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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1화 (1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1.

내 물음에 연승연의 눈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연승연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더니 결국 나온 말이라고는 형편없이 덜덜 떨리는 것이었다.

“제, 제가 모은 돈은 얼마 없지만…….”

“뭐? 돈?”

“죄송합니다! 무, 무무물론!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연승연의 말을 듣던 난 눈을 빛내며 몸을 기울였다.

“돈은 됐고, 내가 궁금한 게 좀 많은데.”

“어떤……?”

“이거 가이드 어떻게 그만둬?”

“예?

제 귀를 의심하며 얼떨떨하게 되묻는 연승연을 보며 뒤로 몸을 깊이 기댔다.

“가이드.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가이드를……. 그만…….”

“섬에선 어떻게 나가? 비행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외출하듯 조용히 나가는 방법 말이야. 가이드는 상태창에 제약이 걸려 있다는데 너도 상태창 못 봐? 이거 어떻게 푸는지 알면 좀 풀어 줘. 아, 그리고 나 내 숙소 가는 길 몰라서. 이따 네가 데려다줘야 할 것 같은데.”

쏟아지는 질문에 연승연의 표정이 말로 다 하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게 구겨졌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궁금해하시는지 잘 이해가, 안 가서……. 혹시 저를 놀리시는….”

“그런 건 아니고, 나 기억 상실이라 잘 기억이 안 나서 그래.”

“기, 기억 상실이요? 역시 놀리시는 거죠!”

“진짠데.”

연승연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봤다. 의심 가득한 얼굴로도 내 물음에 하나씩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도 센터에 상태창을 보고해야 하긴 하지만 에스퍼, 가이드와는 달리 제약은 걸려 있지 않아요. 그래서 제약을 푸는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나가는 방법은?”

“가장 간편한 방법은 역시 비행기……. 직원이라면 누구나 탈 수 있으니까요. 배는 화물 운송 위주라 사람이 타기 힘들 거예요. 에스퍼 팀은 상황에 따라 헬기나 스크롤, 혹은 포털로 순간 이동하긴 하지만 모두 경비가 삼엄해서…….”

“모른다는 거네.”

“죄송합니다!”

연승연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 가이드를 그만두는 방법은…….”

“방법은?”

“모,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

몇 초간의 정적 후, 결국 황당함에 물음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대체 아는 게 뭐야?”

“죄송합니다. 제가 부서가 달라서……. 평소에는 에스퍼나 가이드와 대화 나눌 일도 잘 없어요…….”

연승연에게 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모두 헛꿈이었다. 소심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놈이었나…….

연승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호, 호현 님께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든 알아볼 테니…….”

“…….”

“정말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알아봐 드릴게요. 꼭이요.”

“……뭐, 그래. 노력해 보든가.”

“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늦은 밤이었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연승연과 함께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연승연은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만 경차로 나를 이끌었다.

“너 차도 있어?”

“그럼요. 출퇴근하려면 필요해요. 호현 님, 타세요.”

한참 아래에 있는 차체를 내려다봤다.

“와……. 존나 작네.”

이런 작은 차는 처음 타 보는데. 나까지 타면 안 나가는 거 아니야? 허리를 숙여 안을 바라보자 운전석에 안성맞춤으로 타 있는 연승연이 보였다. 제가 다람쥐라고 차도 꼭 다람쥐 쳇바퀴 같은 걸 몰았다.

뭐, 주인한테만 타기 편하면 되는 거지. 꽤나 어울리기도 하고…….

애써 차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며 뒷좌석 문을 열고 몸을 구겨 집어넣었다. 어떻게 해도 바르게 앉을 수가 없어 두 자리를 차지하고 비스듬히 앉으니 그제야 다리가 수납이 됐다.

연승연이 힐긋 백미러를 보았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죄송해요. 차가 너무 작아서 불편하시죠.”

“괜찮아. 내 다리가 너무 긴 탓이지, 뭐.”

“그럼 출발할게요, 호현 님. 안전벨트 착용해 주세요.”

차가 느릿하게 출발했다.

한서진과 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도로를 달리며 느긋하게 구경한 섬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넓었다. 섬에 거주하는 사람도 많았고 백화점이나 영화관, 대형 마트 등도 있어 외진 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인공 섬이라고 했나? 그럼 안전 구역인가?”

“네. 돌발성 게이트는 열리지 않고, 부근에 센터 소유의 던전만 몇 개 있어요.”

‘괜찮은데? 섬이면 내가 나가기 힘든 만큼 반대로 태제헌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잖아. 생각보다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고…….’

잠시 여기 숨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가이드가 센터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알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통제당하는 것은 태제헌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돈이나 벌며 혼자 살고 싶었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다 주택가로 들어선 차는 익숙한 길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저 멀리 팀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초행길에 한껏 긴장했던 연승연이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백미러로 나를 바라봤다.

“휴, 상위 팀의 숙소는 별장 수준이라더니,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직접 보는 건 처음…….”

“연승연! 앞에!”

끼이이익!

우리 앞으로 달려드는 불빛에 놀라 소리침과 동시에 찢어지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하얗게 질린 연승연이 핸들을 꼭 부여잡고 덜덜 떨었다. 황당하게 고개를 들자 연승연의 쳇바퀴 앞에 얼핏 보기에도 두 배는 큰 세단이 아슬아슬하게 멈춰 서 있었다.

