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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화 (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

손가락에 붙은 기계와 팔에 붙어 달랑거리는 패치를 대충 떼어 내고 몸을 일으켰다. 몸이 얼마나 굳은 건지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으…… 씨.”

나를 따라 움직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그를 신경 쓸 새 없이 유리창에 비치는 얼굴을 확인했다. 맞은 쪽 볼이 어느새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매만지자 손이 닿은 곳이 따끔따끔하게 아파 왔다.

‘얼마나 세게 친 거야? 그나저나 머리가…….’

부어오른 얼굴보다 끔찍한 건 형편없이 자라 있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이었다. 머리를 흔들어 눈을 찔러 대는 앞머리를 털었다.

‘머리가 이렇게 길 정도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멀쩡히 눈 뜨고 깨어난 것으로 보아 결국 죽는 건 실패한 건가.

“그 미친 마법사 새끼…….”

순 돌팔이 아니야? 고통 없이 한 방에 보내 준다고 했으면서. 막상 스크롤을 사용하니 아프기도 존나 아픈 데다 결국 죽지도 못했다.

그냥 내가 만든 독약이나 먹을걸. 그랬다면 이렇게 살아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싱숭생숭해져 변덕을 부린 것이 패착이었다.

제 스크롤이 한국 최고라며 우쭐댔던 마법사를 속으로 욕하며 눈을 돌렸다. 침대 너머에서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놈들은 예상외로 모두 초면인 얼굴들이었다.

‘태제헌은 없는 건가?’

사실 한 대 맞자마자 당연히 태제헌일 거라 예상했던지라 속으로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나를 감시 없이 혼자 둘 놈이 아닌데. 심지어 제 측근도 아닌 처음 보는 놈들만 남겨 두다니.

의아함도 잠시,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내가 준비했던 계획은 제대로만 먹혔다면 어지간한 길드는 산산이 와해될 정도로 큰 건이었다. 태제헌은 지금 그걸 수습하느라 어지간히 바쁜 게 분명했다.

한 방 먹인 게 제대로 들어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다시 살아서 이 꼴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 숨이 막혀 왔다. 예전에 한 번 튀었다 잡혔을 때, 또다시 도망쳤다 잡히면 사지를 자른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끔찍한 상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절로 눈이 문으로 향했다.

‘……튈까? 튈 수 있을까?’

태제헌이 얼마나 치밀하고 독한 놈인지 잘 알면서도 순간 도망치잔 생각이 들 정도로 답 없는 상황이었다.

‘……섣불리 행동하지 말자. 이번 계획을 시행할 틈을 찾아내는 데만도 꼬박 이 년이 걸렸어.’

강한 충동을 겨우 참아내고 침대 끄트머리 쪽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의사를 돌아봤다.

“나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야?”

“예……? 그게 삼 일을 꼬박…….”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얼마나 누워 있었냐니까?”

“사, 삼 일 맞습니다.”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었는데 삼 일은 무슨. 내 말을 잘못 이해했나? 어리바리하게 더듬대는 의사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지금껏 무시하고 있던 다섯 놈들이었다. 힐긋 그쪽을 돌아보자 그들은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내게 말한 사람은 개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였다. 절로 그놈의 손으로 시선이 갔다. 커다란 손을 바라보자 맞은 쪽 턱이 아려와 혀로 볼 안쪽을 쓸어내렸다. 피 맛이 났다.

“존나 아프네…….”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봤더니 끝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더 이상 네놈 일로 지체할 시간 없으니 당장 옷 챙겨 입어.”

“싫은데?”

내 말에 뒤에 서 있던 놈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남자 역시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새끼 부하들이 날 싫어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기회만 틈타 날 한 대라도 패 주고 싶어 하는 것 역시도. 녹스를 배신한 지금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그렇다고 내가 놈들의 불만을 받아 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네 할 일 끝났으면 꺼져. 깬 거 봤으면 보고나 올리러 가지 왜 명령질이야.”

“……지금 내게 반항하는 건가.”

“뭐? 반항은 무슨, 네가 뭐라……고…….”

