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8.
뉴스에서 겨우 며칠 전에 죽었다는 강의진은 나였다.
‘내가 죽었다고? 그런데 나는 지금…….’
유리벽을 짚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흔들리는 눈으로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럼 이건 누군데?’
마치 남의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문신과 기억에 없던 흉터만 남은 몸이 떠오르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유일하게 정보를 얻을 창구인 뉴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티브이에선 몰려드는 기자들 탓에 험악해진 여자가 결국 소리 지르며 저를 비추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가시라니까!!]
지직거리던 화면이 끊기며 곧 아나운서가 있는 뉴스룸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네, 보시다시피 현장은 아수라장입니다. 녹스에서 사망자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신원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장례식의 규모, 추정 사망일 이후 완전히 멈춰 버린 녹스 길드의 행보 등으로 보아 길드 내에서 영향력이 굉장히 큰 사람의 죽음으로 추정됩니다.]
말로는 알 수 없다면서 밑에는 대문짝만하게 내 사진이 떴다. 코 아래까지 가면으로 가려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저 사진은 태제헌이 외부 공개를 허락한 내 유일한 사진이었다.
자기는 광고도 찍고 회담도 나가는 주제에, 나는 밖도 잘 못 나가게 하고선 프로필 사진까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찍게 했다. 그마저도 당시 헌터 사칭 사건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 헌터 협회에서 사정사정했기에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마저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게 뜰 줄 알았다면 죽기 전에 내 사진도 왕창 뿌리고 죽을걸!!
[며칠 전 함께 발생한 녹스 길드 소유 던전들의 동시 던전 브레이크는 아직 수습하지 못한 상태로, 피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요. 추정 피해액이 오백억 단위를 돌파하며 걷잡을 수 없는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녹스 길드장 태제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뉴스는 이제 녹스와 태제헌에 대해 대서특필을 하고 있었다. 겨우 화면이었지만 다신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태제헌의 고압적이고 재수 없는 낯짝을 보니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으려나. 잠적이라니, 길드 일 수습하기도 바쁠 텐데 그 새끼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아직 내가 심어 놓은 트랩이 다 드러나진 않은 것 같지만 녹스가 입은 피해가 내 예상보다 적었다.
‘바로 무너지길 바란 건 너무 큰 기대였나. 나랑 같이 뒤통수치기로 해 놓고. 씨발, 설마 다들 배신한 건 아니겠지?’
이를 갈며 뉴스에 집중하던 내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까칠한 눈빛의 한서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겠다면서요.”
“뉴스 좀 봤다. 뉴스.”
뒤쪽을 향해 고갯짓하자 시선을 들어 티브이를 확인한 한서진은 별말 없이 등을 돌렸다.
“따라와요.”
“바로 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묻자 한서진은 재수 없는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왜 기다려요?”
“와……. 너 그 표정 어디 가서 하지 마라.”
“왜요?”
“존나 재수 없음.”
“…….”
한서진과 함께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연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준비를 하던 검사원이 한서진을 보더니 부산스럽게 다가왔다.
“한서진 에스퍼님!! 상태창 확인을 하신다고…….”
“전 아니고 이쪽.”
“네? 아아, 미리 말씀해 주셨네요. C급 가이드, 주호현…….”
옆의 차트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 검사원이 나와 한서진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
“함께 보실 건가요? 아니면…….”
“당연히 따로지.”
“같이 볼 겁니다.”
한서진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야, 내가 할 말이다. 갑자기 뭐야? 왜 같이 보는데. 내 프라이버시거든.”
“어차피 형 스킬 다 알고 있어요. 지금 기억 못 하는 건 내가 아니라 형일 텐데?”
한서진의 말에 틀린 게 없어 불퉁하게 입을 다물었다.
‘내가 주호현이 아니니까 문제지!!’
한서진에게 스킬을 보여 주느니 차라리 나도 안 보고 말지 싶었지만, 그러기엔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너무 많았다. 내가 죽었다는 뉴스와 달라진 신체 변화까지……. 상태창을 꼭 확인해야 했기에 고민하다 넌지시 다시 물었다.
“혼자 보면 안 돼?”
“검사하기 싫으면 그냥 돌아가요. 다음엔 숙소로 팀 닥터 부를 테니까.”
“…….”
“욕해도 안 돼요.”
속으로 욕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한서진 때문에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의 대치를 보던 검사원이 결국 나서서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신입 가이드 중에서는 체제를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리적인 문제니까요. 그렇다면 블라인드 설정을 해 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블라인드?”
“주호현 가이드께서 원치 않으시면 상태창이 밖으로 보이지 않아요. 주호현 가이드께서 안정되었다 싶으시면 블라인드 설정을 직접 끄면 되고요.”
“그 정도라면 뭐…….”
나야 한서진이 보지 못한다면 상관없지만 한서진은…….
