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잘린 머저리는 제대로 맡아 보지도 못했을 편안하고 부드러운 향이, 너무나 미약해서 있는 힘껏 느끼지 못하면 알아채기 어려운 향이 제게 안겨 들고 있었다. 저를 원하고 있었다.
아사드는, 그 미약하고 부드러운 페로몬 향기에 다시금 발정했다. 희락기 때처럼 피가 끓었다. 케이든 역시 저처럼 몸이 뜨거웠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가장 깊은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아사드는 홀린 듯 안으로,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지난 희락기 때처럼.
“아, 아윽…… 흣…….”
우는 소리가 섞인 신음이 아사드의 움직임에 맞춰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더는 숨길 수 없는 쾌감이 케이든의 전신을 훑었다.
“황태자님…….”
“응, 케이든.”
“소, 손을 놔주세요.”
아사드는 케이든의 뺨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그리고 순순히 케이든의 청을 들어줬다.
케이든의 두 손은 잠시 침대보 위를 헤맸다. 그는 무언갈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케이든은 아사드를 끌어안았다. 두 손이 아사드의 등에 닿았다 떨어졌다간 다시 닿았다. 끝내 아사드를 꽉 끌어안게 된 케이든에게서 이상한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아사드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케이든이 보여 준 그 말도 안 되는 비장함이 너무나 애틋하게 느껴졌다. 저를 의지하는 남자의 무게가 기뻤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들이 혼란스러워 아사드는 미칠 것만 같았다.
하나 금세 다시 웃게 됐다. 조금씩 짙어져 가는 케이든의 페로몬이 제게 엉겨 붙어 와서, 그게 좋아서,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눈을 접어 웃게 됐다.
좋았다. 죽을 것처럼 좋았다.
지독한 사정감을 느끼며 아사드는 안쪽으로, 저를 위해 열린 더 깊은 안쪽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끝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 안에, 파정했다. 자신을 놔줄 생각이 없는 안쪽에 모든 것을 부었다.
“…….”
숨소리와 빗소리가 뒤엉겼다.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온 적막 속에서 두 사람은 아주 한참이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정작 아사드의 머릿속은 시끄러웠지만 말이다. 노팅은 안 된다고, 아사드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
몽롱한 낯이었던 케이든은 눈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그는 짧게 탄식했다. 케이든의 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사드의 성기가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껴서였다.
아사드는 그런 케이든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수를 헤아리기 힘든 절정을 맞고, 정액이 흘러나오는 밀부가 제대로 닫히지 않을 때까지. 밤은 계속 이어질 거다. 아사드는 예감했다.
* * *
저를 단단히 끌어안은 아사드의 품속에서 케이든은 간신히 눈을 떴다.
여전한 비가 쏟아지고 있는, 우기의 아침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깜빡여 보던 케이든이 뒤늦게 시선을 올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래도 고개를 들 정도의 기력은 남아 있었다.
아사드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이 든 그의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예뻤다.
평소에는 오색 빛깔을 가진 보석처럼 강렬하게만 느껴지던 잘생긴 얼굴이, 잠을 잘 때는 꽃처럼 청초해 보이는구나 싶기도 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사드의 비밀 한 가지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 아사드의 얼굴을, 먹구름이 낀 아침에도 반짝이는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케이든은 다급히 기억을 더듬어 봤다. 당장 떠오르는 거라곤, 밤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아사드의 침실을 빠져나가며 느꼈던 초조함뿐이었다.
안으면 시원한 인형 역할을 하느라 같은 침대를 쓴 적도 여러 번 있긴 했다. 하지만 아사드보다 먼저 눈을 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잠이 든 아사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
좋았다.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케이든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저렇게 말간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못한단 사실이 아쉬웠다.
제게 남은 시간은 길면서도 짧았다. 그사이에, 이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아쉽게 느껴졌다.
‘……오늘이라도 실컷 훔쳐봐 둬야겠다.’
케이든은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쇠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케이든은 아사드의 품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몰랐다. 깨어난 아사드가 자신을 놓아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래도 너무 늦게 일어나진 않길 바랐다. 시종들이 문을 두드리기 전에, 엉망이 된 침실을 조금이라도 수습해 두고 싶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옷가지며 금빛으로 반짝이는 장신구들, 더러워진 침구…… 아사드에게 욕을 얻어먹은 작은 도구들과 이상한 마도구, 그 모든 게 마음에 걸렸다. 황태자가 남긴 정사의 흔적을 별궁에서 일하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한 걱정이 들었다.
피임 도구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으며 씩씩대던 아사드와 함께 밤을 보냈다. 아사드에게 희락기가 온 것도 아닌데, 몸을 섞게 됐다. 저보다 어린 아사드에게 건강에 관한 어른스러운 잔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여러모로 낭만은 찾아볼 수 없는 밤이었다.
하지만 지난밤 내내, 케이든은 자신의 가슴이 간지러운 사랑으로 울렁임을 느꼈었다.
