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7)

입안을 휘젓는 부드러운 느낌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아쉬운 여운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떠 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집의 천정이었다. 집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창고 같은 집안도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침대도, 잔뜩 어질러진 잡동사니들도 천천히 사라지더니 정우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위에 홀로 누워있게 되었다. 

  "결국 체셔 고양이는 아까 그 사람이었던 건가..."

벌판위에 덩그마니 누워 있는 정우에게 새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파랬지만 해는 서서히 지는 중이라 서쪽으로 붉은 석양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그래도 태양은 여전히 그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채 아직 주저앉아 있는 정우의 표정은 모든 게 귀찮은 표정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꿈이라면 왜 아직 안 깨는지, 게다가 왜 등장인물마다 형과 같은 얼굴의 변태들인지...

아니, 그보다 자신은 왜 이런 꿈을 꾸는지 그게 가장 궁금했으며 동시에 답을 알기가 두려워졌다. 

정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빨리 이 황당한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볼을 꼬집고 머리를 두들기는 등 자학해보았지만 아프기만 한 채 여전히 자신은 이상한 세계에 있었다.

  "호오~ 피학증을 가진 꼬마인가?"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야.."라는 중얼거림을 내쉬며 정우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교복차림의 형이 햐얀 테이블위에서 한가로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단정한 교복과 한 치의 삐죽 머리도 없는 형의 고운 머리카락,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무테안경. 언제나 학교에서 마주치면 보게 되는 형의 교복버젼이었다.

  "혹시 모자장수?"

  "어? 어떻게 알았지? 오늘은 모자도 안 썼는데?"

어찌됐건 상황은 정우에게 좋게 돌아가지는 않는 듯 했다. 집주인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모자장수와 정면으로 맞부딪힌 것. 분명 방금 전만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조금 걸었다고 해서 티타임중인 누군가를 만난다는 전개는 역시 꿈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곤 정우는 한숨을 쉬었다.

모자장수는 싱긋 웃어보였지만 정우는 이제껏 형과 닮은 그 미소에 계속 속아왔기 때문에 결코 속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중이다.

그래서 뛰었다.

집주인은 모자장수를 만나면 도망치거나 시키는대로 하거나 하랬지만 시키는 대로했다간 이 꿈의 전개상 분명 이상한 짓일 테니 정우로선 도망치는 쪽을 선택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

뛰어도 뛰어도 이상하게 자꾸 그 모자장수가 눈앞에서 차를 즐기는 모습만이 보인다. 넓은 벌판을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자신은 그 자리를 뱅뱅 돌아 결국 모자장수의 테이블 앞에 멈춰 서는 것이다.

정우는 씩씩거리며 이 황당한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너무 그렇게 힘 빼지 마. 우선 앉아서 차라도 한잔하는 게 어때?"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이상한 위화감 같은 게 배어있었다. 불길한 기분이었지만 더 이상 뛸 힘도 없는 정우는 모자장수가 권하는 데로 테이블에 앉아 따라주는 차를 받았다.

  "안 마셔? 녹차를 싫어 하나보지?"

녹차는 형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루 몇 잔씩 목차를 마시던 형의 버릇을 고스란히 흉내내는 이 모자장수가 얄미웠다. 어쨌건 이 꿈에선 아무거나 덥썩덥썩 주워 먹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정우는 찻잔만 받아들고 가만히 있었다.

  "흐음... 아무것도 안 들었으니 안심하고 마셔."

믿을 리가 있나.

정우는 찻잔을 붙잡은 채 모자장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정우의 시선을 무시하고 잔을 비운 모자장수는 후...하는 한 숨을 내쉬곤 가만히 정우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노려보는 거야?"

  "보내줘. 어째서 아무리 달려도 네 앞으로 오는 거야?

  이상한 술수 쓰지 말고 보내줘."

  "흐응...혼자 뛰다가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돌던 건 너잖아.

