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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4화 (2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4.

아래로 추락하는 공포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정작 내 등에 닿은 것은 바닥이 아닌 푹신한 매트리스였다. 그를 인지하기도 전에 딱딱한 신발 밑창이 거세게 명치를 밟아 왔다. 고통스러워 둥글게 만 몸 위로 신연형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허윽.”

“하급이라 별 맛도 없을 새끼인데 그 한서진이 끼고도는 게 신기해서 관심 가져 줬더니…….”

힘을 줘 짓누른 발에 숨이 막혔다. 쥐고 있던 스프레이도 놓은 채 두 손으로 종아리를 퍽퍽 때렸지만 신연형은 외려 놀리듯 더 세게 발을 짓이겼다.

“감사해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싸가지가 없었다. 그치?”

“으윽, 미친 새, 끼야…….”

숨을 헐떡이다 눈이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야 발이 떨어졌다. 급히 숨을 들이쉬기가 무섭게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깔고 앉은 신연형이 내 턱을 쥐고 고정했다.

“어디 한번 한서진이 그렇게 싸고도는 가이딩 좀 받아 보자. 괜찮으면 형이 예뻐해 줄게.”

내 얼굴 가까이 내려오는 신연형의 역겨운 면상을 보자마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씨발! 싫다고 이 개새끼야!!”

“큭,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제대로 들어갔는지 주춤한 신연형이 한쪽 볼을 감싸 쥐었다. 완전히 눈이 돈 신연형이 커다란 두 손으로 내 목을 단박에 쥐어 졸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가이딩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숨통이 죄여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발버둥을 쳤지만 신연형에게 눌린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바로 위에 있는 신연형의 얼굴도 흐려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양 손을 마구잡이로 긁고 헤집었다. 순식간에 가진 마나가 바닥을 보였고 몸을 유지할 기력도 더 이상 없었다. 정신을 잃고 기절할 것만 같던 순간, 손 아래 구겨지던 이불에서 뭔가가 데굴 굴러왔다. 손끝에 만져진 매끈한 감촉에 이게 무엇인지 느릿하게 인지했다. 흐려져 가던 정신에 마지막 빛이 들었다.

‘내가 씨발, 죽을 때 죽더라도…….’

손가락을 튕겨 뚜껑을 벗겨 내고는 내 가이딩을 뽑아 가느라 무아지경인 신연형의 얼굴을 향해 스프레이의 입구를 겨냥했다. 그리고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눌러 분사했다.

치——익!!

“끄아아아악!!”

분사되는 액체를 눈에 직방으로 맞은 신연형이 끔찍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대로 옆으로 쓰러진 신연형이 제 얼굴을 감싼 채 몸부림치는 사이 비틀거리며 그 아래에서 벗어났다.

“……발. 얼굴 대.”

침대에서 일어나 반쯤 정신이 나간 신연형의 손을 떼어 내곤 드러난 얼굴을 향해 다시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치——익!

“흐아아아악!”

치——익!

치——익!

칙, 칙, 칙…….

통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모두 소모되었는지 가벼워진 스프레이는 푸쉬식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생을 다했다. 젖을 정도로 뿌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엔 다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신연형은 이젠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신연형의 얼굴에 빈 스프레이 통을 던지고는 등을 돌렸다. 다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려 부지불식간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머릿속엔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정신이 깜빡깜빡 나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문 앞에 다다라 있었고 또 깜빡이니 계단 난간을 잡고 있었다.

‘아, 밖이네…….’

신연형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까무룩 정신을 잃으며 그대로 몸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주호현의 몸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큰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온 우하윤은 다리는 계단에 걸친 채 제 방문 앞에 떨어져 있는 주호현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

느릿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꼭 꿈을 꾸는 것처럼 몸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시야는 온통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꿈인가.’

그때 청량한 효과음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지며 눈앞에 빛나는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이건……!’

{ 메인 퀘스트 }

퀘스트창이었다. 그것도 황금색.

황금빛 알림은 시스템의 알림 중 최고위 등급을 상징했다. 매우 위험해 목숨을 걸어야 하거나, 그 보상이 매우 클 때, 혹은 일반적으로 겪을 수 없는 상황이나 단발성이 아닌 어려운 연계 퀘스트일 경우가 이러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황금빛 시스템창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헌터들 사이에서는 착시로 잘못 봤거나 S급들이 신비주의를 위해 지어 낸 말이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물론 드물긴 하니 이해는 했다. 나조차도 SS급 스킬을 받으며 각성할 때, 전설급의 포션을 만들어 냈을 때, 그리고 포션 마스터의 칭호를 받았을 때 딱 세 번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아니, 이제 네 번이지.’

