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며 알파와 오메가의 결합 따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렁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케이든이 침착하게 내뱉은 말과 그 말을 내뱉은 케이든이란 사람을 연결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아사드는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나 당혹감으로 가득 찬 머릿속 사정 따윈 모른다는 듯, 심장이 쿵쿵대며 뛰기 시작했다. 저 앞으로 홀로 앞서 나갔다.
‘케이든이, 오직 나를 위해서…… 몸을 열 준비를 마쳤다고 하잖아.’
그 사실이 아사드에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떨림을 줬다. 희락기가 지나간 이후의 일에 대한 불안과 성적인 흥분이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전율과 흥분 사이의 고양감이었다.
저 답답한 남자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지루한 책이, 그보다 더 지루하던 선생들이 알려 준 대로 제 신부의 목을 물어뜯고, 그의 안을 비집고 들어가 가장 깊숙한 곳에 치닫고 싶었다.
아니……. 그런 것보다는…… 저 남자의 메마른 입술 위에 할 줄도 모르는 입맞춤을 퍼붓고, 제 안의 열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오래도록 그를 끌어안고 싶었다. 저 옷 안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저는 보지 못했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색을 달리하는 충동 속에서 아사드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모르겠어.”
“…….”
“정말, 모르겠어.”
붙잡고 있던 케이든의 손목을 놓으며 아사드는 중얼거렸다.
몸을 뒤로 물린 아사드가 제 신부를 바라봤다. 케이든은 어둠이라는 베일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바보 같은 남자와 희락기를 함께한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그랬다. 아사드는 자신이 홀로 첫 희락기를 보내게 될 거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그날이 오기까지 1년에서 2년 사이의 여유가 있을 테니, 방법은 차차 찾아보자고 생각했었다.
몸을 섞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선을 넘는 일이었다. 선을 넘게 되면 큰일이 날 터다.
케이든과 희락기를 보낸다는 게 좋은 일은 아니리라. 아사드는 확신했었다.
그리하여 케이든은 아사드의 얄팍한 망상 속에도 발을 들이지 못했었다. 아사드의 본능이 그를 배제한 결과였다. 끔찍한 재해와 다름없는 일이 일어날 거란 예감, 자신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거라는 예감을 느꼈으니까. 아사드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피가 끓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열기가, 얼마 남지 않은 아사드의 이성을 몰아내려 들었다.
아사드는 떨리는 손을 뻗어 케이든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직 물기가 남은 까만 머리카락이 아사드의 손등을 간질였다.
고작, 흉터 자국을 더듬은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케이든은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이었다.
“나를 봐.”
아사드는 말했다.
당장 침실 안의 모든 불을 켜 제 앞에 있는 남자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내, 이렇게 어두운 채로 계속해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싶기도 했다. 어슴푸레한 빛이 밝혀 주는 케이든의 얼굴에 온 정신을 기울여 보고 싶었다.
케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빛이 없어 더욱 어두워진 그의 자색 눈동자가, 그 안에 아사드 한 사람만을 담고 있었다.
아사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케이든의 눈에 비친 자신이 너무 추악해 보여서였다. 고개를 들라고 명한 건 자신이면서, 욕망에 찌들어 있는 제 낯이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다.
“저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마음대로 이름 부르셔도 괜찮아요.”
아사드의 망설임을 알아챈 케이든이 중얼거렸다. 그는 아사드의 얼굴을 힐끗 훔쳐보며 느릿하게 말을 더해 나갔다.
“그저, 나중을 위한 연습이라고 여기시면 됩니다. 왕국에선, 알파도 오메가도…… 다들 이런 식으로…… 처음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연인을 다치게 할 수 없어서요.”
“…….”
“첫 희락기를 잘못 보내면 페로몬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시고 조금만 참으시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케이든은 계속해 아사드의 눈치를 살폈다. 입을 다문 아사드의 표정이 묘했다. 계속해 모습을 달리하던 그의 페로몬 역시 별안간 잠잠해졌다. 그 어디에서도 아사드의 기분을 느낄 수 없어 케이든은 조금 두려웠다.
지금 케이든이 알 수 있는 건, 아사드가 무언가를 감내하는 중이라는 것밖엔 없었다. 케이든은 알지 못할 무언가였다.
불안과 당혹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케이든은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얼굴을 보실 일도, 목소리를 들으실 일도 없게 하겠습니다.”
“……연습?”
아사드의 입가에 삐딱한 웃음이 걸렸다.
길고 긴 헬리오의 역사 속에, 지금 같은 일이 또 있었을까? 희락기를 맞은 반려자에게 자길 다른 사람으로, 돈을 주고 산 연습 상대쯤으로 여기라 말하는 황태자비가 존재했을 리 없다. 엇비슷한 일도 없었을 거다. 아사드는 장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제 신부는 사람 속을 뒤집는 일을 정말 잘했다. 황궁에 기생 중인 제 짜증 나는 친척들도 따라잡지 못할 아주 큰 재능이었다.
