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7.
‘무슨 소리야, 또? 문신이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한서진의 거짓 없는 표정을 보고는 나까지 진지해져 방금 나온 욕실 안으로 다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거울에 등을 비춰 봤다.
“어……? 어어?”
없다. 등에, 날개 뼈에 그 미친놈이 박아 넣었던 문신이 없었다. 크기도 크기고 화려해서 보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
목을 한껏 뒤로 젖혀 봐도, 팔을 뒤로 꺾어 잘 닿지 않는 곳을 더듬어 봐도 문신 없는 미끈한 등판뿐이었다.
-귀여운 강아지로 다섯 마리, 어때?
-좆 까. 그게 좋으면 네 등에나 박아, 씨발. 개새끼 문신하기만 해 봐. 바로 대패에 등 갈아 버릴 테니까.
-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작업 시작하세요.
-씨발!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 말라고 했다!!
“대체 어떻게 된…….”
항상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꿀렁이던 은색 늑대 다섯 마리가 사라진 깨끗한 피부를 멍하니 바라봤다. 언제 왔는지 욕실 문간에 기대 있던 한서진이 물었다.
“갑자기 무슨 문신? 꿈이라도 꿨어요?”
“아니, 이건…….”
단순히 문신이 사라져 놀란 게 아니었다. 이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굳이 살펴볼 생각하지 않았던 몸의 변화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매끈했던 몸에는 어디서 굴러 생겼는지 모를 자잘한 생채기들이 남아 있었다. 반면 내가 포션을 만들다 실수로 허벅지 안쪽에 남았던, 하얀 얼룩같이 변색된 흉터는 멀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내, 몸이 왜…….’
얼빠져 온몸을 샅샅이 살피는데 어깨를 잡아 오는 손길에 흠칫 놀랐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가온 한서진과 눈이 마주쳤다. 알기 힘든 표정에 이채가 서린 눈빛을 보자 이상하게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뭐, 하는데.”
“문신한 적 있어요? 내 기억으론 없는데.”
“나중에 말하자. 나중에…….”
나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서진의 말에 답할 여유 따위 없었다. 손 치우라며 어깨를 비틀었지만 한서진은 오히려 잡은 손에 더 세게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거짓말 아니네.”
“…….”
“당신 주호현 맞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떨리는 손끝에 주먹을 꼭 쥐었다. 반면 더 차가워지는 머리는 서둘러 이 상황을 타개하라 나를 종용했다. 잡힌 손을 뿌리치며 한서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라면?”
“……뭐?”
“아니라고 하면, 믿긴 하고?”
입을 꾹 다문 한서진을 밀치고 욕실 바깥으로 나왔다. 뒤를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은 채 대충 옷을 걸치며 말했다.
“내 이름도 모르는데 주호현 맞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지, 등신아. 기억 잃은 사람한테 아주 잘하는 질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잇는 말에 그제야 한서진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의심이 옅어졌다.
전혀 모르는 곳에 떨어져 몸까지 이상해진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애써 태연히 말을 꺼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야. 아니, 한서진. 나 상태창 좀 봐야겠다.”
***
센터에서 상태창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접근이 허용된 팀 닥터의 태블릿으로 확인하는 방법이었고, 다른 방법은 직접 의료동으로 검진을 가는 방법이었다. 한서진은 팀 닥터를 부르겠다 했지만 그걸 필사적으로 말리고 의료동에 직접 가겠다 고집을 피웠다.
내 스킬창을 드러내는 방식도 꺼려졌으며 팀 닥터든 뭐든 남을 통해 걸러 본다는 과정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내 두 눈으로 상태창을 직접 확인해야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
“……알겠어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한서진은 곧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방 밖으로 이끌었다.
다시 긴 복도를 지나 현관문으로 향하는데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놈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어디 가냐?”
“의료동.”
“이야, 아주 보호자 납셨네, 납셨어.”
이죽거리는 놈의 말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시하고 지나는 한서진을 따라갔다. 등 뒤로 진득한 시선이 나를 훑는가 싶더니 큰소리로 주호현을 불렀다.
“호현아! 다녀와서 형 방으로 좀 올래? 오랜만에 가이딩 좀 받자.”
주호현이란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나 대신 뒤를 돌아본 건 한서진이었다.
“아직 가이딩 방법도 모르는 애 불러서 뭐 하게.”
“뭘 하든? 가이딩에는 터치 안 하는 게 룰 아닌가.”
“팀장이 주호현 관리 나한테 맡겼어. 기억 찾을 때까진 안 돼.”
단호히 말한 한서진은 그사이 주방을 기웃대던 내게 다가와 팔을 잡았다.
“뭐 해요. 빨리 따라와.”
“어어…….”
황당하게 바라보는 놈을 뒤로하고 한서진과 나는 문밖을 나섰다.
저택 문 앞에는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가 문을 열어 주는 차에 올라타자 후에 들어온 한서진이 옆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센터 풍경이 지나갔다. 혹시 탈출하게 될 가능성을 대비해 도주로를 파악해야겠다 싶어 창문에 찰싹 붙었다. 눈을 굴리며 지형 파악을 하는 내 뒤에서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이 신기해요?”
“그냥. 안 가 본 곳이니까 궁금해서.”