  그런걸 나에게 책임전가 시키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에 창피해진 정우였지만 노려보는걸 그만두지 않았다. 

차가 다 식어 가고 있었지만 정우는 개의치 않았고 모자 장수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잔에 새로운 차를 담았다. 찻잔을 들어 향기를 맡곤 무슨 생각에라도 잠긴 듯 가만히 잔속을 응시하는 모자장수의 여유로움에 정우는 답답함을 느꼈다.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정우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음...널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 중." 

그 말에 달칵..하고 찻잔을 놓쳐버린 정우의 반응에 키득거리는 모자장수였다.

  "어떤 게 좋아?

  자위? 도구? SM?

  아, 혹시 원한다면 3P도 가능해."

  "그딴 거 좋을 리가 없잖아!!!"

정우가 흥분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넌 네 형하고라면 어떤걸 하든 상관없잖아?"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면서 모자장수가 대꾸했다.

  "헛소리마! 너희들 대체 왜그래? 

  형 하고라면 뭐든 상관없다니, 형은 이런짓 안한다구!!"

  "그래서...형이 이런짓하기를 원하는 거잖아."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모자장수의 말에 정우는 기가차서 말을 더듬었다.

  "우...우..웃기지마!! 

  이런 꿈을 꾼다고 해서 내가 이런걸 원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희끼리 짜고서 날 놀리는 거지!!"

정우는 씨근덕거리며 [너희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랍인, 집주인, 모자장수...아직 정우에겐 아무짓도 안한 까만 정장의 남자까지 정우는 모두가 한통속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정우의 추측을 부정할 생각은 없는지 모자장수는 여유롭게 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하긴...아직 네게 이런 상황은 벅찰지도.

  그런데 어쩌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제 곧 형은 네게 본성을 드러낼 거야.

  그러니 이제 너도 네 본성을 드러내는 게 어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어째서 모두 형을 나쁘게 말하는 거야? 본성이라는 둥 배신할거라는 둥...

  형의 모습으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구!!!"

정우가 거칠게 소리 지르며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다 식어버린 차가 잔에서 흘러넘쳐 탁자를 더럽혔고 접시와 포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쨍 하는 파열음을 내며 접시는 조각이 나 버렸고 모자장수는 약간 화가 난 듯 찻잔에서 입을 떼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화가 나는군.

  네 놈의 그 형에 대한 숭배가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너는 알고나 있는 거냐?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자랑해대지를 않나...네가 유치원생이냐?

  유치원생도 자기 형을 무슨 애인이라도 되는 듯 떠벌리진 않는다고.

  하다못해 그 흔한 질투심도, 열등감도 없냐? 

  네 잘나디 잘난 형과 있어서 불편한 점이 조금이라도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교복차림의 모자장수의 모습은 형 그 자체였다. 완벽한 형의 모습을 한 채, 학교에서 형이 후배들을 대하는 엄하고 냉정한 그 말씨와 중압감까지 똑같은 그 모습에 정우는 마치 진짜 형에게 혼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더욱더 가슴 아픈 것은 모자장수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도 평소에 염두해두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형의 모습을 한 모자장수에게 후벼 파지니 아무런 대꾸할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네 놈의 그 유아적인 행동 때문에 성격에 안 맞게 착한 형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제 끝이라구."

모자장수는 마치 자신이 그 형이라도 된 듯 말했다. 그리곤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떨구고 있던 정우의 손을 잡아채 자신의 몸에 밀착시키고 그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뜨겁고 뭉클거리는 것이 정우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으읍...읍...읍...!!!"

정우는 양 손으로 모자장수를 두들기며 나름대로 저항해봤다. 그러나 어설픈 투닥거림에 불과한 정우의 저항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에 제대로 된 펀치 하나 날리지 못했고 모자장수가 그 입술을 놓아 주었을 때야 겨우 숨을 내쉬곤 맑은 공기를 들이 쉴 수 있었다.

  "하아..하아...후아...아..."

