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아가, 이상해 (16/23)

16. 아가, 이상해

눈부시게 하얀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은우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차형욱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와 옆으로 돌린 떨리는 눈동자의 차형욱이 화장실에 걸린 커다란 전신거울에 비춰 보였다.

“추워.”

작은 은우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차형욱이 안색을 정리하고 어색한 표정으로 따뜻한 욕조에 조심스럽게 은우를 넣어주었다. 그제야 편안한 얼굴이 된 은우가 살짝 눈을 떠 차형욱을 쳐다봤다.

“아가, 이상해.”

“어, 어?”

평소와 다르게 더듬는 말투로 은우의 시선을 살며시 피하는 차형욱이었다.

영혼 없는 반문을 하던 차형욱이 은우의 말을 뒤늦게 알아채고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은우, 혹시 어디 아픈가?

고개를 저으며 은우가 작게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래를 가리켰다.

표정을 돌같이 딱딱하게 굳힌 상태에서 차형욱이 그곳을 말없이 쳐다봤다. 정말 안 예쁜 구석이 없는 은우의 몸이라 생각하며 넋을 잃고 응시하던 차형욱이었다.

하얗고 가는 양 허벅지가 만나는 곳에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는 너무나 어울리는 깨끗하고 뽀얀 은우의 것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 있었다.

사춘기 소년처럼 확 달아오른 얼굴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 밖으로 나가는 당황한 뒷모습을 보고 은우가 물속에 앉아 차형욱을 불렀다.

“아가, 어디가?”

“잠깐, 화장실.”

무표정이지만 붉은 얼굴의 차형욱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부자연스러운 언행으로 욕실 겸 화장실 안에서 화장실을 간다고 나갔다.

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 차형욱이었다. 거실로 나가 한참을 서성이는 차형욱이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긴장되고 초조한 기색의 차형욱은 냉장고 문을 열고 갈증이 난 듯 물병 하나를 모조리 마셨다.

그 후 작게 심호흡을 하고 은우가 있는 욕실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살며시 욕실 문에 발을 집어넣었다.

시원한 페퍼민트 향내가 풍기는 공간에 들어서 욕조 안을 들여다본 순간 차형욱의 입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커다란 욕조에 삐죽 나와 있는 하얀 팔을 물에 빠지지 않게 밖으로 걸쳐 놓고 감긴 은빛 속눈썹이 은우의 하얀 얼굴에 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따뜻한 물속에 달아오른 촉촉한 분홍빛 입술을 살짝 벌리고 욕조 턱에 한쪽 볼이 눌리게 은우가 기대고 있었다.

뭔가 불편한 표정의 은우가 눈썹 사이에 힘을 주고 자는 모습을 보였다.

차형욱은 긴장된 얼굴로 입고 있던 남색 면 티셔츠를 복부부터 천천히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꽉 짜여진 화이트 초콜릿 판을 엎어놓은 복근들부터 단단하고 넓은 가슴근육까지 숨김없이 드러났다.

집에 와 편하게 걸치고 있었던 회색 바지도 검정 브리프도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숨겨졌던 단단한 허벅지 근육과 반만 서 있음에도 건장한 존재가 완벽한 신체의 조화를 이룬 태초의 모습으로 욕조 앞에 섰다. 따뜻한 욕조 안에 발을 들여놓으며 자는 은우를 부축해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놓는 차형욱이었다. 물속의 움직임에 살짝 떠오르는 은우의 하얀 나신을 팔을 뻗어 자기 쪽으로 당겼다. 다른 팔로 촉촉이 젖은 은빛 머리를 옆으로 넘겨주며 드러난 눈가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많이 피곤했는지 인상을 쓴 상태에서도 눈을 뜨지 않는 은우의 모습을 보며 붉고 탐스럽게 익어 있는 작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켰다.

젤리처럼 탄력이 넘치는 입술 안을 파고들어 헤집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은우의 젖어 있는 입술을 맛보듯 핥아 올렸다. 다디단 맛이 나는 입술을 마주 붙이고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했다.

살짝 벌어진 곳에서 진하게 풍기는 달콤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뜨거운 혀를 슬쩍 넣어보는 차형욱이었다. 촉촉하고 연한 그곳을 오랜만에 방문해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듯 쓸어보고 천천히 탐닉하듯 움직였다.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져 더욱 벌어진 은우의 입안을 참지 못하고 깊이 침입했던 차형욱은 숨 가쁜 은우의 몸짓에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철수해 은빛 실들을 핥아 정리해 주었다.

