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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찾았습니다 (15/23)

15. 찾았습니다

퉷.

침을 바닥에 뱉으며 피식피식 웃으며 양아치 같은 사내가 은우가 있는 쇠창살 쪽으로 다가갔다. 붉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긴 이현우가 양아치의 앞을 막아서며 고개를 15˚옆으로 기울여 쳐다봤다.

“뭘 봐? 새끼야? 좀 비켜보지?”

“어디가? 저쪽은 우리 담당이야. 꺼져!”

“구경 좀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 날 막아?”

“웃기는 새끼네. 구경? 돈이나 내고 구경하지? 네놈 구경하라고 쟤가 저기 있는 줄 알아? 꺼져!”

두 손바닥이 보이게 양손을 들어 올린 양아치가 느끼하게 웃으며 장난이었다고 뒤로 물러나자, 긴장감 넘치던 지하실의 분위기가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어제 처음 찾아온 남부파 와 ‘킹 스파이크’가 만남부터 불꽃 튀는 불쾌감이 일렁이더니 좁은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처지가 되니 시도 때도 없이 부딪혔다.

남부파 주요 인물들은 이미 다 사라져 버리고 남아 있던 양아치들 몇 명만을 이끌고 있는 남부파 두목 황두식이었다.

처음에는 차형욱 회장에 대한 두려움에 숨어 있던 이들이, 조상호 사장의 계획과 황성파의 둘째라는 차민석이라는 존재에 같이 복수하고자 뭉치게 된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차민석이 봉지를 손에 들고 은우 쪽으로 걸어갔다. 차민석도 지하실에 들어온 순간 긴장된 분위기는 느꼈지만, 무시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차민석이 들어오자 지하를 지키고 있던 ‘킹 스파이크’ 멤버 5명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미친개 이현우도 가볍게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민석, 안녕.”

은우는 자신이 있는 곳에 들어서는 차민석의 모습에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한숨을 쉰 차민석이 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열었다. 김밥 2줄과 어묵 국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먹으라고 내놓았다.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으려고 해보지만 계속 떨어트렸다.

손으로 집어 먹으려는 은우를 차민석이 저지하고, 젓가락을 뺏어 들고 김밥을 은우에게 먹여 주기 시작했다.

계속 밥을 안 먹는 은우의 모습에 다들 모르는 척 신경을 쓰던 와중, 차민석이 건네는 것만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 은우의 모습에 차별한다고 분노의 고함을 터트린 이현우다. 차민석은 어쩔 수 없이 은우의 밥 담당이 되어 버렸다.

“민석, 배고파. 먹어, 아.”

김밥 2줄 중에 한 줄을 혼자 다 먹자, 은우가 손가락으로 김밥 하나를 들어 차민석에게 내밀었다.

흔들리는 눈으로 김밥을 보다 손으로 탁 쳐내는 차민석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김밥을 이현우가 아깝게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야, 꼬맹이! 나나 주지 왜 싫다는 대장한테만 자꾸 줘? 나도 줘 봐. 아.”

자기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이현우를 은우는 고개까지 팽 돌리고 무시하더니 다른 김밥을 손가락으로 집어 다시 차민석에게 내밀었다.

어이없는 한숨을 쉬느라 살짝 입을 벌리고 있었던 차민석은 그 틈에 자신의 입안에 들어온 김밥을 엉겁결에 받아먹어 버렸다.

“읍, 너는…… 도대체…… 왜? 젠장.”

차민석은 하고 싶은 말이 입안 가득 넘쳤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작게 욕설만 뱉으며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가는 차민석의 뒤로 남부파 조직원들 몇 명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라고 붉은 머리 이현우를 무시하는 은우다.

하지만 요즘 들어 차민석과 여러 번 같이 얼굴을 본 뒤로는 아주 가끔이지만, 대답도 해주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지 은우 담당이 되어 지하실을 지키는 이현우다.

은우가 있는 작은 쇠창살 사이로 계속 말을 시키다가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 ‘킹 스파이크’ 멤버들과 식사를 하고 장난을 치며 이현우가 남부파 조직 멤버들을 예리하게 훑어보았다.

아까부터 자신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비웃듯이 쳐다보는 입 모양새가 이상하게 눈에 거슬렸다. 지금 지하실에는 ‘킹 스파이크’ 멤버들인 10대 후반 아이들 3명에 20대 초반 남자 2명이 있었다. 이현우까지 포함해 총 6명이 지키고 있었다.

남부파 조직원들은 오전부터 왔다 갔다 하더니 점심 후 지금은 5명이 앉아 있는데 수상한 행동이 자주 보였다. 이상하게 껄끄러운 분위기가 본능을 자극해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이현우다.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어제 이현우와 싸웠던 목 전체에 문신한 남부파 조직원을 포함한 3명의 조직원이 들어왔다. 뒤로 손을 숨긴 목 문신의 손이 순식간에 앞으로 휘둘러지며 뭔가 잔상이 지나갔다.

캉.

쇳소리와 함께 이현우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쇠 파이프를 막았다.

두 손을 치우고 앞을 노려보는 이현우의 이마를 타고 서서히 내려오는 핏줄기가 그가 완벽히 방어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줬다. 살짝 흐려진 눈으로 본능에 따라 다시 내려오는 쇠파이프를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새끼들 다 조져!”

6명밖에 없는 ‘킹 스파이크’ 멤버들이 8명이나 되는 남부파 양아치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운데 모여 방어를 하며 이들을 상대하기 시작했으나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앓는 소리가 터졌다.

방어만 하고 주먹질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멤버를 본 이현우가 눈에 불을 켰다. 사납게 몸부림치며 정신없이 손발을 앞으로 뻗었다.

아예 작정하고 쇠 파이프에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온 남부파를 상대하려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의자로 방어를 하지만, 계속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앗! 박보균!”

‘킹 스파이크’에서 가장 어린 박보균이 발에 채 여기저기 얻어맞으며 바닥을 뒹굴고 있자, 한 살 많은 최누리가 몸을 덮어 막았다.

