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19.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하다 돌아오니 어느새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자, 숙소 단지 도착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호현 씨.”
“아저씨랑 누나도 잘 가요.”
기사님이 사 준 아이스크림을 물고 버스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손을 흔들어 잘 가라고 인사한 후 발길을 돌렸다.
센터 내에 편의 시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잘돼 있었다.
‘어차피 바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던데. 놀려면 나도 카드를 들고 다녀야 하나? 뭐, 쓰고 나중에 열 배로 갚아 주면 되겠지.’
주호현의 통장을 떠올리며 터벅터벅 팀 저택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저 멀리 입구 쪽에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뭐야, 한서진?”
괜히 반가운 기분에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한서진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언제 왔냐며 반갑게 물으려는데 막상 한서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디 갔다 와요? 집에 있으랬잖아. 전화도 안 받고.”
“전화 안 왔어.”
“안 받은 거겠지.”
“아냐. 벨소리 안 울렸다니까?”
“확인해 봐요.”
전화는 무슨 전화? 불퉁하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이 들어 있을 주머니를 뒤적였다.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주머니에 입이 떡 벌어지고 아이스크림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 휴대폰!!”
내 외침에 한서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잃어버렸어요?”
“아까까지는 분명 있었는데. 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다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 봤다. 하지만 주머니에 없는 휴대폰이 생겨날 리가 없었다.
“어디 갔지? 전화 좀 해 줘 봐.”
“여러 번 했는데 안 받아요.”
한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검은 장갑 낀 손에 대충 들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주위가 조용해 신호가 가는 소리가 내게도 들렸다. 그러나 신호음만 계속되고 누군가 전화를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얼마간 기다리던 한서진은 뚝 전화를 끊었다.
“안 받아요. 어디서 잃어버렸는데요?”
“몰라. 나갈 땐 들고 갔는데.”
“어디다 떨어트린 건 아니고?”
“내가 앤 줄 알…….”
코웃음 치며 말하다 잠시 뒤로 미뤄 두었던 치욕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말끝을 흐렸다.
‘설마 그때 떨궜나?’
엘리베이터까지는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니 그 미친놈과 부딪혔을 때 떨군 게 분명하다.
“……검진 센터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센터 종합 회선으로 분실물 들어온 거 있는지 알아볼게요.”
“알았어. ……그래도 못 찾으면?”
불안한 마음이 아주 가시지 않아 물어보자 한서진이 한숨과 함께 등을 돌리며 답했다.
“사면 되죠. 사 놓을 테니까, 이제 빨리 따라와요. 늦었어.”
흔쾌히 사 준다는 말에 빤히 한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나갔다가 다른 사람이 쓰는 거 봤는데 내 거보다 좋아 보이던데. 빨간색이고.”
“그걸로 사 줄게요.”
확답을 받은 나는 그제야 신나서 그의 한서진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뭐가 늦어? 왜 빨리 가야 하는데?”
“형 가이딩 돌아왔는지 테스트한대요.”
“테스트?”
“네. 일주일 지났잖아요. 이제.”
일주일이란 소리를 듣자 느릿하게 팀장이라는 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한세, 박가인 둘이 맡아서 이번 주 안으로 어떻게든 가이딩은 할 수 있게 만들어.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테스트라니?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네 손 잡고 가이딩하면 돼?”
“아니요. 수치를 재는 기계가 있어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테스트고 뭐고 지금은 머릿속에 휴대폰 생각뿐이었다.
알약의 정체나 가이드를 그만두는 방법 등 연승연이 알아 올,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많았다. 휴대폰이 있어야 연락이 편할 텐데. 내일이면 찾을 수 있겠지……?
잡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새 저택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잡은 한서진이 바로 열지 않고 나를 돌아봤다. 첫날과 겹치는 모습에 의아하게 물었다.
“왜. 나 또 밖에서 기다려?”
“……아니요. 그건 아니고.”
잠시 침묵하던 한서진이 입을 열었다.
“저 내일부터 바빠질 거예요. 며칠간은 아마 밤에나 들어올 거라.”
“진짜?”
뜻밖의 소식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한서진의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
“아주 신났네.”
“어두워서 잘못 본 것 같은데.”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는 한서진을 따라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우한세의 면박이 들려왔다.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와? 팀원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기계로 하면 된다며. 쟤는 왜 있어?”
한서진을 돌아보며 묻자 대놓고 무시당한 우한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야, 주호현!”
“우한세. 시비 걸지 말고 비켜.”
