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대는 정오가 지나기 전 무사히 야영지에 입성했다. 황태자 부부와 전사들, 마법사들, 그리고…… 마물 토벌의 시작을 알리는 큰 행사에 참여해 자리를 빛내고 싶었던 몇몇 황족과 귀족들이 함께였다. 지난밤부터 야영지를 지키고 있었던 마물 사냥대 소속의 사냥꾼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이동에 지친 이들에게, 아사드는 휴식을 명했다. 높으신 분들은 잠시 아사드의 눈치를 보다간 시종들을 밀치고 천막 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모두, 무기를 드는 일과는 거리가 있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사냥에도 참여할 예정이 없었다.
“멍청한 데다 게으르기까지 한 것들.”
먼 야영지 외곽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아사드는 혀를 찼다. 부득불 여기까지 따라온 제 쓸모없는 육촌 형제며 귀족들을 향해서였다. 아사드와 함께 야영지의 방어 결계를 확인하던 티티가 깔깔대며 그의 말에 동조하자 얼굴을 바짝 구겼지만 말이다.
케이든은 아사드가 아끼는 흑마 위에 홀로 앉은 채로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사드와 티티, 아래에 선 두 사람을 보면서였다.
그들의 뒤로는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홀로 말을 타고 있다는 민망함이 케이든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야영지의 결계를 다시금 쭉 둘러본 아사드가 완전히 합격점을 내린 후에야, 케이든은 말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아사드를 지켜보던 마법사가 내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마침내 야영지에 모이게 된 사람들은 천막 안과 밖을 오가며 사냥을 떠날 채비를 했다.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가장 뜨거운 해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아사드와 케이든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를 갖게 됐다. 야영지의 가장 커다란 천막 안에서였다.
뜨거운 바깥 사정 따위는 알지 못한다는 듯, 천막 안의 공기는 서늘했다. 마법사들이 두고 간 마법석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저와 아사드 사이를 맴돌고 있는 어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케이든은 생각했다.
오전 내도록, 케이든은 아사드의 품에 안겨 있어야 했다.
〈말을 함께 탈 거야. 당신의 승마 실력을 믿을 수 없거든.〉
출발 전 아사드가 제게 했던 선언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오직 숨소리만이 귓전을 맴돌던 어색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 아사드에게 안겨 앞만 보고 있던 때가, 사방이 막힌 천막 안에서 그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지금보다는 나았다.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거운 적막이 천막 안을 채웠다. 케이든과 아사드 사이에 놓인 작은 테이블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의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손끝을 쿡쿡 쑤시는 불편함을 모른 척하며 케이든은 아사드의 눈치만 살폈다. 아사드는, 지난 며칠간 열을 앓았던 사람답게 안색이 좋질 못했다. 케이든의 눈에는 수척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음이 쓰였다.
빛의 정원에서 서로를 마주했던 그날 이후, 케이든은 아사드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보지 못했다. 아사드가 열을 앓는 동안 동관으로의 방문이 막혔었으니 말이다.
아사드가 몸을 완전히 회복한 후에는 마물 토벌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모래사막 위에 발부터 딛게 됐다. 시간을 내는 것도, 마음을 내는 것도 불가능한 빡빡한 일정이었다.
일전에, 케이든은 아문에게 마물 토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시작의 여정에 함께하리라 여기진 않았었다. 후계자의 반려자 또한 열사의 땅에 함께 발을 들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결국, 케이든 역시 토벌대와 함께 궁을 나서게 됐다. 그저 야영지에 머무르며 아사드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제 참여가 아사드의 뜻에 의한 것인지는 몰랐다. 다만, 어색하게 굴고 있는 게 비단 저 한 사람만이 아닌 걸 보면…… 아사드 역시 그의 의지로 저와 동행하게 된 건 아닌가 보다 싶었다.
아사드는 여러모로 초조한 상태였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에 가깝기도 했다.
안 그런 척 계속해 제 신부의 낯을 살피던 아사드는, 케이든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올리자 허공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햇볕의 따가운 눈초리로부터 머리카락을 가려 주던 얇은 천을 손안에 쥐고 의미 없는 장난질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별안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의자를 끌어 옮긴 아사드는 그와 케이든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더 가까이 붙었다. 당황한 케이든은, 차마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눈만 깜빡여야 했다.
“마트가…… 당신을 찾아갔다는 얘길 들었어. 그 애가 귀찮게 굴지는 않았나?”
입을 달싹이던 아사드는, 결국 케이든을 향해 물음 하나를 건네는 일에 성공했다.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화제였다.
아사드의 동생이자 헬리오의 하나뿐인 황녀인 마트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싫어했다. 규모를 줄이고 줄인 자그마한 연회조차 마트의 거부로 결국 열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연회의 주인공 없이 진행할 수는 없었으니까.
