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너는 나의 하늘이다
(은우 Side)
눈이 떠졌다.
유난히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멍하고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머리도 가볍고 꿈결 같았던 기분도 사라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 번에 들어 올린 속눈썹을 깜빡이며 평소처럼 아가를 찾았다.
어? 눈뜨면 맨 먼저 마주치는 아가의 까만 눈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올리고 자면 단단히 받쳐주는 아가 팔도 없었다. 듣기 좋은 아가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가, 없다.’
눈꼬리를 축 내리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풀이 죽어 다시 침대 위에 기대고 누웠다.
잠이 완전히 깨고 맑아진 눈동자에 비친 주변은 자기 전과 달리 선명했다. 전에 보았던 불분명한 색채들이 또렷하게 보여 눈을 비비고 쳐다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전에 몰랐던 것들이나 기억도 머릿속에 있었다. 흐릿하게 알던 것들도 자세히 떠올랐다.
그건 다 좋았다. 근데 자고 나서 아가가 없는 건 싫었다.
밖으로 나가 아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침대 위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가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침대 가운데 누워 있던 몸을 옆으로 두 바퀴 굴리자 은색 머리카락이 내 몸에 돌돌 감겼다.
‘어? 원래 이렇게 길었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관없었다. 아가를 찾는 게 더 급했다.
침대 밖에 다리를 내리고 걸어가려다가 단단한 뭔가에 걸려 몸이 앞으로 넘어졌다. 순간 감겼던 눈을 떠 앞을 바라보자 살색의 단단한 벽이 내 밑에 있었다.
음? 고개를 조금 들자, 침대 밑에서 자고 있는 아가의 얼굴이 보였다.
‘아가다.’
근데 어쩐지 아가의 살이 조금 빠져 보였다. 날카로운 턱선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가가 나를 먹이느라 자기는 못 먹어서 살이 빠진 모양이었다.
‘속상해. 속상하다?’
그래. 이런 기분이었다.
잠들기 전보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또렷해졌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뭔지 이해가 되었다. 무채색 감정에 조금 색깔이 쓰였다.
아가의 얼굴을 만져보려고 손을 들었다. 겨우 긴 셔츠 밖으로 손을 꺼내 아가 얼굴로 다가가는데 내 손이 이상했다.
어라?
작고 통통한 손이 어째 전보다 약간 길어진 듯했다. 손을 쑥 빼서 보니 팔 길이도 조금 길어 보였다.
아가 말대로 많이 먹었더니 나 정말 컸나 보다.
‘아, 맞다! 기억나.’
왜 그런지 혼자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 지식이 조금씩 떠올랐다.
엷은 막이 벗겨진 것같이 궁금증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아직 어려 쓰면 안 되는 힘을 아가가 다쳐서 나도 모르게 쓰고 아팠다. 그래서 원래 내가 커야 하는 시기보다 빠르게 커졌다.
아가가 아픈데 고쳐주고 내가 아픈 것이 다행이었다.
아가는 내가 지켜주기로 한 존재다. 이건 아가가 어렸을 때 한 약속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성장을 앞당겼지만, 아가가 안 아프니깐 좋았다. 그리고 이제 컸으니 아가 몇 번 고쳐줘도 나 안 아프다.
손을 눈앞에 바싹 들어 앞뒤를 꼼꼼히 살펴봐도 내 손은 맞는데 길이만 아주 조금 길어졌다.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자 마주친 건 어둡게 가라앉은 까만 눈동자였다.
“아가, 깼어?”
“…….”
아가와 눈이 마주치자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이제 막 깼는지 대답이 없었다. 새까만 눈으로 계속 날 바라만 봤다.
뭔가에 놀란 듯 커진 아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거리며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을 들어 아가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어주며 걱정스레 살펴보았다.
정신이 든 흐렸던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다시 빛났다. 순식간에 나는 숨 막히게 나를 끌어안는 아가의 품에 들어갔다.
“아가, 무서운 꿈?”
“……그래, 은우. 꿈이었다. 정말 끔찍한.”
꼼짝 못 하게 안겨서 움직이지 못한 나는 겨우 꼼지락 고개를 위로 들었다.
나쁜 꿈을 꾼 아가를 달래주려고 했다.
그때 뒷목을 감싼 아가의 손에 의해 고개가 순식간에 위로 완전히 젖혀졌다.
