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1.
한서진이 방금 말한 사람 살리는 것 빼고는 뭐든 만들어 낸다는 수식어와는 다르게 나도 당연히 실패한 포션들과 제조법이 많았다. 인간은 만들 수 없을 거라고 불가능 판정을 내린 레시피들도 많았고.
하지만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일단 도전이 먼저였다. 내일 당장 연승연에게 물어봐야겠다.
‘휴대폰만 있었다면 지금 당장 전화하는 건데.’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신이 나 어서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휴대폰의 행방이 간절했다.
***
날이 밝자마자 휴대폰을 찾아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일어나 보니 한서진은 이미 자리를 비운 이후였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 그제야 한서진이 어제 한 말이 떠올랐다.
-저 내일부터 바빠질 거예요. 며칠간은 아마 밤에나 들어올 거야.
시계를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한참 전에 나간 듯 아무 흔적도 없었다.
“휴대폰 찾아 주고 가지.”
불퉁히 투덜댄 나는 벌떡 일어나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서둘러 나가서 연승연을 만나 봐야 했다.
스킬들이 잠긴 현 상태로는 가이딩 포션 같은 어려운 연구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이 달아 도무지 가만히 앉아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도 다 말리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던 중 섬뜩한 기운에 뒤를 돌아보자 옆의 부엌 아일랜드 테이블에 기대어 빙글빙글 웃고 있는 놈이 보였다.
‘뭐야? 언제부터…….’
놀라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그쪽을 손가락질하며 입술을 더듬댔다.
“너는 신……!”
“…….”
“신……!”
신 뭐더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그런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검지로 손가락질하며 신…… 신만 되뇌자 살짝 비틀거린 놈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호현이 공부 더 해야겠다. 형 이름도 까먹었어?”
“아, 신연형!”
형 소리를 듣자 그제야 이름이 기억났다. 신연형이 내게 다가왔다.
“잘돼 가? 가이딩.”
“어제 봤잖아.”
그다지 이미지가 좋은 놈은 아니었기에 뚱하게 답하자 신연형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하하하, 어. 그런데 서진이라서 걱정되더라.”
“한서진이 왜?”
“서진이는 가이드 경험이 별로 없어서 누굴 가르치긴 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한서진에게 교육자의 재능이 없다는 것에는 나 역시 동의했기에 대충 고개를 주억이는데 신연형이 돌연 내 손을 잡았다. 좆같은 기분에 몸서리치며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뭐야? 미쳤냐?”
“……뭐긴. 나한테 교육받는 건 어떻겠냐는 거지.”
재고할 가치도 없었다. 손을 탈탈 털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곧장 신연형을 지나쳐 식당을 나갔다. 아직도 손등에 벌레 기어가는 느낌이 남아 있어 손등을 바지에 거칠게 닦다 다시금 울컥 화가 치밀어 뒤를 돌아봤다.
신연형은 화가 난 건지 당황한 건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썩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딴 짓 하면 죽는다.”
기분 잡쳤네. 씨발.
***
“아, 안 됩니다…….”
“이상한 짓 안 한다니까? 알려 줘.”
“정말 안 됩니다……. 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승연을 만나자마자 ‘가이딩 포션’에 대한 제조 사항을 공유해 달라고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연승연의 철벽 방어에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눈썹은 뚝 아래로 내리고 말꼬리는 질질 흐리면서도 연승연의 입에선 어떠한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연승연의 고집에 나는 얼굴을 한껏 차갑게 굳힌 채 다리를 꼬고 뒤로 기대앉았다.
“연승연.”
“네……?”
“벌써부터 나한테 숨기는 게 이렇게 많은데 내가 어떻게 너를 믿고 내 수제자로 삼겠어.”
울상을 지은 연승연은 거의 울기라도 할 것처럼 흐려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죄송해요. 호현 님. 그게, 사실…….”
드디어 말한다.
우물쭈물하던 연승연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입사할 때, 윽! 각서를, 악! 썼는데, 끅!”
연승연이 한 마디 뱉을 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쳤다. 머리를 부여잡고 끅끅대는 연승연이 ‘각서’라는 단어를 말하자마자 뭔지 감이 온 나는 급히 달려가 연승연의 입을 막았다.
“야, 야야. 그만! 전결 서약이잖아!”
“흐아윽…….”
전결 서약은 종속 스킬 중 하나였다. 해당 스킬을 가진 각성자의 보증 혹은 제작계 각성자가 전결 서약 속성을 넣어 제작한 아이템을 이용해 이뤄지는 서약인데,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거나 발설하면 엄청난 고통과 함께 각서에 적힌 대로의 제약이 따른다.