왜. 기분이 뭣 같은 걸까.
아사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바닥을 찍은 기분이 더 깊은 아래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는 걸, 아사드는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됐다.
“당신이, 내 선생이라도 되어 주겠다는 건가?”
케이든과 시선을 맞추며 아사드는 물었다.
아사드의 손이 케이든의 귓불을 쓰다듬었다. 얇은 귓바퀴를 천천히 쓸자 케이든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뾰로통해졌던 아사드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제가 뭘 알려 드릴 수 있을지…….”
다시 간신히 눈을 뜬 케이든은 말했다. 하지만 말을 완전히 끝맺지는 못했다.
저와 눈을 마주하지 않는 남자에게 아사드는 입을 맞췄다.
그저 입술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더럽게 멋없는 입맞춤이었다. 그런데도…… 사막의 볕 아래에서 오아시스를 마주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머릿속이 환해졌다. 버석하게 마른 심장 위에 물이 끼얹어졌다.
아사드는 입술을 떼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케이든에게 입을 맞췄다.
도무지 가시지 않을 것만 같은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열기를 밀어내고 싶었다. 하나 아사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입맞춤 같은 거, 나는 해 본 적 없어. 제대로 된 입맞춤은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알고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 줘.”
“…….”
“연습이라며. 내 선생님이 되어 준다는 말이랑 같은 소리 아니야?”
케이든의 입술 위에, 뺨 위에 되는대로 입을 맞추며 아사드는 속삭였다. 갈급한 남자의 초조함이 달뜬 숨에 가려졌다.
망설이던 케이든은 이내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굳어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는 아사드의 뺨에 자신의 손을 대어 봤다. 낙엽을 태우는 불구덩이에 손을 밀어 넣기라도 한 것 같았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케이든을 덮쳤다.
케이든은 아사드에게 입을 맞췄다. 그저 입술과 입술이 가볍게 맞닿고 떼어지길 반복했다.
“입을…… 벌리셔야 합니다.”
케이든이 아사드에게 말을 건넨 건, 조금씩 숨이 섞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을 아사드는 착실히 받아들였다. 거짓말처럼 모든 감각이 케이든에게 붙들렸다.
다시 눈을 감은 케이든은 아사드에게 조심히 입을 맞췄다. 반쯤 열린 입술을 핥다가 틈 사이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아사드는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다.
한 번도 타인과 입술을 맞부딪쳐 본 적 없던 아사드의 긴장을 달래듯, 다정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연약한 침입자는 입 안의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입천장이며 치아를 건드리다가는 굳어 있는 혀를 제 혀끝으로 간질였다.
아사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제게 능숙하게 입 맞추는 남자를 바라봤다.
케이든이 진짜 제게 선생 노릇을 할 줄은 몰랐다. 저보다 나이가 4살이나 많으니, 그래, 입을 맞추는 법 정도야 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속이 끓었다. 내 친구에게 사실 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었다는 게 싫은, 대충 그런, 10살짜리 애새끼나 느낄 법한 유치한 감정을 닮은 짜증이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입을 뗀 케이든이 우물쭈물 말을 건넸다.
케이든의 얼굴이 붉어져 있음을,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
아사드는 케이든의 턱을 쥐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마구잡이로 케이든의 입술을 깨물고 입을 열어 그 안을 탐색했다. 케이든에게 배운 대로 반쯤은 제멋대로, 입 안의 연약한 살을 간질이고 혀끝으로 쑤셨다. 놀라 달아나려는 혀를 제 혀로 옭았다. 더운 숨을 케이든의 숨과 섞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 신부가 알려 준 입맞춤은 이렇게 저급하고 다급하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딴 걸 입맞춤이랍시고 하고 있었다. 다정히 대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사드는 눈앞의 남자를 완전히 지배하고 싶다는 괴이한 충동을 느꼈다.
“……이제, 뭘 하면 돼?”
케이든의 목 위에 입을 맞추며 아사드는 물었다. 하지만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말을 덧붙였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온 거잖아. 당신이 마음을 바꿔서 싫다고 해도 무르지 못해. 어쩔 수 없어.”
“…….”
“당신이, 날 책임져야 해.”
창피할 정도의 긴장감을 숨기려 노력하며 아사드는 케이든의 손을 잡아끌었다. 단단해진 채 배 위로 붙어 있는 제 성기를 그에게 알렸다.
상처와 굳은살이 가득한,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손이 닿는 순간. 아사드는 다시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즐거움과 환희가 머리를 흔들었다. 제 머리통이 성기로 대체되기라도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