모자장수의 손에 늘어진 정우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결코 모자장수의 키스가 능숙하다던가 따위의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질식의 문턱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슨...짓이야...

  주절주절 말이 많다 했더니 결국 이런 게 목적이야?"

정우가 모자장수에게 눈을 치켜뜨며 겨우 입을 열었다. 모자장수는 그 모습을 보곤 싱긋 웃더니 정우의 얼굴을 후려쳤다.

풀밭에 정우의 몸이 나뒹굴었다.

모장장수는 정우의 몸 위로 올라 타 두어번 뺨을 갈기곤 티셔츠를 끄집어 올려 그 가슴에 혀를 대어 핥았다.

  "너...저리 비키지 못해?!!"

맞은 자리가 부어올랐다. 코피도 난 듯 뜨듯한 액체가 입술을 타고 흘러 내렸다. 정우의 저항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장수는 정신없이 정우의 몸을 더듬으며 입으로 유두를 빨고 있었다.

  "우아악!! 저리 비켜!! 치워!!! 이 자식---!!!"

정우가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쏟아 부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모자장수는 자신의 저항을 쉽게 제압하곤 셔츠를 벗겨내고 바지를 벗겨내었다. 무릎에 걸린 면바지가 거추장스러웠다. 

발악을 하는 정우의 뒷머리를 움켜쥐곤 모자장수가 낮게 속삭였다.

  "닥쳐. 언제까지 네 어리광을 받아줄 생각 따윈 없어."

속옷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정우는 버둥대며 모자장수를 밀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형과 너무나도 닮은 그 모습에 이런짓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하다. 아무리 '저건 형이 아니야!'라고 생각해도 너무도 똑같은 그 모습에서 형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일테다.

'빌어먹을...이 꿈에서 깨면 어떻게 형의 얼굴을 보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정우는 모자장수가 자신의 바지춤을 푸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초등학교 이후 한번도 보지 못했던 형의 물건이 나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남의 것을 보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부풀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런 건 형이 아냐..."

애써 모자장수를 부정하며 정우는 덜덜 덜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모자장수를 발로 걷어차곤 어떻게든 도망가기위해 네발로 기는 시늉이라도 내려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정우의 목덜미는 모자장수의 손에 잡혀 버렸다. 그대로 정우의 고개를 풀밭에 처박은 모자장수는 한 손으론 정우의 허리를 치켜올려 자신의 사타구니에 갖다 대었다.

  "그, 그만!!!"

무언가가 정우의 살갗을 찢고 들어왔다. 그 아픔에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한 정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물질이 뒤의 배출구로 들어온 것도 고통 스러운데 그것이 천천히 움직이며 내벽을 찢어 놓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석양의 벌판위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몇 번 꿈틀대던 정우안의 이물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뜨듯한것을 쏟아 놓았고 그 거북함과 역겨움에 정우는 구토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고 있었다. 머리를 땅에 박은 채 허리가 들려 엉덩이만 불쑥 내민 꼴이 되어 울고만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형과 똑같은 사람에게 이런짓을 당한다는게 슬프기도 하고 육체적인 고통도 극심해서 정신도 육체도 너덜너덜해 지는 느낌이었다.

  "네가 뒤로도 느낄 수 있도록 했음 좋겠지만 지금은 내 쪽이 먼저라서 말야..."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겨우 이런 짓이나 하려고 아까 그런 일장 연설을 해댄 거냐..."

  "난 미친 모자장수니까."

  "씹...젠장..이렇게 아픈데 왜 이 꿈은 안 깨는 거야?"

욕설을 내뱉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뒤에서 끌어안는 체온이 기분나쁘진 않았지만 그것이 모자장수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금방 불쾌해졌다.

  "빨리 빼."

아직도 꽂혀 있는 모자장수의 그것에 거북감과 쓰라림을 느끼며 정우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래봤자 잔뜩 울고 난 후의 목소리라 박력은 없었지만.