아까부터 이상하게 핀트가 어긋난 대화에 짜증스레 고개를 들었다. 나를 미친놈 보듯 바라보는 놈들의 시선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명을 받고 날 감시하러 온 무감한 태도가 아니었다. 경계심 가득한 시선과 이 묘한 분위기는……. 이제 보니 주변 환경도 이상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가득했고 의사가 입은 옷도, 저놈들이 입고 있는 제복 역시도 녹스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드는 의문에 황당하게 물었다.

“너네 나 납치했냐?”

“뭐?”

나름 진지하게 뱉은 말인데, 놈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덩달아 내 표정도 구겨졌다.

정말 납치당한 건가?

“어디 소속이야?”

다시 묻자 날 때린 놈이 제 이마를 짚더니 화를 참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곤 서슬 퍼런 목소리로 의사에게 말했다.

“단순히 의식만 차리지 못한 거라고 들었는데. 몸에는 아무 이상 없다고.”

“예, 예. 맞습니다, 팀장님. 수치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그쪽이 보기엔 지금 이게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나.”

“맞아! 제정신이 아니잖아, 지금!”

팀장 뒤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지금 이것들이…….

기분이 확 더러워져 비뚤게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당장 다시 검사하세요.”

“이름이 뭐냐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팀장? 저게 팀장이라고? 그래서 어디 팀장인데?

팀장 놈에게 굽신대던 의사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내게 다가와 침대에 누워 달라며 손을 뻗었다.

“검사를 해야 하니 다시 침대에 누워…….”

“뭐. 싫어.”

“억!!”

홧김에 정강이를 발로 차 버리자 의사가 제 다리를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생각보다 타격감이 덜해 혀를 차며 그를 바라봤다. 근육이 빠진 건지, 기력이 약해진 건지. 몸이 상하긴 상했나 보다.

“쟤 주호현 맞아?”

“미쳤나 봐, 어떻게 해…….”

수군거리는 소리에 뒤의 놈들을 훑었지만 여기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이방인은 나뿐이라는 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다리를 잡고 앓는 소리를 내는 의사를 밀치고 문으로 향했다.

“비켜. 내가 알아볼 테니까.”

“정말……. 귀찮게도 하는군.”

귓가에 들리는 나직한 한숨 소리를 무시한 채 팀장을 지나치는데 우악스러운 손길이 목덜미를 잡아챘다.

“뭐……!”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숨통이 틀어막히는 느낌이 들어 다급히 두 손으로 목을 잡았다.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산소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온몸의 핏줄이 쪼그라들고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엄청난 고통에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형! 아무리 그래도 방금 회복했는데 이능을 쓰면…….”

“티, 팀장님!! 재검사 전까지 몸에 무리가 가면 위험합니다!”

“컥, 커헉…….”

상태 이상에 걸린 건가? 대체 이건 무슨 스킬…….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나는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 속으로 외쳤다.

‘상태창, 상태창!!’

다급한 외침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글자들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싶더니, 돌연 딱딱한 한 문장만을 남기고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뭐? 미친, 무슨……. 상태창!!’

열람 자격이 없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 번을 다시 불러 봐도 상태창에 보이는 내용은 같았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나는 몸부림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숨을 쉬지 못해 눈이 까뒤집히기 직전에서야 팀장은 목덜미를 놓았다. 힘이 풀린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서서히 트이는 숨통에 다급히 숨을 들이마시는 내 멱살을 잡아 올린 팀장이 누군가에게 말했다.

“한서진. 머리 확인해 봐.”

“…….”

우악스러운 손길과 반대되는 차가운 손이 살짝 내 볼에 닿았다. 움찔 몸을 떠는 내 머리 위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읽혀요.”

“뭐? 제대로 안 한 거 아니야?”

“읽히지 않는다고.”

“원래 잘 안 읽혔어요. 알잖아요. 그날 일 이후로.”

한서진의 말에 팀장은 더 묻지 않고 나를 짐짝처럼 침대 위로 내던졌다.

“크윽, 씨…….”

“이유, 찾아내십시오. 원래대로 돌려놔야 할 겁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의사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침대에 연결된 벨트가 내 몸을 단단히 묶는다는 걸 알았지만 아직까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는 작은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입에 뭔가가 채워지고 텁텁한 가스가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혐오감 섞인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팀장 놈은 그대로 등을 돌려 나갔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그러면, 주호현 씨.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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