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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2화 (2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2.

“뭔데?”

“너 전에도 먹던 약인데, 마나 증가에 도움되는 보조제야. 강의진이라고 유명한 포션 메이커가 만든 건데.”

“강의진이 만들었다고?”

“응. 먹으면 가이딩하기 한결 쉬워질 거야. 앞으로 더 가이딩할 일이 많아질 테니까…….”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강의진이 만들었다고? 이러면 받지 않을 수가 없잖아.

예성우에게서 내가 만든 적 없는 약을 건네받았다.

“고마워.”

마주 보며 웃어 주자 예성우도 긴장이 풀린 듯 따라 웃었다.

내 등에 꽂힌 진득한 시선의 의미가 뭘지 고민하며 마저 계단을 올랐다.

방에 돌아와 열어 보니 역시나 안의 내용물은 전과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들을 모두 변기에 쏟아부었다.

***

한서진은 밤늦어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자다가 얼굴이 간지러워 눈을 뜨자 볼을 꾹 누르던 한서진과 눈이 마주쳤다. 자는 사람을 깨워 놓고는 표정 변화 없이 빤히 바라보는 게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뭘……. 처만지고…… 있어.”

“저 왔어요.”

“나도 눈 있어.”

아직 졸림이 가득해 베개에 얼굴을 부비며 인상을 찌푸리자 웃는 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도 치근덕거리는 손길에 짜증스레 눈을 떴다.

아무래도 바로 자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당장 자는 건 포기하고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뭐 하다 왔어.”

“형은요?”

“나야 뭐, 이것저것…….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새끼야.”

잠을 깨운 것에 대한 짜증에 삐뚤게 물었다. 한서진은 오히려 작게 웃었으며 답했다.

“저도요. 이것저것.”

“그럼 이제 자라. 나도 자게.”

눈을 감으며 대충 옆을 두드렸는데 한서진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대신 서늘한 손가락이 옆을 두드리던 내 손목을 감싸 쥐었다.

“오늘은 가이딩해 주세요.”

평소와 다른 모습에 다시 눈을 떠 한서진을 바라봤다.

“내가 언젠 안 해 줬다고.”

“형 가이딩 잘 못하잖아요.”

“어쩌라고.”

손목을 타고 내려간 한서진의 손이 그대로 내 손에 깍지를 껴 단단히 잡았다. 본능적인 거부감에 손을 움찔하자 한서진이 피식 웃었다.

“손은 잘 타면서 스킨십에는 왜 이렇게 긴장해요?”

“씨……발, 남자끼리 무슨 스킨십이야.”

“그럼 뭔데요?”

“이건, 가이딩. 임마, 가이딩.”

황당하게 답하자 눈을 내리깐 한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스킨십 아니라 가이딩이잖아요. 우린.”

입가에 걸려 사라지지 않는 옅은 미소가 꽤나 불길하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꼭 취한 것처럼.’

결국 참지 못하고 너 술 마셨냐? 하고 물으려는데 한서진이 내 위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가이딩해 주세요. 제대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맞잡은 손을 통해 엄청난 빠르기로 가이딩이 빨려 들어갔다.

“흡!!”

누운 상태에서도 몸을 크게 튕길 정도로 경련이 일었다. 한서진이 그런 나를 당겨 세게 끌어안았다.

남자끼리 끌어안았다는 충격을 느낄 새도 없이 당장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 단단한 팔에 매달려야 했다.

“우욱! 씨…… 야!!”

“하아…….”

팔로 한서진을 밀쳐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목숨줄이라도 되는 양 날 꼭 껴안은 한서진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첫날 한서진이 내 가이딩을 뽑아 갈 때보다는 강도가 약해 죽을 것 같진 않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반항을 멈추고 한서진에게 몸을 완전히 맡긴 후에야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이 개새끼가 지금 내게 강제로 가이딩을 가져가고 있었다.

한서진을 때리기라도 해서 벗어나야겠다 싶어 몸에 힘을 주는 순간 내 어깨를 짓누른 한서진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야.”

“…….”

“한서진. 너 괜찮……. 큭.”

한서진에게선 거친 숨소리만 돌아왔다.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욕을 참으며 결국 버티던 것을 그만두고 몸에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백만 스물세 번 헛구역질하며 생각했다.

‘내일 보자. 개새끼야…….’

***

내 옆에 앉은 한서진을 본체만체하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입술을 깨문 한서진이 손을 뻗다 차마 만지진 못하고 다시 손을 거뒀다.

“미안해요.”

예상대로, 한서진은 가이딩이 부족한 상태였었다. 위험한 상태에서도 조절을 했기에 내가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꺼져.”

“형. 미안해요.”

더 듣지 않겠다는 듯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 버리자 한서진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아픈 덴 없어요? 의사 부를게요. 내상 입었을 수도 있어.”

“…….”

“호현 형.”

