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름다운 신부 (45)화 (45/97)

‘케이든이…… 사실 흑마법사라도 되는 걸까? 나를 지배해 자신의 인형으로 쓰려고 마법을 부리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며 아사드는 다시 한번 케이든과 입술을 포갰다.

순순히 열리는 입술 사이에 혀를 밀어 넣고, 숨을 나눴다. 따스한 입 안을 느릿하게 유영했다. 혀와 혀가 맞닿고 타액이 섞이는 게 조금도 더럽게 느껴지질 않았다.

‘정말, 돌았군.’

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당혹감을 느끼며 아사드는 물러났다. 하지만 멀어지지는 못했다. 여전히,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이마가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갑자기 물러난 입맞춤의 상대를 케이든은 바라봐 주지 않았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잔을 내려다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척을 했다.

아사드 역시 이 충동적인 입맞춤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나 추접스럽게 입을 맞춰 놓고 없던 일로 하자며 덮어 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복습을 해야…… 그래야, 실력이 늘지 않겠어?”

케이든에게 아사드는 말을 걸었다. 자기도 그 뜻을 모를 소리를 내지른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이 만든 같잖은 핑계였다.

“당신이 내게 입 맞추는 법을 알려 줬잖아. 내 선생이 되어 주겠다며. 그렇다면 끝까지 책임져 줘야지. 가르침도 주고, 복습도 시켜 주고, 과제도 던져 줘야 할 것 아냐.”

아사드는 자신의 입을 쥐어뜯어 버리고 싶어졌다. 케이든이 고개를 들어 저를 봐 주자, 눈앞이 캄캄해지기까지 했다.

이대로 뒤를 돌아 침실을 나서는 게 어떨까 싶었다. 당분간은 케이든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다.

“저는…….”

“…….”

“더 알려 드릴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고 전하께 배움을 드리겠습니까.”

“아닌데.”

“이미…… 저와는 비교도 안 되십니다. 이제 제가 가르칠 것이 없는 실력을…… 네, 그렇습니다.”

아사드 못지않게 당황한 케이든이 일단은 입을 열어 보았으나, 결국 어정쩡한 곳에서 말을 끊게 됐다. 참으로 어색한 낯을 하고서였다.

그런 케이든을 보며 아사드는 속으로 비죽 웃었다. 가르칠 게 없다는 말은, 지금의 입맞춤이 아주 훌륭했다는 뜻이 아닌가. 실력이 미천했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했겠지.

눈치 없이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뒤로 숨기며 아사드는 다시 케이든에게 몸을 붙였다. 그는 케이든의 입술에 또 한 번 입을 맞췄다. 케이든의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고 놔주길 반복하다가는 다시 물러났다.

“이런 걸 해도 되는지, 하면 안 되는지…… 나는 몰라. 내게 이런 걸 알려 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

“그, 그런 입맞춤에 답은 없을 겁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른 답을 말할 테니까요…….”

아사드의 눈을 피하며 케이든은 중얼거렸다.

“그럼, 당신은?”

“…….”

“…….”

“저는…… 싫지 않습니다.”

아사드의 빤한 시선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반쯤 등이 떠밀리다시피 한 채로 케이든은 답을 내놨다. 그리고 케이든은 눈을 감았다. 창피해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나는 당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만 알면 돼. 당신이 내 하나뿐인 배우자이자 스승이니, 당연한 일이지.”

기분이 좋아진 아사드가 말투를 바꾸며 말을 이어 갔다.

“선생께선 너무 겸손하십니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머니, 부족한 제자를 내치시면 안 돼요. 멀쩡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품어 주셔야죠.”

“…….”

“아닌가?”

“……알겠습니다.”

슬그머니 눈을 뜬 케이든이 순순히 답했다. 사실 순순히 답을 줬다기보단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인 쪽에 가까웠다. 반쯤은 아사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에게 익숙한 제국어 어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사드는 케이든의 입술 위에 그리고 뺨 위에, 귓가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 밤새 입만 맞춰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데다 느끼하기까지 한 발상이었다.

목구멍을 태우던 초조와 불안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상쾌해진 마음을 따라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입맞춤보다 더한 걸 하고 싶다는 충동이 몸을 흔들기도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저는 발정 난 짐승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사드의 손끝이 케이든의 목덜미를 훑었다. 지난 하루를 자다 깨길 반복하며 보냈던 남자는, 답답하게 목을 가리는 옷 대신 목깃이 달리지 않은 튜닉을 걸쳐 입고 있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온 저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을 거다.

케이든의 목덜미에 어지럽게 새겨진 울혈이 눈에 들어왔다. 색이 빠지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평생 사라지지 않아도 좋을 텐데.

몸을 굽혀 케이든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아사드는 생각했다. 미친 소리였다.

모래사막에서 꽃을 찾으려 드는 사람처럼, 아사드는 고작 하루 사이에 자취를 감춘 제 신부의 페로몬 향을 찾아 헤맸다. 딱 한 번 느껴 본 그 향기를 다시 끌어안아 보고 싶었다.

미끼가 묶인 덫을 놓듯 아사드는 제 페로몬을 슬금슬금 풀었다. 도통 모습을 보여 주질 않는 소심한 페로몬을 불렀다. 두꺼운 책을 펴 놓고 받았던 형질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한 유혹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케이든의 몸이, 그에게 치대 오는 페로몬 아래에서 부드럽게 풀어졌다.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강아지를 마주한 기분을 느끼면서였다.

