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치워!
퇴근한 차형욱은 제일 먼저 은우가 잠든 침대로 다가갔다.
작은 입을 꼭 다물고 깊이 잠든 은우의 긴 속눈썹은 굳게 닫혀 작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그리운 하늘빛 눈동자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녀왔다.”
다정하게 속삭인 차형욱이 은우의 하얀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인사를 건넸다.
차형욱이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자 정도훈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이! 왔어?”
“별일 없었나?”
“미친! 매일 컴퓨터 들여다보고 있는 거 아는데, 뭘 물어? 우리 잠자는 천사님은 그대로지…….”
씁쓸한 목소리로 한탄 섞인 투정을 부린 정도훈이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양손에 들고 왔다.
하나를 차형욱에게 던졌다. 가벼운 견과류를 담은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리며 정도훈이 입을 열었다.
“다행인 건 음식물을 전혀 먹지도, 그렇다고 링거를 맞추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이 한 달을 보냈다는 거지.”
“그래.”
사실 초반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입가에 물과 유동 음식물이라도 넣어 보려 했다. 조금도 넘기지 않는 은우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었다.
영양제라도 놓으려는 정도훈을 막은 건 차형욱이었다.
은우란 존재 자체도 평범한 인간과 다른 점이 있고 해서, 보호자인 차형욱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은우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핼쑥해졌다면 영양제 투여는 확실했지만, 은우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저 잠을 자듯 깨어나지 않는 것뿐이었다.
“본가에 한번 들려라. 말씀은 없지만, 아버님도 기다리시는 눈치시더라.”
“…….”
“매정한 놈! 은우 깨어나면 꼭 같이 데려와. 내 진료비 대신이라고 생각해서라도 꼭 그래라.”
“……그래.”
“전에 은우랑 있을 때 벌어졌던 습격…… 동수가 조사한 것 나도 봤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막말로 네가 황성파 차현수 보스 아들인 건 모를 수도 있다고 치자. 몇 년간 연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YJ 그룹회장을 습격해?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는 해도 고작 신생 조직인 남부파 주제에? 몰랐다면 병신 조직으로 사라지겠지만, 알고 했다면 확실히 뒤에 뭔가 있지.”
“음. 그렇겠지.”
차형욱의 시선이 차갑게 번뜩였다.
은우를 다칠 뻔하게 만든 놈들이었다. 더구나 그 습격을 시발점으로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거야 자명한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주 작은 연관이라도 있는 자들은 모조리 찾아야 했다.
죽기 전까지 땅바닥을 기며 죽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빌 때까지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다만, 혹시나 싶어서 본가 측에서도 이번 일로 하부 조직 관리 들어갔다. 아버님이 많이 화가 나셨다. 한동안 좀 시끄러울 듯해. 물론 네 뜻대로 남부파는 건들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중이고.”
묵묵히 정도훈과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늦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의 별채로 걸음을 옮기는 정도훈을 보내고 은우가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차형욱은 아직 곤히 자는 은우의 잠옷 단추를 풀었다. 바지와 속옷을 조심스럽게 내린 후 눈부신 나신에 눈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서둘러 큰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미리 받아 두었던 적당한 온도의 물을 다시 확인했다. 시원한 페퍼민트 입욕제를 살짝 넣어 둔 뒤라 은은한 푸른빛이 나는 욕조에 은우를 안고 같이 들어갔다.
은우의 등을 가슴에 기대게 해 꼭 끌어안은 차형욱이 은우를 세심하게 씻겼다. 혹여 누워만 있는 몸이 불편할까 온몸을 부드럽게 주물러주었다.
긴 머리에 샴푸를 풀어 살살 어루만져 헹구어냈다. 얼굴을 닦아주고, 은은한 향이 나는 샤워 젤로 마무리했다.
큰 수건으로 작은 몸을 감싸 추워지기 전에 물기를 닦아주었다.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꼼꼼하게 말린 뒤에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주었다.