중독성 있는 탱탱하고 떨어지기 싫은 촉감과 잠시 이별을 하고 하얗게 드러난 은우의 목덜미 쪽으로 뜨거운 입술을 내렸다.

크림이 뭍은 접시를 핥듯이 입술을 붙이고 한참을 빨아들여 여린 살을 붉게 물들여놓고 차형욱의 단단한 혀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귓불을 이 사이에서 넣고 지근거리자 여전히 눈을 감고 있던 은우의 입에서 살짝 터져 나온 신음이 들려왔다.

“하아.”

은우의 목덜미를 다시 탐하던 차형욱의 귓가에 막힘없이 흘러들어온 더운 바람이 섞인 선율에 촘촘한 근육질의 팔뚝이 꿈틀거리며 율동을 했다.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뻗어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끄럽고 말랑한 은우의 복부를 조심스럽게 쓸어 보았다.

물에 떠올라 허리가 살짝 들어 올려진 은우의 조그맣고 통통한 엉덩이가 벌써 붉은 핏줄이 터질 듯 올라온 그의 중심을 스치듯 지나가자 전율하듯 소름이 돋아 올라왔다. 순간 무언가를 힘겹게 참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차형욱이었다.

은우의 머리와 몸을 한쪽 가슴과 팔에 단단히 기대 고정했다. 다른 손으로 얇은 허리를 휘감고 한참을 미동 없이 은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만 있던 차형욱이 드디어 움직였다.

허리를 감았던 손을 조심스럽게 은우의 중심으로 내렸다.

은우를 씻기면서도 의식적으로 절대 시선을 주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커다란 손에 살짝 쥐어본 차형욱이었다.

갓 태어난 모양의 너무나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은우의 그곳은 보는 것만으로도 차형욱의 심장이 가슴을 튀어나올 듯 뛰게 했다.

은우가 싫어할만한 어떤 것도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미간에 힘을 주고 불편하게 자는 은우의 그곳은 처음으로 존재감을 보이며 서 있었기에 차형욱의 고뇌는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행위로 상처 주지 않도록 최대한 욕망을 억누르려 죽을힘을 다하는 차형욱이었다.

“으, 응…….”

손에 쥐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었던지 은우의 그곳이 아까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게 불편했던지 잠자던 은우가 작게 소리를 내며 형욱의 팔뚝을 약하게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커다란 손에 쏙 들어찬 은우의 것이 어느 순간 물속에서 부드럽게 쓸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의 가슴에 기대어 놓은 은우의 몸을 편하게 잡아주었다. 앞으로 살짝 숙인 고개를 은우의 목덜미에 묻고 있는 차형욱의 옆모습이 보였다. 물살을 만들어가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커다란 손이 조금씩 리듬을 타며 흔들렸다.

가슴에 기대어진 은우의 물기 젖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하…… 아, 으…… 흐읏!”

손의 움직임을 조금씩 빨리하자, 급했던지 금세 흘러나오는 허스키한 높은 신음과 파르르 떨리는 품속의 진동을 느끼고, 차형욱의 온몸의 근육도 긴장으로 꿈틀거렸다.

잠시 긴 경련이 이어지고 존재감을 죽였던 은우의 것이 약하지만 약 기운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시 앙증맞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 안에 쥐고 귀엽다는 듯이 어루만지는 차형욱의 손길에, 은우의 허리가 다시 성적 흥분에 들썩였다. 말랑한 엉덩이가 위아래로 움직여 차형욱의 중심을 자극해왔다.

당장에라도 파고들어가고 싶어 핏줄이 곤두선 성난 차형욱의 중심을 실험하듯 겁 없이 건드리는 말랑말랑한 엉덩이이었다.

그 갈라진 중심 가까이 자리 잡은 차형욱의 짐승이 거세게 꿈틀거렸다.

탁하게 가라앉아가는 검정 눈동자가 한쪽 팔에 쏙 감기는 얇은 허리를 감싸 자신에게 한 치의 틈 없이 밀착시켰다. 위험했다.

물속에서 더욱 가볍게 떠오르는 은우의 몸을 힘주어 바싹 겹쳐진 상태에서 몸을 비비자, 자신도 모르게 아찔한 감각이 달아올랐다.

조금 더 세게 은우의 것을 쥔 손을 움직이며 위쪽 선단을 자극하자, 가는 허리가 크게 들썩거렸다.

엄지로 여러 번 부드럽게 문질러주자, 여린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은우의 기둥을 손에 쥐고, 적당한 압력을 손바닥에 가해 흔들기 시작했다. 예쁜 모양으로 일어서는 중심이 힘을 더해갔다.

