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엑스트라 파업 선언-26화 (26/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6.

계단을 내려가던 중 층계참 창밖으로 이제 막 저택 밖을 빠져나가는 하얀색 구급차가 보였다. 그 안에 타고 있을 신연형을 생각하자 속이 다 시원했다.

‘너는 연승연 때문에 산 줄 알아라.’

헌터에게는 써 봤는데, 헌터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한 에스퍼에게는 효과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헌터보단 효과가 덜하겠지.

저 멀리 앞서가는 우하윤을 따라 거실로 가자 팀장과 우한세, 그리고 예성우가 앉아 있었다. 나를 왜 불렀는지 궁금해 멀뚱히 서 있자 팀장이 빈자리를 턱짓했다.

“앉아.”

‘명령질이야. 씨발.’

속으로 투덜대며 스툴에 대충 걸터앉자 순간 눈앞에 현재 상황과 비슷한 광경이 중첩되었다가 사라졌다.

어깨를 굽히고 기죽어 앉아 있는 주호현과 그 앞의 팀원들.

‘어? 뭐야. 이거.’

순식간에 사라진 장면에 눈을 비비는데 우한세가 대번에 소리쳤다.

“야, 너지?”

우한세의 고함 소리를 듣자 손가락 끝이 미약하게 파들 떨렸다. 내 손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뭐야? 미친, 왜 떨어? 야. 정신 차려.’

“우한세.”

팀장이 경고하듯 말하자 우한세는 외려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솔직히 연형 형한테 그럴 애가 또 누가 있다고? 딱 봐도 쟤잖아.”

우한세의 말에 혀끝을 깨물었다. 왠지 일어났는데도 평화롭다 싶더라니 아직 안 들켜서 그런 거였나. 지금은 한서진도 없고…….

결국 우한세가 예성우의 만류에 의해 앉혀진 후 팀장이 나를 바라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또 위압감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불안한 감정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짚이는 데가 있었다.

‘그 상태창.’

「[강의진] ◀ ▶ [주호현]

동기화하시겠습니까?」

동기화가 이걸 말하는 거였나. 씨발, 이딴 거 동기화시키지 말라고!!

사소한 행동들에 겁먹어 주춤댈 때마다 내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다.

동요하는 내 눈빛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팀장의 눈매가 조금 더 매서워졌다.

“신연형이 쓰러진 걸 성우가 발견해서 방금 병동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신연형을 그렇게 만든 범인을 찾는 중이고.”

팀장은 범인을 찾는다 말했지만 그의 눈을 마주한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새끼 다 알면서 묻네?’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팀장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이것, 뭔지 알고 있나?”

완전히 비어 버린 스프레이는 연승연이 직접 제작한 아이템이라 겉에는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지막에 화가 나서 신연형의 얼굴에 던져 버린 게 이제 와 조금 후회됐다. 그냥 챙겨 나올 걸 그랬나……. 그래 봤자 언젠간 들켰겠지만.

깨어나자마자 앉혀 놓고 취조하듯 말하는 놈들을 불만스레 바라보다 말했다.

“내 건데.”

“……뭐?”

“주호현. 너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은 알아? 씨발, 연형 형은 지금……!”

옆에서 따지는 우한세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팀장의 분노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고, 또…….

‘뭐야. 몸이 안 움직여.’

또 개 같은 에스퍼의 이능일게 분명했다. 동기화 때문인지 몇 배로 쿵쾅대는 심장에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몸을 굳힌 채로 팀장을 노려보는데 그가 손으로 스프레이를 툭 쳤다. 데굴데굴 굴러온 스프레이가 내 앞에서 딱 멈췄다.

“네가 이걸로 신연형을 공격했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목까지 굳었다. 명확한 그의 의도에 결국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 답했다.

“맞… 아.”

“역시! 내가 말했잖아! 쟤 기억 잃은 거 거짓말이라고!! 저거 다 수작 부리는 거라니까?”

우한세가 바나나 뺏긴 원숭이처럼 날뛰었다. 결국 그 소란에 팀장이 부르지 않은 박가인이며 최재희까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소란을, 이런…….”

“한세야. 왜 그래?”

“주호현 저거 기억 잃은 거 다 거짓말이야! 저 새끼가 연형 형한테 이상한 거 먹여서 지금 형 가사 상태라고! 이대로 깨어나지 않…….”

“그거 그냥 수면젠데.”

내 말에 우한세가 그대로 멈춰 날 돌아봤다.

“……으면, 뭐?”

“그냥 수면제라고. 안 죽어.”

아쉽지만.

내 진심은 속으로만 중얼거리고는 팀장에게 말했다.

“그 미친 새끼가 변태 짓해서 좀 뿌렸어. 말로 하려고 했는데, 가이딩 빼앗기는 중이라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 순간 거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아무도 관심 둘 생각하지 않고 있던 목 줄기에 와 닿았다. 손자국 그대로 멍이 들어 있었다. 우한세마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호현아…… 너 멍이.”

