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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회귀식 생존법-75화 (75/185)

75화.

새 신자 소개 후 예배는 곧장 종료됐다. 출구를 향해 몰려나오는 인파를 헤치고 의현은 안쪽을 향해 달려갔다.

“……야!”

의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재이라고 불러야 할지 이재정이라는 허접한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설교를 마친 부교주는 강단에서 내려와 정재이의 어깨를 잡아 쥐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저, 저, 저……!”

당황한 의현이 제자리에 멈춰 부교주를 손가락질했다. 의현의 뒤를 헐레벌떡 따라온 수찬이 의현의 불경한 손가락을 잡아 숨겼다.

“이, 이러시면 크, 큰일 나요! 다, 다른 신도들이 보, 보는데…….”

“미쳤어? 저것 좀 봐! 수찬아!”

의현이 평정을 잃고 날뛰었다. 이런 흥분한 모습을 처음 보는 수찬이 당황해 의현의 옷자락을 잡아 말렸다. 재이는 눈웃음치며 부교주와 함께 강단 뒤편에 있는 쪽문으로 사라졌다.

“왜요, 의현 학생. 무슨 일 있어요?”

예배당에 남아 있던 한 팀장과 김해수가 의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서 팀장은 이미 경비에게 쫓겨 나간 지 오래였다. 이 상황을 털어놓고 말할 상대가 없어, 의현은 입술만 꽉 깨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잘못 봤나? 아니야, 저거 정재이 맞아. 정재이가 여기에 왜 있지? 서 팀장과 시내에서 만난 사람이 쟤 맞지? 그럼 정재이가 미래를 본다는 건가? 아직 능력 발현이 안 된 거로 아는데, 아니야? 설마 발현됐는데 내가 몰랐던 거야? 사라진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지금 당장 저 문을 따고 들어가? 하지만 김해수는 나를 감시하러 왔다고 했는데? 이 일이 나중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어. 평정을 되찾자. 제발, 권의현. 이성적으로 행동해…….

“……누가 제 발을 밟고 갔어요.”

“네?”

“발을 밟고 그냥 지나갔다고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난다고요. 지금.”

감정 과잉으로 인해 얼굴이 붉었다. 사람이 놀라면 숨도 가쁘구나. 처음 겪어 보는 감각이었다. 의현은 숨을 후우 느리게 뱉으며 머리를 한번 털었다.

“누가 귀하게 자란 집 도련님 아니랄까 봐. 그런 건 좀 참으세요. 난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네.”

“발가락이 부러진 것 같은데 어떻게 참아요?”

“살짝 밟았다고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싸, 싸우지 마세요. 어, 얼른 돌아가요. 시간이 너무 느, 늦어서…….”

한 팀장은 엄포를 놓았다. 답답한 속을 풀 길이 없는 의현은 간헐적으로 숨만 내쉬다가 수찬의 손에 이끌려 예배당에서 빠져나왔다. 미련인지 뭔지 하여튼 불쾌한 감정이 깊이 남았다. 해결된 건 없고 의문만 가득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의현은 계속 뒤를 돌아보았지만, 강단 뒤편의 쪽문은 마치 다시 열리지 않을 것처럼 꽉 닫혀 있었다.

“힝! 나 한 번만 더 소란 피우면 예배당 못 들어오게 할 거래…….”

“아니, 그러게 왜 그렇게 소리를 쳐요.”

“한 교수님 말이 심하시네. 저는 원래 목소리가 커요. 그냥 말한 건데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하는 마음을 알아요?”

예배당 밖으로 나오자, 일찌감치 쫓겨나 있던 서 팀장이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같은 예배를 마친 돼지 농장 주인 아저씨가 트럭에 시동을 걸며 손을 흔들었다.

“다 나왔으면 얼른 돌아갑시다! 가서 염소들 잠자리 봐 줘야 해요!”

“네, 지금 가요-.”

한 팀장은 차분하게 조사단 사람들의 인원수를 셌다. 하나, 두울, 세엣……. 빠진 사람은 없었다. 돌아갈 때 또 저 빌어먹을 트럭에 실려 가 대충 씻고, 자고 일어나서 아침 예배드리러 나오고. 앞으로의 일과가 너무나도 선명히 그려졌다.

“이 근처엔 잘 데 없어요?”

“잘 데 없지. 숙소 구할 때 애먹었다는 소리 못 들었어?”

“노숙해도 돼요?”

의현의 물음에 서 팀장은 뭘 잘못 들었다는 듯 귀를 후볐다.

“요새 피곤해서 그런가, 누가 뭐 노숙한다는 얘길 들은 것 같은데…….”

“맞아요. 노숙.”

“개별 행동은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누구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지, 누가 같이 움직이고 싶어 해요?”

옆에서 듣던 한 팀장이 열을 냈다. 점심 먹으러 갈 때 의현이 남겠다고 해, 해수만 남겨 두고 떠난 게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맞아. 노숙은 허용할 수 없어. 뭔가 빨리 성과를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서 팀장은 웬일로 어른스럽게 한 팀장과 의현의 사이를 중재했다. 시간이라도 더 끌어 보고 싶었는데, 트럭 아저씨가 클랙슨을 빵빵 울려 댔다.

“염소들 다 죽으면 책임질 거요? 얼른 가야 한다니까는!”

“네, 네! 지금 바로 가요-.”