벌써 익숙해진 일과에 어렵지 않게 끝하고, 은우 옆자리에 차형욱이 몸을 뉘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따뜻한 온기를 차형욱은 자신의 단단한 가슴 위에 올렸다.
하얗고 단정한 이마에 입술을 가져가며 오늘도 하루를 마감했다.
철컹.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녘이었다.
컨테이너로 된 제법 넓은 공장의 문이 열리며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갑자기 접한 새카만 어둠에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공간에 가득 찬 숨 막히게 진한 피비린내만 코 안이 순간 마비될 듯 풍겨왔다.
“읍! 우, 우욱.”
황성파에 들어온 지 3년차의 어린 조직원 선우열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희미하게 보이는 선혈과 피비린내를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터트렸다.
“차형욱! 미친 새끼!”
짧지 않은 정적이 흐린 후, 정도훈이 욕설을 내뱉었다.
폐쇄된 공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진동하는 피 냄새에 정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같이 들어온 나머지 황성파 조직원들도 할 말을 잃고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비어 있는 넓은 공간에 얼핏 보이는 건 검붉은 피, 피, 피뿐이었다.
그 가운데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차형욱이 표정 없이 서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새카맣게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절로 터져 나온 정도훈의 욕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음 없는 공간이었다.
무겁고 긴장된 침묵만 비릿하게 내려앉았다.
흰자가 붉게 충혈된 새카만 눈동자에 언뜻 보이는 것은 새파란 살기였다. 칼 밥 좀 먹었다는 베테랑 조직원들조차 차형욱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뚝. 뚝.
굳게 쥐어진 차형욱의 주먹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만 텅 빈 공간에 울리고 있었다.
어둠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드러나는 컨테이너 공장 내부의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잔혹한 참사의 현장이었다.
“으으…… 으, 읍! 웩.”
밧줄에 묶이고, 땅을 나뒹굴고, 의자에 앉혀진 찢긴 고깃덩어리들이 눈을 파고들었다.
나름 엘리트로 선정되어 따라온 황성파 조직원들이 있는 방향에서도 구역질 소리와 입을 틀어막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없이 그 속에 서 있는 차형욱을 어이없게 쳐다보며 정도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만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차형욱! 너……. 도대체 이게, 무슨? 하!”
한 달하고 반이 되었다.
차형욱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고삐 풀린 차형욱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잠들어 있었다.
지금은 그가 지칠 때까지 날뛰게 두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젯밤 이곳으로 간다는 박동수의 말을 전해 듣고도 말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미친놈에게는 약도 없다던데, 미친 차형욱에게는 답이 없었다.
은우가 깊은 잠에 빠지고, 은우를 돌보며 하루하루 인내했다. 매일 은우를 끌어안고 숨만 쉬며 버티던 차형욱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계처럼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했다. 살이 빠져 날카롭게 변한 턱과 전보다 접근하기 힘든 냉혹한 분위기가 흘렀다.
사실 그 모습에 은우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온 것뿐이라 착각했다.
은우가 깨어나면 괜찮아질 거라 쉽게 안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은우는 잠이 들었지만, 여전히 차형욱의 옆에 존재했다.
은우를 세심하게 돌보는 차형욱이 보이는 온기를 머금은 눈빛이 멋대로 판단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 차형욱은 괜찮을 거라고. 병신 같은 착각이었다.
차형욱이 미쳐간다.
불과 5일 전이었다.
차형욱이 있는 본관의 창문이 깨져 나가고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별관 건물에서 정도훈과 맥주를 마시고 있던 보디가드 박동수가 순식간에 뛰쳐나가 본관 건물로 들어갔다.
그보다 한 발짝 뒤에 도착한 정도훈이 열린 침실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박동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은우가 있던 침대 위에 은우가 없었다. 대신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둥근 물체였다.
놀라운 현상에 침실로 한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전체적으로 은빛이 감도는 불투명한 하얀 막으로 된 둥근 형체의 속은 볼 수가 없었다.
“안 돼! 은우, 제발 가지 마!”
