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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2화 (1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2.

숙소에서 잔 첫날은 최악이었다. 불편한 매트리스에 등이 배겨 몇 번을 뒤척였다.

답 없는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죽은 게 분명한 내가 왜 주호현의 몸으로 눈을 떴는지, 그렇다면 주호현은 어떻게 된 건지.

‘하지만 그 스킬들은 내 것이었는데.’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떠오르는 상념들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잦아들었고, 겨우 잠들었던 나는 얼마 자지 못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똑똑.

게슴츠레 눈을 뜨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문간에 기대선 한서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푹 잠겨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뭐야.”

“오늘부터 정식 가이드 교육 있는 거 알죠?”

“…….”

듣기 싫다는 듯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올렸다. 머리 위로 한서진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곧 교육 담당자가 데리러 온다니까 빨리 준비해요.”

***

교육은 재미없었다.

이미 아는 내용이거나, 알 필요 없는 내용이거나, 아니면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뿐이었다.

턱을 괸 채 저 멀리 보이는 의료 B동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빠졌다. 예를 들면 연승연의 연구실에 가서 놀고 싶다는 그런 생각.

오전부터 시작한 교육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때맞춰 내 앞에 하루 새 익숙해진 차가 멈췄다.

“한서진!”

차에서 내리는 한서진 역시 조금 반가운 걸 보니 교육이 어지간히 질리긴 했나 보다.

“왜 이제 와. 내가 몇십 분을 기다…….”

“방금 나오는 거 봤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타요.”

“재미없는 새끼…….”

투덜대며 뒷문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차체 너머로 황당한 물음이 들려왔다.

“뭐 해요?”

막 문을 열고 타려던 한서진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타라며?”

“하……. 거긴 상석이고.”

깊은 한숨을 뱉은 한서진이 제 옆을 턱짓했다.

“옆에 타요.”

“옆에?”

조수석은 타 본 적 없는데. 여태껏 태제헌이랑 뒷자리만 타 봐서 그런지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막상 타자 떨떠름하던 것과 달리 조수석의 넓고 편한 좌석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마구 들어와 머리칼을 간질였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바람을 맞는 내 옆에서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성우 형이 쓰러졌어요.”

“걔가 누군데?”

“팀원 차트 안 읽었어요?”

“응.”

“…….”

“가서 읽을게.”

“우리 팀 메인 가이드예요. 예성우.”

메인 가이드라는 소리를 듣자 흐릿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쓰러졌는데?”

“가이딩하느라 과로했다고 하는데……. 가인 누나 쪽도 지친 모양이고,”

앞을 바라보고 있던 한서진이 슬쩍 내게 시선을 향했다.

“슬슬 그쪽한테 압박 갈 거야. 지금도 숙소에서 벼르고 있는 사람 많고.”

“왜 둘은 형, 누나고 나는 그쪽이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하아…….”

눈을 꾹 감았다 뜬 한서진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을 한 귀로 흘리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도 빨리 가이딩해라 이거지? 그래야 그 둘이 무리 안 한다고?”

“……상황이 그렇다는 거고. 아직 형도 무리라는 거 알아요.”

“알겠어. 뭐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아직 가이딩 실습 안 배웠죠?”

“응. 실습은 너한테 배우라던데.”

사실 이론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스킬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 연습해 봐요.”

한서진이 저택 앞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널따란 정원의 한쪽 구석에 세워진 차는 시동까지 끄자 빛이 닿지 않아 사방이 어두웠다. 얼떨떨하게 차 내부를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여기서?”

“가이딩을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봐야 해서. 혹시 조절 못 해서 새어 나간 가이딩이 팀원들 자극하면 곤란하니까요.”

한서진의 말을 모두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뭐, 상관없겠지 싶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모르는 분야라 그런지 긴장도 되지 않았다.

“뭐, 그러든가. 어떻게 하는 건데. 스킬 외치면 돼? 가이딩!”

“……손이나 줘요.”

“손을?”

장갑을 벗어 내려놓은 한서진이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

고개를 기울이다 손바닥 위에 척 손을 올렸다. 한서진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푸흡.”

“뭐야? 달라며.”

“아니에요. 꼭 개 같아서.”

미친놈인가?

면전에 대고 욕을 하는 패기에 뭐라 말도 못 하고 황당하게 바라봤다. 표정을 갈무리하려 하긴 했지만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한서진이 잡은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편하게 해 보세요.”

손바닥이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지 손을 잡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잠깐 당황한 사이 한서진은 커다란 손의 각도를 틀어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깍지까지 껴 댔다!

“……야.”

징그럽고 간지러운 기분에 손을 빼려 했으나 꽉 잡힌 손이 빠지지 않았다.

“뭐 하냐?”

“가이딩이요.”

“꼭…… 이딴 식으로 해야 해? 너 구라 치는 거지.”

의심스러워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한서진의 입가가 허물어지며 피식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역시 너, 이 새끼 장난치지 말…… 읏.”

한서진이 잡은 손을 더 단단히 쥐더니 휙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생각보다 센 힘에 놀라기도 잠시, 의자를 잡아 운전석 쪽으로 기우는 몸을 멈춰 세웠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한서진의 입술이 벌어지며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뭐?”

“가이딩의 시작은……. 이렇게 살끼리 맞닿은 접촉을 통해서니까.”