“필요 없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은 진짜였다.

물론 내 마나가 모두 빨려 기절하는 건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좆같은 기억이었지만……. 한서진이 조절을 해서 그런지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주 멀쩡했으니까.

그에 생각이 닿자 어제 부들부들 떨며 힘들어하던 한서진의 모습이 떠올라 결국 이불을 걷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지 한서진과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형.”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가이딩이 부족해? 너 가이딩 못 받고 다니냐?”

입을 꾹 다문 한서진은 한참 후 입을 열었다.

“제 실수예요. 무리해서 빨리 돌아오느라 가이딩 관리를 못 했어요.”

“……혹시 너 일 있다는 그거? 다른 팀원들은 어제 쉬던데?”

“전 센터에서 개인적인 일도 많이 맡아요.”

“어떤 거?”

“……심문이요.”

말하면 말할수록 이상한 상황에 아예 몸을 일으켰다.

심문이라면……. 한서진은 정신계. 그리고 심문…….

내 입이 점점 벌어졌다. 한서진은 그를 뭐라고 해석한 건지 변명하듯 말했다.

“어제는, 좀 많았어서.”

“누가? 네가 기억 읽을 사람이?”

“……읽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그 외에 뭐가 더 있다는 건지.

다만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어 한서진을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나는 안 읽히는 거 맞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지금.”

“어? 왜 갑자기 말 피하는데? 안 읽히는 거 맞지? 거짓말하지 말고 말해.”

피식 웃은 한서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읽혀요.”

“그럼 됐어.”

대충 손을 내젓다 한서진을 돌아봤다.

“너는.”

“뭐가요?”

“지금은 괜찮냐고. 나는 수치 낮아서 별로 가이딩도 안 됐을 텐데.”

내 물음에 눈을 크게 뜬 한서진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네. 괜찮아요. 형한테는 그다지 가이딩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대체 어젠 왜 그랬는지…….”

“차라리 욕을 해 임마.”

떨떠름하게 바라보자 손가락으로 제 무릎을 툭툭 두드리던 한서진이 못 참겠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화, 풀린 거 맞죠?”

애처럼 느껴지는 물음에 거들먹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크게 반성하는 것 같아 봐주는 거야.”

어제 가이딩이 부족할 정도로 일을 했다면서 오늘도 나가야 하는지 한서진은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가?”

“네. 한동안은 계속 바빠요.”

“음, 그렇구나…….”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갑자기 멈칫한 한서진이 나를 돌아봤다.

“안 돼요.”

“뭐?”

“지금 무슨 생각했든 하지 말라고요.”

황당한 말에 눈을 깜빡이다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어이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이 새끼가 나를 무슨……!”

옆에 놓인 베개를 집어 던졌다. 한 손으로 수월하게 받아 든 한서진이 입을 열었다.

“오늘 교육받는 것 말고는 일정 없죠? 기사 불러 놓을 테니까 갈 때…….”

“필요 없어. 미리 나가서 누구 만날 거야.”

겉옷을 걸치던 한서진이 멈칫해 뒤를 돌아봤다.

“누구요.”

“있어, 친구. 걔랑 노니까 너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대충 둘러댔지만 한서진은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침대로 다가왔다.

“친구 누구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 기억도 온전하지 않으면서 누군 줄 알고 만나?”

“센터 연구원이야. 저번에 너도 봤잖아. 나 차 태워 준 사람.”

“제작계면 형이랑 놀러 다닐 시간 없을 텐데. 요즘은 특히.”

미간을 찌푸렸던 한서진은 미심쩍게 중얼거렸다.

한서진의 말대로, 가이딩 포션을 만들지 못하게 되자 부서 전체에 비상이 울렸단 소리는 들었다. 그러나 이미 이런 날을 대비해 연승연과 말을 맞춰 놓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걔는 직위 낮고 아직 신입이라 별로 하는 일도 없대. 의심 가면 전화해 보든가. 번호 알려 줘?”

당당히 말하자 한서진도 결국 한발 물러났다. 아직 눈에서 의심을 거두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한쪽에 걸어둔 제복으로 다가간 한서진은 겉옷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내게 던졌다. 날아오는 물체를 단번에 잡아채 확인했다. 빨간색 휴대폰이었다.

“어! 휴대폰! 내 거야?”

“전화하면 받아요.”

“응. 고맙다.”

전의 것보다 훨씬 멋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한서진이 나가고, 나도 조금 빈둥거리다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늘부터 연승연과 기초 중의 기초인, 스킬 없이도 만져 볼 수 있는 포션을 제작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포션 제작 과정이 몸에 익으면 혹시 잠겨있는 스킬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준비를 끝마친 후 현관을 나가려는 순간 어제 느꼈던 것과 같은 섬뜩한 느낌이 목 뒤를 스쳤다.

‘이건……!’

홱 뒤를 돌아보자 역시나 신연형이 서 있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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