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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17화 (1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17.

“왜, 그런……. 나는 그쪽이 훨씬 아까운 것 같아.”

심각한 표정으로 뱉은 말에 기사가 박장대소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하하하!! 세상에, 저는 결혼했어요.”

“아. 그래?”

기사는 제 손에 낀 반지까지 보여 줬다. 희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기사가 끼고 있는 반지의 다이아가 꽤나 크고, 질 좋은 상등품이라는 것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유난히 좋아하는 기색을 알아챘는지 기사가 능청스레 말하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예에, 그럼요. 제가 감히 댈 데가 있나요? 워낙 잘생겨서 요즘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고 또 매너도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제 남편보다도.”

“뭐, 그렇다고 쳐.”

‘그래 봤자 늙은이지만.’

기사가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뒷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방향을 꺾고 들어가자 익숙한 검진 센터의 모습이 보였다.

“곧 검진 센터 정류장 도착입니다.”

여러 정류장을 거쳐 가느라 연승연이나 한서진의 차를 탔을 때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 문이 열렸다.

“도착했습니다! 잘생긴 손님, 조심히 가세요.”

내리기 위해 계단에 발을 들였다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기사님은 이름이 어떻게 돼?”

“예?”

기사가 눈을 크게 뜨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나연이에요. 가이드님은요?”

“……주호현.”

***

“호현 님!”

검진 센터 B동으로 가자 미리 연락을 받은 연승연이 로비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포션을 제작할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맡아졌다. 향기롭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익숙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기 가이드 카드.”

“찾으셨군요!! 역시 호현 님은 대단하세요. 저도 더 노력해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손을 씻고 제조실로 들어가자 연승연이 쪼르르 따라왔다. 이것저것 늘여놓고 모두 쓰레기로 만들었던 전과 달리 다루기 어려운 두 개에 집중한 현재, 냄비 안의 포션 상태는 훨씬 좋았다.

“제작 중이었어?”

“앗, 네에……. 저번에 호현 님께서 아, 알려 주신 부분을 수정해서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뭐, 괜찮아 보이네. 한 90% 할인하면 산다는 사람이 나오긴 하겠다. 재료비도 못 건지겠지만.”

“감사합니다!!”

혹평 속에서 조그만 칭찬을 알아들은 연승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지나가듯이 한 조언을 듣고서 그 끔찍한 폐기물을 이 정도로 성공시킨 것을 보니 역시나 꽤 재능이 있었다. 내 스킬로 만들었다면 추가 능력치가 몇 배는 더 붙었을 테지만.

‘아예 감이 없지는 않네. 귀찮긴 해도 역시 데려가도 괜찮겠어.’

나는 스킬이 없어 직접적인 제조는 하지 못했기에 조금 둘러본 후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

편히 앉아 연승연이 꺼내 준 쿠키와 음료를 먹다 가이드 카드와 함께 챙긴 알약이 떠올랐다.

“맞다, 승연아.”

“네. 호현 님!”

주머니에서 휴지 뭉치를 꺼내 건네자 연승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밀어 받아 들었다.

“펼쳐 봐.”

고개를 까딱이자 연승연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티슈를 펼쳤다. 구깃구깃 구겨진 티슈 안에서 두 개의 하얀 알약이 나왔다.

“이건…….”

“너 성분 검사 스킬 있지? 그거 성분 좀 알아봐 줘.”

“네. 있긴 하지만 하급이라 각성자용인지 대분류만 가능합니다…….”

“농담도. 그런 스킬이 어딨냐? 대분류만 되는 게 무슨 쓸모라고.”

“…….”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연승연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어 금방이라도 석고대죄 하려는 듯 손을 움찔대고 있었다.

“죄, 죄송……히끅! 죄송합…….”

“뭐야. 진짜야……?”

“쓸모없는, 스, 킬이지만……. 크흑.”

내 패시브 옆에는 아무런 등급 표시도 없어서 당연히 농담이겠거니 했던 건데…….

조금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야, 승연아. 아니야. 나는 그것도 없잖아. 그냥, 어? 각성자용인지만 알아봐 달라고.”

“넵, 최선을, 꼭 최선을 다해서…… 알아볼게요.”

그냥 별것도 아닌 스킬 한 번 쓰면 되는 걸 뭘 최선을 다한다는 건지…….

하지만 이 말까지 하면 정말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그저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승연이 약을 손에 쥐고 눈을 꼭 감았다. 꼭 쥔 손이 빛나며 손 틈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다시 펼쳐진 연승연의 손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번 스킬을 쓰면 대상이 파괴된다는 것이 성분 분석의 단점이었다.

