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늦은 밤의 저택은 조용했다. 집보다 여기가 더 편한 게 좀 모순적이라 생각하며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복도 등만 켜진 저택 내부는 아주 어둡고 스산했다. 의현은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재단은 계속해서 후원하는 아이들을 늘리고 있었지만, 첫 번째 후원 아동이 모인 이 집은 조금 특별했다. 권중섭이 직접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과 권의현이 직접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화가 그려 놓은 그림들이 1층 벽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웃고 있는 해바라기, 넘실거리는 파란 바다, 웃고 있는 저택의 사람들. 의현은 천천히 그림을 훑어보며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윤화를 사이비 마을에서 빼내 이 집에 데리고 들어왔던 때. 그때도 저택의 2층으로 숨어들었다. 어찌 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의현이 혐오하는 권중섭이 만들었고, 의현이 두려워하는 정재이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자꾸만 숨어들어 온다는 것이.
“…….”
피곤하니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의현은 2층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잘 준비를 마쳤다. 너무 피곤해서 물을 받아 샤워할 정신도 없었다. 정말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대충 제거하고, 의현은 빈 손님방으로 비척비척 들어갔다. 얇은 시폰 재질의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이 희끄무레했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의현은 슬리퍼를 벗고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호텔 침대처럼 까끌까끌한 이불이 주름지며 탄력 넘치게 의현의 몸을 받아 주었다.
“진짜…… 개……피곤하다…….”
잠을 자는 게 아니고 어딘가에 깊이 빨려드는 것 같았다. 눈을 감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몸이 붕 떴다. 몇 개의 대화들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길게 늘어졌다.
‘의현 씨, 조작은 어디서든 가능해요. 그러니 상황을 너무 믿지 마세요. 항상 의심하시길 바라요. 피곤하더라도.’
‘네가 행복하게 살아남는 미래는 본 적도 없다. 뭘 선택해도 네 인생은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져.’
‘너는 이 불행한 삶을 영영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저주. 이건 명백히 저주였다.
김태원은 뭘 하고 있지?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미래를 본다고 했는데,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왜 그를 찾아갈 생각을 못 했지? 김태원을 찾아가 봐야 한다. 김태원을…….
“김…….”
생각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의현은 미칠 듯이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오직 그 방을 채웠다.
솨아아-.
곧이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에 가만히 서 있던 인영은 인상을 구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김……?”
* * *
처음엔 앞뒤 안 보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다고 특별히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땐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S급 판정을 받았을 때 권중섭의 모호한 표정을 기억한다. 웃지 못해 어정쩡하게 부들거리던 입매 끝에 어떤 감정이 걸려 있는지, 그때의 권의현은 알지 못했다.
시키는 일은 다 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라거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해!’와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권의현이 계속해서 일했던 이유는 그냥 그 일이 제게 왔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 내가 해야지. 미루면 안 되니까.
이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 주어진 일을 해결하니, 결국 그 끝엔 죽음이 있었다.
죽는 행위 자체가 주는 불쾌감이 어마어마했지만, 그거보다 더 큰 절망은 무력함이었다. 의현이 살아온 원동력이 한순간에 어그러졌다. 권의현은 제 목을 드러낸 약자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Z의 앞에만 서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제발 죽게 해 줘! 이건 내가 바란 부활도 아니었잖아!’
이렇게 말한들 달라질까?
‘바라는 대로 해 줄 것 같아?’
Z는 분명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절망하는 권의현이 재밌다는 듯이 실컷 비웃으면서.
‘그럼 어떻게 할까?’
문제는 결국 근본으로 넘어간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권의현.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뭐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너는 다 할 수 있지? 너는 다 할 수 있잖아. 그래서 나를 이렇게 무력하게 만든 거잖아.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나를…….
의현의 무의식이 빚어낸 Z는 마치 의현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괴로웠다. 죽음의 공포는 잊히지 않고 영원히 뼛속 깊이 남았다. 나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범하게 숨 쉬고 살 수가 없어. 두려우니까. 죽고 싶지 않으니까.
‘나를 봐.’
Z는 말한다.
‘눈앞에 있는 게 누구야?’
‘너는…….’
너는 Z잖아. 의현이 대답했다. 꿈은 점점 더 깊은 늪으로 의현을 끌고 들어갔다. 자고 있는데도 계속 피곤했다. 이게 자는 건가? 무의식 사이에 문득 의식 한 덩이가 끼어들었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뭘 했더라?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너는…….’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추운 곳에서 개 같은 꼬리잡기를 해서 지금 몸이 이렇게 피곤한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차동민이 대강당에서 토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걸 신경 쓰느라…….
‘다시 한번 물을게.’
‘…….’
‘형 눈앞에 있는 게 누구야?’
의식이 깨어났다. 의현은 목소리의 주인을 마주 보았다.
‘너는…….’
‘…….’
‘너는 정재이.’
쾅-!
번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의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권의현을 늪 속에서 끄집어냈다. 마치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머리가 아팠다. 꽉 닫힌 창문 사이로 채찍처럼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의현은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흰 벽지의 천장, 코끝에 아른거리는 재스민 차의 향기, 축축하게 이마에 달라붙은 물수건. 아, 여긴 현실이다.
“도련님, 정신이 좀 드세요? 손님방에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
“밤새 열이 절절 끓으셔서 담당의 불러서 급하게 약을 넣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왜 집으로 안 가시고 저택으로 오셨어요.”
“…….”
“아직도 아프세요?”
