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35)화 (35/97)

그 자세만큼이나 삐뚠 눈을 한 아사드가 제 손에 들린 종이를 툭툭 쳤다. 그는 구겨진 지면 위에 그려진 초상화를 빤히 바라봤다. 쏘아보는 것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예술품처럼 섬세한 생김새를 가진 예쁘장한 남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정말이지 더럽게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알렉스 쿠퍼였다. 엘바의 귀족인 서먼 백작의 장남. 나이는 케이든과 같았다.

제 신부가 오랜 시간 묶여 있었던 거대한 농장이, 바로 저 남자의 아버지인 서먼 백작의 소유였다. 하지만 백작이 농장의 실질적인 관리자는 아니었다. 알렉스가 성인이 됨과 동시에 농장의 관리를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으니 말이다.

케이든은 이 남자를 보고 도망친 거다. 아사드는 확신했다.

제 신부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하는 소심한 이였다. 거기다 더럽게 순진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에게 벽을 세우고 살면서도, 세상 물정을 모른다 싶을 정도로 타인의 의도를 좋게만 볼 때가 많았다.

그런 케이든을 정신없이 도망치게 할 인간이…… 알렉스 쿠퍼, 이 남자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이제야 그 낯짝을 보네.”

아사드는 그가 아문의 모습으로 케이든에게 전해 들었던 짤막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떠올려 봤다. 하나같이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그 사람이 예뻐하던 개를 쏴 죽였다고도 했지…….”

개들이 농장을 배회하다 일이라도 칠까 봐 총을 들고 나선 게 아니리라. 케이든이 그 개를 예뻐하는 줄 알아서, 케이든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는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음이 틀림없었다.

마트의 개들을 뒤에 숨기고 아문의 눈치만 보던 케이든이 그 얘기를 꺼내 놨을 때, 아사드는 정말 기분이 나빴었다. 얼굴도 모르는 도련님이란 작자의 악의가 느껴져서였다.

케이든의 얼굴 한편에 남은 흉터를 손가락질하며 자존감을 깎아 먹은 것도 이 새끼일 게 분명했다. 못생겼다고 사람을 세뇌한 것도 이 새끼일 게 분명했으며, 제 신부의 살갗 여기저기에 집요한 상처를 낸 것 역시 이 새끼임을 확신했다.

더 뭣 같은 건…….

‘알파였잖아.’

그 쓰레기가 알파였다는 거다.

다른 형질을 가진 사람을, 다 큰 남자가 겁에 질려 도망을 치다 못해 빈 천막 안에 몸을 숨기게 할 정도로 졸렬하고 폭력적으로 괴롭혔다니. 역겨웠다.

이 재수 없는 상판을 가진 남자에 관해 왜 진작 알아보지 않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머리가 부글부글 끓는 게 느껴졌다. 제가 알고 있던 내용이라곤, 케이든이 서먼 백작 부부와 그의 아들 밑에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사실 정도가 다가 아니었던가.

……신부의 일엔 관심 없다며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지만.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아사드는 제 신부가 겪었을 부당한 일을 알고 싶어졌다.

아사드는 케이든이 가진 두려움을, 누가 그 두려움을 만들어 냈는지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저 인격파탄자와 백작가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기로 했다.

관련자가 아니면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북부 외곽의 고립된 농장 역시 손에 쥐어 볼 참이었다. 기분 나쁜 면상을 그대로 옮겨 둔 초상화며 그 아래에 딸린 간단한 이야기로는 부족했다.

더러운 비밀이 많은 놈들은 그것을 숨기는 데 사활을 걸며 산다. 남의 입을 틀어막는 일에 능할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란 놈 역시 그러할 터였다. 그 밑에 들어간다고 한들 알아낼 만한 게 없으리라. 그러니, 그 비밀을 숨긴 금고를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일단 손에 쥔 뒤에 부수고 그 안에 든 것을 털어 내면 됐다. 싼값에 고아들을 사들여 빚을 지우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쓰레기들과 그들이 낳은 또 다른 쓰레기가 하는 짓이야 보지 않아도 뻔하니, 겸사겸사 정의로운 고발을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하지만…… 내가 왜? 언젠가 떠날 신부의 사연을, 억울함을 왜 알아야 하지?

‘알아낸 뒤엔 뭘 어쩔 건데.’

고개를 숙인 아사드가 제 머리칼을 헝클이며 한숨을 쉬었다. 짜증이 열이 된 건지, 뭔지. 몸이 뜨거웠다. 입 사이로 더운 숨이 흘러나왔다. 정오의 태양 아래에 선 듯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가, 왜.”

마음 한편에 떠오른 의문을 아사드는 다시 한번 중얼거려 봤다.

문득, 어둠 속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제 신부의 볼품없는 낯이 떠올랐다. 식은땀을 꼭 눈물처럼 흘리던 남자는 곧 죽을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했었다.

하지만 아문을 본 순간 그의 눈동자 위에 서렸던 공포가 허물어졌었다. 공포가 가신 자리를 메운 건, 어딘가 안쓰럽게까지 느껴지는 안도였다.

제가 한 일이라곤 고작 천막 안에 숨은 남자를 찾아낸 것뿐이었다. 기껏해야 그게 다였다.

하나 케이든은 그런 저를, 마치 대단한 영웅이라도 마주한 듯 바라봤었다. 아주 강하고 신성한, 고귀한 빛을 품은 존재를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봤다.