넋이 나간 와중에 자신을 덮은 선배가 머리에 야구방망이를 맞고 신음을 토해내는 걸 듣고 정신을 차렸다. 가까스로 박보균이 다시 몸을 뒤집어 쓰러진 최누리 선배의 몸을 방어했다.

“이…… 어린, 놈의…… 새끼가……. 내가 선, 배야. 비켜…….”

꺼져가는 목소리로 자신을 보호하는 후배 박보균의 몸을 치우려 했다.

머리를 제대로 맞은 듯 완전히 의식을 잃은 최누리 선배의 몸을 기를 쓰고 막는 박보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미친개가 날뛰듯 조직원들을 상대하는 이현우도 거의 한계인 듯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멤버들을 보호하며 뒤로 밀려나 은우가 있는 쇠창살에 몸을 기댄 이현우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은우가 눈을 크게 뜨고 쇠창살 밖의 '킹 스파이크' 멤버들을 응시했다.

“피 나.”

“큭! 처음으로 먼저 말 시키네. 그래! 피 난다. 아파 뒤지겠다. 납치범은 걱정하지 말고 거기 가만있어. 인질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현우를 응시하는 은우가 쇠창살 쪽으로 다가가려다 거기 있으라는 이현우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비켜라! 인질은 우리 남부파에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죽기 싫으면 비키는 것이 좋을걸? 물론 비켜도 너 빨간 머리는 내가 죽기 직전까지만 만들어 주겠지만. 동업자니 죽이진 말라고 두목이 그랬다. 고마워해라!”

어제 이현우에게 크게 당했던 목 문신이 상처투성이 얼굴로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바닥에 쓰러진 박보균과 움직임이 없는 최누리를 제외한 4명의 ‘킹 스파이크’ 멤버는 자신들도 모르게 은우가 있는 쇠창살을 보호하듯 그곳을 막아섰다.

왠지 이 아이를 저들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을 모두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며칠이지만 겪어본 은우는 누구도 미워하기 힘든 존재였다.

인질인 양 가둬두었지만, 항상 자신도 모르게 불편함이 없게 이불이나 먹을 것을 쇠창살 안으로 몰래 넣어준 이들이었다.

심지어 가지고 놀라고 조카 장난감까지 넣어준 이도 있었다. 화장실에도 한 번도 가지 않는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이상한 아이였다.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였다. 함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킹 스파이크’의 어린 소년들이었다.

하다못해 미친개라고 불리는 그들의 부대장 이현우도 은우 앞에서는 욕이나 행동을 조심했다면 말 다했다고 보겠다.

앞을 막아선 이들을 비웃으며 쇠 파이프를 쥐고 다른 손바닥에 탁탁 치며 ‘킹 스파이크’ 멤버들에게 서서히 다가서는 이들의 뒤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순간 희망에 차 문 쪽을 보던 이현우의 시선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뭐야? 아직도 정리가 안 됐어? 빨리 저놈 끌고 와라. 이곳은 이미 황성파에 노출되었다는 정보다! 서둘러!”

“죄송합니다. 반항이 심해서…….”

대화를 나누는 남부파 조직원들과 돼지 같은 두목 황두식을 힐끔 쳐다본 이현우가 고개를 은우를 향해 돌리지 않고 입만 열었다.

“야! 네 이름 은우 맞지? 너, 내 말 명심해! 방금 내가 던진 열쇠 절대 저놈들한테 넘기지 마. 네가 있는 곳 열쇠인데, 그 열쇠 없으면 저놈들 쉽게 못 여는 최신식 구조 자물쇠니깐. 열쇠만 안 넘기면 시간을 조금 끌 수 있어. 황성파에서 이 장소 안다고 했으니깐 조금만 버티면 돼. 절대! 절대! 열쇠 넘기지 마! 알았지? 그리고…… 민석이 너무 미워하지 마.”

“피 나. 아파?”

바닥에 쓰러져 있는 ‘킹 스파이크’ 멤버들을 보고 눈이 커진 은우가 이마에 흘러내린 피가 멈추지 않고 조금씩 턱 끝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현우를 다시 보고 반문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피나면 당연히 아프지. 이게 약 올리나? 아파 죽겠다. 그래도 나오지 마!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를 살짝 본 이현우가 손에 쥔 의자를 양손으로 굳게 잡고 다가오는 이들을 노려봤다.

휙.

“비켜, 이 빨간 대가리! 처음 봤을 때부터 진즉 이러고 싶었다!”

날라오는 쇠 파이프를 의자로 막아서며 이현우가 이죽거렸다.

“그래! 조직은 무슨. 이 양아치 새끼들이! 떼로 덤비는 짓거리라니. 딱 동네 건달이네. 쪽팔리게.”

그렇지 않아도 양아치로 동네 애들 삥 뜯다 남부파에 들어온 목 문신이 흥분해 쇠 파이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 틈을 노려 예리하게 쳐낸 다리에 복부를 맞고 고개가 수그러진 목 문신의 머리를 의자 다리로 내리쳐 바닥으로 넘어트렸다.

의자로 내리찍으려는 이현우를 옆에 서 있던 다른 남부파 조직원이 야구방망이로 공격하자, 작게 혀를 차며 이현우가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온 야구방망이를 서둘러 옆으로 피했다.

‘킹 스파이크’ 멤버들이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의자로 가까스로 버텼다. 21살 김철호의 의자가 제일 먼저 부서져 바닥에 떨어지자 전신에 떨어져 내리는 방망이를 맞고 꿈틀거렸다.

옆에서 막아줄 수 없을 만큼 몰아오는 남부파 조직원들에 이현우를 제외한 ‘킹 스파이크’ 멤버 모두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빨리 못 해! 애들 상대로 시간이 왜 이렇게 걸려?”

독촉하는 남부파 두목 황두식의 고함에 팔에 힘이 들어가는 조직원들이었다.

뒤에 쇠창살을 두고 죽어라 싸우던 이현우의 몸에 맞는 타격수가 점차 늘어나자 반쯤 몸이 접힌 상태에서 정말 미친놈처럼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크크큭! 진짜 미치겠네? 덤벼봐! 딱 한 놈은 나랑 같이 간다. 딱 한 놈이다.”