벅찬 심정으로 눈앞의 황금빛 시스템 창을 읽어 내렸다.

{ 메인 퀘스트 }

#1. 주호현의 사인을 밝혀라.

난이도 : A

제한 시간 : 30일

보상 : 중급 스킬 회복(특수/S급/SS급 제외)

실패 시 퀘스트·스킬 영구 삭제

‘연계 퀘스트잖아!!’

황금빛 시스템창만큼은 아니지만 연계 퀘스트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중 한 단어가 내 눈길을 끌었다.

‘주호현의 사인……?’

단순히 내가 주호현의 몸에 들어와 버린 게 아니라 주호현이 죽었다는 말인가.

대체로 A급 이상부터는 단신으로 해결하기 힘든 수준의 퀘스트라고 여겨졌다. 내가 클리어했던 상위 퀘스트들의 경우도 녹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재료 수급이 어려워 쉽게 깨지 못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엔 A급이라기엔 퀘스트의 내용이 그렇게까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주호현이 죽었다면……. 예성우가 죽인 거 아니야?’

주호현의 방에서 나온 수상한 약과 앰풀들, 그를 다시 내게 전한 예성우. 아니라면 서운할 정도인데.

의심스러워 다시 찬찬히 읽어 보다 황금빛 알람창 제일 아래에 작게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

.

실패 시 퀘스트·스킬 영구 삭제

※거부 불가능

‘아 뭐야. 거부 불가능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잖아.’

실패 시 퀘스트 영구 삭제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라면 해야지.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외쳤다.

‘수락!’

눈앞의 시스템창이 환히 빛나더니 글자가 사라지며 이번엔 다른 내용을 띄웠다.

[강의진] ◀ ▶ [주호현]

동기화하시겠습니까?

►Yes

►동기화한다.

►네.

‘장난하나…….’

거부 불가능에 이어 세 가지 선택지 다 예스밖에 없는 시스템창을 석연찮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글자가 바뀌며 훨씬 작아진 시스템창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행률 0%」

.

.

「진행률 1%」

「진행률 2%」

.

「진행률 9%」

「진행률 10%」

「진행률 11%」

.

.

.

.

「진행률 20%」

20에서 멈춘 숫자와 동시에 눈앞에 다시금 빛나는 시스템창이 생겨나며 글자가 끝없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패시브 스킬이 열렸습니다!」

[하급 연금술이 열렸습니다!]

[하급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급 채집이 열렸습니다!]

[하급 채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급 제작이 열렸습니다!]

[하급 제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급 용해가 열렸습니다!]

[하급 용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하급이라 그런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스킬들의 하위 호환인 스킬들이었다.

명명되지 않은 특별할 것도 없는 스킬창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손을 뻗는데 눈앞에 뿌옇게 중첩되던 상태창이 사라졌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진행률 20%)

곧이어 내 머릿속엔 ‘주호현’의 과거 기억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주호현’의 기억이라면 주호현의 시선에서 보여야 할 텐데, 시스템의 입김이 닿은 건지 나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그의 기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낡은 영화 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재생되다 사라졌다.

부모님과 손잡고 놀러 다니던 어릴 적부터, 처음 눈앞에서 펼쳐진 던전 브레이크. 교복을 입던 학생 시절…….

‘나는 학교 못 가 봤는데.’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주호현이 교복을 입은 것을 보자 꽤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일반인들이 다닌다는 학교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제대로 보려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교복을 입은 기억이 끊기고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아, 뭐야…….’

진행률이 20%밖에 되지 않아 그런지 기억들은 전후 사정 없이 짤막하기만 했다. 여러 번 바뀌던 기억은 이제 내가 아는 곳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에스퍼·가이드 센터>

센터에서부터 주호현의 옆엔 새로운 남자가 보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한 낯빛의 남자였는데,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딱딱한 주호현마저도 환한 얼굴로 웃음 지었다.

‘맨날 침침하게 어둡더니……. 역시 이 얼굴론 웃는 게 낫다니까.’

둘은 신입들과 훈련을 받으며 일상을 보냈고 교육생을 졸업하고 나서도 함께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에스퍼 팀을 배정받게 된 것이다.

그제야 팔짱 끼고 관전하던 내게도 의문이 들었다. 같은 팀이라기엔 처음 보는 남자가 어색했던 탓이다.

‘에스퍼 중에 저런 사람이? 아니야. 주호현과 같이 교육을 받았으니까 가이드겠다……. 하지만 차트에서 저 사람은 본 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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