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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9화 (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9.

하급 가이딩을 클릭하는 대신 손을 들어 상태창을 아래로 내렸다. 끝인 줄 알았던 화면이 밑으로 내려가며 회색으로 비활성화 되어 있는 스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소리에 유리 벽 바깥에 서 있던 둘이 의아하게 날 바라봤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내 스킬이었다. ‘강의진’이 가지고 있던 진짜 내 스킬.

[의신(醫神)의 손길 (S)]

[황금 솥 (SS)]

[Born to be Star (S)]

[선산의 주인 (S)]

[플라멜의 현안 (S)]

[천지보감 (S)]

[정신 방비 (S)]

.

.

얼핏 보기에도 하급 각성자들의 양산형과는 다른 아름다운 스킬들에 울컥해 눈물이 핑 돌았다. 여태껏 당연하게만 여겼던 스킬들이 소중하고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새끼들. 돌아와, 씨발…….’

나도 모르게 더듬으려는 손을 잡아 누르고 두 눈을 쉼 없이 움직이며 상태창을 빠르게 훑었다. 끝없이 내려가는 상태창엔 비활성화된 스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거지. 이게 스킬이라고.’

주호현의 가난한 스킬들과 달리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내 스킬명들을 보자 불안했던 심정이 그나마 조금 안정됐다.

비활성화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 숙련도나 레벨을 포함한 스킬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태창 제한인가 뭔가 그것 때문인가?’

하지만 상태창에 떠 있는 이름은 그대로 ‘주호현’. 당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내 흔적이 남아 있긴 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답답함에 머리를 털며 고개를 든 순간, 흐린 글씨 너머 유리 벽 뒤로 황당하다는 표정의 검사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여기 나 혼자 아니었지.

다시 만난 내 스킬들에 감격해 잠시 잊고 있었다. 밖에는 한서진과 검사원이 상태창을 함께 보는 중이었다.

태제헌의 협박에도 어떻게든 숨겨 냈던 내 스킬들이 이렇게 어이없게 밖으로 노출되다니.

당황해 굳은 사이 밖에서 한서진이 검사원을 돌아보며 뭔가를 말했다. 검사원 역시 쩔쩔매며 나와 태블릿 화면을 번갈아 손짓했다. 마이크가 연결되지 않아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내 스킬을 봤다기엔 이상한 반응이었다. 몸에 붙은 패치를 떼어 내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패치를 떼어 내자 상태창은 꺼졌고 문을 엶과 동시에 검사원을 닦달하는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작동한 것 맞습니까? 그 공백이 정상이라고?”

“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상태창 변화 알람도 없고 그저 잠깐 발생한 오류로 예상됩니다.”

둘의 대화를 듣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공백이라고? 하긴. 내 스킬을 봤다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없지. 비활성화된 거라 밖으로는 안 보인 건가? 아니면 내가 주호현이 아니라서? 뭐가 되었든……. 모른 척해야지.’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나는 오리발을 내밀기로 결정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문을 닫던 나는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는 한서진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와! 씨, 깜…짝이야. 뭐야?”

“안에서 한참 동안이나 보던 거 뭐예요?”

“뭐? 아무것도 못 봤는데?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전혀…….”

말없이 다가온 한서진이 내 팔을 덥석 잡았다. 옅은 금빛으로 빛나는 눈에 그가 능력을 쓰는 중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확 눈을 찔러 버릴까…….’

“놔라.”

한서진이 내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쾌한 기분에 팔을 털어 냈다.

한서진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힘을 풀었다. 그러곤 내게 물었다.

“뭘 본 건지 말해요.”

“보긴 뭘 봐. 너도 밖에서 같이 봤잖아.”

“거짓말.”

“너 내 생각 안 읽히잖아. 왜 갑자기 지랄…….”

내 말에 한서진은 기분 나쁜 티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비뚜름히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스킬이 그거 하나뿐이겠어요? 지금 형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요.”

“…….”

정신계는 각성 유형 중 가장 소수에 속하는 유형이라 알려진 정보가 많이 없었다. 나로서는 한서진의 말이 진짜인지 알 길이 없단 소리였다.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던 중 노크 소리가 우리 둘 사이를 갈랐다.

“누가……. 올 사람이 없는데?”

옆에서 움찔대기만 하던 검사원이 의아해하며 문으로 향했다.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연구원이 조심스레 한서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한서진 에스퍼님을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회장님 일이라고 말하면 될 거라고…….”

연구원의 말에 멈칫한 한서진이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등을 돌렸다. 문으로 가는 한서진의 등을 보던 나는 잇새로 욕을 내뱉다 검사원과 눈이 마주쳤다.

“존나……. 그쪽.”

“네?”

“상태창 관리면 한서진 상태창도 봤겠네.”

흠칫 놀라는 검사원을 보다 툭 물었다.

