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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60화 (60/185)

60화.

김철춘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포탈 안에서 너무 땀을 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외모도 외근 장소에 도착해서 본 모습과 너무 달랐다. 안압이 높아 충혈된 채 툭 튀어나온 눈, 볼록하게 팽창한 배, 그리고 잘린 팔을 휘감은 수상한 돌기까지. 모든 특징들이 김철춘을 죽여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3구역, 김철춘 헌터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말을 걸어도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 체격에 이상할 정도로 변동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치료계 헌터가 주변에 있다고 위치가 찍히는데, 혹시 주변에 없습니까?!

“그건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는 것…….”

우웩-. 김철춘은 입에서 초록색 진액 같은 걸 뱉어 냈다. 끈적끈적한 진액 사이에서 헤엄치고 있던 올챙이 모양의 괴물들이 징그럽게 꾸물거리며 의현을 향해 날아왔다. 이건 또 뭔……. 의현은 허공에 손을 뻗어 공기층을 만들어 괴물들을 한 군데에 묶어 놓았다.

―3구역, 권의현 헌터! 대답해 주세요!

“지금 대답이 필요한 건 그쪽인 것 같은데, 김철춘 헌터를 내가 사람으로 봐야 합니까? 입에서 괴물을 토해 내는데도요?”

―괴물을 토했다고요?

“눈알이 완전히 돌아갔어요. 지금 자기가 사람인지 괴물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완전 인지 불능 상태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뭐 사살해야 합니까?”

의현의 물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같은 팀원을 사살한다.’ 그 짧은 문장에 얼마나 묵직한 무게가 걸려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더 위쪽의 허가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헌터부 법령 3조 같은 팀 팀원을 아무 이유 없이 사살하면 중죄로써…….

“그럼 지금 나한테 죽으라는 건가요?”

―권의현 헌터,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우선순위 똑똑하게 따지세요. 상부에 보고 필요하면 이러고 있을 시간에 올리겠어.”

상부 허가 없이는 김철춘에게 어떤 상해도 끼쳐서는 안 됐다. 의현은 김철춘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걸 피하며 욕을 짓씹었다.

“사살 허가 떨어지면 무전 주세요.”

지원팀 직원이 뭐라고 얘기하는 도중에 의현은 무전기를 껐다. 수신이 끊긴 걸 그쪽도 눈치채고 빠릿빠릿 일 좀 하라는 뜻에서였다. 껐던 무전을 다시 켜자마자 지직거리며 동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현아, 너 지금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방금 무슨 덤불 같을 걸 지났는데, 가시 존나 돋쳐 있는.”

―김철춘 아직도 거기 있어?

“어. 지금 내 팔 물어뜯으려고 미친 듯이 발작하는데?”

―나도 거기로 갈게. 잠깐만 기다려.

“너 차동민 맞지?”

―당연하지.

“너네 집 강아지 이름이 뭐야.”

―뭐? 로키잖아. 그건 갑자기 왜…….

“야, 너 몸 상태 괜찮으면 오면서 다른 팀 사람들도 찾아서 같이 와 줘. 그동안 김철춘 붙잡아 놓을 테니까.”

동민이 제정신인 걸 확인하자마자 의현은 곧장 일을 분담했다. 아무리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할 수는 없었다. 동민은 알겠다고 답했다. 무전은 금세 끊겼다.

더웠다. 각성제 한 알 먹으면 삼 일은 그래도 버틸 만했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체력이 두 배로 깎였다.

많은 포탈을 겪어 봤지만 이렇게 환경이 극악인 포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분명 있었다. 온도가 높고 물이 부글부글 끓고 괴물이 뜨겁다고 해도, 어차피 의현은 제 손으로 직접 싸울 일이 없었다.

“전에 제 실력 궁금하다고 하셨죠?”

김철춘의 배가 자꾸 불렀다. 저 속에서 뭔가 자라나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상상이 계속됐다. 김철춘이 괴물 새끼를 낳는 건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서 팀장에게 가서 기억 제거 수술이라도 받을 생각이었다.

“보여 드릴게요.”

의현은 절반쯤 진심으로 그를 애도했다.

오늘 이런 식으로 세상 뜬다고 해도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살아남아도 얼마 못 살 테니.

동민은 뿔뿔이 흩어진 팀원들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무전을 나눴다. GPS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었지만, 포탈 안은 밖만큼 정확하지 못했다. 엇비슷한 장소를 여러 번 돌았다. 지형지물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여기가 방금 지나온 곳인지 아닌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후, 동민은 팀원 세 명과 접선을 완료했다. 다행히도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다들 3구역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인간한테 기생하는 괴물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선배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요. 다들 괜찮으세요?”

동민이 동조하며 은근히 제 손을 뒤로 숨기는 걸, 같은 팀 직속 선배는 곧바로 눈치챘다.

“차동민 헌터, 손 뭐예요?”

“아, 이건 모체한테 물린 게 아니고 그냥 화상 입은 겁니다. 상대해 봐서 아시겠지만, 괴물이 뜨거워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손이 완전히 짓물렀잖아요!”

