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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7화 (27/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7.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차마 손을 뿌리치지 못하던 예성우는 한서진의 손에서 힘이 풀리자마자 급히 한서진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한서진은 그를 잡지 않고 팀장을 응시했다.

“염력 푸세요. 피해자에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읽었으면 알 텐데. 지금 팀 내 불화를 해결 중인 것 안 보이나.”

“에스퍼가 가이드의 동의 없이 강제로 가이딩을 탈취하려 한 사건보다 우선해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니 놀랍네요.”

비웃음을 감추지 않은 한서진의 말투에 팀원들 모두 놀라 팀장과 한서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서진은 그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가이드가 정신을 잃을 정도의 가이딩은 재판에 회부될 것도 없이 본부장급에서 최대 징계가 가능한 수준의 범죄입니다.”

“그게 진짜일 경우의 얘기지.”

“……진심이십니까?”

“현재 신연형은 정체 모를 약물에 당해 의식을 잃은 상태다. 주호현은 방금 제 입으로 그 약물이 제 것이라 실토한 상태고.”

팀장의 무감한 시선이 주호현에게 닿았다.

“섣불리 누가 피해자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란 말이다.”

“주호현은 가이듭니다. 이런 상황에선 가이드를 보호하는 게 당연한….”

“주호현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절차에 따라 보호할 것이다.”

더 이상의 이견은 없다는 듯 완고한 팀장의 태도에 허탈한 한숨을 내뱉은 한서진은 주호현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가요. 일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주호현에게 닿는 순간 머릿속에 흘러들어 온 선연한 공포에 한서진은 불에 덴 듯 닿았던 손을 뗐다.

“이게 무슨…….”

그동안 읽히지 않던 주호현의 생각이 읽혔다는 놀람보다도 이 정도로 격렬하고 선연한 감정이라면 패닉 상태일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굳은 손으로 주호현을 부축해 일으키자 겨우 염력에서 풀려난 우한세가 한서진을 노려보며 매섭게 소리쳤다.

“너 진짜 미쳤냐?”

“나와.”

“왜 이제 와서 이래? 너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잖아!!”

이들 짓이다. 주호현을 이렇게 만든 건.

우한세의 말을 모두 무시한 채 주호현을 마저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풀썩 꺾여 넘어지려는 몸을 황급히 안아 부축해 현관 밖까지 나왔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 주호현의 입술이 달싹여 옆을 돌아봤다.

“……진.”

저도 모르게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겨 주는데 살이 맞닿으며 전보다 조금 더 구체화되고 직접적인 감정의 생각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무서워. 제가 잘못했어요. 내 잘못이야.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착잡한 심정에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려 ……야.”

“형.”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버텨 서려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억울함에 얼마나 깨물고 버텼는지 핏방울이 맺혀 붉어진 입술이 눈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괜찮아요. 일단 나갈 테니까,”

무리하지 말라며 달래고는 다시 바깥으로 부축했다. 하지만 멈춰 선 주호현은 어떻게든 꼭 말해야겠다는 듯 덜덜 떨리는 손을 까딱였다.

이렇게까지 제게 하려는 말이 뭘까. 한서진은 깊은 한숨과 함께 주호현에게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곧 작지만 빡친 주호현의 목소리가 귀에 곧바로 꽂혔다.

“……발 다리 존나 저리다고…….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해. 이 새끼야.”

“…….”

“사람 꾸겨져 있는 거 봤으면 먼저 일으켜 주기부터 해야지 할 말 다 하고 오는 게 어디 있어. 재판이고 나발이고 당장 내 다리가 괴사할 뻔…….”

긴 시간 홀로 사투를 벌인 주호현의 억울함은 한참 동안이나 길게 이어졌다.

***

한서진의 옆자리에 탄 나는 멍하니 창밖에 지나는 풍경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바람이 내 앞머리를 간질이는 것을 알아채고 멍하니 시선을 올리자 내가 조작하지도 않은 창문이 조금 내려가 있었다.

“더 내려 줘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자 한서진이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바람 맞는 거 좋아하잖아.”

“어? 어. 그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건데?”

“그 난리를 피우고 숙소로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달리 갈 데라도 있어?”

슬쩍 곁눈질로 나를 바라본 한서진이 가볍게 답했다.

“집으로 가야죠.”

“집?”

“가 보면 알아요.”

일개 에스퍼인 한서진이 숙소 말고 다른 집이 있다고?

그 의문은 막 차가 다리에 진입하며 완전히 사라졌다.

“와! 뭐야?”

밤이 되어 넓은 강 양 끝을 잇는 교량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낮에 봤을 때는 특별할 것 없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반짝이는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몇 배나 더 멋지게 느껴졌다.

