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5.
“역시…….”
이놈들은 나를 주호현이라는 놈과 착각해서 데려온 게 분명했다. 세상에 나와 이렇게나 닮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꽤나 놀랐지만, 당황하기도 잠시 눈으로는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 주호현 (가이드) >
- 소속 : 팀 레이븐
- 등급 : C급
- 보조계 각성자
- 각성일 : 20XX.07.14
.
.
주호현의 인적 사항을 대강 훑다 보니 자연히 드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주호현 대신 잘못 잡혀 온 거라면…….
‘진짜 주호현은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이놈은 나 대신 녹스로 들어간 건 아니겠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한 가정에 등줄기를 타고 오한이 흘러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그렇다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눈 뜨고 입을 열기도 전에 태제헌 새끼한테 온갖 고문을…….
존나 미안한데 이거.
아무래도 여기서 탈출하는 것과 동시에 주호현의 소재도 파악해야겠다.
앞에서 재생되던 영상도 드디어 끝이 났다. 묵묵히 뒤를 지키고 서 있던 놈이 다가와 태블릿을 덮고 수갑을 풀어 줬다. 가장 마지막으로 목에 차고 있던 제어 장치가 풀리자마자 놈에게 물었다.
“그쪽, 각성자야?”
“아닙니다.”
“아아.”
상태창에 대해 물어보려던 계획이 무산돼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만 대충 챙겨 문밖으로 나가자 아까 봤던 에스퍼들 중 하나인 한서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나올 때만 해도 내심 튈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한서진을 보자마자 일말의 희망도 사라졌다. 힐긋 눈을 들어 내 얼굴을 확인한 한서진은 곧바로 일어나 등을 돌려 앞서 나갔다.
“따라와요.”
씨발. 저러면 내가 개새끼처럼 졸졸 따라갈 줄 알고…….
“야, 야! 같이 가!”
한서진 정도야 금방이지, 내가.
금방 따라잡아 한서진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자마자 싸늘한 손길이 내 팔을 내쳤다.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나 …민하네.”
“뭐라고요?”
날카롭게 묻는 한서진에게서 한 발 떨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야. 그건 됐고. 어디 가는 건데.”
“팀 숙소요.”
“숙소?”
한서진은 이제 됐냐는 듯이 다시 몸을 돌렸다.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야, 너도 에스퍼지?”
“하아…….”
“한숨만 쉬지 말고. 어? 에스퍼잖아. 아까 그거. 나한테 뭐 한 거.”
“네, 에스퍼 맞아요. 그쪽은 가이드고.”
“어어! 내 말이 그거야. 가이드면 나도 각성자인 거잖아, 그치.”
“…….”
한서진은 내 말을 대놓고 무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까지 막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도 뒤를 따라가며 아까부터 궁금하던 점들을 물었다.
“근데 나는 왜 상태창이 안 보이냐? 열람 자격이 없다고 뜨던데. 이거 왜 이래?”
그제야 우뚝 멈춰 선 한서진이 나를 돌아봤다.
“기억을 잃으면 지능도 떨어지나 봐요.”
“엉? 어?”
“생각보다 더 귀찮네.”
이 새끼가…….
뒤늦게 한서진이 나를 욕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열려던 순간 한서진의 눈에 금빛 이채가 돌더니 금세 사라졌다.
“센터 내부에서는 상태창 열람 못 해요.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센터에 위탁하고 있으니까.”
“위탁이라니……?”
이 세상에서 스킬은 곧 힘과 돈이었다. 그만큼 각성자의 모든 내밀한 정보가 들어 있는 상태창은 매우 개인적인 정보였고, 헌터에겐 밑천이나 다름없어 스킬을 함부로 물어보는 행동은 매우 무례한 행동으로 취급됐다.
물론 강제로, 혹은 몰래 상태창을 스캔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긴 하지만 존나 비싼 데다가 범위도 좁고 제한이 많아 함부로 쓸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창을, 뭐?
“상태창을 공유한다고?”
내 경악한 표정에 한서진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센터에서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하여간 센터도 국가 소속이라 제정신은 아니네.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한 노헌들의 상황에 속으로 혀를 찼다. 위탁하지도 않은 내 상태창까지 제어당했다는 것이 어이없었다.
‘공간을 지정해 작동하는 구조인가?’
뭐, 어느 면에선 다행이기도 했다. 사실 태제헌에게 복수하고 죽을 때 그 스크롤의 여파로 각성 고자-세간에서 불의의 사고로 힘을 잃은 각성자를 칭하는 말이었다-라도 되었으면 어떡하나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건 아니라니까.
“내 상태창 보고 싶어.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어?”
“팀 닥터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려 줘요. 의료동에 검진 가도 볼 수 있고. 어차피 그쪽도 곧 건강 검진 다시 할 거니까 그때 봐요.”
