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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가이드 (42)화 (42/63)

#42

‘이럴 리가 없는데…….’

리온은 당황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등급이 낮은 가이드라 할지라도 가이딩 파장은 느껴진다. 특히나 초심자들의 이능을 개화시키는 일은 A등급 가이드인 그녀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을 시도해 봐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상한데. 공간미아라 신체 구조가 좀 다른가?”

소문대로 나인은 정말 가이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파장 감지도 안 될 리가 없잖아.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검사를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 같은 가이드뿐만 아니라 에스퍼들마저 그렇게 느낀다는데….

여태 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언짢게 내려다보던 애쉬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더러운 것을 밀어 내듯, 발로 리온이 앉은 의자를 들어 올려 그녀를 의자에서 떨어뜨렸다.

졸지에 의자에서 튕겨 나온 리온이 얼떨결에 일어나며 애쉬를 쓰레기 보듯 바라보았다. 억지로 그녀의 자리를 꿰찬 애쉬가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나인의 손을 덥석 쥐려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손잡을게요, 나인.”

그는 물어보면서도 자신이 왜 이딴 짓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표정이 떨떠름했다. 멀뚱히 그를 올려다보던 나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애쉬는 “이게 뭐 하는 짓거린지.” 하며 불만스레 구시렁거리며 나인의 손바닥 위에 제 손을 포갰다.

순간 나인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는 슬쩍 실눈을 떠 서로 엉켜 있는 손가락들을 내려다보다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그냥 모르고 싶었다.

업무적이기만 하던 리온과의 접촉과 달리, 애쉬와 손을 잡을 때에는 이상하게 마음을 졸이게 된다. 무심코 강하게 그러쥐다가도 제 미세한 움찔거림을 느끼고 손에 힘이 풀리는 것이나 미묘한 온기가 살갗에 들러붙는 감촉이….

‘너무 의식해서 그런 건가?’

조금 겁이 났다. 고작 손잡는 것에서도 차이가 느껴지는데 앞으로도 내가 혼자 이 남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얼떨결에 휘말려서 가이딩이라는 목적 이상으로 홀랑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동안 리온은 시선을 옮겨 나인의 몸에 연결된 측정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응?’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씹새끼가 나인의 손을 잡자마자 수치가 희미하게나마 올라갔다. 가이딩의 세기를 나타내는 숫자였다. 여태 미동도 없던 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치가 점점 올라가다 일정 선에 도달하자 안정적으로 멈췄다.

‘나인이 가이드가 맞기는 맞구나.’

측정기는 정확하다. 사람과 달리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프가 나타나는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리온이 발로 애쉬가 앉은 의자를 툭 차며 말했다.

“그대로 가이딩 흡수해 봐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아, 뭐 하나 제대로 배워 먹은 게 없네.”

리온은 큰소리를 쳤다. 오늘이 아니면 저 새끼에게 언제 이런 말을 해 보겠는가. 비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해둬야 했다. 그건 그렇고 생초짜도 아니고 이 정도 경력이 되도록 가이딩 흡수하는 법도 제대로 모르다니, 여러모로 한심한 에스퍼가 따로 없다.

리온은 가이드라서 에스퍼가 가이딩을 흡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신이 가이드의 파장을 잡아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느껴지는 가이딩을 좀 더 깊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봐요.”

애쉬는 괜히 손만 더 강한 힘으로 쥐어 왔다. 나인이 신음했다.

“누가 손만 꽉 잡으랬어요?”

그런다고 가이딩이 빨리는 줄 아나! 리온이 한심해 죽겠다는 눈으로 애쉬를 내려다본다. 나인도 별다르지 않은 표정이다.

“되게 뭐라고 하네. 둘이 짰어요?”

애쉬가 투덜댔다. 살이 맞닿는 면적이 최대한이 되도록 몇 번이나 손을 고쳐 쥐며 집중하던 애쉬는 순간 파도처럼 넘실대는 에너지가 자신을 감싸는 느낌에 움찔했다. 리온이 호들갑을 떨며 측정기 화면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어, 어! 올라가요!”

그녀가 소리쳤다. 손을 잡고 있던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놀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입술이 달싹였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잠깐이나마 전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흐르는 듯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목뒤의 솜털까지 일어선 것 같았다. 심박이 가이딩 수치와 덩달아 올라갔다.

“어, 다시 내려갔다.”

“…….”

“어때요, 나인. 이제 감이 잡히나요?”

리온이 물었다. 그러나 나인도 애쉬와 마찬가지로 반쯤 넋이 나가 있어 대답을 할 정신이 없었다. 푸른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분명 낯설고 두렵기도 했지만 왜인지 새로운 감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나인은 바로 옆에 앉은 남자를 흘깃대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나는 처음이니 그렇다 쳐도.’