“한서진 진짜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스킬이 있어?"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검사원의 표정으로 보건대 저 노코멘트는 긍정의 대답이었다. 젠장, 역시 정신계는 성가시다니까.

마침 내게 이리 오라 손짓하는 한서진에 투덜대며 검사실 바깥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한서진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 따라가요. 숙소까지 데려다줄 거야.”

“너는?”

“일이 생겨서 잠시 다른 곳 가 봐야 해요.”

“그래?”

한서진의 말에 눈을 빛냈다. 잠깐, 한서진이 없는 거면 귀찮은 감시자가 사라지는 거나 다름없잖아?

신이 난 기색을 감추려 더 퉁명스럽게 물었다.

“늦게 오냐?”

“오래는 안 걸려요.”

“……뭐, 알겠어.”

한서진은 정말 급한 일인지 앞의 남자에게 날 숙소까지 데려다주라는 말만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서진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남자에게 말했다.

“넌 이만 가 봐.”

“네?”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어. 처리하고 혼자 갈게.”

“하지만 한서진 에스퍼님께서…….”

“괜찮아. 내가 가라고 한 건데 한서진이 뭐라고 하겠냐.”

여지도 주지 않고 남자를 떨궈 낸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을 옮겼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띵-

기다리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막 타려는 순간 안쪽에서 소심한 목소리가 웅얼댔다.

“내려가는데요…….”

“뭐?”

그 말에 고갤 들어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자 아래를 향한 화살표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히 밖에서 기다리다 혹시 한서진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낭패였다. 미리 타고 있을 작정으로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였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널찍했는데도 먼저 타고 있던 남자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닿지 않으려는 듯 몸을 뒤로 물려 구석에 박혔다. 나는 개의치 않고 ‘4F 제작계 - 포션’이라고 쓰인 버튼을 꾹 눌렀다.

“뭐야?”

손끝에 버튼이 눌리는 감각이 확실히 전해졌다. 하지만 버튼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고장 났나.’

달칵달칵 누르는데 뒤에서 또다시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러시면 안 되는데…….”

“응?”

돌아보자 흠칫 놀란 남자가 어깨를 움츠렸다. 다갈색 부드러운 머리칼에 커다란 눈이 울먹이는 게 꼭 다람쥐 같이 생긴 놈이었다. 다람쥐가 손을 들어 층수 버튼 위를 가리켰다.

“저기 출입증을 대야지 해당 층이 눌립니다…….”

“출입증?”

“네……. 출입 인가된 정규 신분증이나 아이디 카드…….”

정말 그 말 대로 버튼 위에 카드 그림이 표시된 탭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반갑지 않았다. 저절로 시선이 다람쥐가 목에 차고 있는 물건으로 향했다.

“출입 인가된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거기 그것 같은?”

“힉……!”

다람쥐는 급히 제 가슴팍을 감췄지만 이미 늦었다. 한 걸음 크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빌려줘.”

“아, 안 돼요.”

“그냥 잠깐 대 주기만 하면 되는걸. 닳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강제로 빼앗기라도 한댔는지 공포에 가득 찬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규칙이라는 게…….”

사원증을 꽉 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다람쥐를 괴롭히는 나쁜 놈이 된 기분에 속으로 헛웃음이 터졌다. 결국 손을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됐어.”

센터의 제작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긴 했으나 당장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뭐, 안 된다니까 별수 있나. 나중에 몰래 와야지.

‘주호현은 허가가 안 나나? 카드가 필요한 거면 다음에 출입 허가된 걸 구해서……. 아 씨 복잡하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내 뒤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이드이신 것 같은데 포션 제작부는 어, 어떤 이유로……. 아! 혹시 만날 사람이 있는데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런 거라면 제가 불러 드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견학.”

“견……학이요?”

“어. 포션 만드는 거 궁금해서.”

근데 치사한 누구누구가 안 도와줘서 그 견학 못 하게 됐네요. 투덜대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지하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완전히 닫히기 전에 버튼을 눌러 문이 다시 열리게 잡아 두고는 뒤를 돌아봤다.

“도착.”

“…….”

“안 나가?”

바깥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하자 머뭇대던 놈이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려서요.”

“아냐. 안 가도 돼.”

“그렇게 꼭 가야 한다면 제가……. 잠깐이라면 제가 보여 줄 수는 있습니다.”

“괜찮다니까?”

“하, 하지만 정말 잠깐이에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는 다람쥐를 황당하게 바라봤다. 그때 손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그의 목가에서 대롱거리는 사원증에 적힌 부서명이 눈에 들어왔다.

<포션 개발부 - 연승연>

아아. 그래서…….

아까부터 이어진 남자의 태도가 그제야 이해됐다.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그렇게까지 사정한다면야.”

“…….”

“안내받아 주지.”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연승연은 제 사원증을 탭에 가져다 대며 소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쪽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너무 깊은 곳까지는 못 들어가요. 해 봤자 제 연구실뿐이니까 너무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잠잠하던 버튼에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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