제 신부를 지배하던 공포와 초라한 안도가, 아사드는 여전히 신경 쓰였다. 이해할 수 없는 초조가 끈질기게 그를 찾아왔다.

케이든의 기사인지 뭔지 비슷한 것이 되어, 악을 처단해 주고 싶기라도 한 건가? 민망하기 짝이 없는 영웅 행세였다.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맞잖아.”

아사드는 중얼거리며 쥐고 있던 서류를 놨다. 귀퉁이가 구겨진 종이가 금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사드는 자신이 앞서 가졌던 모든 의문과 의심을 지워 버리기로 했다. 그러자 아주 간단한 결론이 나왔다.

“감히, 내 반려를 건드려.”

케이든을 괴롭힌 놈들을, 그 사람을 괴롭힐지도 모를 놈들을, 다신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밟아 두자. 아사드는 마음먹었다.

제국이 소유한 엘바의, 왕국령의 도덕성을 더럽히는 버러지들을 정리하는 일에는 명분도 필요 없었다. 청소에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던가. 더러운 게 눈에 거슬리니 치우고 닦아 내는 거지.

이전보다 뜨거워진 숨을 뱉으며 아사드는 소파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기댔다.

별안간 오른 열이 거슬렸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케이든의 차가운 손이나 쥐고 있으면 좋을 듯했다.

“손…….”

아사드는 그 짧은 말을 중얼거려 봤다. 어딘가 허무하게 느껴지는 웃음이 함께였다.

그는 지난밤 자신을 찾아왔던 기이한 꿈을 떠올렸다. 자신이 잘 아는 손이 나오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아사드는 자신의 앞에 선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오래된 상처들을 품은 흰 손, 길고 곧은 네 번째 손가락엔 줄이 얇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고개를 숙인 아사드는 제가 들어 올린 남자의 손등 위에, 반지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 위에 어지러이 새겨진 상처에도 몇 번이고 반복해 입을 맞췄다. 굳게 쥔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제가 아는 모든 상처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아사드가 입을 맞출 때마다, 손 위에 새겨진 케케묵은 상처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었다. 하얀 손보다 더 흰 빛을 내며 자취를 감췄다.

어처구니가 없는 꿈이었다. 하나 정말로 기분 좋은 꿈이었다.

이내 그 어떤 상처도 남지 않게 된 손을 쥔 채로, 아사드는 그림자 뒤에 숨은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올렸었다.

제가 잘 아는 이의 얼굴을 가렸던 어둠이, 거짓말처럼 걷혔다.

〈케이든.〉

꿈속의 신부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낯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보기 싫어, 아사드는 케이든에게 그의 상처가 사라졌음을 황급히 알렸다. 깨끗해진 하얀 손을 보여 줬다.

케이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케이든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아사드를 먼저 끌어안았다.

그런 케이든을 마주 안으며 아사드는 꿈에서 깨어났다.

변태처럼 남의 손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 댄, 이상하고 징그러운 꿈이었다. 되새겨 볼수록 너무나 민망하고 멋쩍기만 했다.

꿈과 현실은 달랐다. 그 어떤 치유 마법도 오래된 상처는 없애지 못했다.

화상 흉터 역시 그랬다. 능력 있는 치료 마법사에게 바로 치료를 받지 않는 이상, 흉터의 색을 옅게 만들어 주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상처. 그 사라지지 못할 상처들이 마음에 걸려서 이상한 꿈을 꾸게 된 걸지도 몰랐다. 고작 입을 맞추는 걸로 상처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유치한 꿈을 꾼 거다.

하나 이상한 꿈이라고 여기면서도, 속으론 저절로 우스운 생각을 떠올렸다. 열이 오른 머리가, 자꾸만 생각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케이든을 만나면…… 손을 확인해 봐야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아문의 모습으로 케이든을 찾아가야 했다. 뭐, 아문의 모습으로도 손은 잡을 수 있으니 괜찮았다. 그 위에 입을 맞추진 못해도 바라볼 수는 있을 테니.

손을 내어 주는 일은 자기 반려자에게만 허락해야 한다는 걸 알려 주고 싶지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으면 시원해서 기분이 좋으니 말해 주기가 싫었다. 아사드도 아문도 어차피 그 알맹이는 똑같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아문이 속내가 시꺼먼 추잡한 놈일 거라는 의심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손을 잡혀선 바보같이 웃기만 하는 신부를 보면 그 역시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 듯했다.

‘똑같이 손을 잡아도…… 이 모습 앞에선 잘 웃지 않지만.’

전보다 불퉁해진 낯으로 아사드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티끌 한 점 묻어나 있지 않은 새하얀 천장을 보며 아사드는 중얼거렸다.

아사드는 신탁에 불만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왜인지 침묵하는 황실 사람들을 대신해 나선 거였다. 제 신부와 갈라서기 위해 뭐라도 해 보려 했었다. 모습을 바꿔서라도 말이다.

일단은 신이 장난치듯 제 앞에 데려다 놓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그의 신뢰를 얻으려 했다. 케이든이 숨겨 둔 진짜 속내를 알아내고, 가능하다면 약점을 잡아내고 싶었다.

평화로운 작별을 위한 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종내엔…… 케이든을 황태자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그게 아사드의 그리고 아문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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