  "싫어."

  "이 새끼..."

  "얼마만에 얻은 네 몸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 할 것 같아?"   

  "또 알 수 없는 소릴 하는군."

  "말했잖아. 네 형의 본성을 넌 모른다고. 

  네 형이 네게 갖고 있는 추잡한 마음따윈 넌 모르겠지. 

  네게 있어 형은 성인 군자일테니."

  "...아까부터 알수 없는 소리들만 하는데...

  그거 우리 형이 나한테 이러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돼?"

  "오오...그 둔한 머리가 이제야 돌아가기 시작하는군."

  "미쳤군!"

정우는 욕지기와 함께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 뒤에 남아 있는 모자장수의 신체가 혐오스러웠기도 하지만 형을 모욕하는 발언을 형의 얼굴로 해대니 도저히 비위가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싫은가..."

모자장수의 씁쓸한 표정따위 헛구역질을 하는 정우의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정우의 등 뒤에 있었으니까.

  "쿨럭쿨럭...너 자꾸 형 욕을 하는데...

  벌써 몇번째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나한테 이런짓 안 해. 알겠어?"

  "하지만 나는 네 형과 똑같이 생겼지.

  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겠지만 내 몸, 내 얼굴, 내 목소리 모두 네 형과 같아.

  네 형이 어떤 사람이던간에 지금 널 범하고 있는 신체는 네 형의 신체인데...

  이 꿈에서 깬 뒤 넌 과연 어떤 얼굴로 형을 마주보게 될까..."

  모자장수는 정우가 가장 우려하는 말을 꺼냈다. 한 술 더 떠 굳어 있는 정우의 귀에다 대고 섬찟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이런 방법보다 좀 더 재밌는 방법이 많은데 말야...

  사지를 결박해서 매달아 놓은 다음 이런저런 도구들을 이용해볼까... 

  아니면 약을 잔뜩 먹이고 이런저런 곳에도 약을 발라 너 스스로 내 눈 앞에서 행위하게 만들까...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역시 이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너랑 연결되어 있는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

  "...형의 목소리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지마..."

  "킥킥...혹시 모르지. 네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도.."

  "너--!!"

하체의 거북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허리를 뒤틀어 모자장수를 노려 보려했다. 하지만 그 행동으로 정우는 고통에, 모자장수는 다시 밀려오는 쾌감에 둘다 읏...하는 신음성을 내뱉어야 했다.

  "원망해도 좋으니 잘 버텨봐라."  

  모자장수는 쿡쿡 웃더니 다시 하반신을 움직였다. 별다른 전희 없이 단순히 정우의 뒤에 넣고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모자장수는 사정을 했다. 밑에 깔린 정우는 괴로움 뿐이었고 이미 일을 끝낸 모자장수가 또 허리를 움직였을 땐 평소 쓰지 않던 상욕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몸이 찢기는 격통에 정우는 몇 번이고 정신이 아득해 졌지만 모자장수는 즐겁다는 듯 키득거리며 정우의 엉덩이를 잡고 자신만의 쾌감에 빠져있었다. 

살갖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물질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우의 양 허벅지에 피와 정액이 흘렀다.

탈진해서 멍하니 누워 있는 정우에게 단정하게 옷을 추스린 모자장수가 다가왔다.

  "미친 놈..."

가만히 누워 눈알만을 굴려 잔뜩 노려보았다.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고 있는 모자장수가 가증스럽고 꼴도 보기 싫어서 그대로 누운 채 눈을 감았다.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모자장수 앞에서 잠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왠지 매우 졸린데도 잠은 오지 않고 욱씬거리는 아픔만이 신경을 거슬렸다. 

한동안 그렇게 누워서 숨을 고르던 정우는 어째서인지 상황에 비해 자신이 너무 태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한 꼴을 당해 엄청나게 화가 나야 하는데도 상대가 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차라리 담담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하는 것인 듯 했다. 