아사드는 케이든을 조심히 끌어안았다. 케이든이 등받이가 없는 의자 뒤로 넘어갈까 봐 걱정돼서 와락 안아 버렸다.

잠시 후. 아사드는 아문의 모습으로 이미 느껴 본 적 있던 미약한 페로몬을 마주하게 됐다.

아사드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베타로 위장한 상태가 아니라, 온전한 본래의 모습으로 아사드는 케이든의 체향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향기를 느꼈다. 잔뜩 풀이 죽은 채로 모습을 드러냈던 케이든의 페로몬이 자신의 품 안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좋았다. 너무나, 좋았다.

역시. 케이든이 페로몬 탈취제 따위를 쓰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편안한 페로몬 향을 왜 지우려 드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알렉스 쿠퍼 그 인간을 잡아다 산 채로 묻어 버리는 걸 보여 주면, 케이든의 불안감도 해소될까? 그런 마음을 품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아사드는 잠시 포옹을 풀었다.

“당신 페로몬이 느껴져.”

“…….”

“좋은 향기가 나.”

혹여나 케이든이 알아듣지 못할세라, 아사드는 목소리에 힘을 줘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저는 예상하기도 힘든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이 튈까 봐 걱정돼 눈을 맞추고 웃어 주기까지 했다. 아문이며 시종들이 하는 말은 믿지 않아도 제 말은 믿겠지 싶어 꺼낸 얘기였다.

케이든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아사드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새 까먹었을까 봐 다시 말하는데…… 고마워.”

“…….”

“당신이 내 희락기를 도운 걸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당신의 의무가 아니었어. 제대로 된 배우자 노릇을 하지 않는 나를, 당신이 넓은 마음으로 품어 준 거지.”

“……아닙니다.”

케이든은 한발 늦게, 그러나 최대한 다급히 답을 내놨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참으로 어설퍼 보였다.

“당신의 희락기가 오면, 그땐 내가 도울게.”

“…….”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거야.”

아사드는 가볍게 웃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케이든이 나의 희락기를 도왔으니 나도 저 남자의 희락기를 돕는다. 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희락기만이 아니었다. 케이든이 원한다면 언제든 제 몸을 내어 줄 수 있었다. 제법 요란하게 소문을 낼 자신도 있었다. 말이 퍼진 후에는 이 황궁에 기거하는 모두가, 제 신부를 알파의 희락기나 도우러 온 오메가라고 비꼬지 못할 거다. 황태자를 함께 비웃는 게 될 테니.

아사드는 케이든과 자신의 관계를 굳이 어렵게 꼬아 묶지 않기로 했다. 언제 그와 작별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렇게 사이좋게 잘 지내고만 싶었다. 신탁으로 엮인 일시적인 공생 관계. 그와 비슷하면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거다.

아주 어려운 과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더 어려운 과제가 다시금 제 앞에 내밀어질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사람 속 시끄럽게 하는 소유욕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가라앉을 현상임이 분명하니까.

“오늘은 당신 침대에서 잘 거야.”

그리고 아사드는, 케이든 앞에 다소 뜬금없는 말을 내놨다.

“무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더 어려운 제국어는 잘만 알아들어 놓고. 왜 갑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까.”

“…….”

“내가 황태자비의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게 이상한가?”

어떻게 끄집어낸 페로몬인데, 이대로 방을 나설 순 없었다. 좋은 향기를 폴폴 풍기는 저 남자를 끌어안고 자면 잠이 아주 잘 올 거다.

“몸을 섞겠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

덧붙은 말 한마디가 케이든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창백하던 낯에 순식간에 색이 퍼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

아사드의 물음에 케이든은 입을 벌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답을 내놓질 못했다.

거짓말 한번 더럽게 못 하는구나 싶었다. 케이든은 자신의 잘생긴 얼굴에 감사를 느껴야 했다. 그가 저런 외관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저 넋이 나간 바보처럼만 보였을 테니 말이다.

그래. 정숙해만 보이는 제 신부도 그 속이 음흉해질 때가 있겠지. 케이든이 원한다면, 그의 음흉한 생각에 언제든 동조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안 됐다. 저렇게 파리한 낯을 한 남자와 무얼 하겠는가. 그에게 필요한 건 음식과 수면이지 배우자와의 잠자리 따위가 아니었다.

멋없어 보일 게 분명한 웃음을 다시 꾹꾹 참으며, 아사드는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던 케이든의 손을 찾아냈다. 그 손을 불쑥 끄집어 올렸다.

“…….”

케이든은 제가 준 반지를 약지에서 빼지 않았다. 씻을 때만 빼겠다던 게 빈말이 아니었다.

그의 손목에도 팔찌 두 개가 사이좋게 채워져 있었다. 아사드와 아문의 선물이었다. 줄이 겹쳐진 팔찌를, 아사드는 조심히 만져 봤다.

‘다른 남자의 선물을 남편의 선물과 함께 착용하고 있다니. 과도하게 순진한 건지, 계략이 있는 건지…….’

하나 그 속내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 뜻이 뭐가 중요하겠나. 케이든이 제 선물과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아사드는 케이든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자신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옭아맨 것에 가까웠다.

“이렇게 붙잡아 둬도, 나를 홀로 두고 도망가는 일이 또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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