“하아……. 아, 하아…….”

달콤한 향을 머금은 입안이 벌어져 끊임없이 자극적인 음률이 흘러나왔다.

품 안에 있는 은우의 하얀 볼이 어느덧 붉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내려앉은 은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반쯤 떠져 유혹하듯 차형욱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아, 가. 하아…….”

가는 팔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 차형욱의 목덜미를 감싸자 자세가 바뀌며 은우와 마주 끌어안게 되었다. 급하게 은우의 뒷목을 낚아채 달콤한 혀를 강하게 옭아매며 숨 막히게 집어삼켰다.

양 무릎을 접고 앉아 은우가 미끄러지지 않게 마주 앉힌 후 숨이 딸리는 은우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뜨거운 혀로 짐승처럼 핥아주었다.

뒤로 젖혀져 보이는 하얀 목덜미 전체를 미친 듯이 탐했다. 하얀 푸딩 같은 동그랗고 촉감 좋은 은우의 엉덩이를 양손에 움켜쥐고 바싹 끌어당기자 차형욱의 중심과 맞닿았다.

물속이라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다. 완벽히 서로의 중심을 밀착한 상태에서 은우의 엉덩이를 잡고 있는 손바닥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욕실의 열기로 인해 벽에 달린 거울에 하얀 김이 서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미치도록 자극적인 신음만 울릴 뿐이었다.

울긋불긋 꽃이 피는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붙인 차형욱이 은우의 등을 단단히 붙든 후 완전히 밀착되었던 곳에 공간을 만들어 손을 밀어 넣었다.

“하, 은우, 날 잡아.”

부드럽게 목에 감기는 은우의 하얀 팔을 느끼며 차형욱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 빠듯한 자신과 은우의 중심을 동시에 감싸고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하아…… 아, 가. 이상…… 으응.”

“크으, 괜, 찮아.……. 은우, 싫은…… 가?”

은우가 싫다면 당장 멈출 듯 은우의 흐려진 하늘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독한 차형욱이 물었다. 고개를 젓는 은우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차형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독하다고 할 만큼 은우에게 초점을 맞췄다.

미칠 것같이 날뛰는 짐승 같은 본능을 힘겹게 억누른 한계의 상황에서 자신이 혹시나 은우를 상처 입힐까 두려운 차형욱이었다.

더구나 며칠간 힘든 시간을 보낸 은우이기에 자신의 이런 행위가 은우를 돕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심으로 변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은우의 허락 아닌 허락에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빠르게 기둥을 쓰다듬자 허리를 휘며 뒤로 넘어갈 듯 움직이는 은우를 잡아채 더욱 강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자극했다.

듣기 좋은 교성이 터지며 차형욱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이 풀렸다.

“아하, 아…… 가. 아하…… 앙”

“은우…… 나의…… 은우.”

부르르 떨리는 여린 나신을 강하게 끌어안고 유혹하듯 벌어진 여린 입안에 파고들어 거칠게 휘저었다.

여전히 한 손을 빠르게 움직이던 차형욱의 근육이 순간 수축을 하더니 은우의 입속에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으흣…… 으…… 앙!”

“크으윽…… 크윽!”

전기를 가한 듯 잔근육들의 떨림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금세 건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차형욱의 중심이 물속에 희미하게 보였다.

차가워져 가는 물속에서 은우를 꺼내 커다란 타월로 감싸 침대에 눕혔다. 반쯤 힘이 들어간 은우의 중심에 차형욱이 얼굴을 내렸다.

그는 녹을 듯이 말랑거리는 은우의 중심을 혀로 건드려보았다. 바로 반응을 보이며 몸을 휘는 은우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차형욱은 깊숙이 들어온 귀여운 기둥을 입안 가득 힘주어 끝까지 밀었다 당겨 올렸다. 은우의 중심이 조금씩 단단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핫! 하앙!”

벌어진 붉은 입에서 튀어나온 높은 신음이 차형욱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빠르게 입을 움직여 자극하자, 유연한 몸이 뒤로 접히듯 넘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든 차형욱이 은우의 다리를 벌려 자신의 허리를 감게 했다.

“은우, 잡아!”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붉은 힘줄이 가득한 자신의 중심을 은우 것과 함께 쥐고 강하게 흔들었다. 하얀 손에 겹쳐진 자신의 손을 몇 번 움직이지 않았는데, 은우의 몸이 활짝 열리더니 잘게 떨었다.

