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1)화 (1/97)

1부

0. 아름다운 신부

황태자의 혼인을 축복하기 위해 타라 광장으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광장의 뙤약볕 아래에 선 사람들은 먼 북부에서 왔다는 황태자비를 눈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위, 신전 2층 발코니에 선 신부의 얼굴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이마에 대고 미간을 잔뜩 찌푸려 봐도,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어 봐도, 도통 그 얼굴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으니까.

신부는 그가 입은 옷만큼이나 새하얗고 불투명한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여러모로 헬리오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신부의 바로 옆에 있는 황태자 아사드 메케리우스의 화려한 모습과도 대조적이었고 말이다.

“북부에서 온 사람이라 그런가. 살을 드러내는 게 어색한 모양이지?”

신부를 꼭꼭 숨기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 혼례복과 길게 늘어진 베일을 가리키며, 누군가는 자신의 일행에게 속삭였다.

너무 못생겨서 얼굴을 가린 건 아닐까? 황태자 전하보다 4년이 아니라, 24년을 더 산 신부인 거 아냐? 저 위를 올려다보던 이들 모두 들뜬 소란 속에서 말 한마디씩을 보탰다.

하지만 들썩거리던 수다는 곧 끝을 맺게 됐다. 신전 앞 광장에 모인 이들을 저 위에서 굽어보던 아사드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덕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은 찬란한 미소가 함께였다.

신부의 얼굴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 역시 금세 풀릴 참이기도 했다. 축복이라는 뜻을 품은 노란 꽃 데이옌을 든 제국민들 앞에서 반려자에게 입을 맞추는 게 황실의 혼인식 관례였으니 말이다.

이제, 황태자는 자신의 신부에게 입을 맞춰야 했다. 그 입맞춤과 함께 저 갑갑한 베일도 걷히겠지 싶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예상대로, 신전의 발코니에서도 맹세의 입맞춤에 관한 말을 나누고 있었다.

신탁을 받아 신부를 혹은 신랑을 맞은 태양의 후계자는 자신의 반려에게 영원의 맹세를 담아 두 번의 입맞춤을 해야 했다. 신의 대리인인 제사장의 앞에서 그리고 귀중한 제국민들의 앞에서.

“타라 신께서 두 분을 지켜보실 겁니다.”

마지막 반려 신탁으로부터 정확히 205년 만에, 신에게 진짜 신탁을 내려 받게 된 제사장 티예가 자신의 행복을 숨기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미소를 띤 건 아사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눈만은 평소보다 사나운 모습이었다. 아사드는 두 손을 그러쥔 채 굳어 있는 제 신부를 향해 살짝 몸을 틀었다.

아사드의 황금색 눈이 베일이 만든 그림자 아래에 숨은 남자의 얼굴을 훑었다.

그늘 속에선 검게만 보일 정도로 어두운 자색 눈과 오른뺨 아래로 드러난 옅은 화상 자국, 헬리오에선 찾아보기 힘든 새까만 머리카락까지……. 모두 아사드의 눈에는 침울해 보이기만 했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사드는 제 신부의 베일을 걷었다. 아니, 아예 벗겨 버렸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 갑작스레 얼굴을 드러내게 된 남자가 놀라 아사드를 봤다.

“그래. 고개 들고 나를 봐야지.”

아사드가 쥐고 있던 베일을 놓았다. 때마침 불어온 거센 바람이 신부를 가려 주던 흰 천을 훔쳐 달아나자, 저 아래에서 환호 소리가 퍼졌다.

“내가 나의 반려와 혼례를 치른 건지 장례를 치른 건지. 도통 모르겠네.”

아사드의 손이 제 신부의 턱을 쥐었다. 조금은 앳된 티가 남은 그의 얼굴과 대조적인, 꽤 오랜 시간 검을 쥐고 살아온 전사들처럼 단단한 손이었다.

“마구간에서 말 뒤치다꺼리나 하던 남자를 신의 말만 믿고 여기, 내 옆에 데려다 놨잖아. 그런데, 그렇게 우울하다는 얼굴을 하면 어떡해.”

“…….”

“당신은 제국 황태자의 하나뿐인 반려자가 된 거야. 인생 핀 거 아닌가? 그럼 웃어야지.”

아사드는 그의 신부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도 되질 않는 남자의 맹한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도통 반응이 없자 포기했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당신보다 억울한 나도 모래 위에 얼굴 처박고 소리나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등신같이 웃고 있잖아. 축하해 주겠다고, 저렇게 꽃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한테 고마워서. 그러니까, 내가 입 맞추면 당신도 웃어.”

“…….”

“저 아래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여전히 표정이 어두운 남자에게 아사드는 속삭였다.

아사드의 거친 언사를 엿듣던 제사장은 속으로 탄식했다. 가끔 보면, 황태자는 시종들이나 저잣거리의 상인들 틈에서 자란 사람처럼 말을 할 때가 있었다. 때때로는 그의 어투가 너무 과격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황태자가 그의 반려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꺼림칙하게 느낄 줄이야.