박가인이 크게 놀라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때 떨리는 목소리가 박가인과 내 사이를 가르고 들려 왔다.

“다…… 제 탓이에요.”

“성우야.”

“호현이한테까지 그랬을 정도면 연형 씨가 가이딩이 부족해서 그랬나 봐요.”

쟤는 왜 나서? 하는 생각이 들기 잠시, 팀원들은 곧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겨우 가이딩 때문에 이 짓을 벌였다고?”

“내가 신연형 일 벌일 줄 알았다.”

“너 지금 주호현 감싸는 거야?”

“야. 그건 아니지. 유치하게 굴지 마. 지금 가이드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는데 가이딩 강취하려고 했대잖아.”

“가이드한테 가이딩받는 게 뭐 어때서! 너 이러는 거 수윤 형이 안다면 얼마나….”

“너만 수윤 오빠 생각해? 함부로 들먹이지 말라고 말했지, 내가.”

싸우는 꼴 보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성에 골이 때렸다.

‘무서워……. 무서워…….’

고성과 거친 태도에 주호현의 기억이 반응했는지 뭔가가 내 귀에 대고 무섭다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한창 싸우다 밀리던 우한세의 불똥은 곧 내게 튀었다.

“여태까지 봐줬는데, 네 책무 다 안 해? 네가 가이드면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잖아.”

“한세야, 아직 호현이한텐 어려운…….”

“누나도 그만 받아 줘요. 그러니까 쟤가 그 쉬운 일 가지고도 엄살 부리는 거잖아! 현장을 나가 달랬어, 아니면 어려운 임무를 맡겼어? 그 쉬운 것 하나 못해?”

‘무서우…….’

“넌 꺼져, 좀!!”

내 고함에 우한세와 머릿속의 주호현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우한세가 황당히 물었다.

“너, 너 지금 나한테 그런…….”

“가이딩이 변태 짓 받아 주는 거냐? 네가 풀어 줘. 그럼.”

“뭐? 이 씹,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 보자 하면 뭐? 보기만 하지 말고 쳐 봐, 쳐 봐. 씨발 놈아.”

우한세가 금방이라도 치려는 듯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에스퍼라서 힘으로는 상대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홧김에 크게 발을 떼자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 다 앉아.”

“으억!”

“큭!”

우한세와 나는 그대로 무릎이 꿇려졌다. 무형의 힘에 몸이 꽉 압박되고도 서로를 한 대라도 치려고 몸을 꿈틀댈 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등 뒤에서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선을 피해 잠깐 몸담고 있는 팀의 일에 쓸데없이 관여하기 싫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쓰러졌다가 깨어난 주호현이 기억 상실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변한 태도에 호기심이 일어서였을까.

-제가 할게요.

그건 그저 잠깐의 충동이었다.

기억을 잃은 주호현은 통제 불능의 망나니였다. 가이드라고는 차마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주호현에 어이없기도 잠시, 또 어떤 면에선 순진한 구석이 있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냥. 심심하잖아. 혼자서 뭐 해.

-같이 좀 자면 안 되냐?

-잡아. 가이딩해 줄게.

-오늘 나 때문에 까여서 기분 안 좋지.

.

.

.

-너도…… 나 싫어했냐?

한서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호현은 짧은 시간에 제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젠 그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팀 임무보다 잦은 제 개인 임무를 끝내고 팀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기다려지긴 처음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기다려진 것까진 아니고 궁금한 정도. 이상할 건 없다고 여겼다. 또 그 망아지 같은 주호현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이딴 상황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고도 엄살 부리는 거잖아! 현장을 나가 달랬어, 아니면 어려운 임무를 맡겼어? 그 쉬운 것 하나 못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란이 평소와는 다른 상황임을 알렸다. 본능적으로 주호현이 관련되어 있음을 예감하고 안쪽으로 급히 발을 옮겼다. 주호현을 만날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실로 들어선 제 눈에 보인 것은 팀원들이 보는 가운데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주호현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낯설도록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파들거리며 돌아보지도 못하는 호현의 등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그러고 있어? 나한테 늦었다고,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면서 투덜거려야 하잖아. 당신.

“한서진. 지금 이건.”

“……아니. 됐어요.”

팀장이 입을 열었지만 고갤 저은 서진은 제 왼손의 장갑을 벗어 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예성우의 손목을 잡아챘다.

“한서진 지금 뭐 하는 거야!”

“서, 서진아……. 나 무서워.”

한서진이 이능을 쓰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예성우가 놀라 몸을 바짝 움츠렸다. 단 몇 초 만에 예성우에게서 근래의 기억을 읽어 낸 한서진의 표정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