케이든은 아픔에 무딘 사람이었다. 간신히 봉합해 둔 상처 위에 금세 새로운 고통이 번지고 또 피가 번지는 걸 오래도록 바라봐 온 사람이었다. 밀려오는 고통을 막아 낼 방법이 없어 결국 무감해지는 쪽을 택하게 된 이였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제게 건네는 걱정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아사드는 제가 희락기 억제제를 먹는 짓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일에 보탬이 되리라고 믿는 사람처럼 유별나게 굴었다. 억제제를 사악한 마물 비슷하게 보는 것도 같았다.
아사드는, 조금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인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구나. 케이든은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아사드가 해 주는 걱정이 좋았다.
저는 아사드와 함께 미래를 꿈꿀 사람도, 그의 아이를 가질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사드는 제가 아프지 않길 바랐다. 그게 기뻤다.
케이든은 아사드의 얼굴을 두 눈으로 더듬어 봤다.
먹구름에 가려진 미약한 빛을 머금어 더 다정한 색을 띠게 된 백금색 머리칼을, 긴 속눈썹을, 짙은 눈썹을 바라봤다. 이 아름다운 정경이 바래지 않고 오래도록 자신의 머릿속에 남길 바라며 순간을 눈에 새겼다.
그리고.
“…….”
케이든은 아사드의 입술에 조심히 입을 맞췄다. 아주 잠시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진, 찰나의 입맞춤이었다.
요란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케이든은 재빨리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사드에게 제 입맞춤을 들키기 전에, 그에게 품은 마음을 들키기 전에, 상처가 많은 손가락 뒤로 숨어 버렸다.
케이든의 입가에 소리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행복했다.
무엇이 행복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케이든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행복이란 게, 곤히 잠든 아사드의 얼굴 위에 드리운 평화와 다르지 않으리라. 이 따스한 품 안의 적막과도 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의 색깔은…… 필시 행복과 같은 색일 거라고, 케이든은 믿었다.
* * *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우기가 어느덧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거세게 쏟아지던 장대비 역시 우기의 아홉 번째 날을 맞아 슬슬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해가 떠오르자 아예 모습을 감춰 버리기까지 했다.
케이든은 짧은 장마가 끝이 난 거라고 여겼다. 하나 간식을 들고 황태자비의 침실을 찾아온 리헤트의 생각은 달랐었다.
〈으음, 아직 때가 일러요.〉
우기의 끝을 예감하는 케이든에게 리헤트는 말했다. 느릿하게 고개를 저어 보이기도 했다.
〈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금처럼 해가 쨍쨍한 것도 잠시죠. 다시 비가 쏟아질 거예요. 딱, 열흘을 채울 때까지요.〉
가져온 것을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는 케이든의 성화에 못 이겨 손에 과자 하나를 든 채로, 리헤트는 조언을 더했다.
〈비가 그친 게 반가워서 괜히 밖을 나섰다가는, 온몸이 흠뻑 젖고 말걸요? 저 해에 속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우기가 완전히 끝을 맺을 때까진 실내에만 있는 게 최고랍니다.〉
웃음 섞인 경고였다.
바쁜 리헤트가 침실에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떠나는 리헤트를 배웅한 케이든은 몸을 돌려 발코니로 향했다.
케이든은 채 마르지 않은 타일 위에 가만히 섰다. 그는 비가 그친 별궁의 풍경을 내려다봤다. 별궁 가운데에 난 빛의 정원을 휘도는 초록빛 생기를 눈과 코로 느끼고, 귀로는 새들의 지저귐을 엿들었다. 뺨에 닿는 바람마저 선선해 웃음이 나왔다.
‘아사드도…… 밖을 보고 있을까.’
그런 민망한 궁금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우기가 비켜난 자리에 찾아온 평화를 여유롭게 음미하지는 못했다. 큰 개들이 짖는 소리가 2층 발코니에 닿은 탓이었다.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잠시 출타 중인 황녀 마트의 개, 란과 산이었다. 이제는 개가 짖는 소리만 들려도 그 맹한 얼굴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낯이 익숙해진 손님들이었다.
우기 이전에만 해도 매일같이 별궁을 찾아오던 개들이, 오랜만에 비가 그친 틈을 타 잽싸게 정원에 발을 들인 듯했다.
‘저 애들을 만나러 가도 되는 걸까.’
쨍하니 맑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케이든은 고민했다. 리헤트의 말처럼, 운이 나쁘면 비를 뒤집어쓸지도 몰랐다. 케이든은 자신의 운이 좋지 못한 편이란 걸 아주 잘 알았다. 그렇기에 더 망설여졌다.
‘그래도…….’
괜스레 손으로 오른뺨을 쓸어 보던 케이든이 몸을 돌렸다. 개들의 얼굴만 보고, 비가 오기 전에 다시 돌아오자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