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가까이 닿은 얼굴은 간발의 차로 다시 거리를 벌렸다. 의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동민은 제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즘 정말 왜 이러지? 욱하고 올라오는 제 마음을 참고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야, 얼굴 너무 가까워.”
“아, 미안…….”
“너 요새 이상하다. 멍하니 있는 시간도 많고. 피곤하면 좀 쉬어. 너희 팀은 월차 내도 되잖아.”
나름대로 동민을 생각해 준 말이었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동민은 여전히 나사 빠진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해소되지 않아 갈증 나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정말 이런 적 없었는데…….
“그래, 네 말대로 내가 좀 피곤한가 봐…….”
동민은 머리를 흔들며 이성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 그사이 방지턱을 밟고 차가 한 차례 더 흔들렸다.
“자자, 피곤하다.”
의현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동민은 베개를 끌어안고 제 침대 위로 올라가 두 눈을 꽉 감았다. 이 모든 충동이 부디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
포탈이 열린 장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각성제를 복용했다. 적은 인원으로 현장 업무를 처리해야 했기에 포탈 안에서는 잠들면 안 됐다. 의현은 입에 알약을 톡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크기가 꽤 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단순한 청소 작업이 아니라, 포탈 안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구출해야 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뼛가루만 남았다면 그거라도 꺼내 들고 나와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행방불명된 사람은 총 7명이고요. 인적 사항은 이거 확인하면 될 거예요.”
지원팀에서 미리 준비해 온 종이를 나눠 주었다. 의현은 검은색 목 폴라를 챙겨 입고 귀에 무전기를 꽂았다.
“크기가 큰 포탈이라 며칠 고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일 끝나면 하루 이틀 쉴 시간 있을 테니까, 그거 생각하시면서 조금 힘내주세요!”
“하루 이틀이요? 그건 오히려 힘이 빠지는 발언인데요…….”
“저희도 까라면 까는 입장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아시잖아요. 저희도 같이 각성제 먹고 밤을 새우는 거…….”
지원팀은 말 그대로 현장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포탈 속에 들어간 헌터들과 계속 무전을 나누며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짜거나 상부에 올라갈 보고서를 작성했다. 파트너처럼 거의 모든 업무에 함께했으니, 사이는 좋다가도 금세 벌어졌다. 어차피 근본은 다른 팀이었으니 이해관계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전기 테스트하겠습니다. 아아, 테스트 하나둘. 들리세요?
“권의현, 들립니다.”
―확인했습니다.
의현은 뚝뚝 관절을 풀었다.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몸이 좀 무거운 느낌이었다. 발목을 뱅뱅 돌리며 스멀거리는 거대한 포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현장팀 선배 몇 명이 다가와 친한 척 말을 걸었다.
“권의현,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네 실력 보겠다?”
“일하느라 바쁠 텐데요.”
“싸가지하고는……. 내가 아무리 바빠도 그거 하나 볼 시간 없겠어?”
“그럼, 보세요.”
빡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 바빠 죽겠는데, 정말 다른 사람 능력을 구경하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을 뿐. 물론 말투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이해 가능했다.
“저 새끼가!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아네……!”
“형, 그만하세요! 신입이라 뭘 잘 몰라서 그런 거겠죠.”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 둘이서 뭘 어쩌네 저쩌네 투닥거렸다. 의현은 곧장 관심을 껐다. 이런 것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었다.
―포탈 입장하겠습니다!
지원팀에서 무전이 왔다. 방금 먹은 각성제의 효과가 오는 건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어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계속 눈치를 보는 동민을 지나쳐, 의현은 스멀거리는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포탈은 불구덩이의 열대우림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괴물은 포탈에 기생하고 있었기에 그 종류와 형태가 너무나도 다양했다. 이번 괴물은 온도가 뜨겁고 미끈해 맨손으로 쥘 수가 없었다.
―현재 온도, 49°c입니다.
“이거 완전 찜통 아니야? 죽으라는 거냐고!”
어디선가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팀 직원은 헤어밴드를 공수해 와 하나씩 나눠 주었다. 땀 흘리면 앞이 안 보일 수 있으니까, 이게 도움이 될 거예요! 상큼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냉큼 포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덥긴 덥네…….”
헤어밴드로 앞머리를 다 올려놨지만, 땀은 계속 흘렀다. 바닥은 늪지처럼 끈적거렸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나 이 안에서 사흘을 버틴다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2인 1조도 아니었다. 위치 반경을 정해 거길 처음부터 끝까지 탐색해야 하는 극악의 상황이었다. 의현은 늪지대에 발을 내딛다가 반쯤 부식된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4구역, 현재 위치에서 남자 시체 발견했습니다. 훼손 정도가 심각해 신원 확인 불가.”
―위치 확인했습니다. 훼손이 많이 진행된 건가요?
“훼손도 훼손인데, 늪에 반쯤 빠져 있습니다. 꺼내다가 몸이 반으로 조각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확인 후 무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자리 지켜 주세요.
늪인데 자리를 지키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말이지? 가만히 서 있을 때마다 스멀스멀 발이 깊이 빠져들었다. 의현은 제 옆으로 삐죽 내려온 넝쿨을 잡아당겼다. 잠깐 발을 빼기 위함이었는데, 그게 무슨 기폭제라도 된 듯이 주변에 있던 썩은 나무들이 죄 무너지기 시작했다.
