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36.
밝은 빛 아래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성산하는 다시 봐도 당황할 정도로 잘생긴 외양을 하고 있었다.
툭, 데구루…….
굴러가던 ‘토트의 눈’이 그의 발치에 걸렸다.
“…….”
시선을 아래로 떨군 성산하가 몸을 숙였다. 내리깐 눈이나 다물린 입술뿐 아니라 스륵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까지 하나의 성스러운 그림 같았다. 성산하의 흰 장갑 낀 손이 ‘토트의 눈’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왕창 표정을 구기고 바라봤다.
‘재수 없는 새끼.’
누군가 했더니 저놈을 다시 만날 줄이야. 저 매끈하고 빛나는 얼굴을 보니 그날 맞았던 볼이, 힐을 당했던 좆같은 기억이 뚜렷하게 샘솟았다. 괜히 시비 건 저 새끼 때문에 내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태제헌과의 경험으로 또라이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치미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비꼬듯 말이 튀어 나갔다.
“헌터 에티켓은 갖다 팔았냐? 몰래 아이템 사용하는 건 어디서 배운 쓰레기 매너야. 천랑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보지?”
“……가이드라면서 헌터 매너를 잘 아네? 수상하다니까.”
“수상은 씹……. 길드장이라면서 할 일도 없냐? 왜 맨날 센터에 얼쩡대.”
성산하가 제 손에 들린 아이템을 보며 말했다.
“‘토트의 눈’. S급 아이템이야.”
“그게 뭐.”
몰래 따라오고 게다가 동의 없이 아이템까지 사용했으면서 아무 거리낌 없는 태연한 낯이었다. 짜증스럽게 바라보는데 성산하가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놈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듣기 좋은……. 아, 아니 좆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호현. 나이는 스물하나, 보조계 각성자에 C급 가이드.”
“……내 뒷조사했냐?”
“스킬 형편없음, 주목할 만한 요소 없음. 성장 가능성 미약.”
이어지는 성산하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호현의 상태창은 내가 봐도 특별할 게 없었으니까.
성산하가 내게 들고 있던 아이템을 던졌다. 한 손으로 잡아채자 성산하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파괴할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이 아닌데, 무슨 수를 쓴 걸까?”
“수는 씨발……. 불량품을 샀나 보지.”
아니꼽게 답하며 손안에 잡힌 것을 내려다봤다. 아이템은 이미 정보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대체 내게서 무슨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 건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퍽치기를 당하니 기분이 적잖이 더러웠다. 당장 가서 한 대 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지금 저 새끼를 한 대 후려쳐 줄 장비도,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해 줄 만한 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있다 한들 저 또라이 새끼가 쉽게 당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게다가 지금 난 몰래 본부에 들어온 상태. 신연형을 찾기에도 빠듯한 시간을 저 미친놈에게 허비할 여유 역시 없었다.
“시비 걸지 말고 꺼져라.”
손에 들고 있던 아이템을 옆으로 휙 던져 버리며 등을 돌렸다. 채 한 발짝 떼기도 전에 팔을 잡혔다. 어느새 다가온 성산하가 웃는 얼굴로 빙글대며 물었다.
“으응? 어딜 가려고.”
“그냥 못 본 거로 하고 가던 길 가자. 어?”
“그건 안 되지. 봐주는 건 그때뿐이라고 했잖아. 벌써 잊은 거야?”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수백 가지 욕을 속으로 삭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앞에 있는 놈은 천랑 길드장이다……. 천랑 길드장이다. 나는 지금 C급 가이드고……. 그리고 앞에는…….’
“야 이 개새끼야.”
“…….”
“눈에 띄긴 무슨, 내가? 제가요? 그때도 지금도 네가 따라왔잖아! 양심도 없는 새끼야!! 너야말로 내 뒷조사했잖아. 또라이냐?”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지만 성산하는 그저 팔짱 낀 채 여유로운 낯이었다. 심지어 피식 웃기까지 했다.
“더 해 봐. 재밌네.”
“……발.”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입을 다물자 눈을 휘며 웃은 놈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벌써 끝났어? 이젠 내가 물을 차례인가? 멍청한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애초에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 것 같아? 경비나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 해 봤어?”
“지랄. 헛소리할 거면 꺼져라.”
느물거리는 태도가 꼭 어린 애를 가르치는 듯해 기분이 나빴다. 성산하가 갑자기 말을 꺼낸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노려봤다.
‘물론, 사람이 없긴 했지. 하지만 그거야 그냥 내가 존나 운이 좋아서…….’
“설마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정곡을 찔린 티를 내지 않으려 뚱하게 묻자 성산하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곧 야멸찬 평가가 내려졌다.
“멍청한 쪽이었군.”
“뭐……? 머, 멍청하다고?”
충격에 입이 떡 벌어졌다.
멍청하다니. 그런 수치스러운 말은 살면서 처음 듣는다. 나 S급 포션 메이커 강의진이야!! 포션 메이커이기만 해도 대부분이 ‘와, 공부 잘하시나 봐요?’ 하는 반응을 보이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포션 마스터’의 칭호까지 단 나에게 감히 그런…….