한서진이 잡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황당한 시선은 거짓말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만스러웠지만 어쩔 수 있나, 당장이라도 빼내려 했던 손을 그대로 한서진에게 맡긴 채 내 자리에 털썩 등을 붙이고 앉았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는 건데. 스킬 써야 해?”

“오늘 이론 수업 듣고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루해서 잤어.”

한서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가이딩은 패시브 스킬이라 에스퍼랑 접촉하고 있으면 자연으로 발동돼요. 아마 지금도 열렸을 거야. 형이 해야 하는 건 그 양을 조절하는 거고.”

“패시브라고?”

스킬에는 액티브 스킬과 패시브 스킬,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액티브 스킬은 내가 인지하고 때에 따라 시전해 사용하는 것이라면 패시브 스킬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켜져 있는 스킬이었다. 때문에 마도구나 특수 장비같이 특별한 방법으로만 제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이딩이 패시브일 줄이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집중해서 느껴 봐요.”

“느끼긴…… 씨.”

아직도 꼭 잡힌 손을 불퉁하게 바라봤다.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지러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건 스킬 때문이 아니라 남자 새끼랑 손잡아서 그런 것 같은데.

한서진의 말에 눈을 감고 맞닿은 쪽에 집중을 했다. 차에 정적이 찾아오고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려 귀를 간질였다.

원래의 나는 제작 계열이었다. 생산계나 제작계는 레시피나 공식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본인의 스킬과 경력에 따라 결과물이 도출되는 분야라 대체로 문제와 과정, 해답과 결과물이 정해져 있었다. 한마디로 이런 모호한 기운과 감각을 느끼는 것에는 젬병이라는 소리였다.

집중하며 감을 잡으려 애써 봐도 한참이 지나도록 소득은 없었다. 괜히 손가락이 굳는 듯해 꿈지럭대자 한서진의 손이 조금 더 힘을 줘 잡아 왔다.

“……주물럭대지 마.”

“형이나 꾸물대지 말고 집중해요.”

한서진의 타박에 닿은 부분을 통해 무슨 기운이 전해지나 느껴 보려 했다. 하지만 맞잡은 손의 약간 서늘한 체온이나, 부드러운 촉감. 은근히 손이 크고 손가락이 길다 같은 쓸데없는 감상만 떠오를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생각보다 손이 크네. 키는 내가 더 크겠지? 잠깐만. 지금 이 몸은 주호현 거잖아? 설마 키가 작아지진 않았겠지? 아까 키 측정기 있던데 재고 올걸.’

“지금 다른 생각하고 있죠.”

한서진의 말에 퍼뜩 놀라 눈을 떴다. 돌아보기가 무섭게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내게 꽂힌 시선이 느껴졌다. 금빛 이채가 도는 눈까지. 또 능력을 썼단 것을 알자마자 얼굴이 붉어져 소리쳤다.

“내 생각 읽었냐? 안 읽힌다며!”

“안 읽어도 알아요. 얼굴에 다 보여서.”

“보이긴 지랄.”

뭐가 보인다는 거야. 투덜대며 잡히지 않은 손으로 볼을 더듬대는데 한서진이 물었다.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응. 모르겠어. 뭔지를 모르니까 아예 감이 안 와. 계속 이러면 어떻게 하지?”

가이딩을 못하는 가이드가 되면 센터에서 쫓겨나나? 그럼 오히려 좋은데. 속내를 숨기며 말끝을 흐리자 한서진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형은 방사 가이딩이라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애초에 감이 잡히지 않는 거라면…….”

잠시 고민하던 한서진이 시선만 올려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이렇게 해 볼까요.”

“어떻게?”

“너무 걱정하진 마요. 스킬을 못 쓰는 건 아니니까. 이미 저는 아까부터 가이딩받고 있었어요.”

“아! 패시브니까 그렇겠네. 그럼 굳이 연습할 필요 없는 거 아니야?”

새로운 사실에 눈을 빛내며 말하자 한서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

“가이드는 에스퍼보다 상위 등급이 아니라면 절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어요. 에스퍼는 항상 가이딩을 필요로 하는 상태고 만약 가이드가 가이딩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온몸의 기운이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빠져나갔다. 폭력적이리만큼 위압적인 힘의 차이에 눈앞이 하얘졌다. 무형의 손이 심장을 쥐며 숨통이 죄이는 느낌에 몸을 퍼덕였다.

“허억!”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겨우 들어 한서진을 퍽 치자 순식간에 힘이 거둬졌다. 곧바로 잡혔던 손을 내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발. 지금 나한테 뭐 한 거야!”

경계하며 묻자 담담한 표정의 한서진의 입에서 짤막한 단어가 뱉어졌다.

“가이딩을 받았을 뿐이에요.”

한서진을 바라보던 눈이 흔들렸다. 이런 좆같은 게 가이딩이라고?

“단순한 접촉으로만 이루어지는 가이딩은 에스퍼에겐 장난이나 다름없어요. 에스퍼는 가이드가 가진 전부를 원할 거고…….”

한서진이 시선을 내렸다. 검은 눈이 겁먹어 보호하듯 가슴팍을 가로지른 내 팔에 꽂혔다. 수치심에 입술을 깨물었다.

“가이드는 전부를 뺏기지 않기 위해 보호해야 하고.”

“…….”

“그게 가이딩이에요. 형이 가이딩 조절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고.”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은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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