조사단 사람들은 익숙하게 트럭 뒤로 가 앉았다. 여긴 원래 사람이 앉는 곳도 아닌데, 익숙해지니 별로 불쾌하지도 않은 게 어이없었다. 의현은 트럭 뒤 칸에 몸을 기댄 채로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리고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⑴ 저 사람이 만약 정재이가 아니라면, 최소 정재이의 혈육임이 분명하니 일단 만나서 차분히 이야기를 해 볼 것.

⑵ 저 사람이 만약 정재이라면, 당장 끌고 나와야 한다.

* * *

잠을 설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잤다. 과일 몇 개가 다여서 몸도 가벼웠다. 의현은 마당 호스에 얼굴을 거꾸로 처박은 채 비누로 머리를 대충 문질러 감았다. 도련님이라 이런 거 못 할 줄 알았다며 한 팀장이 은근히 비꼬았다. 이런 상황에서 도련님이고 아니고가 뭐 그리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들 좋은 아침!”

서 팀장은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인사했다. 의현은 서 팀장에게 어제 제가 봤던 것에 대해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신비로웠다던 그 남자가 의현이 직접 골라 권중섭 후원 재단에서 자라는 아이라는 사실을 말한다면, 서 팀장은 아마 놀랄 것이다. 걔가 장차 시초 능력의 소유자가 된다는 사실까지 말한다면 필시 까무러치겠지.

“오늘부터는 예배드리면서, 신도들에게 개인적인 인터뷰도 좀 진행할 예정이야. 아침 예배는 다 같이 드리고, 저녁엔 반으로 찢어질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양치하던 의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아요. 떼로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적은 인원으로 다니는 게 업무 효율성도 더 좋으리라 생각해요.

의현의 말에 몇몇이 동의했다. 한 팀장만은 극구 반대했다. 단체 조사를 나왔으니, 그 과정과 결과를 모두 단체가 공유해야 한다는 거였다. 해수는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지만, 한 팀장과 같은 의견일 게 뻔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자. 한 교수님께 먼저 짝꿍 고를 기회를 드릴게요. 이거 정말 대단한 특혜인 거 아시죠?”

“아니, 나는…….”

다 같이 해야 한다던 한 팀장은 서 팀장이 내건 특혜에 고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 팀장의 목표는 어차피 권의현과 붙어 다니는 것뿐이었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그에게는 상관없었다.

“정 그렇다면, 나는 학생들을 통솔하도록 하지.”

트럭 주인이 아침부터 뭔 소란이냐는 얼굴로 지나갔다. 한 팀장은 교수인 척하며 제법 근엄하게 대답했다.

“학생들이라면, 의현이랑 해수 씨요?”

“맞아.”

“혼자 통솔하시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교육자가 한 명쯤 더 붙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다 큰 성인들인데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있겠어.”

한 팀장은 자신만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수는 모범생이라 제 말을 안 들을 리 없었다. 권의현 하나만 일대일로 전담하는 일이 도대체 뭐가 힘들겠는가.

수찬이 음식을 들고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한 팀장이 망각한 사실이 있다면,

“다, 다들 아침 머, 먹어야죠.”

그 계산에 수찬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찬은 조사단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농장 아저씨의 충실한 수족일 뿐. 좋게 말하면 순진했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무급으로 밥만 주면 일하는 수찬을 농장 아저씨가 놓칠 리 없었다. 오늘도 아저씨는 예배를 위해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의현의 옆으로 쭐쭐 따라붙는 금붕어 똥 같은 수찬의 모습에 한 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사람은 뭔데 계속 쫓아다니는 거예요?”

“수찬 씨요. 여기 농장에서 일하시잖아요.”

“아니, 내 말은 왜 쫓아다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한 팀장의 물음에 수찬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 서 팀장은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좀 따라다닐 수도 있지, 왜 무안을 주세요?”

“무안을 준 게 아니라 저는 그냥 궁금해서!”

“……호, 호, 혹시 제, 제가 부, 불편하신가요?”

‘하층 지구에서 사이비 믿는 사람들은 왜 포탈 신고를 안 할까?’에 대해 연구하러 내려온 사람이, 진짜 하층 지구에서 사이비 믿는 수찬을 가차 없이 내버리는 건 도의적으로 말이 안 됐다. 한 팀장은 땀을 뻘뻘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있어도 됩니다. 그냥 있으세요…….

수찬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사람 하나 껴 있고 말고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의현의 마음은 이전과 달랐다. 잠도 잘 잤겠다, 정재이를 잡아서 당장 끌고 나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죄다 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날씨가 흐리네요……. 비가 오려나요?”

해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의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젠 양털처럼 보송하던 구름이 오늘은 한데 뭉쳐 늘어졌다. 칙칙하고 어두워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우산도 없는데.”

“비 맞고 돌아다니는 거지 뭐, 여긴 깨끗해서 비 맞아도 돼! 비 맞는 김에 샤워도 하면 일석이조지!”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서 팀장의 실없는 소리를 의현은 단숨에 잘라 냈다. 익숙한 길을 지나며 트럭은 간헐적으로 덜컹거렸다. 저 구석 즈음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예배당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수찬아, 어제 본 새 신자 오늘 아침 예배에 나오겠지?”

“그, 그럼요. 새, 새 신자 드, 등록하고 바로 빠지면 교, 교주님들이 안 좋아하실 거예요.”

“그래, 좋네.”

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웃었다. 오늘은 절대 안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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