독하디 독한 놈이 이를 보이고 실성한 것처럼 웃고 있다.

피가 흘러내려 와 붉게 변한 이빨이 소름이 끼치는 남부파 조직원들이었다. 진짜 질긴 놈이었다.

어린놈 주제에 눈빛에 살기까지 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한 명이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은근 소극적으로 다가서는 조직원들로 시간이 지체되자 두목 황두식의 짜증이 폭발했다.

“빨간 대가리! 의자 내려놔. 이놈 죽는 거 보기 싫으면 내려놔라.”

목 문신 놈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킹 스파이크’의 21살 김철호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접이식 나이프를 목에 가져다 댄 상태에서 이현우에게 소리쳤다.

“역시 양아치 새끼! 퉷.”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의자를 바닥에 던지자, 이현우의 몸을 남부파 조직원이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밟다가 멈춘 조직원들이 쇠창살 안쪽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납치되어 잘 씻지도 못 했을 텐데도 여전히 눈부신 은빛과 하얀 얼굴이 빛났다. 뒤에 서 있던 남부파 두목 황두식이 한걸음에 다가와 쇠창살 앞에 섰다.

“어서 열어라! 어서!”

눈에 가득 탐욕과 욕정을 담고 자물쇠를 급하게 가리키는 두목의 말에 쓰러진 이현우의 주머니에 손을 뻗는 조직원이었다.

기절한 듯 누워 있던 이현우가 몸을 격하게 틀며 반항을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2명의 조직원이 발길질하며 이현우를 공격했다. 몸을 새우처럼 굽히고 팔로 머리를 가린 상태에서 낄낄거리는 미친개 이현우다.

오히려 때리는 조직원들이 질린 표정을 짓자, 목 문신이 옆에 있는 의자를 손으로 올려 이현우의 등에 내리쳤다.

이번에는 타격이 제법 큰지 짧게 신음을 토해내며 몸의 꿈틀거림도 멈췄다. 목 문신이 의자를 옆에 내려놓고 이현우의 옆에 앉아 주머니를 뒤졌다.

오른편에 열쇠가 없었다.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는 목 문신의 손이 주머니에 완전히 들어가자 감겨 있던 이현우의 눈이 번뜩 뜨이며 옆에 보이는 목 문신의 귀를 있는 힘껏 물었다.

“악! 놔! 이 새끼가 놔! 악!”

“헉! 형님! 빨리 떨어트려.”

옆에 서 있던 남부파 조직원이 목 문신의 귀를 물고 있는 이현우의 몸을 발로 차자, 귀가 더 당겨져 크게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하는 목 문신의 모습에 나머지 조직원들이 우왕좌왕했다.

목 문신이 주머니에 잡힌 손 말고, 다른 손으로 이현우의 머리를 붙들고 눈을 찌를 듯 공격을 했다. 찢어지는 비명이 목 문신에게서 터져 나오며 이현우의 몸이 드디어 떨어져 나갔다.

완전히 뒤로 뻗은 이현우의 입가는 피로 물들었지만 웃고 있었다.

목 문신의 귀는 반 이상 찢어져 너덜거렸다. 시퍼렇게 살기를 드러낸 목 문신이 옆 조직원의 쇠 파이프를 빼앗아 들고 이현우를 내리치려 했다.

“당장 멈춰!”

급하게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온 차민석이 크게 외치는 소리에 목 문신의 동작이 멈췄다.

남부파 두목 황두식이 뒤를 돌아 차민석을 향해 능글맞게 입을 열었다.

“어라? 이게 누군가? 황성파의 미래 보스 차민석 군이 아니신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차민석이 주위를 둘러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그를 향해 애송이는 어쩔 수 없다며 혼잣말을 하는 척 들리게 비웃는 황두식이었다.

“이미 조상호 사장이랑 이야기 끝냈네. 내가 저놈 데리고 가서 재미있는 사진 찍어서 차형욱이한테 보내 도움 좀 받기로 했다네. 몇 달 데리고 굴리면 차형욱이 알아서 떨어지겠지. 그사이 우리가 필요한 힘과 충분한 자금은 차형욱이 지갑에서 나오겠지만…….”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정말 외삼촌이 허락한 일이라고요?”

“정 의심스러우면 전화해보든지. 나도 차민석 군까지 손대고 싶진 않군. 어쨌든 우린 한집안 식구 아닌가?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군. 미래 사위가 될 수도 있는데? 뒤져보면 나도 딸 하나 정도는 있을 걸세. 아니면 조 사장처럼 하나 만들든지. 큭!”

“뭐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서둘러 전화기를 꺼내 들어 통화 버튼을 누르는 차민석이었다.

Rrrr. Rrrr.

“네, 차민석입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젠장! 싫다고!”

얼굴이 구겨진 차민석이 실망과 분노를 얼굴 가득 담고 던지듯 전화를 끊었다. 남부파 황두식 두목이 두툼한 뱃살이 흔들리게 웃으며 차민석을 쳐다봤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 난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빨리 대답 좀 하지?”

“무슨 개소리를 서로 주고받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동의한 일이 아니니 따를 이유도 없겠지?”

“이해할 수가 없군. 조 사장에게 듣기로는 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머니를 겁탈해서 널 낳고, 버렸다던데? 더구나 모든 걸 네 형인 차형욱에게 물려주려는 아버지 아닌가?”

“닥쳐!”

평소의 깍듯한 말투를 내팽개친 차민석이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황두식의 입이 비웃는 듯 야비하게 올라갔다.

“아쉽군. 자네 외삼촌 말대로군. 마음이 여리고 철이 없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 약점이라더니. 쯧쯧! 어쩌다 황성파 사자 밑에서 고양이 새끼가 태어난 꼴 아닌가? 막내 도련님이라 곱게 커서 그러니 힘들더라도 인생 선배인 내가 좋은 방향으로 인도를 해줘야겠지?”

남부파 황두식 두목이 귀찮다는 듯이 손짓을 하자, 뒤에서 웃고 있던 조직원이 앞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너도 보면 볼수록 꽤 곱상한데……. 아쉽게도……. 얘들아! 조 사장 말대로 얼굴은 건들지 말고, 적당히 주물러 줘라.”