“씨발. 운전 개좆같이 하네.”

“무, 무무, 무슨…….”

“나와 봐. 저 미친놈 얼굴 좀 보…….”

안전벨트를 풀고 손잡이를 잡으려 몸을 돌리는데 반대편 운전석에서 누군가 내렸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표정 없는 얼굴을 보고 놀라 중얼거렸다.

“한…서진?”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한서진은 날 본 체도 않고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운전석 문 앞에 멈춰 선 한서진이 검은 장갑 낀 손으로 톡톡 창문을 두드렸다.

“내리세요.”

방음도 안 되는 문짝은 소리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제 창문 옆에 붙은 인영에 연승연이 덜덜 떨며 나를 돌아봤다.

“호, 호현 님 아시는 분이신가요?”

“……내 팀원. 앉아 있어. 내가 내릴게.”

“호현 님…….”

겁먹은 연승연을 두고 차에서 내렸다. 연승연의 차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 한서진은 나 보란 듯 다시 운전석을 두드렸다. 차 안에서 연승연의 겁먹은 울먹임이 새어 나왔다.

“내리라고.”

“걔는 왜 내리라고 해.”

“왜일 것 같은데요?”

한서진의 비뚜름한 물음에 주위를 둘러봤다. 위협적으로 돌진하다 갑자기 방향을 튼 세단과 그 앞에 선 한 입 거리 작은 경차.

“사과하려고?”

“…….”

한서진의 표정이 과하게 구겨졌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건지.

한숨을 흘린 한서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기억 잃은 우리 팀 가이드랑 왜 같이 오는 건지, 지금까지 뭐 하고 왔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나한테 물어봐. 연승연은 그냥 나 데려다주러…….”

“물어보려는 거 아니에요. 알아내려는 거지.”

위험하게 빛나는 까만 눈을 보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한서진은 연승연의 기억을 읽겠다 말하고 있었다.

주호현과 전혀 연관이 없던 연승연까지는 어떻게 둘러댈 수 있었지만, 진짜 주호현을 알고 있는 한서진은 내가 갑자기 포션을 다룬다 하면 의심할 게 뻔했다.

“한서진!”

오늘 연승연과 있었던 일을 읽기라도 할까 봐 놀란 나는 황급히 달려가 한서진의 팔을 잡았다. 시선만 내려 나를 바라보는 한서진에게 일단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네가 나 버리고 갔잖아.”

“제가 언제요. 분명 그 사람 따라가라고.”

“모르는 사람이잖아.”

순간 한서진이 말을 멈췄다. 그사이 앞 유리 너머의 연승연에게 어서 가라고 눈짓했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연승연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차를 후진시켰다. 다행히 한서진은 그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차가 사라지고, 어둠 속에 한서진과 둘이 남자 정적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한참을 침묵하던 한서진이 입을 뗐다.

“무슨 의미예요, 그건.”

“뭐가.”

“모르는 사람이라 안 따라갔다는 거.”

‘뭔 개소…….’

표정을 파삭 구겼다가 한서진이 내가 대충 둘러댄 말에 대해 물은 것을 알고는 대충 손을 내저었다.

“말 그대로야. 내가 너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왜 따라가?”

“……무슨.”

말문이 막힌 한서진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한서진의 이상한 태도보다도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세단에 더 관심이 갔다. 매끈한 차체에 휘파람을 불며 다가갔다.

“차 좋다? 네 거야?”

“…….”

“어디 가는 길이었나 봐? 근데 운전 연습 좀 더 해야겠더라. 자칫하면 사고 날 뻔했잖아.”

물음에 답이 없었다. 의아하게 여기고 뒤를 돌아보자 한서진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다. 검은 장갑 사이로 조금 붉어진 얼굴이 엿보였다.

운전 못한다 그래서 화났나? 슬그머니 다가갔다. 내가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등을 돌린 한서진은 그대로 팀 숙소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요.”

저게 또! 내가 무슨 명령만 하면 따라가는 개새끼인 줄 아나 본데.

……딱히 갈 곳은 없었기에 한서진을 따라 발을 옮겼다.

“야! 같이 가. 차는 저대로 두고 가?”

“어차피 저 앞까지 저희 팀 부지라 상관없어요.”

“그래? ……야, 한서진. 나온 김에 서울 가자.”

“갑자기 무슨 헛소리예요.”

혹시나 싶어 은근슬쩍 떠봤지만 철벽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투덜대며 한서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어디서 뭐 하다가 왔어요?”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버려서. 엘리베이터 탔는데 버튼이 안 눌리더라?”

“검진 센터요? 일 층 말고는 카드 있어야 눌려요.”

“응, 그렇다며. 뒤에 연승연이 타고 있어서 걔가 알려 줬어. 그러다 친해져서 잠깐 연구실 놀러 갔다가 케이크 먹고 옴.”

녹스에서도 거짓말엔 도가 튼 나였다. 태제헌 그 미친 새끼를 속이려면 어지간한 표정 관리와 목소리 가지고는 어림도 없거든.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자 내게 닿았던 한서진의 시선이 거둬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거 주워 먹고 다니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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