“아, 읍!”
아가를 부르려던 나의 입이 순식간에 막혔다.
딱 달라붙은 아가의 입술이 뜨거웠다. 한 손으로 나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아 당겼다.
다른 한 손은 나의 뒷머리를 점점 더 바싹 고정해 옭아맸다.
어느새 나는 아가의 몸 위로 끌어 올려져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고개를 틀어 나의 고개를 아가와 살짝 어긋나게 돌리자 입술이 더욱 완전하게 밀착되었다.
뜨거운 입술 위의 감촉에 눈을 크게 떠졌다.
아가의 거칠어진 입술의 표면이 타액으로 젖자 나의 입술 위를 미끄러지듯 비볐다.
예민한 입술에 아가의 입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촉촉하고 뜨거운 뭔가가 입술 위를 쓸었다. 입을 벌린 아가가 나의 입술 전체를 삼키려는 듯이 입안에 넣었다.
살짝 느껴지는 아가의 치아가 꼭 다문 나의 입술을 건드렸다.
아프지 않게 지근지근 물다가 천천히 입술을 마주 붙여 원을 그려 돌렸다.
타는 듯이 뜨겁고 부드러운 촉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허리 위에 있던 아가의 큰 손이 내 등 전체를 쓸어주었다. 허리에서 쭉 이어진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옆구리까지 빠짐없이 감싸 어루만졌다.
멈추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아가의 큰 손이 다시 날개 뼈를 꼼꼼히 훑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에 작게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 아핫!”
그 순간이었다.
새카맣다 못해 새파란 광채마저 도는 달라진 아가의 눈과 마주쳤다.
벌어진 나의 입속에 뜨겁고 단단한 것을 침입했다.
열 기둥은 입안을 가득 채우고도 멈추지 않았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입안을 온통 휘젓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두꺼운 열기 덩어리는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작은 혀를 찾았다.
순식간에 낚아채 감싸고 끌어당겼다. 구석구석을 다 훑고도 모자라 혀를 비틀고 입천장까지 핥아 올렸다.
“아…… 가. 읍! 으흣……. 하아…….”
타액이 삼켜지고 휘저어지는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숨이 토해져 나왔다. 의미 없는 소리가 입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왔다.
심장 뛰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 몸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아가의 입술에 의해 강하게 틀어막혀 삼켜진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발끝까지 힘이 들어가며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어느새 자리가 바뀌어 내 위에 올라가 있는 아가의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당겼다.
가슴이 아프게 숨이 모자랐다. 처음 겪어보는 타들어가는 뜨거움과 숨 막힘에 눈에 물기가 맺혔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아가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가의 얼굴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그제야 내가 숨이 넘어갈 뻔한 걸 눈치챈 아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등 뒤를 어색하게 쓱쓱 쓸어주며 지친 나의 몸을 조심스럽게 가슴에 기대주었다.
“은우, 괜찮나?”
“하아, 숨.”
“큭! 날 한 달 넘게 걱정시킨 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응?”
침대에 올라가 머리맡에 몸을 기대고 나를 아가의 가슴에 기대게 마주 안아주었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며 아가가 설명해 주었다.
오랫동안 내가 잠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나를 잠꾸러기라고 놀렸다.
그 말을 하면서 많이 아파 보이는 아가였다.
“아가, 미안.”
내 입술을 살며시 아가에게 포개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가의 눈이 살짝 가늘어지며 입술 끝이 부드럽게 변했다.
미안, 예쁜 아가. 미안한 표정으로 기분 좋게 말캉한 아가의 입술에 다시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드니깐, 나를 다시 뚫어져라 보는 아가가 보였다.
“은우, 자꾸 자극하지 마라.”
알 수 없는 아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한쪽 입술만 슬쩍 올린 아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젠 은우가 커져서, 자극하면 참기 힘들지도.”
아가의 커졌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맞다. 나 컸다.
나의 팔이 약간 길어진 것이 생각나서 몸을 후딱 일으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둘둘 감긴 은빛 머리를 잡아끌고 침대에서 내려갔다.
방의 옆쪽 면에 달린 전신거울 앞에 다가갔다. 발밑까지 길어진 내 머리카락이었다.
서 있는 상태에서도 땅에 살짝 끌리고 무거워졌다. 가까이 다가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울 안에는 길고 풍성한 은색 실타래로 하얀 몸이 가린 하늘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뜬 내가 있었다.
