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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30화 (3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30.

통제당하는 차들 사이로 뻥 뚫린 도로를 새하얀 리무진이 유유히 지나갔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차체 안에서 성산하는 무감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옅은 색의 긴 속눈썹이 느릿하게 팔랑이며 빠르게 지나는 풍경을 훑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산하의 부관, 이초는 오늘따라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 성산하를 걱정스레 바라보다 다시금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속속히 도착하는 새로운 보고들을 빠르게 넘기던 손이 어느 하나에서 멈췄다. 화면에는 까만 밤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들이 찍힌 사진이 떠 있었다.

“저, 산하 님.”

“왜.”

“조디악 문제입니다.”

여태껏 무관심한 태도로 임하던 성산하가 시선을 돌렸다. 이초가 사진을 위로 끌어 올리자 홀로그램화된 둥그스름한 천구가 둘 사이에 떠올랐다.

“현재 시스템 아우라를 피해 천체를 정확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마우나케아 천문대뿐입니다. 드나드는 인원으로 확인해 본 바, 아직 12성좌와 S급 각성자에 관한 연관성을 눈치챈 것은 우리 천랑과 소수의 해외 길드뿐입니다.”

성산하가 화면으로 손을 뻗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따라 천구가 반 바퀴 회전했다. 빠르게 천체를 훑은 성산하가 중얼거렸다.

“젠장. 하나 더 줄었군.”

성산하와 달리 천구를 읽지 못하는 이초는 함께 딸려 온 짤막한 보고서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달멜리크를 시작으로 알게디, 안타레스가 빛을 잃고 이번 보고에 인도의 아디티 싱이 사망하며 아쿠벤스까지 빛을 잃었습니다. 비정상적인 하말과 카스토르를 제외한 남은 알파성은 여섯 개입니다.”

“다른 별들의 대응자는 아직 찾지 못했나?”

“각지로 길드원들을 파견해 대응하는 각성자들을 최대한 찾고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각국에서 상위 각성자들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커서요.”

“서둘러야 할 거야. 하말과 카스토르의 빛이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니.”

성산하는 천체 내의,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네. 조금 더 속도를 내라 지시하겠습니다.”

이초가 화면을 넘기자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동시에 성산하 역시 흥미를 잃은 듯 다시 늘어져 무심하게 손만 까딱거렸다. 손끝에 황금빛 룬들이 감도는 광경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신비로운 모습이었으나 몇 년을 함께하며 질리게 봐 온 이초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쳐다도 보지 않고 보고를 마저 이었다.

“돌발 게이트 세 곳 모두 예상 시간 내에 클리어했습니다. 그중 B급은 정착해 저희 소속 정규 던전으로 남았고요. 다만 마정석이나 획득 부산물이 예상보다 적어 게이트 열리자마자 다시 입장할 계획입니다.”

“어느 팀이 맡았지?”

“김여진 헌터가 리더로…….”

“아, 교육생들을 데리고 갔다던. 고생이네. 지원팀 좀 붙여 줘.”

“네.”

대충 부하 직원들에게 연락을 넣던 이초는 제 상관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부러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중요한 날인데 표정이 그렇게 어두우면 어떻게 합니까. 정체 공개하자마자 인성 논란 나고 싶으세요?”

“내 표정이 뭐.”

“누구 하나라도 걸리면 죽는다, 이런 표정인데요. 힐러가 아니라 딜러 같습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초의 과장된 말에 결국 성산하도 피식 웃음을 흘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알람이 울려 태블릿을 쳐다본 이초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무슨 일이지?”

“최대한 막았는데도 벌써 소문이 새어 나갔는지, 벌써 기자 회견장 건물 주위에 기자들이 쫙 깔렸다고 합니다. 들여보내 달라 성화라고…….”

“영광이네……. 다른 루트는?”

“다행히 텔레포트가 연결된 곳이 있어 그쪽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에게 방향을 돌리라 말한 이초는 다시 앉으며 말했다.

“기자 회견은 미리 협의해 둔 것처럼 미스틱의 정체에 집중해 진행될 겁니다. 질의할 기자들이 내정되어 있으니 길드장님께서도 준비된 대본대로만 읽으시면 됩니다. 또 저번처럼 이상한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이상한 말이라니 잘 기억이 안 나네. 솔직한 게 문제야, 친절한 게 문제야? 아니면 둘 다?”

“길드장님!! 이번엔 절대 안 된단 말입니다!”

“네, 네.”

결국 성산하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고 나서야 이초는 마저 말을 이었다.

“홍보팀에서 추린 강조 키워드는 천랑과 헌신, 애국이며…….”

“헌신? 차라리 외모라고 하지 그래.”

성산하의 비웃음에도 이초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또한 일련의…… 녹스 사태에 관해선 언급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기자 회견 후 인터뷰 요청은 모두 거절한 후 여론 봐서 잡을 계획입니다. 홍보팀 내에서도 적당한 언론사들을 추리고 있고요.”

녹스 얘기를 꺼낼 땐 저도 모르게 제 상관의 눈치를 봤다. 아니나 다를까, 축 가라앉은 성산하가 힘없이 물었다.

“아직도 태제헌의 행방은 못 찾았나? ……우리 의진이라든가.”

