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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31화 (31/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31.

“고맙다. 이따 봐!”

차가 검진 센터 뒤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서둘러 내리려는데 덜컥 소리만 나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만 몇 번을 잡아당기다 의아하게 옆을 돌아보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한서진이 불만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서둘러요. 그쪽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혼자는 못 들어가잖아.”

“연승연은 나 기다리게 안 해.”

그간 늦는 일이 없던 연승연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외려 어떤 부분이 한서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이제는 아예 고개를 앞으로 돌려 버렸다.

“여기서 기다리다 가요.”

“뭐……. 그러든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차장이라 메시지를 보내 둔 채 의자에 편히 앉았다.

한서진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만나서 뭐 하는지는 정말 말 안 해 줄 거예요?”

“말했잖아. 네가 안 믿은 거지.”

“……레고랑 컬러링북, 한다는 소리를 저보고 믿으라고요.”

“못 믿을 건 뭔데? 그냥 친구랑 노는 걸 너무 깊게 물어보지 말라니까.”

뻔뻔히 답하자 결국 알아내려는 걸 포기한 한서진은 한숨 쉬며 말했다.

“팀원 마주치느니 여기가 나을 것 같아서 그냥 두는 거예요. 다른 데 돌아다니다 걸리면 진짜 경호 붙일 테니까.”

“경호는 무슨 경호.”

작게 웅얼거리자 한서진이 나를 노려봤다.

“쓸데없이 나다니지 말고 기다려요. 여섯 시에 올게요.”

“응.”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알았다니까.”

어차피 오늘은 하루 종일 바쁠 예정이라 나다닐 시간도 없었다. 핸들에 기댄 채 빤히 바라보는 한서진의 시선을 받아내며 조금의 가책도 없이 나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했다.

역시나 연승연은 약속한 시간에서 일 분도 늦지 않고 도착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종종 뛰어나온 연승연이 주차장 입구에서 어리바리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도토리 잃어버린 다람쥐 같아 쿡쿡 웃으니 곧바로 한서진의 시선이 꽂혔다.

이만 가겠다며 입을 열기도 전에 한서진이 먼저 내렸다. 나 역시 서둘러 따라 내려 물었다.

“너는 왜 내려?”

“봤는데 인사는 해야죠.”

아니, 언제부터 친했다고?

어이없이 바라보는 날 뒤로하고 한서진이 긴 다리로 앞서 나갔다. 나를 보고 달려오려던 연승연은 한서진 역시 발견하고는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주춤대는 중이었다.

연승연 앞에 선 한서진은 키 차이 때문인지 훨씬 위압적이게 보였다.

눈을 한껏 내리깔고 연승연을 훑던 한서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구면이네요. 한서진입니다.”

“아, 네. 저는 수석 연구원 연승연이라고…….”

“네. 원승원 씨.”

연승연이 제 귀를 의심하며 작게 울상을 지었다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아, 여, 연승…연인데요.”

“그런가요. 여섯 시에 올 테니 일 분도 늦지 않았으면 하네요.”

“아, 알겠…….”

“그럼 들어가 보세요. 인승인 씨.”

서둘러 그 둘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대화 소리까지는 미처 듣지 못한 나는 친밀하게 손을 잡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

“인사까지 했냐.”

“호현 님…….”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연락하면 받아요.”

“알았다니까.”

한서진에게 썩 꺼지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뒤를 돌았다. 주먹을 꾹 쥔 채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 연승연이 보였다.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다 턱짓했다.

“가자.”

“저…… 호현 님.”

“왜?”

입술을 달싹이던 연승연이 망설이다 물었다.

“저, 저 사람도 알고 있나요?”

“뭘?”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눈빛에 놀란 연승연이 제 발 저린 모습으로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저는. 호현 님의 실력에 대해……. 저 사람도 알고 있는지, 제가 말을 조심해야 하니까……. 그게 궁금해서…….”

“아, 그거? 너만 알지. 쟤가 어떻게 알아.”

“저만……요?”

당연히 뱉어진 말에 연승연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럼 저랑 같은…… 사람은 아니란 말이네요?”

“네가 낫지. 임마.”

일도 잘하고 포션도 잘 만들고.

막상 말을 뱉으니 한서진에게도 꽤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게 떠올랐다.

나 강의진. 받은 만큼 꼭 돌려주는 남자니까.

‘나중에 보답해 주면 되지.’

그보다도 오늘따라 이상한 연승연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불쑥 다가온 얼굴에 연승연이 얼굴을 붉히며 펄쩍 뛰었다.

“으아아, 호현 님!”

“너 그런데 오늘 왜 그래? 나 없는 사이 뭐 실수했냐? 어?”

“아, 아니에요. 아니…….”