“말 다 했냐? 새끼야?”
“더 해 줄까? 잠시나마 너를 강의진으로 착각한 게 미안할 지경이라.”
그 강의진이 나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진실에 가슴만 퍽퍽 쳤다. 성산하의 얼굴에 드리운 경계심이 사라졌지만 한심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에 딱히 기쁘진 않았다.
시계를 확인한 성산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연형을 만나러 왔겠지.”
“너! 그걸 어떻게……!”
신연형을 만나러 온 것을 알고 있다. 불쑥 치미는 당혹스러움에 한 발 크게 물러났다. 주머니에 넣어 뒀던 포션이 버클과 부딪히며 덜그럭거리자 성산하의 색채 연한 눈동자가 주머니를 정확히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포션이 들어 있을 주머니를 뒤로 감췄다. 그를 본 성산하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그런다고 감춰져?”
“……어떻게 알았어.”
“나와 목적이 같으니까. 여기 신연형 외에 다른 수감자는 없거든. 사람이 없는 것도 내가 방문했기 때문이지. 네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너도 신연형을 만나러 왔다고?”
성산하 역시 신연형을 만나러 왔단 소리에 혼란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왜? 둘이 무슨 관계길래…….’
성산하가 내게 한 발짝 성큼 다가와 손을 뻗어 단박에 내 턱을 한 손으로 움켜줬다.
“윽.”
“연락을 받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 어쨌거나……. 그래. 꽤나 닮긴 했으니까.”
곧바로 쳐 내려 했지만 힘이 어찌나 강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 위로 집요한 시선이 따갑게 내리꽂혔다.
‘무슨 힐러 주제에 힘이…….’
미친 밸런스 붕괴 힐러 새끼가 마치 자비를 베풀듯 말했다.
“신연형을 만나러 가는 것을 도와주지.”
“네, 도움 따위… 필요 없…….”
“길도 모르면서?”
내가 가려고 했던 쪽을 바라보며 코웃음 친 성산하가 얼굴을 가까이해 을렀다.
“내가 한마디 할 필요도 없이, 이곳에서 관심을 거두고 나가기만 해도 자리를 비웠던 경비들이 들이닥칠 거야. 여기까지 온 것부터가 그저 우연히 내게 편승했을 뿐인 네 주제에 혼자 뭘 할 수 있다고.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지 말고 도와준다고 할 때 도움받아.”
“이 새끼가!!”
듣다못해 주먹을 날리자 약은 새끼가 몸을 뒤로 빼 피했다.
“폭력적이기까지 해서야.”
“네가 할 소리냐?”
여태껏 맞기만 한 건 난데! 가슴이 콱 막히는 게 억울해서인지 답답해서인지 알 길이 없었다. 때려도 소리를 쳐도 빙글빙글 웃는 채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성산하에 결국 진저리치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씨발, 신연형한테 같이 가고 싶다는 거야? 그거면 돼?”
오랜 실랑이에 이미 낡고 지쳐 버려 그것뿐이라면 그냥 들어주고 끝내자 하는 생각에 물으니 성산하에게서 돌아온 건 비웃음이었다.
“널 돕겠다는 건 내 선의고.”
“미친, 선의가 다 뒈졌나.”
“내가 원하는 건…….”
성산하의 흰 장갑을 낀 손이 허공을 손짓했다.
‘인벤토리다.’
센터 내부에서는 인벤토리를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저 새낀 왜! 천랑의 길드장이니 제재를 가하지 않는 건가. 짜증 나면서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인벤토리에서 나온 건 하얀색의 반투명한 목줄이었다. 설마 하며 바라보던 내게 성산하가 목줄을 내밀었다. 표정을 왕창 구기고 뒤로 물러났다.
“꺼져. 나 그딴 거 안 차.”
“이게 뭔지 알아?”
“씨발. 누가 천랑인 거 몰라줄까 봐 주머니에 그딴 거나 들고 다니냐? 뭐든 상관없어. 안 찰 거니까.”
무슨 아이템인진 몰라도 구속구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좆같았다. 얼핏 스치는 과거의 기억에 불만스럽게 바라보니 성산하가 짐짓 다정한 체 웃음 지었다.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니까 마음이 편치 않은데. 꼭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이제 와서 착한 척해 봤자 소용없어.”
“이런……. 겁먹었나 보군.”
“씨발 겁은 무슨!!”
“그렇게 겁나면 직접 확인해 보지 그래.”
성산하가 목줄을 내밀었다. 손가락 끝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는 목줄을 보다 홧김에 다가가 잡아챘다.
“아이템 정보.”
<라이라프스의 목줄>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개인 라이라프스마저 길들였다는 견고한 목줄
목줄을 착용한 대상이 사망 및 사망에 준하는 위험에 빠지면 주인이 알 수 있다.
목줄을 착용한 대상이 주인의 반경 1km 내에 들어왔을 때만 이동·대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키워드 : 미정
사용 기간 : □□□일
정보창을 읽은 나는 황당하게 소리쳤다.
“이상한 거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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