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허, 허억-!”
동민은 악 소리치며 깨어났다. 커다란 침대 옆으로 하얀색의 수증기가 나풀거렸다. 누군가는 이걸 생명의 이불이라고 하던데, 동민에겐 그저 불쾌한 안개에 불과했다. 빈사 상태의 사람도 이걸 쬐고 있으면 목숨을 쉽게 부지할 수 있었다. S급 치료계 헌터 몇 명이 계속해서 생성해 내는 이 연기가 어떤 구조로 만들어지는지, 신체 강화계인 동민은 알지 못했다.
동민이 상체를 일으키는 걸 보고 가까이에 서 있던 치료팀 직원이 다가왔다. 표정이나 머리 스타일 같은 게 왠지 모르게 도회적으로 보였다.
“차동민 헌터,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근데 제가 갑자기 왜 여기에서…….”
윽-. 동민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를 떠올리다가 곧 짧게 신음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후 사정에 앞서 차동민 헌터에게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는데, 혹시 지금 답 괜찮으신가요?”
“궁금한 사항이요?”
“단순히 상태 확인 차원에서 묻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거나 큰 외상을 입은 이후엔 기억 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아서요.”
흰색 가운을 입은 치료팀 직원은 어디선가 차트와 음성 녹음기를 들고 왔다. 취조받는 듯한 분위기가 낯설었다.
“차동민 헌터, 혹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상황이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상황…….”
동민은 제 손과 가슴, 어깨에 줄줄이 매달린 온갖 기구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그 포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끈적끈적하고 습한 열대 우림의 공기.
동민은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자신이 김철춘 대신 피 칠갑을 한 권의현이라는 사람을 선택해야 했던 그 절망적인 순간을.
“권의현 헌터가, 김철춘 헌터를…….”
동민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사살했습니다.”
* * *
명목은 병가였다. 하지만 의현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병가라고 했으나 불려 가는 건 병원이 아니라 헌터부였다. 고위 간부들은 빙 둘러앉아 의현을 가운데에 세워 놓았다. 무슨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허리를 펴고 앉았다. 지켜보는 인물 중에는 권중섭도 있었다. 같은 집에 사는데 정말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권의현 헌터를 오늘 이 자리에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난 외근 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질문을 몇 가지 하고 싶어서인데…….”
그렇게 말하며 진행자는 권중섭의 눈치를 보았다. 현장팀 외근 중에 일어난,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에 장관급이 자리를 채울 줄은 본인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의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번 외근이 환경적으로 유독 안 좋았다는 사실은 지원팀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이미 전달받았습니다. 저희가 권의현 헌터에게 묻고 싶은 건 김철춘 헌터의 정확한 상태와 왜 그렇게 판단 내릴 수밖에 없었냐는 이유인데요…….”
진행자는 말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물거렸다. 그러면서도 불안정하게 권중섭과 권의현을 연신 번갈아 보았다.
“이 부분에 관해 설명을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음…….”
“김철춘 헌터의 상태는 지원팀에 무전 보냈던 그대로입니다. 눈을 빨갛게 충혈됐고, 복부는 곧 터질 것처럼 팽창해 있었으며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제 능력을 이용해 공기층에 가둬 놓고 경과를 지켜보려 하였습니다만.”
“……다만?”
“갑작스럽게 김철춘이 입에서 괴물을 토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 속에서 헤엄치던 괴물은 공기층 안에 있는 김철춘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크기를 키워 갔습니다. 최소 오십 마리 정도 되는 괴물들이 모체만큼 크기를 불리면 현장팀 헌터들이 떼죽음 당하는 건 한순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사살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지원팀에 무전을 보냈고, 이후 상부에서 제안한 민주적인 방법에 따라 정당하게 사살하였습니다.”
의현은 무슨 기계 같았다. 이 순간을 위해 발표를 준비한 사람도 이마만큼 철두철미하게 논조를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았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때 상황을 술술 보고하는 의현을 보고 자리에 앉아 있던 간부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요컨대 ‘어려운’ 상황이었던 거군요-.”
다 머저리들인가? 그럼 뭐, 평온한 상황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사살했게? 이건 뭔 말도 안 되는……. 의현은 자신이 지금껏 길게 서술한 이 모든 것들을 단순히 ‘어려운 상황’으로 정의 내리는 윗선들의 태도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사살밖엔 방법이 없었던 걸까요?”
내내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권중섭이 입을 열었다. 무슨 동물 으르렁대는 소리 같았다. 쇳소리가 섞인 낮고 굵직한 목소리는.
“…….”
의현에게 호의적이었던 장내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권의현 헌터 정도의 능력이라면 김철춘을 제압해 끌고 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텐데.”
“…….”