짙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커다란 손이 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 살을 다시 움켜쥐어 밀착해가는데, 작은 무게감이 어깨 위에 떨어지며 고로롱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차형욱은 어느새 자신의 가슴에서 천사같이 잠든 은우의 모습에 허탈한 신음을 터트리며 애써 건장한 자신의 중심을 무시했다.

다행히 이제는 편안해졌는지 잘 자는 자신의 천사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여 잠든 은우의 바라보다 젖은 몸을 수건에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자신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존재는 품 안에 있는 은우뿐일 것이다.

그 독한 약을 다 마시고 설마 이것으로 다일까 싶었다. 우려 반, 기대 반 시선으로 한참을 들여다봐도 편안하게 잘 자는 신기한 은우다.

어쩌면 정말 자신의 보호가 필요한 약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너무 소중해 가만히 둘 수 없는 존재임은 확실했다.

이런 은우로 인해 자신은 살아 움직이는 얼음 동상이 아닌 피가 흐르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킹 스파이크’와 차민석의 관계는 알고 있었다.

은우 납치에 관련된 모든 가능성을 뒤지던 와중 ‘킹 스파이크’와 ‘남부파 황두식’의 귀국에 초점이 맞춰졌다.

‘킹 스파이크’는 쉽게 꼬리를 잡았지만, ‘남부파’의 새로운 위치는 뿌리까지 알아내는데 시간을 잡아먹었다.

우선 ‘킹 스파이크’ 아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차형욱의 명령에 차현수 보스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버지가 며칠 안에 은우가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셨기에 자극하지 않고 감시를 하는 걸 권하셨다.

자신은 그저 은우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의심되는 모든 자를 모조리 잡아들이고 쳐들어가 구석까지 뒤져 보고 싶었지만, 자극을 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감정에 빠져 은우를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 없어 정신을 놓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황성파 둘째 아들이 속한 ‘킹 스파이크’ 클럽에 대해서 황성파 보스 차현수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10대 아들이 잠시 겪는 가랑비 같은 걸로 생각하고 모른척했을 뿐이었다. 그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의 큰아들인 차형욱도 그랬듯이 말이었다.

물론 은우의 납치 사건과 연관된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자 크게 분노와 실망을 하셨지만, 마지막 믿음의 끈은 잡고 계셨다. 내부의 정보가 새고 있음은 알고 있기에 은우를 데려간 자들을 알지 못하고 계속 찾고 있는 척했다.

‘남부파’의 이상 움직임을 눈치채고 차민석을 미행한 끝에 놈들을 덮치기 전까지 둘째 아들 차민석이 은우를 스스로 데리고 올 것임을 믿고 계신 아버지다.

은우의 몸을 가슴에 기대게 한 뒤 젖은 머리를 닦아주고 무소음 드라이어로 살살 말려주며 생각에 잠긴 차형욱이었다.

금세 마른 머리를 부드럽게 손으로 쓸어주며 꼭 끌어안았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가 스스로 놀라 힘을 뺐지만, 그동안 힘들었던지 정신없이 잠에 빠진 은우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순간 은우를 위해 칼날에 달려든 자신의 배다른 동생의 행동은 의외였다.

자신이 매일 피투성이로 싸움판을 돌아다닐 무렵 집에만 오면 기둥이나 나무 뒤에 숨어 자신을 바라보았던 곱상한 꼬맹이를 기억했다.

어째서 은우를 납치했는지. 정말 자신이 버리고 나온 황성파 후계 싸움 놀이를 위해서라면 자비는 없었다. 부디 다른 이유가 있기를 바랐다.

당장에라도 은우에게 약을 먹인 남부파 돼지 새끼를 가두어둔 황성파 감옥으로 가고 싶었지만, 오늘 은우의 곁을 절대 떠날 수 없었다.

아니 앞으로 혼자 두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더는 절대 이런 실수는 없을 거라 수없이 맹세하는 차형욱이었다.

말은 없어도 많이 놀랐던 은우인 걸 알기에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옆에 같이 누운 차형욱이 팔베개를 해 가벼운 은우의 머리를 받치고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희미하게 풍기는 은우 특유의 익숙한 옅은 꽃내음이 맡아지자 비로소 깊은 잠에 빠지는 차형욱이었다.

달그락거리는 소음과 작은 웃음소리에 눈을 번뜩 뜬 차형욱이 손을 내밀어 은우를 찾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튼이 이중으로 쳐진 캄캄한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었던 차형욱은 이불을 집어던지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가, 깼다.”