젊고 예쁜 남자 조직원들을 매일 침대로 불러들인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닌 듯, 황두식은 입술을 두꺼운 혀로 핥으며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매를 비트는 황두식의 모습을 노려보며 차민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무 상자를 가장 가까이 다가온 조직원에게 던지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내리치는 파이프로 인해 결국 어깨와 복부를 강타당해 비틀거리는 차민석이 눈에 독기를 뿜었다.

앞에 있는 조직원 두 명의 턱 끝과 명치를 얼굴과 주먹으로 강타해 쓰러트리고 다리를 들어 올리다 자신도 쓰러지고 말았다.

“야, 조심해. 얼굴을 건들지 마. 귀한 도련님 아니신가?”

아랫입술에 피가 흐르게 이 사이에 넣고 씹으며 버티다가 넘어졌다. 널브러지는 차민석의 몸을 발로 툭툭 차며 비아냥거리는 남자들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에 치를 떨고, 배신감에 몸을 떠는 차민석이었다.

아버지는 멀었고, 어머니는 너무 약했다.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따뜻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외삼촌뿐이었다. 커가며 그가 자신은 관심도 없는 황성파에 자신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건 알았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믿고 싶었다.

하룻밤 실수로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겁탈한 아버지다. 결국, 임신해 자신을 낳은 어머니조차 곁에 두지 않는 무정한 아버지다.

어머니가 혼인을 원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거짓말!

어머니는 자기 전에 언제나 습관처럼 아버지가 머무는 건물 쪽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셨다.

구석 별관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불쌍한 어머니와 자신보다 집 나간 큰아들을 믿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려서는 자신의 한참 나이 많은 아버지를 닮은 형이 너무 크고 위대해 보였다. 뭐든지 잘하는 형과 닮고 싶었다. 자신이 만점을 받아도, 매일 반장에 학생회장이 되어도 결코 쫓아갈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이복형 차형욱이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이미 독립을 한 형이지만, 가끔 본가에 찾아오면 숨어서 형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애정과 관심을 주지 않는 이유는 차형욱보다 못나서라고 속삭이는 외삼촌의 말에 하루 서너 시간을 자고 공부했다. 그래도 비교할 수 없이 밀리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서서히 그에 대한 동경이 미움으로 바뀌었다. 그가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어린 시절의 자신은 이젠 없었다.

처음 정원에서 마주친 푸른 하늘은 설렘이었다.

그 하늘이 자신을 마주하면 자신을 구원해주려고 하늘이 보내준 천사 같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또, 차형욱이었다.

자신은 모든 걸 걸어서라도 닿고 싶은 하늘이 형수라…….

하지만 첫눈에 들어온 하늘을 닮은 눈동자와 별빛을 닮은 듯한 머리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평소의 자신과는 다르게 그가 본가에 와있는 날에는 항상 학교의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 따뜻하게 웃어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잡고 싶었다. 구원 같았다. 근데 자신이 아닌 차형욱의 것이란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에는 설렘과 기대가 커졌다. 어느 순간 찢어지듯 아파져 오는 가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이것이 사랑이라 느꼈다.

나에게 찾아온 첫사랑이자 고통이었다.

은우가 형수가 아닌 자신의 것이 된다면 모든 걸 다 차형욱에게 주고라도 행복할 거 같았다. 그들 사이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떨어트려 놓고 싶었다.

이 어리석은 계획에 동참한 이유는 차형욱을 향한 자신의 질투와 미움을 이용한 탐욕스런 자신의 외삼촌 때문만이 아니었다. 황성파의 주인이 되는 것 따위는 관심도 의미도 없었다.

은우를 찾지 못하게 내부에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진짜 정보를 없애면서 차츰 시간을 끌던 걸 이제 멈췄다.

어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참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다. 아마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을지도, 자신이 먼저 말하길 기다리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킹 스파이크’ 멤버들에게도 일부러 자신의 계획을 조금도 알리지 않았다. 이들이 피해자가 되어야 무사할 것이었다.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압박이 숨이 막혔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영원히 눈을 감으면 나아질까?

납치된 후에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은우를 보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아프게 하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영원히 가지고 싶은 음습한 마음도 치솟았다.

그래서 은우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하실에 오지 않았다. 깊은 은우의 눈 속에 깃든 자신을 향한 신뢰가 상처가 되어 되려 아려왔다. 빤히 자신을 보는 은우의 어린 외양에 어울리지 않은 깊이로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슴 속 깊이 은우를 가두어 둔 자물쇠를 볼 때마다 충족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그런 더러운 욕심이 끔찍했다.

하루만 더, 아니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었다. 후회스러웠다.

저 돼지 같은 놈이 은우를 어떻게 할지 두려웠다. 차형욱이 와서 은우를 구해준다면 자신은 혼자 지옥에 떨어져도 괜찮을 거 같았다.

제발! 흐려지는 머리로 간절히 기도했다.

“애새끼, 열쇠 어디 있어?”

“뭐야? 씹, 기절한 거 같은데?”

“야! 저것 봐! 인질 놈이 가지고 있는 거 열쇠 같은데?”

모든 이들의 눈이 쇠창살 안 은우의 손에 들린 열쇠로 향했다.

은우는 쇠창살 뒤쪽에 멀찌감치 물러나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손에는 이현우가 준 열쇠를 꼭 쥐고 있었다.

“열쇠 당장 이쪽으로 던져라.”

창, 창.

쇠창살과 자물쇠 있는 곳을 쇠 파이프로 몇 번 내리치다가 특수 재질이라는 걸 알았다. 화풀이하듯 커다랗게 쇠 긁는 소리를 내는 조직원이었다.

“우선, 너희 둘이 나가서 도구 좀 구해 와라. 귀찮게………… 어차피 잘라내면 그만이다.”

“너, 지금 그 열쇠 이쪽으로 보내면 공손하게 모시고 가는 걸 약속하지. 어서 이쪽으로 내놔라.”

은우는 열쇠를 꼭 쥔 손으로 남부파 두목 황두식과 조직원들의 말을 모조리 무시했다. 쇠창살 가까이 쓰러져 있는 ‘킹 스파이크’ 아이들과 이현우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기계 가져오면 5분이면 이딴 자물쇠랑 쇠창살쯤은 다 잘라낼 수 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내놔!”