시야가 약간 높아졌다. 통통한 볼살도 조금 빠졌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턱 라인은 약간이지만 드러나 보였다.
둥그런 눈매는 그대로지만, 길게 뻗은 눈꼬리가 마냥 동글동글했던 것보다는 성숙해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길게 늘어진 속눈썹을 여전히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아가가 내 어깨와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거울을 통해 나의 눈과 마주했다.
“은우…… 나의 은우…… 나만의…….”
옆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듯이 넘겨주었다.
예쁜 아가의 까만 눈동자가 거울을 통해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가의 더운 숨이 살갗에 느껴졌다. 살짝 고개만 튼 아가의 얼굴이 드러난 내 귀와 목을 스쳐지나 어깨로 따라 내려갔다.
이젠 조금 커졌다고 좋아했는데, 여전히 아가보다는 훨씬 작은가 보다.
빨리 아가만큼 커졌으면 좋겠다.
몸을 한참 숙인 아가의 턱이 내 어깨 위에 닿았다. 심장이 이유 없이 파르르 떨렸다. 새카맣게 내려앉은 아가의 눈빛이 나를 묶어 시선이 돌릴 수 없게 했다.
아가의 까만 눈은 거울 속 내 눈에서 한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천천히 닿아오는 아가의 숨결이 내 목 위에 도착했다.
“아, 앗!”
집요하게 입술을 대고 있던 아가가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목의 여린 살을 입안으로 빨아들여 아가의 치아가 살갗에 느껴졌다. 따끔한 느낌에 고개를 뒤로 빼자, 허리를 강하게 붙든 아가의 손에 목이 더 노출되었다.
목에 입술을 완전히 밀어붙이고 살을 빨아당긴 아가의 입안 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몸이 움찔거렸다.
여전히 거울을 통해 까만 눈동자를 내게 고정하고 떨리는 나를 달래듯 쓰다듬었다. 밀착되었던 아가가 드디어 입술을 살짝 떼고, 혀로 달래듯 붉게 핏기가 몰린 자국을 핥아 주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보자 내 정수리에 머리를 기댄 아가가 보였다. 맛있는 것을 잔뜩 먹어 배부른 표정의 아가가 붉은 자국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날락 말락 촉촉해진 눈매로 아가를 보는 내 모습에 나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쩐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아가의 모습에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아가는 아직 아가라서 입으로 깨물고 빠는 걸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아가가 좋다니 조금 아파도 참아야겠다.
다음에는 반대쪽 목도 가져다줘야지…….
(차형욱 Side)
눈을 감은 나는 은우 특유의 향기를 맡았다.
나의 몸에 맞춰 제작한 듯 몸에 착 감기는 크기였다. 눈을 감고 보드랍고 따듯한 온기를 가슴 가득 느꼈다.
‘원래 은우는 건들면 부서질까 두려운 여리고 작은 몸인데……?’
마치 미약 같이 나를 자극하는 향기에 취해 있던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눈이 번쩍 떠졌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건 넘치는 은빛 실타래 속에 숨은 깨끗한 하늘이었다.
그리웠던 나의 하늘이 내 몸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토해지는 숨을 속으로 부여잡았다. 숨을 쉬는 순간. 눈꺼풀이 내려앉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내 위에서 보이는 은우는 전보다 나른하고 눈부신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깨질 듯 여리고, 어린 모습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믿기 힘들게 아름답게 성장한 나의 은우가 돌아왔다.
늘 멍해 보이는 눈으로 사랑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옅은 하늘빛이 또렷한 존재감으로 성장해 빛나고 있었다.
은우 특유의 나른한 눈빛은 여전했지만, 청정하고 선명한 하늘빛이 되었다.
풍성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속눈썹 사이로 느릿하게 감겼다 떠지는 나른한 하늘빛 눈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소유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작고 몰랑한 연한 분홍빛 귀여운 입술도 전보다 선명한 분홍빛이 감돌았다. 나른한 은우의 분위기와 어울려 남자로 하여금 갖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뭔가가 생겼다.
갓 태어난 아기 천사 같은 외모의 순수한 은우는 지켜주고 싶었다면, 성장한 은우는 그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나에게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다.
“아가, 깼어?”
“…….”
맑은 미성이었던 목소리마저 변했다.
