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6.
상황을 마무리한 건 팀장이었다.
“예성우 너는 무리할 필요 없어. 메인 가이드는 팀원들 가이딩이 먼저니 넌 그것만 신경 써. 교육은 그대로 우한세랑 박가인이…….”
“아니에요. 태현 씨. 제가 맡을게요. 맡을 수 있어요.”
팀장의 만류에 예성우가 다급히 끼어들어 말했다. 일견 절실해 보일 정도로 애원하는 모습에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주호현이랑 친한가?’
다른 놈들도 예성우를 뜻밖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태현 씨,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서 그래요. 네?”
예성우의 울멍울멍한 눈망울을 본 팀장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성우 너…….”
“제가 할게요.”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한쪽 구석에 팔짱 낀 채 서 있는 한서진이 보였다.
“한…서진?”
“뭐? 한서진, 갑자기 네가 왜?”
“아니야, 서진아. 그럴 것 없어. 그냥 내가…….”
예성우를 포함해 우한세, 이름 모를 다른 팀원들까지 당황해하며 한서진과 나를 번갈아 봤다. 그럼에도 한서진은 그저 팀장만 빤히 바라봤다.
결국 말없이 그 시선을 마주하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알고 있겠지만 일주일 안에 정상화 보고 올려야 하니까.”
“방도 옮겨도 되죠?”
“……방까지?”
“주호현 방까지 가기 힘들어요.”
한서진의 말에 팀장이 나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훑더니 중얼거렸다.
“뭐, 문제는 없겠지.”
지금 나보고 하는 말? 표정을 구기는데 팀장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대충 손을 저으며 허락했다.
“알아서 해. 재희랑 하윤인 나 따라오고.”
애초에 나갈 계획이었는지 앞서 나가는 팀장을 따라 두 명의 팀원이 함께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눈을 뾰족하게 뜬 우한세가 들으라는 듯 크게 욕했다.
“진짜 민폐 새끼. 저거 하나 때문에 대체 몇 명이 고생하는 거야?”
“이야……. 호현이 진짜 사람이 달라진 것 같네.”
“저게 본심이었겠지. 아니면 연기하는 중이든가. 뻔뻔한 새끼.”
시끄러운 우한세에게 내어 줄 신경 따위 없었다. 뒤에서 다가온 한서진이 내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따라와요.”
빤히 한서진을 바라봤다. ‘주호현’에게 적대적인 다른 팀원들과 달리 한서진은 귀찮음을 숨기지 않을 뿐 싫어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들 꺼리는 주호현의 교육까지 자원한다니.
‘친한 것 같진 않고……. 그렇게 안 생겨선 알고 보면 착한 놈인가?’
어쨌거나 팀원들 중에선 한서진이 제일 나았다. 뿌리칠 수 있음에도 순순히 그를 따라 발을 옮겼다.
“서진아. 잠깐, 나 호현이랑 얘기 좀…….”
“지금 주호현은 형 몰라요.”
“서진아.”
예성우의 부름에도 한서진은 들리지 않는지 앞서 나갔다. 결국 우한세까지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서진!!”
아주 콩가루네, 콩가루야.
혀를 차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제 분을 가누지 못하는 우한세와 그 옆에서 무언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예성우. 왜 저렇게 쳐다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재촉하는 한서진의 손길에 다시 발을 옮겼다.
“야, 너 부르는데.”
[조용히 하고 따라오기나 해요.]
기껏 알려 줬더니만. 머릿속에 울리는 한서진의 면박에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이야, 팀 분위기 살벌하네.”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린 말에 한서진이 우뚝 발을 멈췄다.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요?”
“그럼? 사이좋은 편은 아니잖아.”
내 말에 한서진이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눈치가 없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거예요? 왜 이렇게 태평한데? 지금 다 그쪽 싫어하는 거 안 보여요?”
“그게 뭐?”
“하…….”
황당한 표정의 한서진은 뭐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한숨과 함께 꾹 입을 다물었다. 날 향한 눈빛에 서린 혼란을 읽고서야 ‘얘는 나를 주호현이라고 생각 중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한서진을 툭 치며 가볍게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마. 나중에 복수할게. 이럼 됐지?”
“……정말 이상해졌어, 당신.”
그대로 다시 등을 돌리는 한서진을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밖에서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저택 내부 역시 굉장히 넓었다.
계단을 오르고도 계속 걷는 한서진의 모습에 어딜 가는지 궁금해져 걷는 척 툭툭 그의 발치를 치며 물었다.
“지금 어디 가?”
한서진은 아예 나를 무시하기로 작정한 건지 아무 답도 없었다.
“야아, 어디 가냐니까?”
“……방이요.”
한서진은 이 층 복도 제일 끝의 커다란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무심하게 미는 손길에 문이 열리며 커다란 방 내부가 드러났다. 호기심에 덥썩 발부터 들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오, 여기가 내 방이야? 뭐, 쓸 만하네.”
전에 머물던 방보다는 작았지만 깔끔한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잠시 머물기에는 쓸 만했다. 어디 매트리스 상태 좀 확인해 볼까…….
곧바로 침대로 직진해 몸을 던지려는 순간 어깨가 잡혔다.
“뭐 하는 거예요.”
한서진의 물음에 당연하게 대답했다.
“피곤해서 누우려고.”
“거긴 내 침대고.”
“그럼 내 건?”
한서진의 시선이 어느 한곳을 향했다. 시선의 끝에는 방구석에 붙은 문 하나가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저게 뭔데?”