“야, 저쪽 입구에 쓰러져 있는 차민석 좀 끌고 와봐. 그놈 말은 잘 듣는다고 했으니 이리 데려와.”

남부파 조직원 손에 끌려온 의식 없는 차민석의 모습을 목격한 은우의 하늘빛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더니 쇠창살 앞으로 걸어왔다.

잽싸게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은우를 낚아채려던 황두식은 너무 얇은 쇠창살에 손목까지만 들어가 은우를 잡지 못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옷을 스친 황두식의 손에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난 은우가 차민석을 불렀다.

“민석. 죽었어?”

킥킥거리는 작은 소리가 기절한 듯 조직원들 손에 들른 차민석의 입에서 나왔다.

여전히 몸에 힘을 주지 못하고 가까스로 고개만 살짝 들어 은우를 본 차민석이 마른기침 섞인 힘겨운 웃음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망할 죽긴…… 형, 수! 절대…… 열쇠…… 주지도 문, 을…… 열지도…… 마. 차형욱이…… 오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의 모습에 목 문신이 군용 나이프를 꺼내 차민석의 목에 가져갔다.

“야! 네가 문을 열고 나와. 아니면 이놈 멱따버리겠다.”

살벌하게 외치는 목 문신의 협박을 은우가 사뿐히 씹어 먹었다. 겉만 착해 보이던 독한 은우의 모습에 화가 치미는 남부파였다.

“아 씨벌, 멱딴다니까! 장난 아니라고.”

“민석, 안 죽었다. 아파?”

남부파의 외침 따위는 모조리 무시하는 은우의 모습에 화가 나서 쇠 파이프로 자물쇠를 치는 조직원들이었다. 겉에 나와 있지 않고 안쪽에 넣어져 있는 특수 자물쇠의 위치와 재질상 불꽃이 튀었다.

결국, 쇠창살을 뜯어내는 수밖에 없어 시간이 걸리자 초조한 건 남부파다.

저 독한 인질 놈이 자기만 살겠다고 문 열 생각 안 하는 바람에 밖에 있는 놈들로 협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착한 놈이 아니었다. 납치했다고는 해도 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는데, 역시 저놈도 자기 신변이 가장 중요한 모양이었다.

“차.형.욱.”

차형욱의 이름이 남부파 두목 황두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전과 달리 귀를 쫑긋거리며 그의 입에 집중하는 은우의 모습에 황두식은 미소 지었다.

“그 문을 열어라. 그럼 차형욱이한테 보내주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우의 모습에 차민석이 몸을 살짝 흔들며 “멍청이, 안돼”라고 중얼거렸다. 은우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화가 난 조직원들이 눈치 없이 나서는 차민석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등과 허벅지 등에 쏟아지는 폭력에 바닥을 뒹구는 차민석을 보고 은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문, 열…… 지마.”

마지막 말을 뱉고 정신을 완전히 잃은 차민석의 모습을 은우가 바라보고 있자, 황두식이 다시 설득했다. 보아하니 좀 어린아이처럼 모자라 보였다. 특이한 사고방식의 은우라서 잘 꼬시면 문을 열 듯 했다.

“빨리 열어라. 그럼 차형욱이 불러주고, 차민석이도 안 죽이마.”

“안 돼.”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는 은우의 모습에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품속에서 작은 물약 하나를 꺼내 은우가 있는 바닥으로 굴려 보냈다.

“그래. 착한 아이네. 문 열지 말라고 했으면 남자라면 약속을 지켜야지. 그럼 그 물을 마셔라. 그런 말은 차민석도 안 했지?”

은우가 무시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황두식을 바라보았다. 그가 살에 덮인 작은 눈이 보이지도 않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마시면 차형욱이 만나게 해주마. 안 마시면 차민석은 죽는다. 지금! 내 손에!”

기절한 차민석의 머리카락을 살 많은 두툼한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황두식이 목 문신의 군용 나이프를 대신 쥐고 차민석의 목을 살짝 그었다.

황두식은 지금 차민석의 목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황성파가 들이닥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피 한 줄기가 희미하게 벌어진 하얀 목 사이에서 흘러나오자 은우의 둥그런 눈에 힘이 들어가더니 황두식을 최선을 다해 힘껏 노려봤다.

“하지 마. 나빠. 혼나. 아빠가 묻어.”

“뭣? 문을 열든지 아니면 그 물약을 먹어라.”

은우의 이상한 욕에 기분이 상했다.

감정을 숨기고 다시 은우가 대화를 단절하기 전에 말을 시켰다. 다행히 다른 놈들로 협박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차민석은 나름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물약을 손에 들고 쳐다보는 은우의 전신을 황두식이 음탕한 눈빛으로 훑으면서 재촉했다.

“어서 그걸 마셔! 아니면 차민석을 지금 죽이겠다.”

정말 죽일 결심으로 손에 들고 있는 차민석의 머리를 거칠게 끌어올려 하얀 볼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귀신같이 황두식의 살기를 알아본 은우가 아까와 달리 서둘러 물약을 입에 가져갔다.

“착하지! 마셔! 전부다.”

“두목, 저거 혹시 이번에 개발한 신약 아닙니까?”

“맞다. EXTS03! 저거 마시면 5분이면 미치게 달아올라 제가 알아서 문 열고 나올걸? 어차피 우리 쪽에 마련된 창고로 끌고 가서 재미 좀 볼 생각이니. 지금부터 먹여도 좋지. 크흐흐흐흐!”

“저거 보통 반병 정도면 제 자식도 못 알아보고 발정한다던데…… 저거면 2배인데요? 두목뿐 아니라 저희 다 상대해도 좋다고 환장하겠는데요?”

자신들끼리 음담패설(淫談悖說)을 주고받는 남부파 조직원과 두목 황두식이었다.

저 쇠 파이프를 자르려고 심부름을 시킨 두 명의 조직원이 건축용 절단기를 구하고 문을 열려면 대략 30분은 걸리는데, 저 약을 먹었으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5분 안에 나올 것이라 자신하는 황두식이었다.