절박한 고성이 귀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차형욱이 공중에 조금 떠 있는 둥근 물체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그것을 향해 가까이 다가서면, 순간적으로 튕겨내버리는 강한 힘이 차형욱의 몸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정신 나간 차형욱은 쉬지 않고 옆에 있는 물건을 던지고, 공중으로 뛰어들기를 반복했다.
이미 침실에는 멀쩡해 보이는 물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깨진 물건의 잔해들이 바닥에 떨어진 차형욱의 몸에도 상처를 입혔다.
여기저기 긁혀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모습에 서둘러 정신을 수습한 정도훈이 차형욱 쪽으로 다가갔다.
다시 몸을 날리려는 차형욱의 어깨를 뒤에서 부여잡았다. 강한 힘에 정도훈이 거세게 뒤로 밀쳐졌다.
반복해서 몸을 날렸다가 바닥으로 튕겨져 나가는 차형욱의 상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넘어져 쓰러진 틈에 차형욱을 온몸으로 누른 정도훈이 다급히 박동수를 불렀다.
“박동수! 빨리 잡아!”
“아! 네.”
미친 듯이 저항하는 차형욱을 힘겹게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두면 전신에 상처를 입도록 몸을 날릴 차형욱이 뻔히 보이기에 우선 안정이 시급했다.
미친놈이 힘은 더 세진다더니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기 몸의 여기저기가 긁혀 피가 흐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날뛰는 차형욱이었다.
190센티미터의 미친 차형욱 놈은 187센티미터의 초건장한 박동수와 그보단 작아도 184센티미터는 되는 정도훈까지 힘을 합쳐 막아야 할 만큼 엄청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직들 전쟁에 끼어든 차형욱이었다.
치밀하게 세운 계획에 넘어가 궁지에 몰려 살려달라고 비는 적을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주제에 항상 최전방에서 싸웠다.
잔혹하게 적을 처리하는 차형욱의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미 조직들 사이에서는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인물로 통했다.
그런 와중에 전국에서 노는 성적까지 가지고 있어 얄밉게도 최고의 대학까지 합격했다.
그 좋은 머리와 과감한 행동력으로 조직에서 물러나면서 사들인 기업을 짧은 시간에 이만큼 키운 차형욱이었다.
그렇기에 황성파 후계자였던 차형욱 모습을 잠시 잊었다.
YJ 그룹의 차형욱 회장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졌던 모양이었다. 발작하듯 몸을 일으키려는 차형욱에 박동수와 정도훈은 땀투성이가 되어갔다.
온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차츰 손에 힘이 빠졌다. 역시 미친놈은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차형욱이 자해하는 꼴은 볼 수가 없었다. 힘겹게 정도훈이 말을 걸어 차형욱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차형욱! 힘들다. 제발 정신 차려라.”
“비. 켜!”
“헉!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비. 켜!”
악을 쓰며 이빨 사이로 씹어져 나오는 사나운 짐승 같은 목소리에 미칠 노릇이었다.
박동수는 차형욱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막을 수 없어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심했다.
기절이라도 시켜서 진정시켜야 할지 아니면, 지칠 때까지 잡고 있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정도훈도 방에 있는 마취주사나 진정제가 간절했다. 힘이 빠진 정도훈은 주사기로 차형욱의 엉덩이에 마구 찔러주고 싶었다.
“야 이놈아! 그러다 은우 다치면 어떻게 해?”
“맞아요. 형님! 아니, 회장님! 제발 은우 님 생각을 해보세요.”
혹시 몰라 은우 이름을 들먹였다.
이럴 때는 또 눈치 빠른 박동수 역시 맞장구를 치며 은우 이름을 꺼냈다.
박동수의 입에서 YJ 그룹에 들어가면서 꺼내지 않던 형님 소리까지 튀어나왔다.
돌연 밑에 잡힌 차형욱의 몸이 긴장하는 듯 더 딱딱하게 굳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정도훈이 울상을 지었다.
차형욱이 다시 난리를 칠까 박동수도 바싹 긴장했다. 다행히 몸에 힘이 차츰 빠지며 격하게 숨을 토해내는 차형욱의 모습이었다.