입가와 하얀 볼까지 검정 자장면 소스를 잔뜩 묻힌 은우가 포크를 손에 쥐고 흔들며 반겼다. 큰 걸음으로 식탁으로 걸어온 차형욱이 옆자리에 앉아 은우를 챙겼다.

거실에서 전화 통화를 끝내고 식당으로 온 정도훈이 시원한 보리차를 냉장고에서 꺼내 차형욱 앞에 놓아주며 옆에 앉았다.

“어이, 잘 잤어? 좀 더 자지 그랬어? 너 며칠간 한숨도 못 잤잖아.”

물티슈로 은우의 입가를 닦아주며 포크와 숟가락으로 스파게티를 먹듯이 보기 좋게 돌돌 말아 은우의 입에 자장면을 먹여주는 차형욱이었다.

옆에 있는 탕수육도 달콤한 소스에 찍어 틈틈이 은우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많이 잤다. 지금 몇 시지?”

“오후 3시다. 아까 2시쯤 은우 깼다. 세수하고 먹고 싶다던 자장면 시켜 먹고 있었지.”

사실 정도훈이 이 집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였다.

다들 피곤한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별채에서 잠을 자던 박동수를 깨워 놀다가 은우의 점심을 챙겨주러 온 것이었다.

은우의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이 자다가도 생각났다. 밤새 짠하게 가슴을 울리는 바람에 잠도 잘 못 이룬 정도훈이었다. 밥도 굶고 자장면을 먹는 인질범들 사이에서 슬퍼하는 은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시부터 TV를 보며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에서 깬 은우가 살금살금 문을 열고 혼자 걸어 나왔다.

잠이 깊게 든 차형욱을 깨우지 않고 발뒤꿈치를 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 나온 은우와 다시 눈물의 재회를 했다.

제일 먼저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킨 정도훈이었다. 자장면을 기다리며 납치 기간에 있었던 일을 대략 물어보며 몇 번이나 눈이 촉촉해진 정도훈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은우의 모습이 더 가여웠다.

요 착하고 여린 것을 감히 납치한 놈들을 쳐죽이고 싶지만, 최종 보스 차현수의 대기명령에 본가 감옥에 갇혀 있는 ‘남부파’와 ‘킹 스파이크’ 였다.

조사 결과 ‘킹 스파이크’ 멤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별문제 없었다. 조만간 풀려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차민석이었다. 아직 10대이긴 하지만 은우를 납치했다.

마지막에 몸을 날려 은우를 구하다가 칼에 찔려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다. 찔린 부위도 좋지 않아 피를 많이 흘리고 꽤 긴 수술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수술 도중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차형욱의 성격을 생각하면 차라리 아직 안 깨어나서 다행이다 싶은 정도훈이지만, 그래도 한참 어린 동생이니 용서와 화해 쪽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심각한 고민을 하던 정도훈이 앞을 보자, 까만 소스를 볼과 코까지 묻히고도 신나서 자장면 그릇에 파고들 듯 먹고 있는 은우가 보여 웃음이 튀어나왔다.

“차형욱! 너 돈 많이 벌어야겠다. 은우 돼지 되겠어! 저거 곱빼기인데.”

정도훈의 농담에 은우가 차형욱을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 내가 돈 줄까?”

거실 구석에 놓인 커다란 돼지 저금통은 은우를 볼 때마다 차현수 보스가 주는 용돈을 모아놓으라고 문재준 비서실장이 사준 것이었다.

은우의 재킷 주머니마다 있는 현금 뭉치를 보고 놀라 아이의 경제관념은 빨리 이해시켜야 한다며 다음날 커다란 돼지 저금통 사주었다.

통장을 만드는 것보다 처음 돈을 모으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려는 배려였지만, 은우는 아가에게 주려고 모으는 중이었다.

돼지 두 마리를 꽉 채워 아가에게 선물한 은우는 모르지만, 차형욱은 은우의 돼지 저금통 선물을 차마 못 쓰고 보물 컬렉션으로 소중히 모아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양하려는 차형욱이지만, 무거운 돼지를 자랑스럽게 선물하는 뿌듯한 은우의 얼굴에 차마 거절 못 하고 꼬박꼬박 감사 인사와 함께 받고 있었다.

“아니다. 은우가 준 거 아직 많이 남았다. 많이 먹어.”