화를 내어도 그 분노의 대상을 정할 수 가 없다는 것. 

꿈속의 가상인물에 불과한 모자장수에게 당했다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가상 인물. 단지 형과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꿈에서 깨서 형에게 화를 낼 수도 없다. 결국 정우는 이런 개뼉다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듯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눈을 뜨고 그 붉은 하늘을 응시하는 정우의 옆에 모자장수가 털썩 하고 앉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의 끝이 발갛게 타오르더니 모자장수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정우는 키득거리며 짓궂은 미소를 띄웠다.

  "흉내 내려면 제대로 해. 형은 담배 안 피워."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모자장수는 정우를 내려다 보곤 입에 머금던 담배연기를 정우의 얼굴에 내뿜었다.

  "너야말로 제대로 알아둬.

  네 형은 중학교 때부터 담배 피웠어. 꽤 골초라구.

  그 사실을 네게 들키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했지."

정우는 자신도 모르는 것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모자장수가 의아했다.

  "너 누구야?

  ...아니, 너희들 누구야?!"

모자장수는 희미하게 웃으며 담배를 빨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고 먼저 입

을 연 것은 모자장수쪽이었다.

  "너 말야. 나한테 아까 그런 짓 당해도 별로 화 안나지?"

  

뜬금없는 소리에 정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할 땐 소리치고 욕하고 바둥거려도 일이 끝난 지금 넌 네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잖아."

  "......"

  "물론 이게 꿈이라서 그럴 수도 있긴한데 말야...

  너... 상대가 형이라서 그런 거 아냐?"

자신의 존재가 꿈이라는 걸 인정하며 모자장수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정우는 또 이 변태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하려나 하곤 모자장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 형을 좋아하잖아."

당연한 말에 정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이야. 하지만 이런 식은 아냐, 너희들이 말하는 이런 식은 아니라고."

그런 정우가 우습다는 듯 모자장수는 비웃었다.

  "아니, 잘 생각해 봐.

  너는 너를 쓰다듬어주는 형의 손에 무언가 기대를 가진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

  학교에선 차가워도 자신에게만은 다정한 형에 대한 우월감이 들지 않았었냐구.

  가끔은 언제나 너 보다 뛰어난 형을 내리 깔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네가 부러워하는 그 깔끔한 턱 선에 입술을 대어보고 싶지 않았어?" 

모자장수의 어이없는 발언에 정우는 흥분해 버렸다.

  "내가 너희 같은 변태인줄 알아! 형제끼리 무슨!!"

정우는 자신과 형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이 황당한 꿈에 질리는 걸 느끼며 소리질렀다.

  

  "인간의 마음이란 추악해서 그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동물이야.

  네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형도 알고 보면 더러운 속물이지.

  하나뿐인 동생에게 미움 받지 않으려고 어울리지 않게 쩔쩔매는 꼴이라니...

  하지만 곧 정체가 드러날테지."

모자장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정우의 양 볼을 부드럽게 쥐었다.

  "네 형이 너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네가 알게 되면 넌 어떤 표정을 할까."

형과 닮은 그 얼굴이 너무 애처로운 표정이라서 정우는 차마 "이 변태야! 우린 형제야!!!남자끼리라구!!!" 라는 말은 내뱉지 못했다.

정우의 볼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던 모자장수의 손이 떨어져 나가며 정우는 투덜거리는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쳇...역시 이런 건 나한테 안 맞아.

  널 보고 있으면 잔뜩 울려주고 싶은데 말야.

  종류별로 준비된 기구도 여러 개지만 무엇보다 내 아랫도리가 진정하질 않으니.." 

갑작스런 위화감을 느낀 정우는 흠칫하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엉덩이가 욱씬거리는 게 너무 아파 차마 제대로 앉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모자장수의 뒷모습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쏟아지는 졸음을 못 이겨 털썩 하고 풀밭에 드러누워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 각막에 형과 닮은 모자장수의 뒷모습을 새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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