건물 밖으로 나가자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가 차 문을 열어 주고 한서진과 나는 편히 앉아 팀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팀 숙소는 생각보다 꽤나 큰 저택이었다. 내가 받은 팀원 파일이 열 개가 조금 안 되길래 숙소의 크기도 작을 줄 알았는데…….
머릿속으로는 도망칠 생각뿐이었기에 자연히 창문으로 점점 몸이 기울었다. 눈을 굴리며 탈출로를 찾는데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피곤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한서진과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뭘 봐?”
“도착했습니다.”
황당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던 한서진은 도착했다는 기사의 말에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나가는 한서진의 뒤를 다시 쫄래쫄래 따라갔다.
‘싸가지를 밥 말아 처먹은 새끼.’
속으로 욕을 하며 따라갔다. 문 앞에 다다른 한서진이 돌연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뭐야, 들렸나? 아니야. 닿지도 않았는데…….’
내심 놀란 것을 티내지 않고 문이나 열라고 문고리를 턱짓하자 한서진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이더니 한숨과 함께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왜?”
“왜는…! 하아, 제발 한 번만 조용히, 하라는 대로 좀 해요.”
실컷 성질을 부린 한서진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쾅 하고 닫히는 문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왜 짜증이야?”
코앞에서 세게 닫힌 문과 혼자 숙소 밖에 남은 나. 이 상황에서 한서진이 나를 엿 먹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구하시오.
“음…….”
약 삼 초간의 고민 끝에, 그럴 가능성은 0이며 한서진이 나를 엿 먹였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물기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허억!”
물줄기에 크게 후려쳐진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나도 모르게 무기를 소환하려 했지만 허공을 허우적대는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 맞다, 지금 나 맨몸이지.
물로 맞는 싸대기가 이렇게 아플 줄이야. 잠시 눈앞이 하얗게 점멸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발, 뭐야 이거.”
격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따갑게 남는 통증에 볼을 부여잡고 눈을 떴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로 시야가 온통 뿌옇게 흐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다 대충 고개를 저어 물을 털어 내는 내 머릿속에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라니까. 그 조금을 못 참아선……. 바보예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앞을 바라보자 열린 문 안으로 한서진과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들어와.”
내게 턱짓하며 말하는 팀장 놈의 모습에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의 양아치 헌터 놈들도 이렇게 이능 남발은 하지 않았는데 노헌 새끼들은…….
‘씨발, 팬티까지 다 젖었네.’
사방으로 날린 파일들을 주워 올려 안으로 들어가자 기분 나쁜 시선들이 내게 꽂혀 왔다.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따가운 눈빛. 그 안에 담긴 부정적인 감정을 모를 수 없었다.
팀장의 무감한 시선이 내 손에 들린 너덜너덜한 파일들에 꽂혔다.
“소개 같은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
“상황이야 어떻든 네가 우리 팀의 가이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 역시도.”
잔뜩 젖은 채 처음 보는 놈들 앞에서 혼나는 기분은 굉장히 개 같았다. 눈에 초점을 푼 채 다른 생각을 하며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어리숙하게 구는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것 없으니 우한세, 박가인 둘이 맡아서 이번 주 안으로 어떻게든 가이딩은 할 수 있게 만들어.”
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그걸 왜! 가르치는 건 가인 누나 혼자서도 충분한 거 아냐?”
“알겠습니다, 팀장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박가인과는 달리 우한세라는 꼬맹이는 싫다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이제 보니 아까 병실에서부터 짜증 나게 굴던 놈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날 향한 적개심을 제일 숨기지 않던 놈이라 유독 기억에 남았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 그저 앞의 상황을 지켜만 보는데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서 있던 선이 연한 남자가 팀장 놈에게 다가갔다. 박가인과 함께 이 남자 역시 여기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팀장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긴 남자가 말했다.
“태현 씨, 가인 씨보다는 제가 맡아서 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할 일이기도 하고, 그러면 한세도 피곤할 일은 없을 테고…….”
말끝을 흐리는 목소리는 작았으나 여파는 컸다. 성난 원숭이처럼 날뛰던 우한세가 그 말을 듣자마자 입술을 깨문 채 잠잠해졌으니까.
“나는 형보고 하라는 게 아니었…….”
“아니야, 한세야. 내가 할 일인걸. 그리고 호현이가 그렇게 된 것도 어쩌면…….”
“그거 형 탓 아니라니까! 바보 같이 착해 빠져서는!! 저 새끼가 멍청해서 제 무덤 판 걸 왜 형이 뒤집어쓰냐고.”
우한세의 갈 곳 없는 분노는 결국 나를 향해 쏟아졌다. 벽지의 얼룩이 토끼 모양과 비슷하다는 생각 따위를 하던 나는 힐끗 그를 바라봤다.
‘노려보면 쫄 줄 알아. 키도 좆만 한 게.’
사람만 적었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텐데. 아쉬움에 혀로 입술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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