“맞아. 꺼져.”
한서진을 뒤따라 복도를 통과했다. 뒤에서 짜증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우한세가 분에 못 이겨 욕을 지껄이는 중이었다.
일 층 거실엔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팀장과 그 옆에 붙어 앉은 예성우, 무릎을 올리고 앉아 휴대폰을 하며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우한세의 쌍둥이 여동생 우하윤.
그리고 박가인 앞에 하얀색 기계가 놓여 있었다.
‘저게 가이딩 수치를 잰다는 기곈가.’
팀장과 에스퍼들을 지나치자 시선이 따갑게 내 뒤를 따라왔다.
박가인 옆으로 가 털썩 앉자 누군가의 헛웃음이 들려왔다.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한숨을 뱉은 한서진이 내 옆에 걸터앉았고 박가인이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호…현아?”
“여기 잡고 가이딩하면 되는 건가?”
“응. 맞아.”
기계 위쪽에 잡을 만한 손잡이를 가리키며 묻자 잠시 당황한 듯 보이던 박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을 바라봤다.
“측정 시작할까요?”
“시작해.”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가인이 아래서 펌프형 용기를 꺼내 들었다.
“접촉 전에 젤 바르고 해야 해. 어느 쪽 손으로 할래?”
“여기.”
왼손을 펼쳐 내밀자 박가인이 펌프를 세 번 눌러 내 손에 젤을 짜 줬다. 손에서 미끈대며 흐르는 젤들이 꼭 세 마리의 점액질 가득한 민달팽이같이 느껴져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으윽.”
“조금 끈적거리지. 측정 끝나면 모두 기화되어서 사라지니까 조금만 참아.”
“……으에… 네.”
나도 모르게 응이라고 답하려다 옆에서 툭 치는 한서진의 손짓에 말을 바꿨다.
박가인이 기계의 전원을 켜고 조작하는 것을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계단을 내려왔다. 팀장 옆에 앉아 있던 예성우가 엉거주춤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연형 형. 일어났어요?”
“흐아암, 왜 먼저 내려갔어. 좀 더 자지.”
신연형의 팔이 예성우를 감싸 잡아당겼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번에 우한세도 그렇고 존나 붙어 다니네.’
가이딩 수단이 손을 잡는 거여서 그런진 몰라도 팀원끼리 과하게 친한 모습이 계속 눈에 걸렸다.
완전히 내려와 예성우랑 거실로 발을 들인 신연형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멈칫했다.
“뭐야? 다들 나와서 뭐 해? 주호현은 왜…….”
“오늘 호현이 가이딩 테스트하는 날이라서요.”
그제야 박가인 앞의 기계를 본 신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맞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나?”
소파에 털썩 앉은 신연형이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나도 이제 우리 호현이 가이딩 받을 수 있는 건가?”
그 물음에 여태껏 본 체도 않고 휴대폰만 하던 우하윤이 툭 물었다.
“원래 주호현한테 안 받았잖아.”
“가이딩 기억 아예 없을 거 아니야. 그럼 일반인이나 다름없을 텐데, 깨끗하다고 생각하니까 관심 생기네?”
“아, 진짜. 더러워.”
우하윤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서진 역시 나서서 적대감 짙은 경고를 내뱉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어우, 무서워라. 그거 좀 챙겨 줬다고 그새 정들었나?”
신연형이 과장되게 떨며 빈정거렸다. 표정을 구긴 한서진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우한세가 투덜대며 들어왔다.
“저 새끼 이미 접촉 가이딩 받았어. 둘이 같은 침대 쓰더라?”
“뭐? 야. 한서진 아닌 척하더니 뭐야? 진짜야? 접촉했다고?”
“맞다니까. 내가 봤어.”
신연형이 나와 한서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계속 나를 입에 올리는 대화에 아까부터 들던 의문점을 물었다.
“접촉이 뭔데?”
“뭐?”
“아까부터 접촉, 접촉하던데. 그게 뭐냐고. 손 잡는 거랑 다른 거야?”
내 물음에 거실이 조용해졌다. 휴대폰을 보던 우하윤의 황당한 시선이 나를 향했고 시끄럽던 우한세나 신연형마저 입을 벌린 채 굳었다. 당황스러운 반응에 나 역시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접촉이란 게 내가 아는 의미 말고 다른 뜻이 또 있나?’
박가인마저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성우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나마 믿을 구석인 한서진을 돌아보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같은 거 맞아요.”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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