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의현은 짧은 문장으로 대답했다. 만족할 만한 답은 아니었지만, 애석하게도 계속해서 지원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교도관은 얼른 지상으로 뛰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독방 벽엔 누군가 손톱으로 긁어 놓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죽고 싶다느니 사라지고 싶다느니 하는 비관적인 얘기였다.
“……죽으면 끝일 줄 알았지, 나도.”
간헐적으로 모든 게 사실 정신병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특수 능력자 수감 시설에 들어오기 전 정신 감정을 의뢰했었다.
정신 감정 결과는 정상.
도대체 어떻게 정상일 수 있을까? 첫 번째 삶에선 인류 멸망을 보고, 두 번째 삶에선 입양 동생의 자살을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네 선택을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 그러다가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 죽지 말고 나를 생각해. 내가 마지막에 어떻게 갔는지 떠올려.’
다원이 죽기 전에 한 말을 떠올리며 의현은 제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Z를 피하고자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선택에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뽑혔다고 하니, 아무리 무감정한 권의현이라고 해도 죄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삶이 끝일 수도 있다.
이번에 죽으면 정말로 끝날 수도 있어.
‘부디, 오래 살아.’
하지만 과연 끝일까?
의현은 저릿한 눈을 감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했다.
“김태원…….”
일단은 그 미치광이 노인네랑 얘기를 좀 해 볼 필요는 있었다.
* * *
윤화가 로비에서 난동을 부린 지 열흘. 평소 윤화를 우습게 보던 무리들이 죄다 각성해 윤화 쪽에 붙었다. 의현은 독방에서 조용히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 똑같이 생활했다. 귀찮게 들러붙어 오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하기까지 했다.
“윤화 걘 체벌실로 끌려갔다더라. 거긴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는데, 양심이 있으면 지가 어떻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사람이 양심도 없지. 윤화가 평소에 형님 형님 하면서 얼마나 지를 떠받들어 줬는데…….”
독방 수감자도 하루 30분 광합성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인공 햇빛이긴 했지만. 돔 형태의 인공 햇빛 공간에 모인 수감자들은 틈만 나면 불쌍한 윤화를 애도하며 싸가지 없는 권의현 욕을 해댔다.
“하긴, 인성이 글러 먹었으니까 제 동생 죽이고 보육원 출신 남자 친구까지 죽여서 들어왔지. 나 같으면 아버지가 대통령이면 편하게 놀고먹었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지 인생에 똥물을 끼얹느냔 말이야.”
“실력이 S급 수준이라는 것도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어. 저런 놈이 그 정도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돼.”
난동 이후 2명 이상 붙어 있으면 득달같이 교도관들의 제재가 들어왔다.
“이봐, 그쪽 떨어져!”
권의현 욕이나 실컷 하고 있던 수감자들이 입을 삐죽이며 멀찌감치 떨어졌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의현은 눈치 보며 김태원이 대자로 뻗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소리 지르면 죽여 버릴 거야. 입 닥치고 묻는 말에만 답해.”
노인 공경은 개나 준 권의현은 김태원의 손바닥을 지르밟으며 낮게 으르렁댔다.
“내년 1월 13일에 세상이 끝난다고 했다며. 왜 하필 그날이지?”
“…….”
“근거가 있으니까 확신했을 거 아냐.”
김태원은 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 늙어서 이도 다 빠진 주제에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것이 조금 꺼림칙했다.
“권의현 너는 조금 고분고분해질 필요가 있어.”
“노망났어? 뭔 개소릴…….”
“어떤 건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지. 그러니까 우리네 인생에도 모순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
권의현의 2회 차 인생을 꿰뚫는 말이었다. 의현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을 숭배해라! 하찮은 인간 따위가 신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하면 모든 게 어그러지는 법이야! 순리를 받아들이고 신께 얌전히 머리를 조아려라! 권의현-!”
“닥쳐.”
발작이라도 하듯 큰소리로 악을 쓰는 김태원의 손바닥을 부술 듯이 밟으며 의현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나라고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나는 다시 살고 싶었던 적 없었어. 그러면 도대체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거야.
“11116번 권의현! 당장 물러서!”
교도관이 언성을 높이며 경고했다. 의현은 김태원을 잡아 족칠 생각으로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난 걜 죽일 거야. 모가질 따서라도 이 개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테니까.”
이건 어쩌면 권의현의 바람이자, 선전 포고였다.
죄수복에 목이 졸린 김태원이 컥컥대며 의현을 바라보고 웃었다.
“내 능력이 뭔지 모르지?”
“…….”
“나는 미래를 봐.”
“…….”
“네가 행복하게 살아남는 미래는 본 적도 없다.”
“…….”
“뭘 선택해도 네 인생은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져.”
“…….”
“너는 이 불행한 삶을 영영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저주와 다름없는 말이었다. 의현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만약 김태원을 죽여 버린다면? 네가 뭔데 내 미래를 마음대로 점쳐. 도대체 네가 뭔데.
분노에 눈이 먼 의현의 손끝에서 김태원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놓지 않으면 쏜다! 11116번 권의현!”
수감 시설에서 가장 높은 S급 능력치를 가진 의현이 제대로 폭주했다가는 일반인의 무력으로 제압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교도관은 그렇게 판단한 듯 허공에 총 한 발을 쏘았다.
탕!
“마지막 경고다! 손 놓고 당장 투항해!”
처음엔 차라리 난동을 부리다가 총 맞고 죽어 버릴까 생각했다. 죽음이 회귀 조건이라면 3회 차 인생이 시작될 테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죽겠지.