연승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각성자용은 맞고 안정제류 같아요. 물론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약효가 강한 것 같진 않습니다…….”

“애매하네.”

각성자용 안정제는 힘쓸 때 따라오는 흥분을 진정시키는 약으로, 해열 같은 작은 효과부터 하루 이상을 재워 버리는 마취까지 그 용도가 매우 범용적이었다.

주호현이 가지고 있기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수고했어. 나머지 하나로는 성분 분석 의뢰해 줘. 얼마나 걸려?”

“용도를 밝히면 이틀 안에 나오고, 숨기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어쩔 수 없지. 알려지지 않게 분석해 와.”

“네!”

이제 와 보니 앰풀을 들고 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여 함부로 들고나오기엔 위험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가져올걸.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과 아쉬움을 애써 비워 냈다. 내게 있어서 미지란 없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기다리면 언젠간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고. 뭐, 급할 건 없지.

찜찜하던 기분을 털어 낸 나는 연승연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녹스에서 혼자 일하다 연승연에게 센터나 센터 소속 제작자들의 파벌 이야기를 들으니 꽤나 재미있었다. 나 역시 오던 중 만난 버스 기사 얘기를 했는데, 연승연도 이미 천랑 길드장의 방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들 구경 갔다던데 너는 안 갔네.”

“당연하죠. 호, 호현 님이 오신다고 하셨으니까요…….”

내가 생각해도 할아범보다는 날 보는 게 더 이득일 것 같았다.

“갑자기 성훤이 왜 인기가 많아진 건데?”

“네?”

내 물음에 연승연이 의아하게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온 건 천랑 길드장인데요.”

“응. 천랑 길드장이 성훤이잖아.”

“네? 아닙니다! 몇 달 전에 천랑 길드장 바뀌었습니다. 성훤에서 성산하라는 남자로. 성훤은 천랑 기업 회장으로만 남는다던걸요.”

“……뭐?”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 아니야?”

“아뇨. 굉장히 젊습니다.”

‘아까 버스 기사도 할아범이 아니라 새로운 길드장을 말한 거였구나.’

그제야 속 시원한 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하긴 몇 달 전이라면 내가 한창 태제헌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느라 바쁠 시기였다. 태제헌도 왠지 매일 집을 비운다 싶더라니, 그게 천랑 길드장 계승 때문이었나.

한서진이 복귀하면 또 이렇게 편하게 연승연의 연구실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아 한참 놀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 타고 갈 거라니까?”

“그럼 정류장까지 데려다드릴게요.”

나올 필요 없다고 해도 연승연은 부득부득 제가 데려다준다며 가운을 벗어 놓고 따라 나왔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안에 있던 깐깐해 보이는 남자와 마주친 순간 연승연은 석상이라도 된 마냥 얼어붙었다.

“연승연 씨?”

“아, 바, 바, 박사님!”

“어디 가는 길입니까? 실적 발표가 코앞인데 여유가 많나 보군요. 얼마나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그, 그게…….”

“옆은…… 처음 보는데. 연승연 씨의 일행인가요?”

안경 너머 싸늘한 시선이 날 향했을 때, 나는 곧바로 닫히는 중인 엘리베이터 앞에 몸을 쏙 집어넣었다.

“아뇨? 모르는 사람인데요.”

척 보기에도 연승연의 상급자 같은데 내가 없는 편이 변명하기 쉽겠지. 당황한 박사가 뒤돌기도 전에 연승연의 바짝 긴장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중에 연락하라며 손짓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연승연과 박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서진은 아직 안 왔겠지. 언제 오려나…….”

전화라도 해 볼까 하고 휴대폰을 꺼내다가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내려가야 할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1층을 누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작게 탄식했다.

어딘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안으로 밀려 들어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의아하게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 선 남자의 등이 시야에 한가득 들이찼다.

‘각성자인가.’

꽤나 키가 큰 남자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 금발인가 싶을 정도로 밝은 머리색이 특이했다.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색감이 눈을 홀렸다.

‘라이커의 갈기 같다. 그거 존나 비싼데…….’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을 피해 뒤로 물러나던 남자가 나와 부딪혔다.

“실례.”

“괜찮아.”

살짝 돌아보며 하는 말에 대강 손을 내젓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슬쩍 위로 시선을 올리자 봐선 안 될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놀란 두 눈이 날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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