은우가 다리가 아픈지 쇠창살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아 이현우와 차민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흐리멍덩한 눈을 뜨고 은우를 바라보고 있던 이현우는 뭐라고 말하려고 계속 입을 달싹거렸지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두 눈동자만 깜박이고 있었다.

“두목! 벌써 10분은 지난 거 같은데요?”

의자에 앉아 멀뚱멀뚱하게 차민석과 이현우만 번갈아 보고 있는 은우의 모습에 남부파 조직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뭐야? 설마 그 약이 가짜인가?”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 두목이랑 조상호 사장이랑 아가씨들 불러놓고 저거 쓰는 거 봤어. 효과 진짜 짱이었어. 다들 환장해서 달려들던데?”

“근데, 쟤는 왜 저렇게 멀쩡해?”

다들 의아스럽게 은우가 앉아 있는 쇠창살을 쳐다보았다. 계획이 무산되자 화가 치밀어 오른 황두식이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문 지금 안 열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골방에 처넣고 오늘부터 씨받이만 하면서 살게 될 거다. 걱정하지 마! 네 안부는 사진으로 매일 찍어서 차형욱이에게 보낼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조상호 사장 말로는 차형욱이 너한테 푹 빠져있다니, 죽을 때까지 철저히 이용해주마. 그 전에 너는 내 배 밑에서 매일 밤 헐떡거리며 살지도 죽지도 못 하게 할 거다.”

으득으득.

어금니 가는 소리를 내며 단어 하나하나 저주를 걸듯 은우에게 사납게 외치는 소리가 지하실에 울렸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아까 심부름 보낸 조직원 둘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 왜 이제 와? 빨리 열어!”

“회장님! 찾았습니다.”

이미 아무도 없이 텅 빈 회장실 안에는 주인을 잃은 가죽 회전의자만 빠르게 혼자서 도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20대가 넘는 자동차가 큰길부터 작은 골목길을 장악하고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며 많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급해 보이는 이들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지, 두 번째 주차된 검정 자동차 옆으로 다가서 기다렸다. 그곳에서 내린 흰색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보이는 살벌한 표정의 50대 후반의 남자와 3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차가운 미남자가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바로 옆에 박동수가 오랜만에 입은 검정 전신 운동복을 입고 따르고 있었다. 앞은 양복을 입은 6명의 남자가 부릅뜬 눈으로 좌우를 관찰하며 뛰듯이 길을 안내했다.

뒤에는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었던 나머지 조직원들이 차현수 보스와 차형욱 도련님의 뒤를 질서 정연하게 따랐다. 그 수가 거의 80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도, 입을 여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골목 구석구석과 도로 쪽을 장악하기 위해 흩어졌다. 귀 뒤에 살짝 가려진 이어폰이 보여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모두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조용히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마치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을 순식간에 장악한 이들은 황성파 조직원들과 이쪽 구역 담당인 보성파 보스 구중석과 일행들이었다. 보성파 보스 구중석은 스타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구철민의 친형이었다.

보성파는 이미 황성파와는 우호적인 관계로 이번 은우 납치 사건을 듣고 적극적으로 돕는 중이었다. 때마침 보성파의 본가와 가까운 곳에 황성파가 작전을 시행한다는 말에 서둘러 따라와 돕는 것이었다.

보성파 보스 구중석의 입장에서는 전에 동생 구철민과의 불미스런 일도 있었고, 은우와의 친분으로 형에게 부탁한 귀여운 동생 때문에 흔쾌히 은우 찾기에 앞장서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허름해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쪽에는 눅눅한 곰팡냄새가 섞인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최신식 열 감지기를 손에 들고 지하실 문 안쪽을 살펴보던 안경을 쓴 조직원이 야구선수처럼 손가락과 몸으로 신호를 보냈다. 내부에 대략 20명 정도의 인원이 있다는 신호였다.

이미 밖에서 감시하는 인물들은 조용히 잡아들여놨기에 안쪽에는 지금 외부 상황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듯 자꾸 앞장 서려는 혈기 넘치는 차현수 보스 때문에 온몸을 긴장한 박동수다. 그는 차형욱 회장의 옆이 아닌 차현수 보스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차현수 보스는 평소의 무뚝뚝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던 차형욱 회장은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냉정한 얼굴이었다.

시뻘겋게 변한 눈만 그가 은우가 없는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그의 분노나 초조함은 밖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은우가 없어진 지금 차형욱 회장에게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이유 없이 곤두서는 머리와 닭살이 올라오는 피부가 차형욱 회장이 표정 없이 내뿜는 그의 분노이자 살기의 증거였다. 이런 기운에 유독 민감한 유단자 박동수는 죽을 맛인 것은 당연했다.

은우가 네 지갑이냐 아니면 네 전화기냐며 왜 길에서 잃어버렸느냐고 크게 화를 내던 차현수 보스조차 큰아들을 보고 몇 마디 못 하고 혀만 찼다면 알만한 상태였다.

숫자를 세듯 맨 앞에 있던 조직원 하나가 팔을 위로 올려 손가락 3개를 만들었다.

2개.

1개.

꽝.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조직원이 힘차게 발로 문을 걷어차자, 지하실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단번에 문 쪽으로 몰리며 하얗게 얼굴이 변해갔다.

“뭐, 뭐야? 황성파가 어떻게 벌써?”

쇠에 불꽃이 튀기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 쇠창살을 완전히 잘라낸 기계가 멈추었다.

그러자 정적이 흐르는 지하실에는 안쪽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오는 차형욱과 황성파 조직원들의 걸음 소리만 울렸다.

“헉! 차, 차형욱이다.”

“아가.”

차형욱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반갑게 부르며 은우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뚫린 쇠창살 쪽으로 몸을 빼내는 은우를 바라보던 차형욱의 시선이 매섭게 변했다.

“어딜! 차형욱! 내가 누군지는 이미 알겠지?”

“남부파, 황.두.식! 원하는 게 뭐지?”

