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0.
오랫동안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던 탓에 다음 층에 탄 사람들의 원망 가득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눈치가 보였는지 연승연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사 층에 멈추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풍기는 익숙한 재료들과 포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뭘 만드는 거지?”
“내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리겠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연구실의 창문을 기웃댔다. 가득 찬 인파를 뚫고 겨우 뒤따라 내린 연승연이 기겁해 달려와 소리쳤다.
“아, 안 돼요! 다른 사람 작업을 보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뭐 볼 것도 없고만.”
유리창 너머로 연구원의 불만 가득한 시선이 쏟아져 나왔다. 그를 무시하고 옆방으로 슬쩍 발을 옮기려다 연승연에게 걸렸다.
“제, 제 작업실로 가요! 이러다 정말 쫓겨납니다…….”
연승연은 꽤나 구석진 곳에 있는 어느 연구실 문 앞으로 날 끌고 갔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등을 보다 물었다.
“너도 각성자야? 센터 소속?”
“네? 앗, 넵. 제작계 각성자입니다. 센터 소속은 아닙니다. 국가직 공무원이에요. 센터 부지를 같이 사용하는 거라…….”
“제작계 각성자들도 센터에서 살아? 아니면 출퇴근? 여기 섬이라며.”
“그건……. 센터 바깥에도 공방이 있어서 출퇴근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센터에서 머무는 편……. 사택도 제공해 주는 데다 재료 수급도 쉽거든요.”
“출퇴근? 밖으로 나가는 다리라도 있어?”
“아니요. 시간마다 뜨는 비행기가 있어요.”
“뭐? 비행기?”
혹시 섬에서 쉽게 나갈 방법이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희망이 사라졌다. 실망해 한숨을 뱉자 눈치를 보던 연승연이 연구실 문을 열며 말했다.
“드, 들어오세요. 잠시 앉아 계시면 제가 차라도 드릴…….”
“쓴 건 안 마셔.”
“아마 주, 주스가 있을 거예요. 찾아보면……”
냉장고를 뒤적이는 연승연의 뒷모습을 보다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달콤한, 뇌세포를 자극하는 향기가 흘러왔다. 내가 아는 냄새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건……!”
***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어쨌거나 제 조그만 연구실에 처음 온 손님이었다.
잘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연승연은 주스와 과자, 마침 어제 누군가 돌려 냉장고에 있었던 케이크까지 꺼냈다.
“오, 오렌지 주스인데 괜찮으신…….”
한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등을 돌린 연승연은 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기겁해 펄쩍 뛰었다.
“지금 뭐 하시는……! 하, 함부로 만지시면 안 돼요!”
저 이상한 가이드가 제 실험실을 쏘다니며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실험실에는 일반인이 만져선 안 되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잘못 만졌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었고, 작업 중인 포션들은 먼지 하나만 잘못 들어가도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는 예민한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주호현은 제가 몇 달을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며 준비한, 마지막 과제의 용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 제가 갈 테니까 아무것도 만지지 말…….”
너무 놀라 굳어 버린 혀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엉거주춤 쟁반을 내려놓았다. 주호현이 시험관에 용량별로 담아 놓은 액체를 킁킁대더니 끓고 있던 냄비 안에 들입다 부어 버렸다.
“지금 뭐 하시는!!”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실험 냄비에서 심상치 않은 마법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승연은 혼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고 공간을 나누는 유리 벽 너머로 급히 달려가며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포션 제작이 실패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경계해야 하는 상황은 폭발이었다. 주호현이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실험대로부터 떼어 놓으려던 연승연은 냄비 안에서 반응하던 시약이 부글부글 끓으며 분홍빛 연기를 뿜기 시작하는 광경에 그대로 굳어 발을 멈췄다.
“이건…… 설마.”
지금 여기서 보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연승연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믿을 수 없는 기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포션 제작 진행도 99.9%
마지막 단계를 진행하세요.
►젓는다.
►뚜껑을 덮는다.
털썩.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연승연은 덜덜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저, 저거 어떻게 하신……?”
“바보냐? 이걸 이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해? 끓기 전 공기 방울 올라오기 시작하면 시약을 넣었어야지. 에이, 약 다 버렸네. 아, 그리고 너! 알람 떴지?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젓는다.’ 선택하면 뒤진다.”
주호현이 한심하게 바라보며 엄포를 놓았지만 연승연에겐 주호현의 모든 목소리가 천사의 세레나데처럼 들렸다.
주호현이 방금 성공시킨 저 포션은 타란툴라 퀸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였다. 타란툴라 퀸은 센터 소유 던전의 보스 몬스터로 가장 처음의 클리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죽이지 못한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지독한 독 탓에 수많은 에스퍼와 가이드가 유명을 달리했으며 피해가 너무 커 던전도 함께 봉인되다시피 했다.