“강 건너로 넘어가?”

“강 아니라 바다예요.”

“바다라고?”

“센터는 인공 섬 두 개로 이루어져 있어요. 저건 그 둘을 잇는 다리고.”

“그냥 강이 아니라 섬이 두 개인 거였다고…….”

열린 창문에 바짝 붙어 바깥을 바라보자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건너편 섬은 가 본 적 없죠?”

“응. 이도교는 밤에 보는 게 훨씬 낫다.”

내 중얼거림에 한서진이 멈칫했다.

“……누구랑 와 본 적 있어요?”

“응. 연승연이랑 드라이브한 적도 있었고 저번에 버스 기사가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순환 버스 타고도 와 봤는데 그때도 봤지. 낮이었지……마안?”

갑자기 손을 올리고 있던 창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닫히기 직전 손을 빼내 한서진을 돌아봤다. 왠지 심기가 불편한 듯한 한서진의 모습에 의아하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닫아?”

“쓸데없이 나다니지 말랬죠.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요.”

“무슨 상관인데.”

“위험하잖아.”

“아니, 야. 갑자기 무슨……. 연승연은 너도 알잖….”

“뭔승뭔인지는 그렇다 치고 버스 기사? 본인이 기억을 잃었다는 자각은 있는 거예요? 오늘도 마찬가지야.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경각심이라곤 없지.”

졸지에 봉변을 당한 기분에 황당하고 억울해 입이 튀어나왔다. 잔소리에 귀가 찢어지는 것 같아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입 모양으로만 중얼거렸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창문에 다 비쳐요.”

“전방 주시해. 새꺄!”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 섬으로 간 차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 초고층 고급 빌딩 밀집 지역으로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단지 내의 주차장에 차를 댄 한서진을 따라 내리며 얼떨떨하게 물었다.

“야, 너 여기 들어와도 돼?”

“…….”

“쪽팔리게 걸려서 쫓겨나고 이러는 거 아니지? 그럼 미리 말해. 너 모르는 척하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와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던 한서진이 고갯짓하며 어서 들어오라 재촉했다.

내가 타자 한서진은 가장 꼭대기 층을 눌렀다.

‘옥상?’

한서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꼭대기 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궁금증 반 설렘 반으로 한서진을 따라 내리자 옥상일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복도 끝엔 단 하나의 문만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문으로 직진하는 한서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한서진이 손잡이를 잡자 생체 정보를 인식한 문이 열렸다. 바로 드러나는 커다란 현관에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집이잖아?”

“들어와요.”

한서진이 내준 실내화를 대충 꿰어 신고 안으로 들어가자 널따란 거실과 복도가 나를 반겼다. 층고가 높아 둘러보니 역시나 한쪽에는 올라가는 계단까지 있었다.

“이 층까지 있어?”

청소는 깔끔히 되어 있었지만 사람이 머문 흔적이 없는 집이었다. 한서진은 집 안을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며 커튼을 치고 불을 켰다.

척 봐도 비싼 자재들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매끄러운 가구들. 채 날아가지 않은 새 소파의 가죽 냄새 등. 가히 마음에 드는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비해 그 상자 같은 방은 다시 생각해도 괘씸했다. 흡족하게 주위를 스캔한 나는 곧바로 한서진을 비난했다.

“이런 데가 있으면 빨리 데려왔어야지.”

“……만 아니었어도 올 생각 없었다니까요.”

작게 변명한 한서진은 제 겉옷과 장갑을 대충 벗어 아일랜드 탁자 위로 던져두었다. 정말 제집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다시금 물었다.

“여기 진짜 네 집이야?”

이렇게 좋은 곳이?

생략된 뒷말을 표정에서 읽었는지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던 한서진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다 답했다.

“사정이 있어서요.”

“무슨 사정?”

“……대체로 사정이 있다고 둘러대는 건 그쪽이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란 소리예요.”

까칠한 대답에 붙어 있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싸가지 없는 새끼. 존나 비싸게 구네.’

속으로 투덜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한서진이 멈칫했다.

“왜 그런…….”

“뭐?”

한서진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쳐다봐도…….”

뭐라는 거야? 지가 쳐다보면서.

의아하게 바라보자 말을 다 잇지 못한 한서진은 시선을 들었다 떨궜다 다시 나를 바라봤다 별 지랄 염병을 떨더니 갑자기 등을 돌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냉장고 문을 쾅 소리 나게 닫는 행태에 결국 참다못한 내가 미쳤냐고 물으려는 순간 머리를 거칠게 헤집은 한서진이 긴 다리로 내게 걸어왔다.

“제가 그렇게 궁금해요?”

“……너 아까부터 대체 무슨 헛….”

“알겠어요. 말해 줄 테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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