“그쪽이 머물 방이요.”
한서진은 따라오라는 것처럼 앞서 나가 문을 열어 보였다. 설마설마하며 다가가자 역시나, 존나 좆만 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내 방?”
“네.”
“장난하냐?”
황당함에 이성보다 먼저 물음이 튀어 나갔다.
이 새끼, 그래도 다른 놈들보다는 제정신인 것 같아 좋게 봐 줬더니 치사하게 방으로 엿을 먹여? 그것도 이런 조그만…….
혹시나 해서 손으로 침대를 눌러 보자 미세하게 스프링이 튕기는 느낌이 났다. 보급형 매트리스가 분명했다.
“뭐가 문젠데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한서진의 말에 황당하게 되물었다.
“나보고 이런 구린 방에서 자라고?”
“이 방 말하는 거예요?”
“응. 너도 눈이 있으면 봐라. 킹사이즈 침대 하나에, 가구는 옷장이랑 책상 하나? 게다가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것 같이 좁은 통로에 테라스도 없잖아. 나는 이런 작은 방에선 못 자. 숨 막혀서.”
문제점을 모르는 것 같아 하나씩 설명해 주자 가만히 듣던 한서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기억도 없으면서 못 자는지는 어떻게 확신하는데.”
“그건……. 그냥 알아.”
“원래 형이 자던 방보다 네 배는 크니까 헛소리 말고 그냥 있어요.”
“이게 네 배면……. 아니, 잠깐. 형?”
한서진에게 처음 들어 본 형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한서진은 실수했다는 듯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아, 역시 내가 형이지? 그럴 줄 알았어.”
“알고 반말한 거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알아. 아직 차트도 안 열어 봤어.”
“…….”
한서진의 황당한 표정에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나도 보자마자 반말하는 것이 어떻게 보일지는 알고 있었다. 물론 머리로만 아는 거고, 이미 뱉고 나면 반말인걸.
이건 다 태제헌 때문이다. 그 미친놈이 제게만 존대를 쓰라고 개지랄 발광을 떨어 대서 다른 사람에게는 존댓말이 나오질 않았다.
과거 일을 곱씹는 사이 문을 닫고 나가려는 한서진이 눈에 걸렸다. 급히 뒤를 따라가자 한서진은 짜증을 숨기지 않고 날 돌아봤다.
“왜요? 왜 졸졸 따라오는데.”
“그냥. 심심하잖아. 혼자서 뭐 해.”
녹스에선 하도 귀찮게 구는 놈들이 많아 오히려 혼자인 게 좋았다. 연구실에서 새로운 포션 레시피 연구도 해 보고, 의뢰받은 작업물들도 제작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을 골라 임상 실험을 하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과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태창도 안 열리는 판국에, 재료도 없고 스킬도 못 쓰고.
숨 막히는 좁은 방 안에 혼자 남기는 싫었다. 문을 꼭꼭 닫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 씻고 싶어. 아까 뭔 물벼락을 맞아서. 맞다, 그 새끼 누구야? 아, 됐다. 내가 찾아볼게. 어차피 차트 보면 대충 이능 나오겠지. 욕실은 네 방에 있나? 그럼 씻고 있을 테니까 옷 좀 갖다 줘. 원래 입던 옷이 있나? 새걸로 가져올 거면 사이즈 알려 줄게. 나 상의는…….”
“…….”
***
한서진의 욕실에서 씻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한서진은 내 방에도 욕실이 있다며 나를 다시 그 상자 같은 방에 넣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방도 넓고 창도 커다란 한서진의 방이 마음에 들었다.
“방 바꾸자고 하면……. 안 바꿔 주겠지?”
침대 크기가 내 것보다 두 배는 더 크던데 나한테 한쪽 내어 주면 안 되나. 사람 다섯 명도 눕겠더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개운하게 씻은 나는 대충 머리의 물기를 털어 내고 허리춤에 수건을 둘렀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마침 옷을 들고 다가오던 한서진과 마주쳤다. 순간 돌이라도 된 듯 그대로 굳은 한서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보지 마. 부끄럽다.”
“부끄럽다는 사람이 다 벗고 나와?”
“벗긴! 이거 안 보이냐, 이거?”
허리에 매어 놓은 수건을 흔들며 말하자 한서진이 경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내게 옷가지를 던졌다.
“안에 들어가서 입어요.”
“뭐 어때. 남자끼리.”
“…….”
한 마디 더 했다간 정말 쫓아낼 것 같아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투덜대며 등을 돌려 옷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상의를 입는 내 등 뒤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자 한서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아깐 지랄하더니.’
“뭐, 등 돌렸잖아.”
틱 내뱉어도 미동 없이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그제야 내 등에 있을 문신에 생각이 닿았다.
“아, 너도 문신?”
날개 뼈부터 시작해 등 반절을 덮고 뒷목까지 살짝 닿게 그려진 문신은 미친 씹새 태제헌이 싫다는 나를 잡아다 새긴 거다. 각성자를 불러와 힘을 실어 넣은 탓에 꼭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시선을 떼지 못하곤 했다.
한서진도 다를 거 있나. 문신을 보고 신기해서……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한서진이 나를 주호현이라고 알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주호현은 등에 나와 같은 문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까지.
‘아……. 좆 됐다.’
냅다 등을 돌려 문신을 감추고 한서진을 마주 봤다.
“어, 그러니까 이건…….”
당황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더듬대는데, 살짝 눈썹을 치켜올린 한서진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뭐?”
“아무것도 없다고요. 문신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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