“하악. 하악.”
옷이 온통 땀에 젖고, 붉은 줄이 온몸에 그어져 있으면서도 차형욱은 공중에 떠 있는 물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힘이 빠진 정도훈이 차형욱의 옆에 늘어졌다.
차형욱 미친놈의 미친 짓은 정말 두 번은 못 막을 듯했다.
차라리 의대를 다시 다니라면 다니겠다는 끔찍한 소리도 외쳤다.
물론 속으로만 불같이 토해냈다. 속으로…….
은우가 사라지고 공중에 나타난 저 불투명한 둥근 막이 어떤 것인지는 당연히 정도훈도 몰랐다. 은우의 안전을 위해 저것을 건들지 말라는 것이 정도훈의 비논리적이지만 유일한 설득 방법이었다. 저것 스스로 건드는 걸 거부하지 않느냐. 그래도 건들면 은우가 싫어할지 모른다.
저게 원래 은우의 집이나 차일 수도 있다. 망가지면 분명 은우가 화낼 거다. 은우를 닮아 하얗고 동그란 게 참 어여쁘다.
자꾸 귀찮게 하다가 없어지면 어쩔 거냐 등등 정도훈 자신이 듣기에도 부끄러운 소리였다.
은우 이름만 마구 집어넣은 황당한 설득 아니, 멍멍 소리에도 냉정한 판단력의 차형욱이 넘어갔다.
아마 은우 소리만 들려 그랬겠지만, 옆에서 같이 설명을 들은 박동수만 어이없는 눈초리를 정도훈에게 살짝 보냈다.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난 차형욱이 허공에 떠 있는 물체에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어느 정도 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하더니 그 이상이 되자 밀어냈다.
자리에 서서 그것을 말없이 응시하던 차형욱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차형욱이 나가자 박동수와 정도훈이 눈빛만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땀에 젖었던 몸을 씻고 다시 나타난 차형욱이었다.
다시 한참을 침대 위 물체를 바라본 차형욱이 거실로 나갔다. 그때야 정도훈이 쭈뼛거리는 박동수를 끌고 거실로 나가보았다. 불도 켜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차형욱의 모습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잔잔한 모습이 아까보다 오히려 섬뜩했다.
슬슬 눈치를 보며 정도훈이 말을 걸어 보라고 박동수를 밀었다.
몸에 힘을 딱 주고 버티는 박동수가 정도훈의 신호를 무시했다. 눈동자를 의미 없는 45도각도 위로 고정하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한참을 둘이 말 없는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익숙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동수, 내일부터 당장 애들 데려가 남부파 놈들 잡아들여라.”
“네?”
“그때 공격했던 남부파 놈들이 키우는 개새끼까지 다 잡아들이라고 했다. 사흘 준다.”
“네, 알겠습니다.”
‘차형욱! 제정신이야? 기다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자고 했잖아? 갑자기 돌았어? 엉?’
오랜만에 YJ 그룹회장이 아닌 황성파 후계자로 돌아간 차형욱의 차가운 카리스마였다.
차마 따지거나 묻지는 못하는 정도훈은 비굴하게 속으로 열심히 따졌다.
은우가 잠든 사건의 날, 차량 공격을 강행했던 간 큰 신생 조직이 ‘남부파’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감시해서 그들을 움직인 배경을 밝혀 같이 처리하려고 했던 차형욱이었다. 괜히 남부파만 건드려 진짜가 숨어버릴 수 있었다.
또, 구석에 몰려 더러운 이빨이라도 한 번 더 들이댈까 냉정히 지켜보던 차형욱의 심경이 바뀌었다.
“인간적으로 처리할 이유가 없어졌다.”
“…….”
차형욱의 혼잣말 같은 명령은 분노나 다른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고 낮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어느새 정도훈은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 말이 있었던 후 정확히 5일 만에 우리는 피범벅이 된 창고 안에 있었다.
제법 시간이 지나 어두운 창고 안의 윤곽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자 참혹하다는 말은 부족했다. 처음 들어와 지나쳤던 창고의 문 옆에는 창백한 표정의 박동수가 서 있었다.