은우의 몸을 뒤에서 꼭 끌어안고, 아까부터 쥐고 있던 군용 나이프를 은우의 하얀 목에 가져갔다. 남부파 두목 황두식의 마지막 발악에 황성파 조직원의 움직임이 극도로 조심스러워졌다.

“아가.”

“착하지, 제발! 은우.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

“꼼짝 마! 움직이면 찔러 죽인다. 어차피 네놈한테 잡혀도 죽을 텐데. 그 전에 이놈 칼빵 내고, 같이 가겠다.”

피투성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앳되어 보이는 10대 아이들과 쇠창살 아래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자신의 둘째 아들 차민석의 모습을 모두 눈에 담으며 차현수 보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언가? 그 아이를 그만 놔주고 간다면 여기서 더는 자네를 잡지 않겠다고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흥! 황성파 차현수가 이름을 건다면 생각이 달라지는군. 우선, 조직원들 다 뒤로 물려! 당장!”

차현수 보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순식간에 텅 빈 지하실에 차형욱, 박동수, 차현수 보스와 오른팔 불곰 황호영만 보였다.

“왜 너희는 안 나가? 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어?”

흥분과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리는 황두식의 칼날이 은우의 목을 닿을 듯 움직일 때마다 차형욱의 몸이 움찔거렸다.

“오라, 피도 눈물도 없다는 차형욱에게 약점이 생겼다는 말이 진짜였군. 우선 1시간 안에 100억 그리고 전용기라도 먼저 요구할까?”

칼날을 더욱 바싹 붙여 장난치듯 칼등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황두식의 모습에 차현수 보스가 설득을 위해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내 아들 차형욱이한테 원한이 있다고 내 들었네. 100억 내가 주겠네. 그전에 자식 교육을 잘못한 나도 책임이 있으니 그 아이 말고, 나를 잡고 있지 그런가? 내가 비록 늙었어도 황성파를 맡고 있으니 자네가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네.”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연 차현수 보스는 황두식의 눈을 보며 앞쪽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옆에서 뻗어 나온 긴 팔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앞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내가 가겠다. 원한은 나한테 있지 않나? 은우는 놓아줘라.”

식은땀을 흘리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 손잡이를 쥐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황두식 두목이었다.

“웃기는군. 내가 그렇게 순진할 거 같아? 너를 죽이는 것이 최대의 복수인 줄 알았건만, 너한테 네 목숨보다 귀한 것이 내 손에 있다니…… 신이 나를 돕는군. 나는 네 애인 놈을 데리고 있겠다. 우선 내 요구 사항은 100억 아니 200억이다. 1시간 안에 전용기와 돈을 준비해놔. 아니면 1분당 네 애인 놈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내겠다.”

입으로 독기를 토해내며 탐욕 어린 눈을 뜨고 있는 황두식의 몸이 갑자기 흔들렸다. 그 짧은 순간 차형욱이 몸을 앞으로 날렸다.

옆에 쓰러져 있던 차민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황두식의 칼날 쪽으로 몸을 날리는 것을 보고 즉각 움직인 차형욱이었다.

황두식의 칼날을 차민석이 몸으로 밀쳐 막자 쏜살같이 차형욱이 은우의 팔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그 후 모든 것이 정리된 시간은 3분을 넘지 않았다. 반항조차 못 하는 남부파 조직원이 줄줄이 묶여 밖으로 끌려나갔다.

“에잇! 못난 놈!”

차현수 보스가 바닥에 누워 있는 둘째 차민석에게 화를 내려다가 그의 복부에 꽂힌 칼날을 발견했다. 놀란 차현수가 조직원들을 재촉해 차민석을 병원으로 옮겼다. 쓰러진 ‘킹 스파이크’ 멤버들도 차현수 보스의 명령으로 우선 병원으로 옮겼다.

그 시간 동안 차형욱은 아무 말도 없이 은우를 품에 안고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은우의 어깨에 고개를 숙여 얼굴을 붙이고 강하게 안고 있는 애틋한 모습에, 차현수 보스는 은우와 말도 못 해보고 뒤에서 보이는 은빛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그는 둘째 아들 차민석을 따라 병원으로 이동했다.

“아가, 울어?”

한참을 말없이 서서 작지만 흔들림 없는 어깨로, 고개를 숙이고 기대있는 차형욱을 받쳐주던 은우의 입에서 작은 속삭임이 나왔다.

문 앞에 있던 박동수가 은우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지하실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은 적막한 지하실에 은우가 손을 둘러 차형욱을 안아주고 뒤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아가, 울지 마.”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차형욱이 은우의 이마에 이마를 가져간 뒤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은우, 미안하다.”

은우가 아무런 물기조차 없는 차형욱의 눈가를 마치 눈물을 닦아주듯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은우의 손이 눈가에 닿자, 극도의 긴장으로 차갑게 질렸던 손으로 은우의 손을 꼭 쥐어 입가에 가져갔다. 다시 낮게 속삭이는 차형욱이었다. 미안. 미안하다.

“울지 마. 괜찮아. 아가.”

은우의 따뜻한 온기를 꼭 끌어안고 서서히 밑으로 내려앉는 차형욱이었다. 양 무릎이 완전히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두 팔로 강하게 은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용서를 비는 차형욱이었다.

“미안…… 미안…… 미안하다.”

차형욱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주는 다정한 손길이 느껴졌다. 더욱 은우의 가는 허리를 절박하게 끌어안았다.

이런 자격 없는 내가 너를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멈추지 않는 아가의 물기 없이 흘리는 눈물에 은우가 두 팔로 차형욱 아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작게 위로하듯 안아주며 “울지 마. 괜찮아.” 라고 속삭이는 은우의 목소리가 차형욱의 귓가에 안식을 주고 있었다.

Rrrr. Rrrr.

한참 울린 전화기에 통화 버튼을 누른 차형욱은 당황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벌떡 일어나 은우가 갇혀 있었던 쇠창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병원으로 실려 가던 붉은 머리의 아이가 기절 직전에 어렵게 입을 벌려 황두식이 건네준 알 수 없는 약을 은우가 마셨다는 말을 전한 것이었다. 그곳 바닥에 놓인 비워진 작은 병을 들어 올리며 은우를 돌아봤다.