사소하게는 일시적 스킬 봉인부터 심각할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제약의 종류는 다양하고 끔찍했다.
태제헌이 자주 쓰는 방법이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가이딩 포션’에 대한 사항을 발설하지 않는 것에 전결 서약의 여부 역시 발설하지 않는 조건이 더해졌겠지.
고통이 심했는지 큰 눈에 눈물을 매단 채 훌쩍이는 연승연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전결 서약했으면 대충 눈치만 줄 것이지 바보같이 그걸 다 말하고 있냐?”
“죄송해서요……. 제가 전겨…… 악!”
“말하지 말라니까!”
꽤나 고통스러웠는지 연승연은 찔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결 서약의 기한은 대부분 사망할 때까지였다.
남의 목숨을 거는 만큼 서약에 들어가는 자원이나 대가도 커 쉽게 진행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양측이 진심으로 동의해야 했기에 과정 자체가 까다로웠다. 그러니까 애초에 조건을 아예 죽을 때까지로 걸어 버리는 거지.
결국 연승연에게 가이딩 포션의 정보는 듣지 못하겠고…….
날로 먹을 기회가 사라지자 조금 아쉽긴 했다.
‘내 스킬만 있었어도 이런 것쯤이야 금방인데.’
그때 잠깐 봤던 비활성화된 내 스킬들이 떠올랐다. 글자 하나, 레벨 하나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돌려 낼 수 있지?
‘반드시 되찾을 거야.’
주먹을 꾹 쥐고 다짐했다.
***
하루 종일 연구실에서 놀다 연승연의 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저번 한서진을 만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연승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핸들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펴는 연승연을 보고는 안전벨트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그냥 여기서 내려 줘.”
“아닙니다! 앞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너 누구냐고 물어보면 할 말 없어. 그리고 저번에 걘 정신계라.”
“저, 저 나름 정신 방비 스킬 레벨 높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내릴 거야. 열어.”
문손잡이를 잡고 달그락대자 연승연이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웠다.
“조심히 가세요. 호현 님!”
“응. 내일 봐.”
창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는 돌아보지 않고 발을 옮겼다. 털레털레 걸어서 저택으로 들어가자 집안 곳곳에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장통이네.’
한서진은 왔으려나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거실에서 밥을 먹던 팀원들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호현아?”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 예성우가 날 부르고 있었다.
“나갔다더니. 늦게 들어왔네…….”
“응.”
“……그, 밥이라도 먹을래?”
대충 봐도 식탁에 앉은 놈이라고는 예성우에 우한세, 우하윤, 신연형.
밥을 먹기는커녕 먹다 얹히지나 않으면 다행인 구성이었다.
웩. 속으로 구역질을 하고는 털레털레 고개를 저었다.
“밖에서 대충 사 먹고 왔어. 먹던 거 마저 먹어.”
“너 형한테 말 똑바로 안 하냐?”
우한세가 뾰족하게 소리친 것을 듣고서야 내가 또 반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싶다가도 우한세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니 짜증 나는 게, 나이로 따지면 우한세 역시 주호현보다 두 살 어렸다. 평소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새끼에 비하면 나는 예의 바른 편 아닌가?
“지는…….”
‘존나 싸가지 없는 게.’는 묵음으로 처리했으나 내 눈빛에서 그를 읽었는지 우한세가 벌떡 일어나 화냈다.
“야! 주호현!!”
거실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에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을 하던 우하윤이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시끄러워. 좀 앉아.”
“우하윤 넌 밥 먹을 때 휴대폰이나 좀 하지 마.”
“너나 잘해.”
우한세와 우하윤이 유치한 걸로 싸우는 사이 턱을 괴고 날 바라보던 신연형이 젓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아직 서진이 안 왔어.”
“알아.”
“뭐 하러 빨리 올라가려고 해. 이리 와 봐. 형이랑 재밌는 놀이 할까?”
개무시하고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누군가 날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자 막 계단에 발을 들인 예성우가 보였다.
“왜?”
“호현아, 너……. 혹시 네 방 갔었어?”
“내 방?”
아무 생각 없이 답하려다 뭔가 절박해 보이는 예성우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간 적 없다고?”
“응. 내 방 어딘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그건 왜?”
“…….”
“내 옷 가지러 한서진이 가 보긴 한 것 같던데. 물어봐?”
한서진을 들먹이자 예성우는 내 말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운 낯으로 입술을 달싹이다 고갤 저었다.
“아니, 아니야.”
“할 말 끝났으면 간다.”
“호현아! 이거 받아.”
예성우가 주머니를 뒤져 약통을 내밀었다. 주호현의 방에서 봤던 것과 완전히 같은 모양의 약통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