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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29화 (2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29.

“뭐야?”

“왜요.”

“왜 여기 눕느냐고.”

“……여기 제 방이에요.”

“방도 많은데 여기서 자게?”

한서진이 한숨을 뱉었다. 또 내가 뭘 했다고.

신연형 일이나 내일 연승연을 만나러 가는 거나. 센터 내에서는 한서진이 필요했다. 혹시 신연형에게 접근하는 것에 한서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야. 한서진.”

한서진이 말없이 나를 돌아봤다.

“신연형 말이야…….”

신연형이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한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서진이 팔을 뻗어 내 가슴팍을 세지 않게 뒤로 밀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자요. 형이 신경 쓸 일 아니야.”

“어? 야, 아니. 내 일인데 왜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어쨌든 벌여 놓고 튀었잖아? 끝은 내야 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쪽 일은 내가 처리할 거니까.”

한서진의 말에 나 역시 황당하게 몸을 일으켰다.

겨우 연승연이 준 스프레이 하나 뿌린 걸로 신연형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 계획을 말했다간 한서진이 포션 만드는 법을 어디서 배웠느냐며 캐물을 게 뻔했고.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쳤다.

“나도 그 새끼 이대로 못 보내. 복수는 해야 할 거 아니야.”

“……형이 무슨 복수를 해요.”

네가 뭘 할 수 있냐는 듯한 눈빛.

한서진이 나를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닌 걸 알았지만 막상 그 시선을 마주하자 자존심이 상해 울컥했다. 그러나 휴대폰도 없고 차도 없는, 빈털터리 몸으로는 연승연을 만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한서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진지한 눈빛으로 한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서진. 나 한 번만 믿어 봐. 따로 신연형 만날 수 있게 자리 만들어 줘. 그 개새끼한테 꼭 내 손으로 복수할 거야.”

“…….”

말없이 날 바라보던 한서진의 새하얀 손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볼에 닿았다. 서로의 살이 맞닿은 순간 한서진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어차피 이 새끼 내 생각 못 읽잖아?’

당당히 생각하며 그 눈을 마주하는데 한서진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그리고…….

한서진이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어어?”

놀라 몸을 바짝 굳혔다. 귓가에 한서진의 푹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척 좀 그만해요.”

“……뭐?”

당황해 밀어냈지만 한서진은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제 품으로 끌어당긴 채 나직이 말했다.

“이제 형 생각 읽혀. 진짜 속마음이 어떤 건지 다 알았어. 그러니까 강한 척 좀 그만해요.”

생각이 읽힌다는 한서진의 말에 놀라 멍하니 중얼거렸다.

“……신연형한테 ……먹이려고 하는 걸 읽었다고?”

“그렇게나 무서워하는 줄 알았으면 그런 식으로 방치는 안 했을 거야.”

“뭐래, 씨발! 무슨 헛소리야? 내 진짜 마음은 신연형 ……만드는 거야!!”

S급은 무슨, 이거 순 돌팔이 아니야? 결국 등을 퍽퍽 치며 꺼지라고 소리치자 머리 위에서 또 다른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꺼져! 꺼지라고!”

“그렇게 말 안 해도 오늘 혼자 둘 생각 없었어요. 원래도 형 혼자 자는 거 무서워하는 거 아는데 어떻게 혼자 둬.”

“야, 한서진!!”

잠깐 사이에 귀가 먹었나? 아니면 정신계 에스퍼의 새로운 폭주 방향이 잠깐 돌아 버리는 건가?

세게 항변했지만 한서진의 가슴팍에 가로막힌 목소리는 미처 완성되지 못했다.

***

“하아아암…….”

햇살 좋은 날 아침, 상쾌하게 눈을 뜬 연승연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혹시나 호현 님께 연락이 와 있을까 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꼭꼭 휴대폰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마침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호현 님이 아니잖아……. 잠깐, 이게 뭐지?”

휴대폰에 뜬 새로운 번호에 실망하기도 잠시, 내용을 보자 호현 님이 맞았다.

「열대 율무, 심해 율무, 늪고사리, 얼룩고사리, 독고사리…….」

재료를 준비해 놓으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재료들만 봐서는 어떤 포션이 만들어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 대단해…….”

호현 님이 알고 계신 지식들은 책에도 나오지 않고 상급 박사님들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포션 메이커는 강의진이었지만 그것도 제가 호현 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

‘가이드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기량이라면……. 어쩌면 강의진보다 대단한 분이실지도 몰라.’

이런 귀한 분을 센터에서 썩도록 할 수는 없었다. 호현 님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제게 주어진 사명과도 같았다.