마트가 원한 건 고작 가족들과 저녁 한 끼를 먹는 일이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를 잔뜩 맞고 앓아누웠던 아사드 탓에, 가족 간의 만찬 일정 역시 저 뒤로 밀려나게 됐지만 말이다.
기다림이 지루해진 황녀는 자신이 직접 케이든을 찾아가는 걸 택했다. 마트는 그저, 케이든과 단둘이 말을 나누는 시간을 원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게 됐다.
케이든과 마주 앉은 마트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쉼 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얼마나 말을 재밌게 하는지, 케이든의 눈에는 마트가 이야기를 짊어지고 다니는 보따리장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부터 먼 동대륙의 이야기며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전의 이야기까지. 대화 내내 마트는 쉴 새 없이 화제를 바꿨다.
그러나, 잠시 비가 그쳤던 빛의 정원에서 일어났던 일만은 실수로라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케이든 역시 마트에게 그날의 일을 묻지 않았었다.
“유쾌한 분이셨습니다. 이전에 말씀해 주셨던 대로 정말…… 그러셨습니다.”
케이든의 말끝이 힘을 잃고 흐려졌다. 그에게 마트에 관한 말을 전해 준 이는 아사드가 아니라 아문이었다. 아사드 역시 그걸 알기에, 천막 안은 다시 한번 어색한 침묵에 잠겼다.
“난 도로 나가 봐야 해.”
얼굴이 굳은 아사드가 케이든과 눈을 맞췄다.
“야영지는 안전할 거야. 방어 결계를 촘촘히 쳐 둔 데다, 능력 있는 전투원들이 여럿 남을 테니까. 멍청이들이 데려온 호위도 있고, 내가 남기고 갈 호위도 있어.”
“……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사드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케이든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아사드는 제 얼굴에 잠시 스쳤을지도 모를 불안을, 사막에 들끓고 있다는 마물을 향한 걱정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저는 황태자님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생각을 지우며 케이든은 안도인지 섭섭함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꽤 오래 검을 쥐었던 사람들도 마물 앞에서는 몸이 굳어 버려. 평생 해 본 적 없던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지르기도 해. 그러니, 사냥에 나설 수 있는 이들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어. 내가 당신을 두고 가는 게 따돌림 같은 일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알겠습니다.”
「위험하니까. 그래서 데려가지 못하는 것뿐이야. 안 그랬으면, 이렇게 혼자 안 둬. 어떻게든 옆에 끼고 갔겠지.」
말을 마친 아사드가 케이든을 빤히 바라봤다. 내도록 어색하게 굴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열렬한 시선을 보냈다.
“오해 같은 건…… 안 합니다.”
햇살이 완전히 닿지 않는 천막 아래에서도 아사드의 황금색 눈동자는 빛을 잃지 않았다. 케이든은 그 금빛에 시선이 붙들렸다. 아사드에게로 모든 정신이 쏠린 탓에 답답할 정도로 말이 느려졌다.
“빨리 일을 끝낼게. 밤이 오기 전에 돌아올 거야.”
말을 마친 아사드가 품에서 곧장 무언가를 꺼냈다. 그는 자신이 꺼내 든 가죽끈을 잠시 살펴봤다. 그러다 케이든을 향해 몸을 굽혔다. 순식간에, 또 한 번 가까워졌다.
아사드의 손이 케이든의 목덜미에 닿았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접촉에 케이든은 화들짝 놀랐다.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안쪽 입술을 깨물어 보기까지 해야 했다.
“……너무 놀라네.”
곧장 들키고 말았지만.
아사드는 케이든의 목에 줄을 걸어 줬다.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끊어지지 않을 듯 보이는 억센 가죽끈에는, 성인 남자의 손가락 한 마디보다 짧고 작은 호각이 묶여 있었다. 그저 숨을 불어 넣을 곳밖에 없는 호각이었다.
“뭐,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혹시 모를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다소 객쩍음 섞인 얼굴을 하고 아사드는 말을 이어 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불어. 긴 숨을 세 번 불어 넣어야 해.”
“…….”
“하늘에 올려 둘 수색꾼들이 호각 소리를 듣고 당신을 찾아갈 거야. 돌아와선 내게 당신 소식을 전해 주겠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 줄 테고.”
말을 마친 아사드가 아쉽다는 듯 몸을 뒤로 물렸다. 괜스레 끈을 만지작대던 손 역시 거둬 갔다.
“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머뭇대던 케이든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답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해 보고자 케이든은 슬쩍 웃어 보였다. 다소 어설퍼 보이는 미소였다. 하나 제대로 된 선택이 아니었음을 금세 깨닫고 후회하게 됐다. 마주한 아사드의 낯이 급격히 어두워져서 그랬다.
케이든은 제 입가에 떠올라 있던 웃음을 황급히 지워 버렸다.
“전하께서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러면서도, 환영받기 어려울 괜한 소리를 꾸역꾸역 내뱉었다. 아사드가 저를 걱정해 줬다는 걸 핑계 삼아,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