“4구역, 시간 오래 못 버틸 것 같습니다.”
―몇 분 정도 가능하시죠?
“5…….”
―5분이요?
“4, 3, 2, 1.”
초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독단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의현은 시체의 몸통을 꺼내 들고 썩은 나무를 밟고 올라섰다. 이미 부패가 반쯤 진행된 시체는 몸이 조각난 채 의현의 손가락에 붙잡혀 있었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 안면부만 확실히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럼 됐네요.”
어깨 아래론 없었지만, 얼굴은 확실히 있었다. 의현은 꺼낸 시체를 풍선처럼 허공에 매달고 늪을 빠져나왔다.
열대우림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더 뜨거웠다. 숨을 쉴 때마다 불을 앞에 둔 듯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의현은 생수를 때려 부으며 전진했다. 포탈 안쪽은 해도 없어, 현재 시각을 알 수 있는 건 손목에 걸린 시계가 유일했다.
들어온 지 세 시간째. 의현이 하나를 찾았고 5구역에서 하나를 찾았으니 남은 실종자는 다섯이었다.
“또 나오는데요?”
“이래선, 5일 안에 못 끝낼 텐데…….”
포탈 안에서 사람 한 명이 비척거리며 나왔다. 피부가 빨갛게 익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람 피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살이 뜨거웠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남자는 이내 바닥에 픽 쓰러졌다. 지원팀 직원들은 남자를 부축해 간이 풀장에 집어넣었다.
“괜찮으세요?”
“괜찮겠냐?!”
“이러면 끝도 없어요. 휴식하시고 다시 들어가셔야 해요.”
“죽으라는 거지, 이게 지금! 적어도 살 수 있게는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안에 들어가 봤어? 숨이 안 쉬어진다고!”
“휴식 시간 길어질수록 안에 있는 사람들만 힘들어지는 거 아시잖아요. 철춘 님 담당 구역 다 못 끝내면, 그거 다른 팀원이 이어받아서 추가 근무 뛰어야 해요.”
“난 못해! 추가 근무 뛰라고 해!”
“상부에 보고 올라가는데도요?”
“올려! 죽고 사는 문젠데, 뭘 어쩔 건데!”
의현의 선배, 현장 5팀의 김철춘은 제법 막나갔다. 사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철춘은 헌터부 현장팀 내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후배 잡아먹는 꼰대 새끼로. 철춘이 제값을 하지 못해, 누군가는 추가 근무를 뛰어야 했지만, 그건 철춘이 알 바 아니었다. 원래 세상은 공평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신은 선택받아 능력자가 된 것이고, 누군가는 밥 빌어먹으려고 거리를 전전하는 거겠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징계받으실 수 있어요.”
“나는 퇴사가 꿈인 사람이야. 돈도 이제 벌 만큼 벌었고. 나라에서 날 놔주면 좋지-.”
철춘은 말이 안 통했다. 지원팀 직원은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철춘을 달랬다. 이 인간은 벌써 다섯 번이나 포탈 밖으로 튀어나와 풀장에 몸을 담갔다. 여기가 뭐 수영장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상부엔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동료분들 생각도 해 주세요.”
“내가 안 한다고 했어? 몸 식히고 들어간다는데 되게 시끄럽게 구네. 지원팀은 다 이런가? 밖에서 편하게 일하는 주제에 간섭 좀 그만해.”
수영장에 놀러 온 다섯 살짜리 애처럼 김철춘은 풀장에서 실컷 물놀이나 하다가 다시금 포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지원팀은 GPS를 통해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었다. 김철춘은 몇 걸음 가다가 멈추고 또 몇 걸음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했다. 꼭 장난이라도 치듯이.
“……저 사람을 진짜 어떡하면 좋죠?”
“그래도 저 사람이 살린 목숨도 있을 텐데, 너무 타박하지 말자.”
“너무 재수가 없는데요?”
“포탈 들어가는 거 무섭잖아. 솔직히 정신이 좀 이상해져도 그럴 수 있지.”
김철춘의 경로를 따라가며 지원팀 직원들은 수군거렸다. 그래, 어쩌면 정신 이상자로 생각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돈은 그렇게 받아 처먹으면서 저런 태도가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하루 반나절이 흘렀다. 무전기를 통해 듣자니, 안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고 했다. 각성제를 먹은 헌터들은 잠을 자지 않았지만, 땀을 계속 흘려 체력소모가 엄청났다.
―1구역, 생존자 발견. 살아 있습니다. 호흡이 불안정해 빠른 이송이 필요합니다.
무전이 왔다. 썩은 표정으로 김철춘의 GPS를 확인하고 있던 직원은 금세 화색을 띠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팀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1구역 현재 위치와 가장 가까이 있는 팀원은…….”
지원팀 직원의 말끝이 늘어졌다. 깔끔하게 말을 할 수가 없던 탓이었다.
―무전이 끊긴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무전이 다시금 울렸다. 지원팀 직원은 당황으로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2구역 김철춘 님, 지금 당장 1구역으로 이동해 생존자 이송을 도와주세요.”
하필, 김철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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