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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69화 (69/185)

69화.

숙소라고 소개받은 곳은 다 쓰러져 가는 조립식 건물이었다. 담쟁이덩굴이 건물 외벽을 온통 뒤덮고 있어, 여기라고 말 안 했으면 건물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너무 만족스러워요. 어휴, 이 정도면 당연히 저희 다 같이 잘 수 있죠. 그럼요-.”

서 팀장은 허풍 떨며 트럭 기사와 인사했다. 그사이, 의현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까보단 살 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었다.

문을 열자마자 기침이 터져 나왔다. 두껍게 쌓여 있던 먼지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콜록콜록, 우욱-. 기침을 뱉던 의현은 입을 틀어막고 다시 숲으로 달려 나갔다. 비행기에서 먹은 샌드위치를 죄 게워 내는 동안 아무도 이쪽을 신경 쓰지 않았다.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은 사람은 누워서 한숨 자도록 해. 특히 권의현 학생. 세상에 돼지 분뇨 냄새 좀 몇 시간 맡았다고 이렇게까지 병들 수 있는 거야?”

행정팀 한 팀장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꼭 이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제게 불만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만했다. 한 팀장은 의현을 향한 특유의 적개심을 감출 생각도 안 했기 때문이다.

“……오늘 뭐 중요한 거 안 하시죠?”

“그래, 오늘은 주변에 뭐 있나 탐사만 좀 하고 올 거야.”

서 팀장은 퍽 친절한 말투로 대답했다.

1층짜리 조립식 건물은 스무 평이 채 안 돼 보였다. 창문 사이로 작열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바닥에 쌓인 먼지가 정통으로 보였다. 의현은 제 겉옷을 벗어 들고 하나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한 시간만 자겠습니다…….”

“응, 잘 자-.”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의현은 바닥에 겉옷을 깔고 제 몸에 밴 쿰쿰한 돼지 냄새를 맡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의현이 깬 건 정확히 한 시간 후였다. 벽 너머에서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벽 바로 옆에 붙어 자던 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잠에 취해 제대로 된 사리 판단이 안 됐다. 의현은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소리가 났던 것치곤 바깥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의현은 바닥에 깔아 놓았던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어 하늘이 온통 빨갰다.

“……”

주변이 수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의현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조립식 건물 주변을 살폈다. 바로 옆엔 커다란 돼지 농장이, 그리고 그 앞으로는 닭장이 있었다.

쾅!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얼른 위치를 파악해 그쪽으로 뛰어갔다. 건물 뒤편에 장작을 쌓아 놓는 창고였다. 먼지 냄새가 가득하고 거미줄이 마구잡이로 얽혀 있었다. 의현은 허리를 굽히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쾅!

“뭐 하세요?”

“으아아악-!”

커다란 도끼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의현은 제 능력을 이용해 도끼를 둥실둥실 띄웠다. 도끼질하던 남자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바들바들 떨었다. 뚱뚱하게 살찐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바닥에 넙죽 엎드린 모습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저기요.”

“으으……. 으으…….”

흙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린 남자는 도통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현은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앉아 남자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너.”

“으으……. 으으…….”

“너, 맞지?”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남자는, 의현의 목소리를 듣고 곧 눈을 치켜떴다.

“수찬아, 너 살아 있었구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데다가 전보다 살이 더 쪄 눈코입이 죄 파묻혀 있었지만, 이 얼굴을 의현이 잊어버릴 리 없었다. 18지구에서 윤화를 꺼내오던 날, 지겨울 정도로 마주했었으니까.

“시, 시, 시…….”

“근데 수찬아 너 다리는 왜 이래?”

“신님!”

수찬은 뭐 소중한 걸 쥐듯이 의현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손이 아니라 무슨 냄비 뚜껑 같았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신님!”

“수찬아, 나 기억 못 해? 서운하다. 우리 그래도 서로 꽤 인상 깊었잖아.”

“신님!”

“……미치겠네.”

따지고 보면 이 수찬이가 그 수찬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원래 세상엔 놀랍고도 다양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법이니, 수찬이와 쌍둥이거나 혹은 수찬이랑 똑 닮은 사람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 의현은 최대한 친절한 얼굴로 물었다.

“너 윤화 알지?”

“신님! 저를 구원하러 오신 건가요? 저를 버리지 않으신 거죠?”

“윤화 아냐고. 옛날에 네가 귀신 씌었다고 그랬었잖아. 피아노 안쪽에 좁은 방에 가두고, 크림빵 준 거 기억 안 나?”

“신님! 저는 너무 힘들어요……. 신님이 저를 살려 주셔야 해요!”

“신 말 개무시할래? 너 지옥 가고 싶어?”

의현은 목소리를 팍 내리깔고 말했다.

“아니요!”

“그럼 묻는 말에 대답해.”

“네, 네!”

의현이 인상을 구기며 신인 척했더니 수찬은 다시금 벌벌 떨었다. 이런 짓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수찬이 워낙 산만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너 윤화 알지?”

“네! 압니다!”

“수찬아, 너 그때 나 봤지?”

“네! 봤습니다!”

“근데 너 어떻게 살아서 나온 거야?”

“그건…….”