느릿하고 허스키함이 묻어나는 미성에 순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귀를 뚫고 뇌를 직접 자극하는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순간 몸서리치게 두려웠다. 나의 품에 있는 은우를 탐내는 가상의 적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었다. 양팔에 강하게 힘이 들어가 은우를 내 몸에 숨기듯 감싸 끌어당겼다.
순간 자제심을 잃은 나의 입술은 은우에게 닿아 있었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은우의 입술을 삼켜 숨을 모조리 들이켰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허용하지 않았다. 은우의 따뜻한 입안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지만, 이미 정신없이 혀를 밀어 넣고 탐하고 있었다.
여전히 작고 여린 입안의 살들과 혀끝을 스쳐 지나는 것들을 모조리 훑었다. 달콤한 타액에 빠져 자제심 없이 휘저었다.
피하지 않고 얌전히 안긴 은우의 맨등에 손이 침범했다.
떨어지기 힘들 만큼 부드러운 살결이 손바닥에 닿자 희미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들었다.
마구 쥐어뜯고 이성을 잃고 탐하고 싶다는 미친 짐승의 고삐를 단단히 조였다.
쉬지 않고 따뜻한 은우의 입안을 정복해 나갔다. 귓가에 울리는 은우의 달콤한 신음이 날 미치게 달아오르게 했다.
고삐를 겨우 잡아매고 있는 내 온몸을 자극해 날뛰게 했다.
때마침 벌겋게 숨이 막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은우의 손짓이 아니었다면, 이제 막 깨어난 은우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들어와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이었다. 향기롭고 따뜻한 동굴에 영원히 나를 밀어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잡아당기는 은우의 힘에 저항 없이 천천히 조금씩 분리되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은우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물기를 머금은 눈빛의 은우가 빤히 나를 보았다. 은우의 눈빛에 다시 뜨겁게 날뛰려는 짐승을 애써 잡아 눌렀다.
끊임없이 날 자극하는 은우의 모습에 다가올 나의 미래를 짐작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보이지 않는 고삐를 잡고 있는 은우의 손은 이미 나의 모든 걸 지배하고 있었다.
비록 은우는 모를지라도 나의 모든 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은우가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길 원했다.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잠든 은우를 지켜보고 있던 시간은 지옥과 천국을 오가던 간절한 기다림의 순간이었다.
다시 청명한 나의 하늘이 나를 본 순간, 나는 짐승이 아닌 잘 조련된 가축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은우가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한정적인 시간과 상황의 길들여짐이었다.
‘은우. 나를 미치게 하지 마라. 내가 떠나는 너를 상처 입혀서 내 가슴에 피를 흘리게 하지 마라. 내 품에 있는 한 너는 나의 하늘이다.”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 은우가 놀란 듯 크게 뜬 눈동자로 서 있다.
잡티 없이 하얗게 빛나는 나신을 발밑까지 흘러내린 풍성한 은발로 가리고 있는 은우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천사 모습이었던 은우다. 지금도 여전히 나보다는 한참 작았지만, 전보다 10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한없이 말랑한 살도 탱탱하게 변해 중독성에 손을 떼기 힘들었다.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모든 장단점이 모조리 무색해지는 아름다움은 변함없었다. 세상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감탄을 자아내고 가지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자란 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은우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내 안에 있는 유일하고 영원한 존재였다.
내 품에 날아든 너는 내 품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존재였다.
바깥의 어떤 위협과 널 눈에 담으려는 모든 건 내가 찢어발겨 주면 되었다.
사납게 번뜩이던 나의 눈빛이 은우의 하늘빛 눈동자에 다시 평화롭게 가라앉았다.
“아, 앗!”
은우의 놀란 신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은우를 지켜보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너에게 나를 새겨 넣었다.
붉은 나의 낙인이 은우의 하얀 목에 찍혀 있자, 만족감이 물들어 슬그머니 입가가 풀렸다.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은우의 맑은 눈동자가 원망의 빛을 살짝 띠고 날 바라봤다.
그러다 무슨 생각인지 혼자 귀엽게 고개를 흔들며 조그맣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새하얀 너를 나의 색으로 물들여 나만을 바라보게 하면 된다.
다시 뜬 하늘빛 눈을 다시는 감고 싶지 않게 만들어주겠다.
널 지키겠다. 내 품 안에서 그렇게 웃어다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