“원하는 대답 못 드려 죄송합니다만, 둘 다 종적이 묘연합니다. 아, 그런데 이건 있는데요. 강의진 관련……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럼 좋은 소식은 아닌가. 에, 그냥 소식 하나 있는데요.”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

‘강의진’ 이름을 올리자마자 지금까지 힘 빠져 있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생기가 돌아와 재촉하는 성산하의 태도에 이초는 서둘러 태블릿으로 뭔가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조사해 보라고 했던 가이드 말입니다.”

“가이드? ……아, 그때 그 사기꾼.”

“굉장히 실망하는 표정이시네요.”

“그딴 일에 강의진 이름 갖다 붙이지 마.”

“어라, 관심 없으세요?”

“지금은 피곤해. 대충 소재지나 파악하고 특이점 없으면 사람 보내서 아이템 회수해.”

순식간에 흥미가 떨어진 얼굴로 시선을 돌리는 성산하의 모습에 이초가 웃으며 태블릿을 돌려 화면을 보였다.

“그을쎄요, 회수할 아이템이 없는데요.”

“……뭐?”

“그날 길드장님과 우연히 마주친 것 맞습니다. 배후도 없고, 얼굴도 아이템이 아니라 진짜.”

태블릿에 띄워진 어느 한 사람의 프로필에 성산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이건…….”

“이름은 주호현. C급 가이드로 현재 서울 지부 팀 레이븐에 속해 있답니다. 특이사항은 그 ‘S급 각성자 류수윤’이랑 신입 때부터 친구로 함께 지내 왔던데요.”

“잠깐, 류수윤이라면…….”

“네. 맞습니다. 하말로 의심했던 각성자죠. 하말은 살아남은 데 반해 류수윤은 죽어 버려서 후보에서 제했지만……. 엇.”

태블릿을 빼앗듯 가져가는 성산하에 이초는 친절히 그가 가장 관심 있을 사진을 확대까지 해 주었다. 성산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 리가.”

“센터에 있어 몰랐겠죠. 헌터면 몰라, 센터 팀이면 외부 활동할 일도 없잖습니까.”

“이렇게 닮았는데 소문이 안 났다고? 아이템이야. 키며 어깨, 보고서로 받은 허리 사이즈까지 똑같…….”

제 앞에 강의진이 있는 것처럼 가늠하고 손으로 그리는 성산하의 모습에 이초가 표정을 파삭 구기며 태블릿을 도로 가져갔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십쇼. 제발!! 천랑 길드장이 강의진 극성팬이란 게 알려지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칩니다.”

성산하를 태양신의 현신이자 자애의 화신이라 추앙하는 국민들이 저 꼴을 봐야 하는데. 제 눈빛에 담긴 책망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성산하는 잘못 없다는 듯 예의 그 고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면 강의진이나 찾아.”

“팀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주호현은 신상이 확실하고 얼굴을 속인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보다도 특이점은 따로 있습니다. 최근 서울 센터 내부 사건으로 인해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심지어는 팀 내 괴롭힘이 있나 본데요. 아직 표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가이딩 강취 사건으로 기절까지 했…….”

“그딴 건 관심 없…… 뭐?”

“넵. 알겠습니다.”

성산하가 태블릿을 덮으려는 이초의 손을 잡아 멈춰 세웠다.

“자세히 말해 봐.”

“관심 없으시다면서요?”

“가이딩 강취가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롭니다. 에스퍼가 가이드에게서 강제로 가이딩을 빼앗은 거죠. 가이딩 관련해선 예전부터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던지라 강취 같은 경우는 중범죄에 속하거든요. 팀 내에서 쉬쉬하고 덮으려는 건지 이외의 정보는 더 찾지 못했습니다.”

“……상태는 어떤데.”

“누구요, 주호현이요? 괜찮지 않을까요. 무슨 일 있었으면 그것도 정보 들어왔을 테니까. ……혹시 걱정되십니까?”

“걱정? 내가 그놈을?”

센터에서 만났던 주호현을 떠올린 성산하가 비뚤게 웃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조사에 차질이 생기니까. 그뿐이야.”

“조사할 것도 없습니다. 신원이 확실하다니까요……. 여기, 태어난 병원까지 적혀 있는걸.”

투덜대던 이초가 창밖을 보더니 살짝 입을 벌렸다.

“벌써 거의 다 왔네요. 오늘 기자 회견 이후엔 성 회장님 뵙고, 그 이후엔 전주 게이트 방문해야 합니다. 승훈아! 우회전!”

기사에게 급히 방향을 지시하던 이초의 뒤에서 뭔가 생각하는 듯이 앉아 있던 성산하가 입을 열었다.

“조만간 서울 센터 재방문 날짜 잡아.”

“예……?”

갑작스러운 명령에 이초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

“주호현을 만나려고요? 하지만, 오늘 기자 회견 끝나면 정말 바빠서 센터에 방문할 시간은 없…….”

“아니, 그 에스퍼.”

이초가 얼빠져 입을 벌렸다. 눈을 내리깐 성산하가 중얼거렸다.

“건방지잖아.”

‘대체 어느 부분이요?’란 물음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이초는 현명하게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최대한 시간 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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