오랜만에 잘 먹는 은우를 보고 흐뭇한데 쓸데없이 돈 이야기를 해서 은우를 걱정시킨 정도훈을 차형욱이 째려보았다. 그 말에 옆에서 푼수처럼 웃음을 터트리는 정도훈이었다. 밥을 먹고 TV 앞에 앉은 은우에게 얼마간 못 본 아침 드라마 재방송을 틀어주었다.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정도훈이 차형욱에게 소식을 전했다.

차민석이 수술 후 의식불명 상태임을 이야기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시선을 은우에게 고정하고 있는 차형욱의 모습이었다. 민감한 부분임에 병원 이름을 말해주고 아무런 참견은 하지 못했다.

남부파 이야기에는 강한 살기를 드러냈다. 차현수 보스의 명령으로 심문을 끝으로 감옥에서 차형욱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미 모든 잔당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혀 왔기에 더는 본가 감옥을 제외하고는 지구 상에 어떤 남부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킹 스파이크’의 부대장이라는 아이가 말한 조상호 사장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중이었지만, 차현수 보스는 섣불리 잡아들이거나 하지 않고 우선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다.

잘못해서 겁먹은 놈이 도망이라도 치면 찾기 귀찮고 증거를 없애면 번잡스러운 일만 늘어날 뿐이었다. 조사 결과 조민경은 납치 사건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었다.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히려면, 차민석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측은한 구석이 많은 차민석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마 외삼촌이라는 핏줄을 스스로 끊어야 하는 잔인한 선택의 시간이 있을 것이었다.

이틀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우만 지켜보며 딱 붙어 껌딱지 놀이를 하던 차형욱이 어쩐 일인지 박동수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은우와 함께 탑승했다.

오른쪽 눈썹에 슬쩍 힘이 들어간 것이 본인이 원하는 외출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운전 중인 박동수가 백미러로 조심스럽게 차형욱 회장님을 살폈다. 사실 오늘 외출의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박동수다.

둘째 아들 차민석이 병원에서 깨어나질 못해 살펴보느라 부르지 못했던 은우를, 차현수 보스가 참지 못하고 오늘 부르신 것이었다.

한참을 큰아들 놈이 불효자식이라고 크게 쏘아붙이더니, 당장 은우를 안 데리고 오면 본인이 오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인 차형욱이었다.

말은 안 해도, 아버지 차현수가 은우가 납치를 당했을 때 누구보다 분노하며 황성파를 총동원해 은우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은우를 밖으로 내놓기 불안한 마음이 큰 차형욱이지만, 무뚝뚝하게 행동을 해도 아버지 차현수의 투정만큼은 어느 정도 지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특히 은우를 보자마자 예뻐하고 받아들여 주는 아버지 차현수에게 고마운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다만 요즘 은우를 너무 챙기는 바람에 아주 옆에 끼고 있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였다.

말 안 듣는 두 아들놈 빼고 은우만 데리고 시골에 내려가 알콩달콩 살겠다고 하는 어이없는 아버지의 노후계획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아빠.”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가 마당에 서 있는 아빠 차현수를 부르며 뛰기 시작하는 은우다.

나비처럼 날아오는 은우를 보더니 벌처럼 빠르게 뛰어들어 은우를 팔에 낚아 올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차현수 보스였다.

둘째 아들놈 일로 며칠간 골머리를 썩여 부쩍 늙어 보이던 차현수 보스가 오랜만에 걱정 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가벼워서 어째. 은우야! 정말 고생 많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어디 얼굴 좀 보자. 망할 놈들! 볼살이 쪽 빠졌네.”

아직 젖살이 통통한 은우의 볼을 여기저기 당겨보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차현수 보스가 좋은지 곱게 웃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은우다.

“안 아파요. 고생 없어. 아빠. 아가랑 밥 많이 먹어요.”

“은우, 이리와.”

옆에 다가온 큰아들 차형욱이 은우를 제 품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차현수가 옆으로 몸을 돌려 방어했다.

끝까지 안아 들고 건물 안까지 들어서는 아버지 차현수를 보고는 이마에 힘줄을 드러낸 차형욱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다가온 박동수는 두 부자의 이런 모습에 히죽 웃었다. 전에는 무뚝뚝하고 서로 말도 안 하던 사이였는데, 은우 님 하나로 이렇게 화기애애해졌다는 것이 너무나 좋은 박동수다. 물론 그것은 다른 황성파 조직원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응이기도 했다.

매일 정화수까지 떠놓고 천사님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던 팬클럽들은 은우 구출 작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었다. 서로 가겠다고 해서 결국 제비뽑기로 구출 작전 멤버를 정할 정도로 은우 님에 대한 충성도가 커져만 가는 황성파다.