“…….”
하지만 의현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과연 Z는 13일에 예정대로 포탈을 개방할 것인가?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은 절멸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해도 Z가 나타나는 미래는 바꿀 수가 없는가?
“독방으로 돌아간다. 넌 한 달 동안 휴식 시간에서도 제외하겠어.”
의현은 양손을 들고 교도관의 앞에 섰다. 바닥에 쓰러진 김태원은 미친 듯이 기침을 내뱉었다. 눈알에 핏줄이 죄다 터져 눈이 시뻘겠다.
“…….”
의현은 다시금 독방에 갇혔다. 이번엔 자유 시간도 뭣도 없었다. 자그마치 한 달이라는 기간을 천장만 바라보고 지내는 사이, 해가 한 번 바뀌었다.
수감 시설에 국고를 낭비하는 걸 두고 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제 친아들이 사람 죽여 들어간 곳이라면 더더욱. 권중섭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 수감 시설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시설 내에 보일러 가동이 제한되고, 수감자들은 몇 개 없는 옷가지에 제 몸을 둘둘 말았다. 그리고 그즈음 권의현은 독방에서 나왔다.
“형님!”
윤화는 그 먼 거리에서도 의현을 발견해 뛰어왔다. 일반실로 방을 옮기기 전, 다시 의무실에서 피를 한 드럼 뽑고 나온 권의현은 힘이 없었다. 헌터로 있을 때 비하면 근육은 한참 빠져 이젠 거의 일반인 수준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도대체 형님이 뭘 했다고 자유 시간까지 제한을 하는 거래요? 저 미친 자식들은 죽어서 다 지옥 가야 해요!”
범죄 저질러서 수감 시설에 들어온 사람끼리 천국이고 지옥이고 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의현은 픽 웃으며 윤화를 스쳐 지나갔다.
“형님.”
윤화가 의현의 팔을 붙잡았다. 보일러가 안 돼 복도를 지나가면 입김이 아무렇게나 나올 정도였는데, 윤화의 손은 델 듯이 뜨거웠다.
“기운이 너무 없어 보이세요. 오랜만에 만난 건데.”
“귀찮게 하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수감자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의현이 독방에 갇혀 있는 사이 윤화가 한 자리 차지했다는 얘긴 들었는데 그게 지독한 관심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추우시죠? 손이 엄청 차요.”
“야, 됐다고.”
윤화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의현의 손을 붙잡았다. 이런 식으로 살 부대낀 건 처음이었는데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전에 형님이 저한테 부탁하신 거 있잖아요.”
“……부탁?”
“김태원 영감한테 물어봐 달라고요.”
김태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빡쳤다. 의현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꾸했다.
“신 죽이는 방법?”
“네.”
“그런 게 있대?”
자신에게는 그따위로 굴어 놓고 윤화한테는 그 방법을 알려 줬다는 사실이 어이없었다. 언젠 이 개 같은 인생을 반복하게 될 거라며?
“제가 말해 드리면, 형님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야.”
“정말 쉬운 거예요! 진짜 쉬워요!”
“뭔데? 먼저 말해. 듣고 나서 판단할 테니까.”
무뚝뚝한 의현의 대답에 윤화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직접 한 부탁이었으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할 줄 알았건만, 이런 순간에도 의현은 이성적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저랑 같이 제 고향에 한 번만 같이 가 주세요.”
“고향?”
조금 의외의 소원이었다. 의현이 알기론, 윤화의 고향은 극빈민층이 사는 18지구였다. 과거에 윤화가 능력을 조절하지 못해 죄다 소각되었고.
“혼자 가기 무서워서요.”
특수 능력 폭주는 사회적 문제로 많이 거론되었다. 능력을 제어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만으로는 부족했다. 작은 신체에 큰 능력이 깃들게 되면 그걸 현실적으로 온전히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책임 소재는 분명히 해야 했다. 사람이 죽었고 가해자도 분명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미 벌어진 피해는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가서 뭐 하려고? 네가 거기 가는 거 아무도 안 반가워해.”
“알아요. 저는 그냥…….”
윤화는 바닥으로 고개를 푹 처박았다.
“그냥 사과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과오를 책임지겠다는 윤화의 앞에서 의현은 자꾸만 더 작아졌다.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알았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억울하지 않아? 모르고 그런 거잖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은 거잖아. 그런데 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의현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을 훼방 놓던 물음표를 윤화에게 내던졌다.
윤화는 아무 말 없이 의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님, 저 편하게 자고 싶어요.”
“…….”
“특별한 이유 없어요. 정말 그뿐이에요.”
아.
의현은 작게 입을 달싹였다. 불쾌한 기분에 잠 못 들던 날이 얼마였는지 이제는 다 셀 수도 없었다. 의현은 이 원인 모를 불편에서 해방되길 원했다. 이제는 제발, 좀.
“……제 소원 들어주실래요?”
윤화는 어린 얼굴로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번 생엔 불가능하겠지.
김태원이 미래를 보는 게 맞는다면, Z는 틀림없이 등장하고 전 인류는 말살당한다. 윤화는 이번 생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의현은 시려오는 제 손을 꽉 쥐며 대답했다.
“……그래.”
“신을 죽이는 법이 궁금하다고 하셨죠?”
의현의 대답을 들은 게 퍽 기쁜 건지 윤화는 환한 표정으로 의현의 손을 잡았다. 난로처럼 따뜻한 손에 금세 열기가 느껴졌다.
“김태원 영감이 그러더라고요.”
“…….”
“신을 죽이려면.”
“…….”
“신이 너를 사랑하게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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