선배는 동민이 숨긴 손을 억지로 꺼냈다. 화상 입은 채로 몇 번이고 더 싸워 완전히 어그러진 주먹은 온통 피와 진물이 가득했다.

“치료를 받지 그랬어요!”

“그땐 김철춘 헌터의 이송이 더 급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하……. 앞으로는 손 쓰지 마세요. 더 심해지면 완치가 불가능할지 모르니까.”

악조건이 겹쳤다. 동민은 선배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며 제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더 이기적으로 행동했어야 했나? 하지만 김철춘은 정말 곧 죽을 것 같았는데…….

“현장팀 접선 완료했습니다.”

―권의현 헌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주세요. 사살 판단은 그때까지 유보하겠습니다.

지원팀의 건조한 목소리를 들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김철춘을 상대하고 있을 의현 생각이 났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 사살 판단이라뇨?”

―원칙상 한 사람만의 판단으로 국가의 고귀한 인재인 헌터를 사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상부에서는 몹시 심각하게 판단하여, 현장팀 팀원 모두의 동의를 받아 사살을 허가하겠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에 저희 지원팀은 현장팀 여러분들께 이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씨발, 그놈의 개 같은 판단 유보.

무전을 타고 무시무시한 욕설이 쏟아졌다. 의현의 목소리였다.

판단 유보라는 말은 결국 선택권을 우리에게 넘기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동민은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을 수도 없이 화나게 한 김철춘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죽기를 바라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동민은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툭 힘없이 떨어진 손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차동민 헌터, 일단 움직이세요.”

“…….”

“이러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동민은 그들의 뒤를 따라 의현의 좌표가 깜빡거리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뺨을 스치고 지나는 공기가 무섭도록 후덥지근했다.

의현이 만든 공기층에 갇힌 김철춘은 계속해서 구토했다. 깨끗한 유리병에 갇힌 사람처럼 그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김철춘의 발목까지 초록색의 점액질이 가득 차올랐다. 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모체를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괴물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한 손으로는 김철춘의 공기층을 유지하고 남은 한 손으로 괴물들을 상대하며 의현은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권의현 헌터!”

어디선가 날아온 불길에 잔챙이 괴물 몇 마리가 타 죽었다. 의현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장팀 팀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의현에게 뛰어왔다.

“죄송해요. 늦었죠?”

“네. 늦었네요.”

“김철춘 헌터는 어디…….”

김철춘과 친하던 1구역 남자는 의현이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네 발로 바닥을 기고 있는 김철춘의 모습이 보였다. 복부는 아까보다 더 팽창해 곧 터질 것 같았다.

“……저, 초, 초록색 액체는 뭐죠?”

“김철춘이 토한 건데요. 액체 안에 작은 괴물들이 있는데 불시에 폭발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이럴 수가…….”

어떻게 봐도 확실히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김철춘의 모습에, 누군가는 충격받은 듯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지원팀입니다. 현장팀 직원들이 모두 모인 것으로 확인되는데, 맞습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무전기 소리에 동민이 화들짝 놀랐다. 의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동민의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게 왜 저렇게 된 건지 안 봐도 상황이 그려졌다.

“맞습니다.”

―그럼 동의자를 확인하겠습니다. 현재 김철춘 헌터의 모습을 면밀하게 확인해 보시고 사살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름과 함께 동의한다고 말해 주시면 됩니다.

적막이 감돌았다. 면밀하게 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죄책감. 죄악감. 인간의 목숨 앞에서 수많은 죄스러움이 몰려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순간.

“권의현, 동의합니다.”

의현은 담백하게 제 의견을 말했다.

“뭐 해요, 동의하지 않고?”

“하지만…….”

“뭘 하지만이에요. 그럼 지금 계속 이렇게 있자는 겁니까?”

무게를 짊어지기 싫은 사람들은 차라리 계속 회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의현은 아니다. 이걸 해결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김현아, 동의합니다.”

동민의 선배가 손을 달달 떨며 제 이름을 말했다. 뜨거운 땅의 미칠 듯한 열기 때문에 머리가 정말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동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살갗이 떨어진 손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이창수, 동의합니다…….”

“장민호, 동의합니다.”

모두의 이름이 나왔다. 동민은 눈을 꽉 감았다. 이런 순간이 제게 올 줄 몰랐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원래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걸 포기하고 선택한 직업이었는데…….

“의현아…….”

동민은 처음으로 의현의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나 정말 못 하겠어…….”

설령 그게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괴물이더라도, 동민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난 정말 못 하겠어…….”

의현은 아무 말도 없이 서럽게 우는 동민을 똑바로 응시했다.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이었다.

“잘 들어, 차동민.”

의현은 제가 하고 있던 헤어밴드를 바닥에 내던졌다. 머리카락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지, 나는 여기서 김철춘 죽일 거야.”

“뭐……?”

“네가 동의 안 하면, 난 김철춘 죽인 죄로 특수 능력 수감소 끌려가겠지.”

“권의현!”

“김철춘 살릴래, 아니면 나 죽일래?”

펄펄 끓는 이 절망 속에서, 권의현이라는 사람은 마치 지옥의 사자처럼 동민의 숨통을 옥죄었다.

“네가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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