“좀 궁금하네요. 권의현 헌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
“능력을 쓰는 것과 사람 하나 없애는 것 중에서 본인이 조금 더 쉽다고 생각한 행위를 한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데.”
“…….”
“위험한 사상 갖지 마세요. 권의현 헌터.”
쥐 죽은 듯 조용한 장내에서 권중섭이 뱉은 말들은 무겁게 의현을 짓눌렀다.
“저는…….”
“…….”
“저는 사람 죽이는 거 쉽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의현은 확신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린 판단이었다. 포탈을 없애는 게 의현의 임무였고, 그 포탈을 없애기 위해선 김철춘에게 기생한 괴물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김철춘과 괴물은 이미 한 몸이었다. 분리할 방법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살밖에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과연 그럴지……. 앞으로 지켜볼 겁니다.”
권중섭은 마치 의현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사람 같았다. 끈이라도 걸어 놓은 건 아닐까? 여길 당기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여길 당기면 이런 식으로 대답해.
“보고서 올리고 나가 보세요. 이번 사건에 관해선 좀 더 상의가 필요할 것 같으니까.”
“네.”
의현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권중섭의 얼굴이었지만, 조금도 반갑지 않고 턱턱 숨이 막혔다.
“위험한 사상…….”
의현은 문을 닫고 나와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들이치는 빛줄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한번 틀어박힌 이상한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꼬리를 물었다.
권중섭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능력으로 김철춘을 데리고 나와 과학 수사부든 어디든 넘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쉽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야.
쉽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게…….
* * *
김철춘의 장례는 국가에서 치러 주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민간인에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장례식장에선 아직 젊은데 포탈에서 괴물만 상대하다 희생됐다며, 내 아들 불쌍하다는 김철춘 어머니의 한탄이 쏟아졌다.
당연하게도 의현은 그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뻔뻔하게 거기에 얼굴을 들이밀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었다.
동민은 치료팀의 치료를 받는 중이라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물론 동민은 거기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심신이 건강하진 않을 테지만.
“……나 너 신경 쓸 여력 없어. 너까지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해. 혹시 화난 거 있다면 말로 풀면 되잖아. 쪽지 하나 남기고 사라지는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재이, 너 얼른 저택으로 돌아와. 형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야. 진짜…….”
의현은 술에 잔뜩 취해 핸드폰을 붙잡고 늘어졌다. 1지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는 메인 호텔 방 안에서 누리는 개 같은 호사였다.
“너 연락 받아. 나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 진짜로…….”
애원은 종국에 협박이 됐다.
“정재이 너 내가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 못 해? 내가 너 그런 식으로 키웠어?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형이 너를 바르게 키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개 같은 호사. 돈이 있으니까 방 잡고 술 처마시고 재밌게 노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현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갈 곳이 없어서’였다. 권중섭이 있는 집으로 갈 수도, 정재이가 없는 저택에 갈 이유도, 차동민이 없는 걔 집으로 찾아갈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해 사람이 없다면, 의현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 학교 퇴학당할 수도 있어. 출석 일수 채워야 해. 여행 간 거로 구색 맞추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가 지금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 너 똑똑하잖아…….”
제대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 본 적이 없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의현은 필터 없이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나불댔다.
“이거 들으면 제발 연락 좀 줘. 네가 싫다면 저택에 들어오라는 말 안 할게. 그냥 갑자기 왜 나간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만 좀 알려 줘. 응?”
다 비운 와인 병들이 옆으로 쏟아졌다. 의현은 휘청거리며 일어나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창문 바깥으로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케사디안 광장 중앙에 설치된 관람차에서 화려하게 불빛이 반짝였다. 회귀하기 전부터 지겹도록 이 1지구에서 살아왔지만, 의현은 단 한 번도 저 광장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나 나쁜 사람 되기 싫어, 재이야…….”
의현은 핸드폰을 쥔 채로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의 끝이 형편없이 갈라지고 호흡이 많이 섞였다.
“너를 살리겠다고 결심한 걸 후회하게 하지 말아 줘. 나는……. 나는 정말 믿을 사람이 없어. 너도 알잖아.”
세상은 더럽게 공평하지 못하고 이 호사스러운 불빛도 모두에게 비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배고파 죽는 사이, 누군가는 배불러 죽으며. 누군가는 평생 문맹으로 살지만, 누군가는 글로 돈을 번다. 누군가가 종일 일해도 못 벌 돈을 손에 쥔 사람은 괴물이 되어 죽었고, 그를 죽인 인간은 죽지도 못하고 산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너무 힘들어. 재이야. 나, 그만……. 다 그만하고 싶어…….”
의현은 베개에 얼굴을 깊숙이 묻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중얼거리다가 이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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