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23.
무시한 채 등을 돌렸다. 그러나 채 한 발을 떼기도 전에 어깨를 잡아채는 거센 손길에 벽에 밀쳤다.
“씨발……. 뭐야?”
“이야. 그러면 형 섭섭하다?”
방금 전도 그렇고, 지금도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경계심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굴을 가까이 한 신연형이 내 귓가에 입술을 붙여 속삭였다.
“호현아, 오늘 다녀오면 좀 보자. 알겠지?”
“미친 변태 새끼가!!”
좆같은 느낌에 곧바로 주먹을 날렸지만 신연형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뭐야. 또 어딜…….”
뭔진 몰라도 스킬을 쓴 게 분명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나는 그길로 연승연에게 달려갔다.
검진 센터에 도착해 연락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승연이 헐레벌떡 일 층으로 내려왔다.
“호현 님!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당장 이 재료들 준비해.”
연승연의 품에 종이쪽지를 안기듯 쥐여 줬다.
***
“호, 호현 님…….”
연승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걸 달래 줄 시간이 없었다.
옆에서 저울로 재료 무게를 달던 나는 손짓으로 서둘러 재촉했다.
“빨리, 스킬. 융화시켜. 빨리.”
“뭐, 뭘 만드시는 중인지는 알려 주셔야…….”
“빨리! 재료 탄다!!”
“흐아아아…….”
결국 연승연은 울상 지은 채 끌려와 내가 섞어 둔 플라스크에 스킬을 사용했다.
따로 겉돌던 재료가 완전히 섞여 점도 높은 검붉은 색이 되었다. 연승연이 그걸 보고 두려워하며 물었다.
“이, 이게 뭘까요……?”
“너 성공 시스템창 안 떴지?”
“네…. 진행도 확인해 보면 아직 미완으로 떠요.”
“으음… 어떻게 해야…….”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나는 연승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금구렁이의 독샘 있어? 그거 아니면 대충 상급 몬스터의 독이면 되는데, 대신 어두운 곳 사는 놈들로. 그거 가져와 봐.”
“헤에에엑! 아, 안 돼요! 안 돼요!”
연승연이 차트를 품에 안고는 기겁해 고개를 저었다. 콧방귀 뀌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있긴 있…… 아니에요. 없어요.”
“거짓말하지 마, 승연아. 빨리 가져와.”
“없어요……. 흑, 안 드릴래요. 그건 대체 왜 찾으시는 건가요? 독샘은 포이즌 포션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연승연이 징징대며 고개를 저었다.
약해 보여도 저 징징 모드에 들어가면 절대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난 한숨을 쉬며 머리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지금 스킬도 없어서 효과 중첩은커녕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연승연마저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답답함에 속에서 불이 났다.
“알았어. 그럼 슬라임의 진액. 그건 되지?”
“문제는 없지만…….”
방금 전까지 독샘을 가져오라 한 내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슬라임을 요구하자 연승연은 잠시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봤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가져다드릴게요.”
“응. 초록 슬라임으로 가져와.”
불안한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본 연승연은 제 펜트리를 열었다.
펜트리로 들어가는 연승연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센터 내부에서는 테러나 혹시 모를 사건을 방지해 이공간으로 연결된 인벤토리류의 공간을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제작계만 업무 특성상 유일하게 그를 허락받았다.
주호현은 당연히 열지 못했고.
온갖 재료가 가득했던 내 팬트리와 창고들을 생각하면 아쉬움만 가득했다.
‘여기서 나가자마자 인벤토리 활성화시켜야지.’
그사이 연승연은 다 찾았는지 품에 슬라임의 진액이 든 유리병을 들고 나왔다.
내 앞의 플라스크를 연승연에게 죽 밀며 턱짓했다.
“스킬 써.”
“네. 융합으로…….”
혼자 읊조리던 연승연의 눈앞에 상태창이 떴는지 곧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익! 아, 안 돼요! 이 상태에서 융합을 하면 마약이 되잖아요!”
“돈 줄게. 얼마면 되는데?”
“안 돼요. 호현 님……. 제발 이성적으로.”
“저번에 너 연구 일지 봤을 때 회복 포션에 이속 능력 달려고 한 달 연구하다 실패해서 때려치운 거 있던데.”
“그, 그건…….”
“내 레시피 알려 줄게. 난이도도 어렵지 않아서 지금 만들어도 무조건 성공할걸?”
사악하게 웃으며 말하자 연승연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래도 안 넘어와? 이래도?
한계까지 몰아붙이자 결국 연승연의 눈에 빠른 속도로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곤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저, 저를 시험하지 마세요! 자꾸 이러시면 저, 정제수를 드리지 않을 겁니다!!”