출근한 연승연은 재료실로 향했다. 연구의 시작은 재료를 배급받는 것부터 시작이었기에 오늘도 재료실 앞은 연구원들로 인산인해였다.

“이봐, 승연! 오늘도 일찍이로군.”

“안녕하세요. 박사님.”

“오늘은 목록이 왜 이렇게 길어? 또 뭘 만들려고.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제작계는 철저히 결과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정글이었다. 최근 괄목할 만한 발전으로 아무도 따라잡지 못할 포션과 연구를 연달아 성공해 낸 연승연의 성과에 모두가 집중한 상태였다. 은근한 견제와 염탐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연승연에겐 그 모든 관심이 부담스럽고 벅차긴 했으나 또한 자랑스럽기도 했다. 호현 님께서 함께하신 결과물이니까. 언젠가 호현 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날이 얼마나 기대되는지는 호현 님 본인께서도 모르실 거였다.

줄들이 점차 줄어들고 바로 앞 사람의 차례가 끝났다. 연승연은 뿌듯한 마음을 가득 담아 쪽지를 들고 창구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앞의 패드에 사원증 대세요. 네에, 연승연 님. 416b호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어제 오후에 신청해 두신 재료가 있는 걸로 확인됩니다. 변경하시나요?”

“아, 아닙니다! 거기에 조금 추가를 하려고…….”

“네에. 추가요……. 어떤 재료가 추가로 더 필요하실까요.”

연승연이 접어 두었던 쪽지를 펼쳤다. 재료실 앞의 모두가, 심지어 창구 내의 직원마저도 연승연의 입에서 나올 말에 집중했다.

연승연은 쪽지를 펼쳐 또박또박 재료를 읊었다.

“네. 열대 율무, 심해 율무, 늪 고사리, 얼룩 고사리, 독 고사리…….”

연승연의 말을 엿듣던 사람 중, 꽤나 경력 있는 남자 연구원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경악이 터져 나왔다.

“허억……! 설마!!”

그들은 엿듣던 중이라는 것마저 잊고 연승연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 대체 왜 그 재료들이 필요한 건가?”

“무, 무슨 말씀이세요?”

호현 님께서 준비하시는 포션에 혹시 방해라도 될까 걱정해 뒤를 돌아본 연승연은 다시 창구를 바라보며 마지막 재료를 말했다.

“그리고 데드폴의 스테로이드를 주세요.”

“데, 데드폴!! 화, 확실히 ‘그것’을 만들려고!!”

“…다른 사람의 재료에, 과, 과한 관심은 실례인 것 같습니다……!”

미간을 찌푸린 연승연은 사람들의 관심을 경계하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연승연이 먼저 사라진 후에야 자리에 남은 연구원들 사이에서 속 시원히 의문이 터져 나왔다.

“황 박사님! 대체 ‘그것’이 뭔데 그러세요?”

“나는, 나는 도저히 말 못 하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발 뒤로 빠지는 황 박사 대신 연구원들은 그의 동기인 유 박사로 타겟을 바꿨다.

“유 박사님. 유능하고 명석하신 박사님께선 연승연 연구원이 뭘 만들려는지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젊은 연구원들의 기대 가득한 눈빛에 유 박사가 결국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알고 있네. 저것은 바로….”

“바로?”

“……고자를 만드는 약일세.”

“네에에?”

경악 가득한 목소리에 유 박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들 모르는가? 남성 헌터 기피 대상 1순위 던전들? 던전에서만 자란다는 독초, 그것도 열대 율무, 심해 율무, 늪 고사리, 얼룩 고사리, 독 고사리는 정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기로 유명한 재료들이지. 그곳들을 찾아보면 십중팔구 모두 저것들의 서식지라네.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독초를 우리고 데드폴의 스테로이드로 마무리를 장식하면……. 그것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음은 물론, 소중한 정자 수억 마리 중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네! 아주 독하군 독해.”

유 박사의 세세한 설명에 한 연구원이 절규했다.

“그런 끔찍한 것이 어떻게 아직도 독으로 지정되지 않았습니까? 그걸 마실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유 박사의 뒤에 있던 황 박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한 노련함이 아니고서야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네. 설령 ‘강의진’이 온다 한들 S급 스킬만 가지고 만들 수 없는 게 그것이지.”

‘강의진’의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소란이 조금 잦아들었다. 겨우 연승연이 강의진에게도 까다로운 포션을 성공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설명만으로도 남자 연구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연구원들은 그 포션의 악독함에 치를 떨면서도 요즘 무서운 흐름을 탄 연승연이 그것의 제조율을 몇 퍼센트나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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