“그런데 왜 이러는데. 어? 어? 빨리 말 안 해?”

쿡쿡 찌르는 손길이 간지러워 이리저리 피하던 연승연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에요. 기뻐서……. 그래서 그래요.”

소심한 마음에 감도는 안도 사이로 조금의 우월감이 함께 피어올랐다.

***

서로 나란히 붙어 걸어가는 주호현과 연구원.

‘그저 아무 생각 없어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연구원을 스스럼없이 만져 대며 웃는 주호현의 얼굴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데…….

그때였다. 주호현의 옆에 붙은 매미 같은 연구원이 뒤를 돌아본 것은.

두려움 가득했던 연구원의 커다란 눈은 한서진을 발견하곤 곧 경계심을 가득 담고 샐쭉하게 가늘어졌다.

“하?”

주호현 앞에서와는 전혀 다른 표정에 한서진이 헛웃음을 흘리며 황당해하는 사이, 다시 고개를 돌린 연구원은 어느새 앞서 나간 주호현을 뒤따라 달렸다.

나란히 선 둘의 친밀한 모습에 한서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은 가죽 장갑에 감싸인 손이 핸들을 꽉 쥐자 가죽이 마찰하는 소리가 차내를 울렸다.

“별 같잖은…….”

눈을 떼지 못하던 한서진은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차를 돌렸다.

차가 향한 곳은 서울 센터 중앙 본부였다. 본부 정문을 지나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자 하늘 높게 쳐진 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기다렸다는 듯 스르르 열렸다.

사람이 많던 중앙 본부와는 달리 내부는 사사로이 돌아다니는 사람 없이 한적했다. 건물 가장 위층으로 안내받은 한서진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센터를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진 넓은 회의실에는 열댓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서진에게로 향했다.

그중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들 사이 우뚝 서 있는 노인이었다.

은빛 수염이 멋들어지게 빛나는 노인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눈빛에서 기백이 흘러나왔다. 한서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모두 자리를 비워 주시게.”

노인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힌 후 회의실 안엔 한서진을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못 온다더니 왔네?”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여자가 예상 밖이라는 듯 묻자 한서진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님께서 방문하셨다기에.”

“흥. 웃기네. 그때도 알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웬 변덕이람.”

눈썹을 치켜올리는 여자의 물음에 가만히 한서진을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우리만 남아 있는데 딱딱하게 협회장이 무어냐.”

“……예. 할아버님.”

한서진의 말에 딱딱했던 협회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리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앉거라.”

“인사만 드리러 왔습니다. 곧바로 수사국 일정이 잡혀 있어서.”

“암, 우리 에스퍼의 미래를 오래 붙잡아 놓을 수는 없지. 일은 잘되어 가더냐.”

“노력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한서진의 목소리에 반해 협회장의 말투는 시종일관 부드러웠다. 익숙하게 넘겨듣는 여자와는 달리 반대편에 앉아 있던 키 작은 남자는 그 모습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다 결국 비뚤게 입을 열었다.

“요즘 이상한 소리가 들리던데… 그것 때문에 바빴던 건 아니고?”

“……무슨?”

“같은 팀 가이드랑 자주 붙어 다닌다고? 유독 C급 하나랑만.”

누가 봐도 주호현을 가리키는 말에 한서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남자는 그에 오히려 더욱 신이 나 말했다.

“겨우 반년이면 복무 기간 만료인데 그것도 못 참고 일을 벌이려는 건 아니겠지? 찾아보니까 꽤나 문제가 많던 가이드던데.”

“나야 가이딩을 받아야 하니 가이드와 어울리는 게 당연한 일이고.”

“걱정돼서 그러지. 조용하던 우리 막내가 갑자기 각인이라도 하겠답시고 C급 가이드를 데려올까 봐.”

한참이나 하위 급수가 나오자 노인과 여자의 시선이 한서진에게로 향했다.

“…….”

제 사촌 형인 한서노가 굳이 조부 앞에서 하급 가이드 운운하며 주호현을 걸고넘어지는 의도가 뭔지 뻔히 읽혀 속으로 비웃음을 삼킨 한서진이 비뚤게 입을 열었다.

“형이 그런 걱정하는 줄은 몰랐네……. 그런데 내 일까지 신경 쓸 여력 없지 않아?”

굳던 표정과는 달리 차갑게 돌아온 반박에 남자가 멈칫했다 울컥 표정을 굳혔다.

“뭐? 너 지금 뭐라고.”

“지금 각인자한테 고소당해서 접근 금지 상태 아닌가? 각인도 해지해 줘야 한다며. 그리고 처리해야 할 일이라면 형 사생아들 문제가 더…….”

“야!!”

결국 참지 못한 한서노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하지만 떨리는 동공을 감추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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