왜 애쉬까지 놀라서 굳어 버렸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후 리온이 가이딩이라는 감각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주려고 했지만 그녀와 손을 잡으면 나인은 귀신같이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인에게 가이딩을 가르쳐 줄 놈은 아무래도 애쉬밖에 없는 듯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불행이. 왜 하필 애쉬예요.”

“나 아직 듣고 있는데요….”

애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리온은 그 말도 무시한 채 나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방사 가이딩 조절하는 방법은 에스퍼한테는 제대로 못 배우는데 어쩌죠?”

“나인은 그딴 거 안 배워도 돼요. 평소에도 가이딩 조절 못 해서 줄줄 새니까.”

“뭔 소리예요?! 그러니까 배워야 한다는 거죠. 방사 가이딩 조절을 못 하면 가이드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에스퍼들이 위험해요! 가이드가 길거리에서 방사 가이딩 하나 조절 못 하고 흘려 대다가 애먼 에스퍼 잡을 일 있어요? 간혹 파장 안 맞는 가이딩 때문에 역효과 난 에스퍼들이 얼마나 많….”

“그거 내 얘기 아닌가?”

나긋한 물음에 리온은 입을 다물었다. 얄밉지만 애쉬의 이야기에 가깝기는 했기 때문이다.

온갖 가이드들을 데려와 붙여 놔도 매칭률은 늘 제로. 가이딩이 되기는커녕 내내 그들을 불쾌해하다 폭주 직전까지 가는 놈이 바로 저 새끼였다.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애쉬가 폭주 증상 보이는 걸 못 본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애쉬는 이상하리만큼 가이드 운이 없었다.

“…아무튼요. 그걸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 가이드가 방사 가이딩을 안 배워도 된다고요?”

“…….”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애쉬는 나인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인은 등급이 낮아서 괜찮아요. 어차피 아무도 가이드인 줄도 몰랐다면서요? 나한테만 느껴지면 그만이죠.”

“네, 낮아서 죄송하네요.”

나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 새끼가 감히.’

리온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명백히 가이드를 무시하는 발언에도 가만히 있는 나인이 리온은 답답했다. 자신이 나서서 뭐라고 해 주려다가 주제넘은 것 같아서 그냥 말았다.

‘저럴 때는 화를 내야 하는데….’

나 같으면 한 대 쳤을텐데. 아, 그리고 체드에게도 귀띔을 해 줘야 했다. 저 씹새끼가 못 보던 사이 더 재수 없어졌다고….

하여간에 씹새끼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별종이었다. 더 높은 등급의 가이드를 붙여 달라고 아우성인 에스퍼들과 에스퍼 팀이 수두룩한데 나인은 등급이 낮아서 괜찮다니…?

리온을 혼란스럽게 만든 두 사람은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짐을 옮겨야 한다며 이르게 자리를 떴다.

그들을 돌려보낸 뒤 동생인 체드에게 전화를 해 애쉬 욕을 하던 리온은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드, 두 사람 매칭률 8%라고 안 했어?”

―그렇다던데. 안 그래도 그거 어디서 밖으로 얘기 새 가지고 지금 난리잖아.

“……확실해?”

―아마도. 왜 갑자기.

“아, 아니, 그냥…….”

리온은 말을 얼버무렸다.

8%라고? 말이 돼?

그 두 사람은 어느 쪽도 가이딩을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측정기상의 수치나 그래프 선도 제가 보기에는 안정적이고 괜찮았는데…?

남들이 말하길 F급도 아니라 폐급이라고까지 하는 나인이 A등급 에스퍼를 제정신으로 감당하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그것도 늘 가이딩 부족에 허덕이는 애쉬를 말이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가이딩 조절 못 해서 줄줄 새니까.’

게다가 씹새끼의 얘기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나인은 평소에도 조절을 안 하고 방사 가이딩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24시간 내내! 기력이 남아나는 게 이상했다.

방사 가이딩은 무척 많은 기력 소모를 필요로 한다. 자신 같은 A등급조차 여러 명의 에스퍼를 대상으로 삼십 분만 제대로 방사 가이딩을 하면 진이 다 빠져 몸살이 날 정도였다.

‘공간미아라 정말 몸 구조가 우리와 다른가?’

멍한 얼굴로 고민을 하던 리온이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러운 일이었다. 가이드도 에스퍼 못지않게 체력 관리가 중요한 직업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에스퍼보다도 더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게 가이드다.

어쩌다 애쉬에게 휘말린 공간미아가 가이드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만큼은 그가 정말, 정말 많이 부러웠다.

나인은 어쩌면 폐급이라 불리는 게 실례일 정도로, 그딴 에스퍼에게 걸린 게 야속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구 뻗어 나가던 망상을 멈춘 뒤 피식 웃었다.

“……설마.”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주 낮다. 센터의 검사 결과는 대체적으로 정확한 편이었고. 리온은 검사실 문을 닫고 나오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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