매일 밤낮으로 몰래 남부파를 잡아 놓은 감옥에 침투하려는 극성 팬클럽의 행동에 차현수 보스의 명령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남부파 VIP 죄인들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전에 차현수 보스 생일잔치보다 더 큰 상에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상다리 부러지게 올려져 있었다.

미리 와있었던 보성파 보스 구중석과 그 친동생인 스타 엔터테인먼트 구철민 대표가 일어서 이들을 반겼다. 때마침 잠시 인사차 방문한 이들에게 차현수 보스가 식사 초대를 한 것이었다.

“철민, 안녕?”

오랜만에 만나는 구철민 대표의 모습에 은우가 손을 살랑거리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느덧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두 눈이 촉촉한 구철민이 은우의 안부를 확인했다.

차현수 보스와 차형욱 회장 사이에 앉은 은우가 신이 나는지 화려한 중국음식 향연에 감탄을 터트렸다.

가운데 드라이아이스 특수 장식 속에 정말 승천할 것 같은 용과 봉황 조각이 있었다. 은우가 조그만 입을 벌리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로 뭐든지 말만 하면 은우가 원하는 걸 다 사주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차현수 보스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정도훈에게 자장면 사연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은우 님, 이쪽은 저희 형님이십니다.”

“허어, 처음 정식으로 인사하는군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성파라는 작은 조직을 맡은 구철민이 형이 되는 구중석입니다.”

“안녕요. 은우입니다.”

구철민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강직한 인상의 구중석이 싫지 않은 지, 은우가 손을 살랑거리며 고개를 숙여 예쁘게 인사했다.

“차현수 형님이 아주 귀여운 며느리를 들였다고 자랑을 많이 하더니…… 역시! 부럽습니다. 제 동생처럼, 아주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은우 칭찬과 더불어 브라콤임을 다시 증명하듯 동생 자랑을 빼놓지 않는 보성파 보스 구중석이었다. 동생 구철민이 슬쩍 얼굴을 붉히고 쑥스럽게 손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매만졌다.

“에이,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곰 같은 자네 동생하고 우리 은우하고 비교가 되나?”

“무슨 말씀하십니까? 우리 막내가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데…….”

“응. 철민 귀여워. 착해.”

차현수 보스와 구중석 보스가 며느리와 친동생 자랑에 열을 올릴 때, 옆에서 작게 들려오는 말에 다들 은우에게 시선을 보냈다.

차형욱이 입에 넣어주는 오향장육를 꿀떡 삼키며 은우가 구중석 편을 들어 구철민을 칭찬하는 말을 했다. 구철민 대표가 까무잡잡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큰 덩치를 부끄럽다는 듯 살짝 꼬았다.

안색이 확 펴진 보성파 보스 구중석이 역시 보는 눈이 있다며 은우를 향한 무한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슬며시 은우의 허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말이 없는 차형욱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박동수는 그 순간 눈을 비비고 다시 차형욱 회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게도 저 무뚝뚝한 차형욱 회장님이 시무룩해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자신의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건 아닌지 은우 님이 차형욱 회장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아가, 많이 귀여워.”

저 어이없는 칭찬에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드는 큰아들 차형욱의 모습에 손님을 초대해놓고 조금 창피한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하는 능구렁이 차현수 보스였다.

하지만 이미 전부터 차형욱 회장과 안면이 있었던 보성파 보스 구중석은 입을 쩍 벌리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 구철민에게 대충 설명을 들었지만, 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차형욱 회장을 쥐락펴락하는 은우를 보자 다시금 이번 납치 사건에 앞장선 자신의 행동이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우와의 친분은 대대손손 보성파에서 지켜야 할 절호의 찬스였다.

황성파의 파워 구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보성파의 미래에 너무나 중요한 정보를 머리에 꼭꼭 집어넣는 보스다운 구중석이었다.

“그나저나 둘째 아드님께서 병원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빠른 쾌유 바랍니다.”

“큼, 고맙네.”

눈치 없이 은우 앞에서 차민석의 이야기를 꺼낸 형 구중석의 옆구리를 살짝 쳐서 눈치를 주는 구철민 대표였다. 차형욱과 은우 쪽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차현수 보스가 대답했다.

“민석?”

차형욱이 은우의 앞에 디저트로 놓인 작은 약과를 입에 넣어주며 시선을 돌리려 했다. 이미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버지 차현수를 쳐다보는 바람에 인상을 굳혔다.

“민석, 아파? 병원 갔어?”

