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4.
저들끼리 몇 마디 말을 나눈던 놈들이 방을 나가고, 나는 책상 하나 있는 심문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시계도 없는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재갈은 풀어 주고 가지, 개 같은 놈들.
‘상태창.’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상태창.’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홧김에 외치자 여러 개의 창들이 글자를 읽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Z
접근이 거부되었습니다. GEM충돌.
강의_??00000000_000(0) 호현」
「열람 자격이 없습니다.」
***
그렇게 한참 동안 시스템창과 기싸움을 하던 중, 문이 열렸다. 퍼뜩 고개를 들어 돌아보자 방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 하나와 그 뒤를 따라오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이번에도 전부 초면이었다.
의아해하는 게 표정에서 보였는지 안경을 낀 여자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입 가이드 교육을 담당하는 고운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신입 가이드?’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기울이니, 날 구속한 것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고운영이 가지고 온 짐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내게 다가왔다.
“불편하시죠? 시청각 자료를 보기 전에 먼저 속박부터 풀어 드릴게요. 다만 규정상 신규 각성자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착용하게 되어 있어서……. 교육받는 동안에는 장치를 차고 계셔야 하니 이 점 양해 부탁드려요.”
작은 손 안에서 동전만 한 기계가 흔들렸다.
“허용된 범위 이상으로 움직이시면 제어 장치가 가동되니까 섣불리 움직이시면 안 돼요.”
고운영이 내 뒤로 돌아가서 목에 딱 맞는 밴드를 둘렀다. 울대 바로 아래에 맞닿은 기계의 느낌에 어색해하는 사이 고운영과 함께 들어온 남자가 내 구속을 풀기 시작했다.
몸과 다리를 묶고 있던 벨트가 풀렸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는지 두 손은 앞으로 당겨 모아 가벼운 수갑을 채웠다. 마지막으로 물고 있던 재갈까지 풀어 준 남자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너덜너덜한 입꼬리를 천천히 늘이며 앞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고운영에게 물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 으아아악!!”
기계와 닿아 있는 목부터 시작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존나 짜릿한 고통에 정신 못 차리는 내 귀에 고운영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죄송해요. 음성 제약을 안 풀어 뒀네요.”
‘이런 미친!!’
톡톡톡 소리가 들리더니 그제야 고통이 멎었다. 들고 있던 태블릿을 조작한 고운영이 다 되었다며 나를 바라봤다.
“으음, 됐다. 이제 말씀하셔도 돼요.”
내가 등신도 아니고 방금 그 고통을 겪고 바로 입을 열 리가.
입을 꾹 다물고 노려봤지만 고운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낯으로 내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다시 인사드릴게요, 호현 씨. 저는 신입 가이드 교육을 담당하는 고운영이라고 해요. 급히 태현 팀장님 연락 받고 왔어요. 기억 상실증이라고 하던데……. 팀원들에 대해 아무 기억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혹시 센터나 가이드로서의 책임 등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내 기억이야 당연히 멀쩡하다.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 사이코 집단에게 순순히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고운영이 뭘 말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단 하나도?”
“응.”
“……그럼 몬스터나 던전, 각성자에 대해서는….”
“그건 알아.”
“휴, 그나마 다행이네요. 이것마저 모르면 더 복잡할 뻔했는데. 태현 팀장님이 최대한 빨리 임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제대로 된 교육 일정은 제가 따로 짜서 연락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신입 교육생들이 보는 홍보용 시청각 자료만 시청하고 끝내는 걸로.”
혼자 말하고 혼자 정한 고운영이 태블릿을 펼치며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손을 까딱였다.
“아, 성훈씨. 그것 좀 드려. 여기 이건 호현 씨와 팀원들 인적 사항이 적힌 파일들이에요. 따로 가져가서 숙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챙겨 왔어요.”
고운영의 태블릿 화면 중앙에 그려져 있는 무궁화 문양에 기시감이 들었다. 저건…….
남자가 내 옆의 의자에 파일들이 담긴 종이 가방을 내려놓는 사이, 태블릿을 세워 내 편에서 잘 보이게 화면을 조정해 준 고운영이 다시 제 소지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온 거라 오래 있을 수가 없네요. 교육 스케줄은 호현 씨 팀원들 통해 전달해 드릴게요. 오늘은 이것만 보고 돌아가시면 돼요!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성훈 씨, 마저 부탁해.”