수찬은 기억하기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며칠 씻지 않았는지 땟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은 가엾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 불쾌했다.

“그때 신님이 타고 가신 택시를……. 계속 따라갔어요…….”

“걸어서?”

“네……. 그때 계속 뛰다가 덥에 걸렸는데요.”

“덥이 뭐야?”

“야생 동물을 잡는 거라고 아저씨가 그랬어요. 날카롭고, 손을 이렇게 대면 팍! 하고 올라오는데…….”

“아, 덫.”

“네, 그거요. 그거 때문에, 다리가 정말 많이 아팠는데, 그때 여기 아저씨가 저를 발견해서요. 너무 썩어서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그래서 잘랐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수찬은 그 얘기를 하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하…….”

의현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얜 교주를 시초님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막상 괴물이 쳐들어왔을 때 그 시초님이 허망하게 죽자 어떻게든 정신적으로 의지할 대상을 찾기 위해 새로운 종교를 만든 모양이었다. 운 나쁘게 거기 걸린 게 의현이었고.

“신님! 제발 저 좀 구원해 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나도 힘들어.”

“신이 뭐가 힘들어요?”

“신도 힘들어. 신의 사정이라는 게 있어.”

의현은 제 겉옷으로 수찬의 얼굴을 대충 문질러 닦았다. 눈물이고 콧물이고 죄다 묻어 지저분하게 주욱 늘어났다. 어차피 이 겉옷은 버릴 생각이었기에 그다지 상관없었는데, 수찬은 의현의 이런 행동에 퍽 감동한 듯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신님이 윤화를 아끼시는 줄 알았다면 그렇게 나쁘게 굴지 않았을 거예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

“쉿-.”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의현은 겉옷으로 수찬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장작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백 킬로그램이 넘을 것 같은 수찬의 몸이 한순간에 번쩍 들려 옮겨졌다.

“……소리 내지 마.”

수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머저리가 장작 패 놓으라니까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멍청한 자식!”

목소리는 트럭 기사의 것이었다. 하지만 넉살 좋게 서 팀장과 대화를 나누던 그때와는 말투가 너무 달랐다. 고개를 슬쩍 들이밀어 창고 안쪽을 흘끔 쳐다본 트럭 기사는 험악한 말을 내뱉으며 이내 멀어졌다.

“네가 말한 아저씨가 저 아저씨야?”

의현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입이 막힌 수찬은 위아래로 고개만 끄덕였다.

“너 일단 나 아는 척하지 마.”

“읍, 읍……!”

수찬은 자기가 왜 그래야 하냐는 듯 반항했다. 이런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네가 너무 독실해서 너한테만 특별히 말해 주는 거야. 그러니까 잘 들어, 수찬아.”

“읍…….”

“신이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의 수가 정해져 있어. 내가 신인 거 밝혀지면 여기 사람들이 다 구원받겠다고 달려들겠지?”

“읍…….”

“그럼 정작 진짜 구원이 필요한 수찬이 네가 구원 못 받게 되는 수가 있어. 너무 슬프잖아. 안 되는 거잖아. 그렇지?”

“읍, 으읍…….”

“나는 너 구원해 주고 싶어. 그러니까 내 말 들어.”

제가 뱉어 놓고도 양심에 찔려 의현은 시선을 돌렸다. 이젠 정말 사기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구 앞에서는 친절한 형, 누구 앞에서는 시초교 성도, 누구 앞에서는 신……. 얼굴에 맞지도 않는 가면을 돌려쓰면서 의현은 이제 진짜 자신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손 놓으면, 너는 조용히 하는 거야.”

“으읍…….”

“넌 나 몰라. 오늘 처음 본 거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 신이라고 부르면 안 돼. 약속이야.”

수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현은 수찬의 입을 막고 있던 겉옷을 떼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있는 게 들키면 좋을 게 없었다.

“어디 가시게요?”

“방에. 나 저기서 먹고 자고 해.”

의현은 바로 근처에 있는 방을 손가락질했다. 신이 자는 방치고는 볼품없었다. 수찬은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하라고 했으니 계속해서 수다스럽게 말을 걸 수도 없었고, 의현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이 애매한 상황에서 수찬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가락을 꼼질거리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또 봐.”

“오, 옷은…….”

“옷은 너 가져.”

의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수찬은 의현의 뒷머리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있었다. 처음에 다쳤을 때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도 안 나는 엄마를 부르며 수찬은 엉엉 울었다. 그래도 아무도 구원해 주는 사람 없었다.

‘오직 그분만이 너희의 궁핍한 마음을 풍요롭게 할지니…….’

설교 말씀을 수찬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수찬은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

‘궁핍은 뭐고, 풍요는 뭐예요?’

옆 사람은 수찬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궁핍은 너처럼 하등 불쌍한 놈을 말하는 거고, 풍요는 안식이야. 좋은 거지!’

‘뭐가 좋은데요? 좋은 게 뭔데요?’

‘가슴이 따뜻하다고! 죽어도 괜찮을 만큼!’

세상엔 온통 어려운 말들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수찬도 명확하게 이해했다.

오직 그분만이 나같이 불쌍한 놈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죽어도 괜찮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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