포션의 가치로 따지자면 현재 센터에 가장 시급한 연구 중 하나였으나 박사 팀의 연이은 실패로 다들 이건 불가능하다며, 녹스의 강의진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을 거라며 맡길 거부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난제가 말단 연구원인 저에게까지 왔다.
아무도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던 골칫덩어리 포션의 제조 레시피. 감히 제가 그것의 성공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연승연이 주저앉은 그대로 감격에 찬 눈으로 두 손을 모으고 주호현을 올려다봤다.
“성공하셨어요! 성공하신 거예요! 타란툴라 퀸의 마비독 해독제는 녹스의 강의진 외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시약이었습니다!!”
주호현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러나 감동의 눈물로 가득한 연승연은 그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엔 이상하다 여겼던 주호현의 모든 태도와 말투에 당위성이 생겼고 등에서는 후광과도 같은 빛이 나며 온 연구실을 밝히고 있었다.
연승연 인생에 평생 갈 1m짜리 콩깍지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가이드시면서 어떻게 이런 대단한……. 저희 생산계 역사에 한 줄기 빛이 될 겁니다!”
“흠, 흐흠. 뭐.”
이미 빛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짜증 나는 놈들에게 가득 둘러싸여 있다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놈을 만나자 조금 신이 난 호현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다람쥐가 좀 소심하긴 해도 멍청하진 않은 것 같은데. 좀 도와줘 볼까.’
***
“야, 이 멍청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좋았던 기분은 눈앞에 벌어진 끔찍한 참상들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이게 다 뭐야! 이 아까운 재료들을 이렇게 망쳐?”
가슴이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스킬만 있었어도 살리는데!
주호현의 몸으로는 제약이 많아 포션 제작에 직접 가담할 수 없었다. 타란툴라 퀸의 해독약 건은 다행히 상황이 맞았지만, 이후로는 기초적인 보조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입만 놀려야 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 재료면 수면 향인데 담즙이 왜 있어? 설마 넣으려고 한 건 아니겠지? 엥, 이건 또 뭐야. 하급 마나 포션에 세이렌의 머리칼이 왜 들어가?”
“겨, 겨우 하나……. 어차피 지원받는 거고 지원금도 정해져 있어서 남을 바에야 다 써 버리는 게 나은…….”
“이것들이 재료 아까운 줄 모르고……. 내 세금 거둬 가 이딴 데 썼냐? 이 세금 도둑들아!”
강의진일 적 납세한 세금이 생각나서 피눈물이 나왔다.
펄쩍펄쩍 뛰며 옆에 들린 종이 뭉텅이로 연승연을 때렸으나 연승연의 입에선 웃음이, 눈에선 감동이 떠나지 않았다.
포션을 직접 살릴 수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돌아다니며 이건 뭐가 문제고, 저건 뭐가 문제라며 지적을 했다. 연승연은 수첩을 들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메모하기 바빴다.
연구실의 모든 시약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고 그것들을 다 살피고 나서야 마음이 놓여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연승연이 날 부르는 호칭은 어느새 극존칭으로 바뀌었다.
“호현 님. 여기 주스 드세요.”
“오렌지? 나 사과 주스 마시고 싶은데.”
“바로 구해 오겠습니다!”
연승연은 곧장 뛰쳐나가 주위 연구실을 돌며 사과 주스를 수배했다. 동료 연구원들은 처음 보는 연승연의 모습에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연승연의 머릿속엔 제 연구실 안에서 기다리는 주호현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사과 주스를 구해 온 연승연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현 님은 어떻게 이런 정보를 다 아시는 건가요?”
“음…….”
“아, 가이딩 스킬 말고 다른 것이 생산계 능력이시군요? 포션에 대해 이렇게 조예가 깊으신데 왜 가이드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결론을 내리던 연승연은 곧 가이딩 스킬만 가지고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잡아 놓으려 하는 센터를 기억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상석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연승연이 가져다준 케이크와 주스를 마시던 나는 발끝을 까딱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마.”
어차피 도망갈 거니까. 속으로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무거운 눈빛으로 제 손에 들린 수첩을 바라보던 연승연은 한참 동안이나 무언가 고민하는가 싶더니 돌연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호, 호현 님!”
“왜.”
“……이, 이런 거 함부로 알려 주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이미 저는 들을 대로 다 들어 놓고, 호현 님의 뒤를 따라다니며 금 같은 조언들을 메모까지 한 제가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연승연의 양심이 쿡쿡 찔렸다. 그러나 걱정이 되어 참을 수 없었다.
“왜?”
“그야, 이런 정보는… 돈 주고도 못 살 귀한 정보고. 그리고 호현 님께서 이런 능력을 가지신 것을 알면 나쁜 일에 쓰려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고…….”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는 연승연을 가만히 바라보다 툭 물었다.
“너는?”
“네?”
“그렇게 치면 너도 정보 받아 간 거 아냐. 뭐로 값을 치를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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