그대로 잔류할 수가 있냐는 것이다.

‘내쫓기게 되면 아마 센터 밖으로 나가야 하겠지.’

또 낯선 곳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기야 할 테지만 늘 그랬듯 차차 적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센터에서 나가게 된다면 에스퍼들과도 멀어진다. 마력 반응 용액이 진짜 완성되어도 그것을 실험해 볼 실험군이 죄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집에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잖아.’

나인은 손톱을 까득 씹었다. 센터에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사실 나인은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부가적으로는 안정적인 수익도 따라온다. 조건만 봤을 때에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나인은 그대로 시선을 들어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피하지도 않고 입꼬리만 그대로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여상한 웃음이었다.

달리 선택할 게 없기는 하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럴듯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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