어제 잡아들였던 남부파 조직원들로 보이는 핏덩어리 육체들은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거나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치워!”
끼이익, 쾅.
박동 수는 닫히는 문 소리에 드디어 긴장이 풀었다.
한참을 누르고 참아왔던 구역질이 목구멍 깊숙이부터 치밀어 올랐다.
몸을 돌리고 벽을 한 손으로 잡았다. 누런 신물이 나올 때까지 몸을 수구려 속을 비워 냈다.
뒤에서 손바닥으로 신경질적으로 철썩철썩 성의 없이 박동수의 등을 쳐주며 정도훈이 입을 열었다.
“아휴, 미친 차형욱! 잘도 골고루 처발라놨네.
아주 행위예술을 해놨구먼. 차씨 집안에 예술가 하나 나셨구먼.
망할 놈! 내가 빨리 늙어 죽어야 이놈 이런 미친 짓을 안 볼 텐데…….
젠장! 어이야, 아주 잘게 다져났구먼, 어구 저놈은 손가락이 하나도 빠짐없이 걸레짝이네. 왜? 차형욱이 배고프다고 오징어 다리 씹듯이 질근질근 씹어놓았느냐?
어이구 저놈은 더 가관이네. 지가 의사야? 왜 배는 까뒤집어 열어놨나? 환장하겠네. 하!
저, 저…… 저 또 뭐냐? 차형욱이 언제부터 저렇게 서비스가 좋아졌어?
남들 손톱, 발톱도 다 깎아주고.
근데, 왜 저렇게 짧게 깎았지? 뻘건 살이 다 보이네. 제대로 돌은 새끼!
내 자식 같았으면 언덕 위 하얀 하우스로 진즉 주소이전 했다. 어이구, 내 팔자야!
내가 수술대에서도 보기 힘든 의학계의 천재를 눈앞에 두고도 몰랐구먼. 저건 왜 뱃속에서 꺼내놓았지?
빌어먹을 저걸로 혼자서 줄넘기라도 하디? 내가 미춰버리겠구먼.”
“컥, 웨엑.”
철썩철썩 누군가 등을 쳐주자 토하는 도중에 박동수가 뒤를 둘러보았다.
아까 어떻게 참았는지 쉴 틈 없이 입을 놀리고 있는 정도훈 형님이었다. 이미 밖에 나가버려 없는 차형욱 회장님을 몰래 씹느라 바빠 보였다.
혹시 밖에 들릴까 소심한 목소리로 따발총처럼 입을 놀렸다. 욕을 하는지 주변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는지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정도훈 형님의 말에 더 나오지도 않고 멈췄던 헛구역질이 다시 터져 나왔다. 박동수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그제야 정도훈이 입을 다물었다.
굳은 얼굴로 한참 고민하던 정도훈이 머뭇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제 저녁부터 계속 이 미친 짓거리 했는데, 결론은 뭐냐고, 응?”
“…….”
“내가 보기엔 이 꼴을 보니 지 작은 마누라 속옷 색깔까지 싹 다 불었겠구먼. 말해봐라.”
“…….”
“왜 말이 없어? 설마 아무것도 없었냐?
“…….”
정도훈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박동수는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에야 작게 고개를 흔들어 부정하는 박동수지만, 반복해 묻는 정도훈의 질문에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어제 늦은 저녁부터 시작된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아직도 귓속에 생생히 맴돌았다.
어젯밤 남부파 조직원들이 설치는 강서구 일대를 감시하다가 그들이 관리 중인 ‘단란주점 연’을 덮쳤다.
큰 거래가 성사됐다며 남부파 실세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
여자를 끼고서 약과 술을 먹고 마시느라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새까맣게 몰려든 황성파 조직원들에 인해, 남부파 실세들은 10분도 안 돼서 모조리 끌려왔다. 외진 곳에 있는 창고에 그들을 가두고, 차형욱에게 최종 보고를 했다. 사라진 남부파 두목 황두식만 전국에 수배를 내렸다. 이제 남부파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아치나 철없이 어린 잔챙이들만 남았다. 남부파를 구성하는 실세들이 전부 끌려온 것이었다. 뭣도 없이 크기만 키워놓은 신생조직이라 해체는 쉬웠다.