“예!”
고운영의 말에 성훈이라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고 성훈은 제 앞으로 다가와 화면을 클릭했다.
‘아무리 봐도 저 마크…….’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교육 중 사담은 하지 않습니다!”
“…….”
남자의 시선이 내 목에 채워진 기계에 닿는 것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럼 재생하겠습니다.”
“하든가.”
남자가 화면을 클릭하자 공익 광고 같은 영상이 시작되었다.
[대학생 김철수는 각성자입니다. 제주에 사는 이영희도 각성자입니다…….]
영상은 몬스터와 각성자가 처음 등장했던 가장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를 시작으로 어떻게 지금의 제도와 평화, 안전을 지키게 되었는지의 연혁을 차근히 설명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당연한 내용들이었다.
혼자 남아 시시각각 바뀌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곧 나오는 ‘에스퍼’와 ‘가이드’에 대한 내용에 몸을 바로 세웠다. 가이드는 방금 고운영이 몇 번이고 말했던…….
[각성자들 중 특별히 선택받은 이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나라를 지키는 영예를 누릴 수 있습니다. 스킬 없이 이능력을 구사하는 각성자인 ‘에스퍼’와 그들을 서포트하는 ‘가이드’는…….]
맞아, 국가 기관! 태블릿의 무궁화 문양이 익숙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친, 그럼 에스퍼랑 가이드가 노헌이랑 피 주머니 말하는 거였….”
그리고 곧바로 기계의 응징을 받았다.
“으아아악!!”
“교육 중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싸이코 새끼야! 씹, 이거나 빨리 끄…….”
“욕설을 하지 않습니다!”
“끄……아아아악!”
싸이코 새끼는 내가 몇 초 더 버티다 손을 휘저어 백기를 들고 나서야 작동을 멈췄다.
“보지 못하고 지나친 부분이 있으니 되돌아가 다시 재생하겠습니다.”
“…….”
[우리 가이드·에스퍼 센터는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는 각성자 복지를 실현합니다. 인권 보호와 각성자 우선적인…….]
‘보호는 무슨.’
비뚜름한 빈정거림이 새어 나왔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아직 환상통처럼 남은 탓이었다. 그저 부루퉁히 입술을 내민 채 영상이 송출되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각성하는 순간 시스템에게 스킬을 부여받는 각성자들은 랜덤으로 주어지는 스킬에 따라 자연적으로 전투계, 보조계, 제작계 등으로 특성이 나뉜다. 나 같은 제작계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헌터로 활동했다.
대부분 길드에 들어가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홀로 움직이기도 하는데, 이렇듯 자율성이 있는 헌터와 달리 국가 소속 각성자들은 그 유형이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스킬로 제한되지 않고 본인의 잠재력에 따라 초능력이라 불리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능력은 스킬보다 자유도나 공격력이 높은 대신 폭주라는 큰 리스크를 지녔다.
능력을 쓸 때마다 높아지는 폭주 위험도가 극에 다다랐을 때 폭주하게 되는데 주위에 큰 인명 피해와 막심한 금전적 손해를 끼치고 결국 에스퍼 본인마저 죽음으로 이끌기에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을 사회에 풀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무스킬 각성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 기관에 소속돼 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의 폭주 수치를 낮춰 주는 보조계 스킬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워낙 랜덤으로 생기는 스킬이라 이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하면 나라에서 곧바로 잡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피 주…… 가이드였다.
‘나보고 가이드라고 불렀지. 그럼 놈들은 노헌인가?’
헌터들은 자유 의지 없이 나라에 속해 움직이는 국가 소속 각성자들을 노예 헌터와 그들이 달고 다니는 피 주머니라고 조롱하듯 불렀었다. 에스퍼니, 가이드니 하는 간지러운 명칭으로 부르는 일이 없었기에 여기가 국가 소속 기관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퍼뜩 드는 생각에 고운영이 주고 간 종이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수갑으로 묶인 손은 자유롭지 않았지만 손잡이를 잡고 넘어뜨리자 겉면에 <에스퍼·가이드 센터>라고 쓰인 파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싸이코 놈은 내 움직임에 잠시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까처럼 막지는 않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파일을 펼치자마자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가 보였다. 가장 위에는 내 사진과 주호현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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