물론, 타라 신의 대리인인 티예는 신이 선택한 신부를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들기는 했다. 황태자의 심술을 온몸으로 받게 될지도 모를 신부를 향한 걱정이었다.

“아랫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이지도 말고.”

“……네.”

내내 침묵을 지키던 남자가 간신히 짧은 답을 내놨다. 어두운 두 눈에 불안이 서려 있었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완전히 맞닿았다. 자신의 신부를 내려다보는 아사드의 입가엔 다시 웃음이 번졌다. 신전 일대를 휘도는 마법에도 채 가시지 않은 뜨거운 열감을 잊게 할 정도로 청량한 미소였다.

아사드는 제 신부의 이마에, 두 뺨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긴장한 남자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무심히 포갰다.

입맞춤의 순간,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던 샛노란 꽃이 그 속에 다정한 축복을 품은 채 하늘을 향해 던져졌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함께였다.

1. 아문

황태자 부부가 기거하는 별궁, 그중에서도 황태자비의 공간인 서관은 오늘도 어색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사드 메케리우스와 그의 반려가 그들 주위의 모든 풍경을 적막하게 만들고 있었다.

대화를 엿들을 생각 말라며 평소보다 더 먼 곳으로 내쫓긴 호위며 시종들은 아사드의 귀가 닿지 않을 곳에서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별궁이 저의 집인 양 시끄럽게 굴던 새들도 황태자와 그의 신부가 함께 있는 모습을 훔쳐보곤 도망치듯 별궁을 빠져나갔다.

부산스럽게 떠들어 대는 건, 오직 별궁 가운데에 자리한 정원에 놓인 분수대뿐이었다.

아사드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자신의 신부를 바라봤다. 케이든. 그 이름부터 재미없는 남자의 낯을 살폈다. 잠깐은 눈을 맞춰 주던 케이든이 아래에 놓인 잔으로 금세 시선을 떨굴 정도로 아주 빤하고 노골적인 관찰이었다.

제 신부는 밝은 곳에서 보나 어두운 곳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참 한결같은 자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별이 없는 밤처럼 어둡기만 했고, 그 하얀 낯은 진주처럼 뽀얀 게 아니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병자처럼 창백했다.

그래도…… 어두운 보라색 눈은 조금 우울해 보이는 것만 빼면,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정작 그 색을 가진 이가 잔뜩 주눅 든 탓에, 제대로 된 빛이 나질 않았지만.

시선을 조금 내리자 오른쪽 뺨 아래에 자리한 연분홍빛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목깃 안까지 이어져 있을 화상 자국이었다. 꽤 오래된 상처로 보였는데, 그래도 요 몇 년 사이에 조금이나마 치료를 받은 듯했다.

뭐, 흉터 따위엔 문제가 없었다.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도자기처럼 말끔하기만 한 살갗을 가진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게 아니겠는가. 호전적인 전사들의 나라 헬리오의 사람인 아사드 입장에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먼 북부의 엘바에서 온 제 신부의 얼굴이 못난 축이 아니라는 건 아사드도 잘 알았다. 따지자면 꽤 잘생긴 편에 속하리라는 것 역시 알았다. 남들의 얼굴에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한들, 미와 추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미감이 엉망이진 않았으니 말이다.

다소 마르긴 했지만, 남자는 평생 궂은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답게 체격이 좋은 편이었다. 키 또한 작지 않으니 알파 여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많았을 거다.

문제는…… 저 남자의 멀끔한 낯짝이 보는 사람의 기분을 침울하게 하는 신묘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었다. 웃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 건 덤이었다.

‘그 얼굴만 문제는 아니지.’

이제는 한쪽 무릎까지 세우고 앉은 아사드가 또 한 번 시선을 내렸다.

케이든. 저 남자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 역시 문제였다. 내벽 너머의 민가나 외벽 너머의 사막 위에서가 아니라 황궁 안에서, 목깃이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몰랐다.

목뿐 아니라 팔과 다리마저 모조리 가리는, 발목까지 오는 긴 튜닉이 남자와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허리에 단단히 둘러진 푸른색 띠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긴 헬리오가 아닌가. 형질에 상관없이 모두가 편히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나라에서, 저 꼴을 한 남자를 보고 있자니 그 얼굴을 볼 때처럼 속이 답답해졌다.

의상실의 시종들에게 왜 저런 옷을 입히는 거냐 물어도 봤다.

〈전하. 저희는 그저, 황태자비님의 명을 받든 것뿐입니다.〉

황태자비가 원해서. 무어라 말을 더할 수 없는 확실한 답변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남자와 공식적인 부부가 된 지 사흘째. 아사드는 여전히 자신의 신부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뚱한 얼굴을 한 아사드가 케이든에게서 눈을 뗐다. 그는 자신이 날벼락을 맞았던 신탁의 날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그날은 아침부터 운수가 더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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