“그건 안 돼. 만약 숨기는 게 있다면 어떻게 하지?”
역시나 한서진은 반대했다. 하지만 검사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레벨이나 스탯, 스킬 변동 등이 생긴다면 곧바로 여기 알람이 오게 되어 있어요. 그건 상태창 관측과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설정된 부분이고요. 블라인드는 그저 검진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알람이라는 말에 흠칫했으나 더 나은 방법은 없었다. 자칫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실수인 척 기계를 부수기라도 해야지. 비뚤게 한서진을 바라보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하세요.”
동의가 떨어지자 검사원이 방 중앙에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통을 가리켰다.
“여기, 안쪽으로 들어가 주시면 됩니다.”
양팔을 뻗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유리관 안으로 들어가자 검사원이 목 줄기와 관자놀이에 동그란 패치를 붙였다. 패치에 젤이 발려 있었는지 익숙지 않은 부위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어깨를 움츠렸다.
“윽, 뭐야?”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모습에 아차 하고 다시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뭔데, 이거요.”
“…….”
존댓말을 했는데도 검사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왜 밖에 있는 한서진까지 이마를 짚는 건지.
“말했다시피 기억에 혼란이 있어서.”
“아, 예……. 이건 상태창을 가시화하며 생기는 혹시 모를 충격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상태창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는다고? 애초에 제재를 가하질 말지.
조금 쪼잔하게 보이는 검사원은 아직 앙금이 남은 건지 마지막까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유리통 안에 갇혀 밖을 바라보니 꼭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았다.
“상태창 여시면 됩니다. 앞면 전체가 화면이니 터치로 조작 가능해요.”
검사원이 옆의 마이크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말하자 안쪽에도 스피커가 있는 건지 내부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상태창.’
연구원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리자 상태창이 떠올랐다. 본래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본인의 눈앞에만 가시화되는 상태창이 지금은 내 앞의 유리를 화면 삼아 확대되어 열렸다.
눈앞에 펼쳐진 상태창을 보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 주호현 >
- 레벨 : 34
- 계열 : 보조계
- 칭호 : C급 가이드
- 명성 : 88
- 스탯 (하급 각성자로 최대 50 제한)
힘 : 39 마력 : 24 운 : 7
.
.
“주, 호현…….”
강의진으로 떠야 할 상태창이 주호현의 이름으로 떴다. 여태껏 이상해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애써 무시하던 가설이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이게 내 몸이 아니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창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내가 왜 주호현의 몸에? 그럼 아까 그 장례식이 정말로 내…….’
투명한 상태창 너머로 보이는 두 쌍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한참을 그렇게 충격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거다.
내가 가만히 서 있는 게 이상했는지 검사원을 밀친 한서진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 아니. 없어.”
“상태창 공개해요.”
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듯한 한서진의 목소리에 다시금 주호현의 상태창을 확인한 후 블라인드를 해제했다.
뿌옇던 창이 맑아지며 바깥에도 화면이 공유되자 한서진은 마이크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얼굴에선 의심을 거두지 못한 기색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이 존나 구린 상태창이 내 거라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런다. 왜.”
“…….”
“말 걸지 마. 빡치니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법사가 한 말에 따르면 스크롤을 써서 죽는다 해도 내 몸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럼 내 원래 몸은 어떻게 되었을지, 혹시 주호현은 내 몸에 들어간 게 아닌지 별의별 가정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주호현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면 상태창을 못 보니까…….’
이 몸뚱어리의 정보는 확실히 확인해야 했다. 앞에 펼쳐진 상태창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센터에서 조작 중이라 그런지 내가 보던 시스템창과 UI가 조금 달랐다.
레벨 무난, 스탯은 패스하고.
스킬은…….
- 스킬
> 상태 이상 해제
하급 상태 이상 해제 (D)
중급 상태 이상 해제 (C)
> 버프
하급 공격력 상승 (E)
하급 방어력 상승 (E)
.
.
> 가이딩
하급 가이딩 (C)
스킬도 별거 없고.
주호현의 상태창은 전체적으로 평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구렸다. 녹스였다면 말단 길드원으로도 들어오지 못했을 정도로.
스탯이야 장비와 포션으로 비비면 되니 애초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아니지만, 헌터로서의 자질을 가르는 스킬들이 모조리 평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스킬도 없었고 스킬들의 숙련도도 낮았다.
‘던전에는 안 들어갔나?’
밖에서 같은 화면을 공유하던 검사원도 내가 스킬을 끝까지 확인한 것을 봤는지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확인 다 하셨습니까?”
“아니. 상세 좀 확인할게.”
“……네.”
‘이게 가이딩이란 말이지. 가이드들만 가지고 있는.’
처음 보는 가이딩이란 스킬이 눈에 걸려 상세 정보를 확인하려 손을 뻗는데 상태창 가장 아래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뭐지?”
손끝이 저절로 빛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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