“그래. 아직 병원에 있단다. 그 아이가 은우에게 큰 잘못을 했지만, 용서는 힘들어도 불쌍히 여겨주렴. 내가 은우에게 대신 사과하마……. 나쁜 아이는 아니야. 잠시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지. 못난 것! 단지 이 아비가 미워서 그러했을 것이야.”

“괜찮아. 민석 보러 가요.”

민석이한테 가고 싶어 하는 은우의 말에 차현수 보스가 은근슬쩍 큰아들 차형욱의 눈치를 살폈다.

못 들은 척 차형욱은 은우의 입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주며 은우에게 배부르냐고 딴소리를 했다.

자기 앞에 놓인 녹차를 입가에 가져가며 주위를 둘러보고 경고의 시선을 던지는 차형욱의 모습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쿨럭.

마시던 녹차에 사레가 걸린 구철민이 기침을 하자, 형 구중석이 얼른 등을 쓸어주었다.

“오늘 잘 얻어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대접할 기회를 꼭 주시지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보성파의 이번 도움은 잊지 않겠습니다.”

썰렁한 분위기에 서둘러 도망치듯 일어나며 인사를 하자, 차현수 보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중을 위해 따라 일어섰다.

옆에 있는 차형욱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자 은우도 옆에서 손을 살랑 흔들어 안녕 인사를 했다.

“그럼, 은우 님 조만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서 YJ 그룹으로 놀러 가겠습니다.”

큰 덩치를 은우에 맞게 낮춰 눈을 바라보며 구철민이 말하자, 활짝 웃으며 은우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보성파 구중석과 구철민 대표가 떠나자, 다시 자리에 앉아 말없이 녹차를 홀짝이는 차현수, 차형욱 부자였다.

너무 닮은 두 부자 사이에 앉아 고개를 획획 돌리며 둘의 얼굴을 즐겁게 바라보는 은우가 자신의 앞에 놓인 새콤달콤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 안 가?”

은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하는 차형욱에게 물었다.

얼굴을 요리조리 디밀어 끝내 차형욱의 까만 눈을 마주 본 은우가 꼼짝 못 하게 그의 시선을 묶었다. 흠칫 어깨를 흔든 차형욱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빨리 집에 가서 은우가 좋아하는 TV 보고 놀까?”

“아니, 민석 가.”

난처한 질문은 슬쩍 넘기면 알면서도 넘어가 주던 은우가 이번에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차형욱을 졸랐다.

옆에 있는 차현수는 모르는 척 귀만 쫑긋거리며 결과를 기다렸다. 어차피 이기지도 못 할 싸움을 시작하는 어리석은 큰아들이었다.

저놈은 제 아들이지만, 정말 타고난 팔불출인데 토끼 같은 은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저런 반항은 무의미하다고 속으로 혀를 차는 차현수 보스였다.

그로서는 두 아들 사이의 골을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방법을 몰랐다.

형수 납치라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 자신의 둘째 아들 편을 들 수 없어 난처해하던 중이었기에 은우가 둘 사이를 중개해주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여겼다.

어차피 가장 큰 피해자는 은우고, 마지막에 은우를 구하고자 몸을 던졌기에 둘째 아들놈도 회생 가능성이 조금 생긴 것이었다.

아니라면, 저 냉정한 자신을 똑 닮은 첫째 놈은 아무리 자신이 말려도 둘째 놈을 가만둘 리가 만무했다.

“은우, 꼭 가봐야겠어?”

“민석 아파. 안 돼? 아가, 안 돼요?”

어디서 배웠는지, 소매를 쥐고 눈에 힘을 빼고 차형욱을 올려다보는 은우의 모습에 속으로 물개 박수를 치는 차현수 보스였다.

저걸로 끝이라 확신했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이는 차형욱의 모습에 두 팔을 높이 치켜드는 은우다.

그 코를 얄밉다는 듯이 가볍게 흔드는 차형욱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목에 매달리는 은우를 보고 입꼬리가 풀어진 팔불출이 바로 자신의 큰아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큰며느리의 큰아들 조련 방법을 훔쳐본 시아버지 차현수가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차형욱에게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효도는커녕 찬바람만 날리더니 요즘 인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들놈이었다. 너 같은 자식새끼 꼭 낳으라는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차현수 아버지였다.

뭐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잘나디잘난 놈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쩔쩔매는 꼴을 보니 깨소금이었다.

대리만족의 기쁨을 느끼는 중인 차현수 아버지였다.

전부 예쁘기만 한 미운 구석이라고는 개미 콧구멍만큼도 없는 맏며느리 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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