어두운 창고 문이 열리고 드디어 등장한 차형욱 회장이었다.
처음에는 멋모르는 남부파 놈들이 욕설과 침을 내뱉었다. 약과 술기운에 취해 젊은 차형욱의 겉모습만 보고 오히려 협박을 날렸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경악과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창고 옆에 매달린 철제 파이프를 차형욱이 다리로 한 번 걷어차고 팔로 뜯어냈다.
깡!
맨 앞에 앉아 있는 남부파 놈의 머리통에 피 분수가 솟구쳤다.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얼이 빠졌던 놈들이 경악 찬 신음을 질렀다. 살려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때 알지 못했다.
제일 먼저 죽어 나간 놈은 행운아였다.
차형욱은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얼굴로 심문은커녕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움직일 뿐이었다. 움직임이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피가 튀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잠시 후 묻지도 않는 차형욱에게 자신의 모든 걸 닥치는 대로 털어놓는 남부파 조직원이었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있었던 모든 죄악이나 비밀을 횡설수설 토해냈다.
끝내 마지막 한 명을 처리할 때까지 차형욱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단지 표정 없이 그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들 앞에 차형욱 회장의 모습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괴물이었다.
없어진 남부파 두목 황두식 대신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끌려온 넘버2 석중만이 마지막이었다. 동터올 무렵 쥐어짜듯 석중만이 뱉어낸 단어는 박동수의 입으로 도저히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다. 두목 황두식과 넘버2 석중만을 제외한 나머지는 차형욱 회장이 황성파 후계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덤빈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고액사채는 애교였고, 마약과 장기매매까지 이용하는 죽어도 싼 머리 빈 쓰레기들이었다.
처음엔 떨기만 하던 이들도 새벽이 밝아오기도 전에, 7살 때 슈퍼에서 알사탕을 훔친 것까지 다 까발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살려달라는 말 대신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넘버2 석중만도 두목 황두식의 명령으로 움직였을 뿐 자세한 건 몰랐다.
황두식의 사무실에서 흘러 들은 모든 기억을 짜냈다. 자신도 의미를 모른 채 뱉어낸 단어를 마지막으로 비명은 끝났다.
무작정 떠올린 그 단어 덕분에 석중만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끝낼 수가 있었다.
“……키, 킹…… 스파이크…….”
붉은 피만 가득한 공간에 소름 끼치게 무표정한 조각 같은 얼굴의 차형욱 회장이 있었다.
선명한 붉은 자국과 어울려 어딘지 모르게 가학적인 퇴폐미마저 흘러나왔다.
쏴아아.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한참을 지난 후에도 붉은 핏줄기는 밑으로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빈틈없이 짜인 단단한 잔 근육 사이를 타고 붉은 강이 흘렀다.
한 손으로 벽면에 잡고 물줄기 아래 푹 숙인 머리에서 끊임없이 옅은 붉은색 물줄기가 턱을 따라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평소 고급 와이셔츠 안에 잘 숨기고 있는 실전으로 단련된 날렵한 몸이었다.
빈틈없이 꽉 짜인 싸움에 실용적인 근육들이 진정이 되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특히 벽을 짚은 과부하 된 팔 근육들은 잔뜩 힘이 들어가 요동쳤다.
터질 듯 부풀어 올라 더운 김이라도 나올 듯 달아올라 있었다.
벌겋고 퍼런 힘줄이 팔뚝 위를 그대로 휘감고 펄떡거렸다. 온몸이 끓어올라 제멋대로 날뛰었다. 잔뜩 흥분된 피에 미친 짐승 새끼한테 먹혀들어가지 않도록 차형욱은 주문 같은 이름을 끊이지 않고 되뇌었다.
‘은우, 은우, 은우, 은우, 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