꿈은 깨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숨 쉬는 한 계속된다.
그래, 여기가 지옥이다.
아픈 줄 몰랐다. 자주 피곤함을 느끼는 몸이었지만, 시답잖은 이벤트 하나 참여했다고 앓아누울 만큼 허약한 체질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쓰러진 지금은 의미 없는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김해수를 의식하고 있었나? 그래서 평소보다 무리했던 건가? 그거 말고는 갑자기 드러누울 이유가 없었는데.
“형아 이거 볼래? 캠프에서 보고 싶은 사람한테 편지 쓰라고 해서 형한테 썼어!”
윤화는 무슨 강아지처럼 꼬리를 붕붕 흔들며 의현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야, 형 아프다고.”
정재이는 날카롭게 굴었다. 의현이 이렇게 아픈 걸 처음 봐서 그런 듯했다.
“왜 다 여기에 모였는지 모르겠는데, 머리 울리니까 작게 말해 줄래.”
“봐, 형 머리 아프다잖아.”
“재이 넌 윤화한테 그만 뭐라고 해. 애 울겠다.”
윤화는 턱에 호두를 만들며 의현에게 와 안겼다. 나 캠프 가느라 우리 오래 못 봤잖아, 그치? 형아 나 보고 싶었지?
“내가 애를 키우지, 진짜…….”
의현은 한숨을 내쉬며 윤화의 허우적거리는 손길을 받아 주었다. 삐딱하게 선 재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왜 윤화한테만 약하게 굴어요?”
“약하게 군 게 아니라 캠프 가느라 못 본 건 사실이잖아.”
“나한테도 연락 안 해 줬잖아요.”
“너한테만 안 한 게 아니라, 다 안 했어. 아무한테도.”
이런 걸 변명하고 있는 게 웃겼다. 홍삭이 뷔페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정재이는 정말 의처증 걸린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것도 권의현을 상대로.
“맞아, 형아 나한테도 연락 안 했어!”
“윤화 너도 시답지 않은 일로 전화하지 마. 형 바빠. 앞으로는 더 바빠질 거고.”
“엑?! 진짜 싫어! 형 일 그만둬!”
“뭐?”
윤화는 언제 투정 부렸냐는 듯 위풍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내가 형 먹여 살릴 수 있어!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정도 능력이면 나라에서 데려가려고 싸움 난대!”
객관적으로 그럴 만했다. 불 능력은 희귀했고 쓸 곳이 많았다. 그러니 굳이 헌터부가 아니더라도 윤화는 충분히 잘 먹고 잘살 사람이었다. 그 빌어먹을 수감 시설만 안 들어간다면.
“일단 윤화 네가 한 말에선 세 가지가 틀렸는데 말이야.”
“세 개나?!”
“일단 첫 번째,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고.”
울망울망한 윤화의 눈을 마주 보며 의현은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두 번째는 일 그만둬도 내가 먹고사는 덴 전혀 문제가 없어.”
손가락은 하나 더 접혔다.
“마지막 세 번째는, 네가 남의 인생 책임지는 거 개인적으로 별로 보고 싶지 않아.”
“…….”
“정재이 너도 마찬가지야.”
접힌 세 개의 손가락은 퉁 튕겨 나와 윤화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형은 맨날 공부, 공부…….”
윤화는 입을 잔뜩 내밀고 투덜거렸다. 진짜 부모님도 공부하라는 말 안 했는데, 의현만 유독 이랬다.
“……아프지 마, 형아! 형이 아프면 나도 아파!”
하지만 이런 관심이 싫지 않았다.
우아악! 윤화는 의현을 한번 꽉 껴안고 부끄러운지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침대 위에는 윤화가 남긴 편지만 덜렁 남았다.
“……귀엽네.”
윤화 같은 애는 처음 봐서 항상 재밌었다. 어떤 곳에 떨어져도 윤화는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살 것 같았다.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유들유들 적당히 남들과 어울리며 선하게. 오히려 그런 점이 의현에게 꽤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세상 못돼먹은 권의현이 착해 빠진 애를 키우고 있다니.
“형 취향 딱 알겠네요.”
비딱하게 선 정재이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너무하네. 취향대로 입혀서 꿈에 등장시킨 건 형이면서.’
취향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순간 과거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내 취향이 왜?”
설마 그때랑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의현은 당당한 척 대꾸했다. 그때 있었던 일은 한낱 꿈에 불과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정재이는 실재다. 괜히 이상한 생각 하지 마.
“홍삭, 윤화……. 혹시 외자를 좋아해요?”
“뭐?”
“나도 이름을 정재로 바꿀까 봐요.”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뜬금없이 외자 얘길 해서 어이가 없었다.
“하하. 최근에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기다.”
의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제 눈앞에 있는 게 정재이라는 사실이 확 체감됐다. 얜 그때 그 Z가 아니다. 말을 할 줄 알고 제 마음에 안 든다고 누굴 확 어떻게 해 버리는 그때의 Z가 아니야.
“지금 네 이름이 너랑 제일 잘 어울려.”
“…….”
“그냥 그 이름으로 살아.”
아주 두꺼운 벽이 하나 깨지는 느낌이었다. 평생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무섭고도 거대한 것이.
〈 지금 순간을 저장하시겠습니까? Y/N 〉
그리고 의현이 조금씩 두려움을 딛고 똑바로 서려고 할 때마다, 마치 그런 의지를 눌러 죽이기라도 하듯 허공에 글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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