이속 붙은 회복 포션 대신 간직한 양심에 연승연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포션 제작에 무조건 들어가는 베이스인 정제수를 주지 않겠다는 것은 내 포션 제작을 돕는 일에서 손을 떼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런 의지까지 보이자 더 요구할 수가 없어져 결국 혀를 차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쳇.”
겁만 많아서는.
***
결국 나는 아무 소득 없이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연승연에게 받아 온 손바닥만 한 스프레이를 바라봤다.
“이걸 어디다 써.”
이 스프레이를 건네던 연승연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코, 코끼리도 잠재울 수 있는 약입니다. 일단 이걸로…….
“어디서 구라를 쳐. 한 통 다 먹여야지 잠드는 거지, 몇 번 뿌리는 걸로 될 리가 없잖아.”
이건 그냥 수면 유도제였다. 약간의 고통을 동반한.
위력이라고 해 봤자 조금 쓸 만한 후추 스프레이 정도나 되겠지.
콧방귀 뀌며 던져 버리려는데 주머니 속의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연승연 아니면 한서진일거라 예상하며 휴대폰을 든 내 눈에 보인 이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신연형」
“뭐야?”
바로 끊었다.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눈을 감는데 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 새끼 왜 이래?’
아까 나갈 때 보자고 한 것 때문에 전화한 건가.
힐긋 보고는 내 알 바 아니란 생각에 수신 거부를 눌렀다. 질리지도 않는지 끊자마자 전화벨 소리가 또 울렸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할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채 입을 떼기도 전에 반대편에선 살짝 화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현아. 나 똥개훈련시키냐? 벨 세 번 울리기 전에 받는 거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하는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으나 말을 길게 섞기 싫어 참고 답했다.
“……끊으면 전화하지 말란 소리인 거 몰라? 왜 전화했는데?”
[뭐? 푸하하, 너 지금 일부러 끊었다는 거야?]
그럼 아니겠냐? 두 번을 실수로 끊기도 힘들겠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참을 웃던 신연형의 목소리가 다시 전해졌다.
[방으로 와. 일 층 세 번째 방.]
“내가 왜? 싫어.”
[어. 재밌긴 한데, 형 이제 좀 짜증 나려고 해. 왜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할 때마다 한 대씩 맞는다. 바로 내려와.]
“왜 지랄…….”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황당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누굴 개새끼로 아나. 오란다고 가게?’
짜증이 솟아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 버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매트가 기울며 스프레이가 데구루루 굴러왔다.
“한서진이 보기 전에 어디 놔둬야…….”
그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소름 끼치는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기시감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빡친 신연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맞는댔지.”
짜악!
허공에서 날아온 손에 뺨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큭, 씨……발.”
바닥에 주저앉은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온 신연형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어, 너 어떻게 여기…….”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당황한 내 목소리에 반쯤 눈깔이 돌아 버린 신연형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오늘 형이 죽여줄게. 호현아.”
그리고 사위가 암전됐다.
주위의 공간이 어그러지며 해체되고, 어지럽게 부서진 주위가 다시 맞물린 후에 나는 한서진의 방이 아닌 처음 보는 곳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것도 신연형과 함께.
“뭐야, 여긴.”
완전히 변한 주위 모습에 당황해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내 귀로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형 방이야.”
“너…….”
어지러워 현기증이 이는 머리로 겨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주먹 쥔 손안에 스프레이의 매끈한 표면이 느껴졌다.
‘무슨 스킬이지? 포털? 순간이동?’
“그러게 오랄 때 왔으면 좋았잖아. 형이 몇 번을 좋게 말했어, 응?”
“놔.”
턱을 잡은 신연형의 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 쳤다. 있는 힘껏 팔을 쳐 냈지만 에스퍼라 그런지 신연형은 전혀 타격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 뒤로 보이는 문을 바라봤다. 히죽대던 신연형이 손을 뻗어 빨개진 내 왼쪽 뺨을 톡톡 두드렸다.
“눈알 그만 굴려. 무서워?”
“미쳤냐? 나와.”
“야, 호현아. 형이 물었으면 대답해야지.”
“너랑 할 말 없어.”
신연형을 세게 밀치고 지나갔다.
한 발 한 발 걸을수록 점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무력감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가이드의 몸으로는 에스퍼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렇게 화가 나는데도 당장 신연형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미치게 분했다.
손안의 스프레이를 부서져라 쥐었다.
‘이딴 장난감 가지고는 안 돼. 연승연이 뭐라 하든 독약을 만들어서…….’
연승연이 끝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다른 놈을 뚫어서라도 해야겠다 다짐하며 문고리를 잡는 순간 뒤에서 뻗어 나온 손에 어깨가 잡혔다. 그리고 또다시, 순식간에 바닥과 천장이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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