“안 가 보지는…….”
말하던 한서진이 꾹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저택을 벗어난 차가 대로변으로 들어가며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
‘대체 여기 어디야?’
바다가 보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해 잠시 얼빠져 저 멀리 언뜻 비치는 바다를 바라봤다.
해안 도시인 건가? 한국은 맞겠지?
“여기 어디야?”
“어디냐니?”
“센터 말이야. 한국 어디에 위치해 있는 건데?”
“우린 서울 센터니까, 인천에 있는…….”
“아아, 인천이야? 난 또.”
서울 센터? 그나마 도망가기 쉽겠네, 라고 생각하던 내 귓가에 한서진의 말이 닿아 왔다.
“섬이요.”
“……섬?”
“인천 앞바다에 있는 인공 섬이요. 섬 전체가 센터 부지예요.”
젠장, 섬이라니. 그렇다면 밤에 그냥 야반도주하기는 힘들다는 말이잖아. 이동 스킬이 있는 다른 헌터들이라면 모를까, 나는 더 탈출하기가 어려워졌다.
김 팍 새네. 심드렁하게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서진 역시 더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커다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한서진을 따라 내린 곳은 지금까지 봤던 건물 중 가장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 보였다. 침대에 실려 가는 사람과 시끄럽게 들어오는 구급차 등 티비에서만 보던 종합 병원 같은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 이게 병원.”
일반 사람들이 다니는 병원은 처음 와 봤다. 당장 나부터가 포션 제작자인 데다 아픈 일이 있더라도 태제헌이 힐러를 불렀지 병원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서진은 이젠 묻지도 않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내 팔을 잡아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야. 저쪽, 사람들 저기로 가는데?”
“우린 병원 온 거 아니잖아요. 검진 센터는 B동이라 뒤쪽 건물로 가야 해요.”
정문으로 들어가 건물을 가로지르니 뒤쪽 건물과 연결된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를 지나자 단번에 이곳이 B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끌벅적했던 A동과 달리 차분하고 연구실 같은 느낌이었다.
층별 안내문이 중앙에 커다랗게 표시되어 있었다. 개중 내 눈길을 끈 층은 ‘4F 제작계 - 포션’이라고 적힌 문구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포션?”
‘국가 소속 제작자들이겠지? 저기서 연구한다고…….’
내 라이벌이 있겠냐마는, 국가 소속 포션 제작자들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궁금했다. 국가직 각성자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치기란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여기는 뭐 하는 데려나…….”
중얼거리며 슬금슬금 발을 옮겼지만 한서진의 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쓸데없는 데 관심 두지 말고 빨리 와요. 상태창 보고 싶다며.”
“어어.”
한서진에게 잡혀 끌려가면서도 못내 아쉬워 ‘4F 제작계 - 포션’ 이정표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용한 줄 알았던 B동은 막상 들어오니 이미 여러 업무를 보러 온 다른 가이드와 에스퍼들로 제법 북적였다. 한서진은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무슨 말 안 듣는 애새끼 대하는 것처럼 몇 번이나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 엄포를 놓았다.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알았다고. 너 말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어딜 가? 빨리 접수나 하러 가.”
“……바로 올게요.”
어서 꺼지라며 손을 내젓자 한서진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한서진이 사라지자 그 전에는 없었던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름과 함께.
“쟤 주호현 아니야? ……였던?”
“누군데?”
“몰라? 류수윤이 쟤 때문에…….”
나랑 상관없는 소리임에도 괜히 귀가 간지럽게 느껴져 귓바퀴를 털어 냈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소리가 들려 온 쪽을 돌아보자 한창 말하던 놈들의 입이 꾹 다물리더니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누굴 같은 취급을 해.’
주호현이란 놈도 웃기지. 어딜 가도 환영하는 곳이 없다니. 대체 어떻게 살아 온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혀를 차는데 놈들이 있던 쪽 유리벽 너머로 티브이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대문짝만하게 박힌 헤드라인이.
「녹스 길드 비공개 장례식 성대한 마무리.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 아직까지도 정체불명」
“뭐? 녹스?”
녹스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난 나는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유리 벽으로 달려갔다. 생생한 화면 속에서 자막이 빠르게 움직였다.
검은 옷을 입은 수백이 넘는 조문객 사이로 기자들이 정문으로 들어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간혹 비치는 간부진의 얼굴들은 죄다 익숙했다.
저 정도로 드러내고 장례식을 할 정도면 일개 길드원이 아니라 간부급 이상이다.
‘나 말고 또 누가 죽은 건가? 누구지?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일 텐데…….’
그사이에도 막으려는 길드원들과 그들을 뚫고 장례식장 내부로 들어가려는 기자들의 대치가 이어졌다.
[누구의 장례식입니까?! 왜 비공개로 진행하는지 한마디만 해 주세요!!]
[이러지 마시라니까. 돌아가세요!]
[현재 길드장 태제헌은 어디에 있습니까?!]
[녹스에서 팔던 최상급 포션의 공급이 끊겼는데, 포션 마스터 강의진이 죽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세계 유일한 포션 마스터의 죽음이라면 국민도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물러나세요! 이 이상 넘어오시면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죽었다고?’
익숙한 이름에 멍하니 유리 벽 너머 화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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