“은우! 혹시 이거 마셨어?”

은우가 고개를 태연히 끄덕이며 오랜만에 본 차형욱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허리에 매달렸다. 그런 은우의 어깨를 쥐며 다급하게 질문을 던지는 차형욱이었다.

“왜, 왜 마셨어? 뭔지 알지도 못 하는 이런 것 마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

따지듯이 묻는 차형욱의 모습에 은우가 고개를 저으며 “민석이 안 죽었어.”라고 하자, 모든 걸 짐작한 차형욱의 몸이 분노와 걱정으로 떨려왔다. 당장에 그 돼지 같은 남부파 황두식의 몸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떨고 있는 차형욱을 은우가 걱정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분노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곳은?”

이마를 손으로 만져보고 온몸을 쓸어 보며 차형욱이 은우의 몸을 꼼꼼히 살폈다. 손을 번쩍 들어 떨어졌던 차형욱의 목에 매달리는 은우의 몸을 안아주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결국, 정도훈에게 연락을 취해 집으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

지하실 문을 열고 나온 은우가 박동수를 바라보고 빠르게 손을 살랑거리며 ‘진짜, 진짜 반가워.’인사를 했다. 눈물이 살짝 맺힌 박동수도 바람 소리가 나도록 손을 흔들어 마주 인사를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자세하게 꼬치꼬치 은우한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있었을 어떤 가혹 행위나 상처를 은우가 받지 않았는지 유도 신문을 하는 차형욱의 모습에 박동수도 옆에서 열심히 끼어들어 놓친 부분들을 자세히 물어왔다.

결국, 김밥이랑 어묵이 맛있다는 대답만 들은 차형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아까 지하실 밖에 나가 박동수가 문재준 비서실장에게 은우의 무사 구출 사건의 결말을 보고했다. 크게 기뻐하며 당장 달려오려는 문재준 형님을 말리며 곧 철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럼 범인들을 직접 처리하러 본가로 오겠다고 날뛰기에 참으라고 열심히 말린 박동수다. 갈수록 차가운 도시 남자 이미지가 극성 엄마처럼 바뀌고 있어 박동수는 문재준의 잔소리가 두려웠다. 아마 납치범들 앞에서도 잔소리할 문재준이었다.

그래서 빨리 전화로 사실을 알린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만일 늦게 전화를 했으면 자신을 엄청난 잔소리 신공으로 정신 붕괴시킬 수 있는 사람이 문재준 형님이었다. 요즘 박동수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차형욱 회장님 다음이 문재준 비서실장이었다.

집 앞에서 은우를 기다리고 있던 정도훈이 차에서 내리는 은우를 보고 엄청난 빠르기로 차형욱을 피해 은우를 껴안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꺅 하는 웃음을 터트리며 정도훈의 몸에 매달리는 은우를 참다못해 떼어놓았다.

자신의 품에 은우를 다시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차형욱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일상적인 모습에 박동수는, 투덜거리는 정도훈의 뒤를 웃으며 따라 들어갔다.

이제야 정말 은우 님이 구출되었다는 현실이 느껴졌다.

고작 5일 정도의 시간이 박동수와 이들에게는 5년도 더 되는 긴 시간으로 느껴졌기에 은우의 소중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한 사람의 부재가 주위에 얼마나 끔찍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가장 잘 표현된 5일이라는 시간이었다.

“음…… 이상은 전혀 없는데? 은우야, 밥은 잘 먹었어?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내가 다 사줄게. 이것들 밥은 먹였겠지? 생각하니깐 또 열 받네. 그 약 방금 연락 왔는데, 새로 개발된 EXTS03이라는 마약 성분의 흥분제란다. 놈들이 말하기를 가짜인 거 같다고 반응이 없었다고 했대…… 혹시 모르니깐 잘 관찰해라. 죽일 놈들! 젠장, 차형욱, 나 갑자기 본가에 볼일이 생각나서 가볼 테니 혹시라도 이상 있으면 즉시 연락해라.”

이를 가는 날카로운 소리에 은우가 정도훈을 보자 은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는 정도훈이지만, 이미 눈빛은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잘 알 것 같은 차형욱이 낮게 말을 건넸다.

“아버님께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절대 죽이지는 말라고 다시 말씀드려라. 죽지도 살지도 못 할 거다. 그놈은.”

정도훈의 귀에만 들리는 차형욱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정도훈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오한이 느껴졌다.

“그래, 알았다.”

옆에서 먹고 싶은 걸 한참 생각하던 은우가 생각난 듯 정도훈을 향해 말을 했다.

“도훈, 까만 거.”

“어? 까만 거가 뭐야? 은우야?”

“몰라, 까만 국수 봤어.”

“아, 혹시 자장면을 말하는 건가? 은우야, 사람들이 노란 무랑 같이 먹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를 품에 덥석 안는 어이없는 정도훈의 형태에 차형욱이 빠르게 둘 사이를 떨어트리고 정도훈을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화를 내는 것도 잊게 된 차형욱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정도훈의 눈을 보자 어이가 없어 화도 식어버렸다. 정도훈은 울먹이며 은우에게 크게 물었다.

“아니, 이것들이 우리 은우만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얼마나 처먹었으면 얘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 망할 것들! 다 굶겨 죽여야겠어! 은우야. 내가 자장면 100그릇 사주마. 아니다. 아예 중국집을 사줄게! 지금 사러 갈까?”

쿨하게 중국집 쇼핑을 제안하던 정도훈은 긴장이 풀린 듯 피곤해 보이는 은우의 모습에 다음에 자장면을 사주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까보다 더 화난 걸음으로 본가로 향하는 정도훈의 뒷모습에 차형욱은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가 식사 준비를 했다.

잠 많은 은우가 완전히 자기 전에 한 숟가락이라도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차형욱이 능숙하게 식사를 준비했다. 이미 반쯤 눈이 감긴 은우의 입에 밥을 먹였다.

잠을 깊게 이루지 못하고 뭔가 불편한 듯 칭얼거리는 은우를 위해 목욕통에 물을 받은 후, 달래가며 옷을 벗기던 차형욱이 눈을 크게 뜨며 작게 신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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