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37.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인데?”
“장난하냐? 주인이니 뭐니, 이딴 걸 잘도…….”
“닮은 얼굴을 가지고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니 목줄이라도 채워 놔야지 어쩌겠어.”
“강의진한테 신경 끄라고! 미친 싸이코 스토커 새끼야!! 그냥 이럴 시간에 나가서 강의진을 찾으라니까?”
발끈해 길길이 날뛰며 손에 들린 목줄을 내팽개치려는데 성산하가 그대로 내 손을 잡아챘다. 웃는 낯이었지만 그 속에 도사린 난폭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러길 원하는 게 나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의진과 태제헌이 동시에 사라진 이후 나타난 유일한 단서가 너라서 말이야……. 이번 같은 황당한 일로 죽어버리면 나도 당황스럽거든.”
주호현의 몸에 들어온 이유를 나조차도 모르는 상황에서 성산하의 억지가 꽤나 그럴듯한 정답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저었다.
“난, 난 관계없어.”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고.”
손목을 잡은 손이 타고 올라와 목줄을 함께 쥐었다. 거칠고 사나운 악력과 달리 장갑의 감촉은 부드럽기만 했다. 한 뼘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서 성산하의 숨결이 닿아 왔다.
“이렇게 하자, 태제헌을 찾으면 바로 목줄을 거둬 줄게. 그땐 나도 너 같은 것에 신경 쓸 여력 없으니까.”
“…….”
“아이템에 걸린 조건도 나쁘지만은 않을 텐데?”
“누굴 호구로 알아? 거리 조건이 있더라도 주인의 명령을 들으라는 식의 아이템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줄 알아?”
“하급 가이드인 네가 나와 그 이상으로 가까워질 일이 뭐가 있겠어?”
“그냥 안 차면 되는…….”
“그럼 더 무서운 선물을 받게 될 텐데.”
성산하의 협박에 잇새로 욕을 짓씹었다. 태제헌이고 성산하고, 길드장이란 새끼들은…….
성산하가 다른 강제성이 짙은 아이템을 꺼내기 전에 제약이 큰 목줄을 차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눈을 굴려 목줄을 바라봤다.
고민하는 기색을 알아챘는지 성산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씨발…….”
성산하 말마따나 아주 불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천랑의 전 길드장인 성훤도 여태 살면서 한 번 마주친 게 다인데 성산하라고 다를까.
‘태제헌을 찾을 때까지라고 했지…….’
그 사건 이후 잠적했다는 태제헌. 하지만 길드장인 그가 언제까지고 잠적해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휘청거리는 녹스를 정말 망하게 둘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 어쩌면 성산하가 말한 기한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영 내키지 않아 망설이며 보고만 있자 성산하가 내 손에서 천천히 목줄을 빼냈다. 온전히 그의 손에 들린 목줄을 가볍게 흔들자 빛이 나더니 곧 얇은 은빛 목걸이로 변했다.
“뭐야?”
놀라 쳐다보자 성산하가 눈을 휘며 웃었다.
“선의?”
“선의는 지랄…….”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 알고 있다는 여유로운 태도가 재수 없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전보다 낫긴 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시스템창을 보려 손을 뻗었다.
“……이리 내놔 봐.”
목걸이를 가져가려고 하니 성산하가 손을 높이 들어 피했다.
“버릇없는 강아지네. 목줄은 주인이 채워 주는 거야.”
“씨발, 그 주인 소리 집어치워.”
“이제부터 익숙해 져야지. 1km 내에선 네 주인인데.”
“아직 하겠다고 한 적 없어. 안 해. 안 차!!”
안 하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성산하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만 지어졌다.
“그쪽에게 선택권이 있었나?”
“……재수 없는 새끼.”
성산하가 내게 손을 까닥였다. 다른 쪽 손에 걸려 흔들리는 목걸이를 보며 고민하다 답 없는 상황에 머리를 거칠게 털어 버리고는 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서운해라.”
고민 끝에 선택한 일인데도 왜 이렇게 내키지 않는 건지. 불만스레 입을 다물고 바라보자 목걸이를 쥔 하얀 장갑이 내 목으로 다가왔다. 목에 스치는 금속의 차가운 감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움츠리다 스치는 생각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잠깐!”
과하게 가까운 성산하와의 거리에 뒤로 물러나려다 목걸이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결국 탐탁지 않은 눈으로 성산하를 마주 봤다.
“태제헌 찾기 전까지라는 말. 지켜.”
“이래 봬도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편이라.”
성산하의 대답과 동시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착용하시겠습니까?
※주의!
적격자의 권리로 조건이 생성되었습니다.
[주인이 ‘태제헌’의 위치를 인지하는 순간 계약 해지]
“……어.”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착용했습니다.」
「근처에 주인님이 있습니다. 키워드 명령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주인님은 무슨 씨발…….’
시스템 창 너머로 성산하를 노려보는데 그의 앞에도 창이 뜬 건지 무언가를 본 성산하가 눈을 휘며 미소 지었다. 천사 같은 웃음에 홀리기도 잠시 그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에 몸을 굳혔다.
“기한 설정 999일. 키워드 멍멍아.”
“999? 야!!”
“태제헌을 찾으면 바로 해지될 거 상관없지 않아?”
“아무리 그렇다 해도 999일은 아니잖아!!”
빡쳐 그의 멱살을 잡으려는데 성산하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멍멍아. 기다려.”
「주인님이 ‘기다려’를 하셨습니다. 착하게 기다리며 주인님께 집중합니다.」
“이 씨발!!”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눈은 성산하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쫓았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해 봐도 몸만 움찔댈 뿐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성산하는 내 꼴을 보고 재밌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훨씬 낫네.”
“개변태 새끼야!!”
“나랑 있을 땐 그 천박한 말투부터 좀 바꾸지.”
하는 수 없이 욕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좆같은 기다려를 풀어 준 성산하는 먼저 뒤를 돌았다.
“따라와.”
그가 향한 길이 내가 가려던 길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었기에 불퉁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건물을 비웠다는 말이 진짜였는지 지하로 내려가기까지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 기관인데 천랑한테 이렇게까지 납죽 엎드리다니.
‘저 새끼가 뭐라고.’
괜히 아니꼬운 마음에 성산하의 등만 노려보며 터덜터덜 걸었다. 빨리 끝내고 저놈을 내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싶었다.
다 똑같이 생긴 문 중 어느 한 곳 앞에서 멈춰 선 성산하가 내게 말했다.
“여기야.”
성산하를 지나쳐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따라 들어오는 기척에 뒤를 황당히 돌아봤다.
“뭐야. 왜 따라 들어와?”
“이상하군. 분명 도와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일을 끝내고 나가는 것까지.”
“그건 필요 없어. 이만하면 됐으니 돌아가.”
“그럴 순 없지. 이미 넌 내게 종속된 상태인데 멍청한 짓을 벌이게 내버려 뒀다 나까지 연루되면 곤란하니까.”
맞는 말이긴 했지만 단어가 심히 거슬렸다. 뭐라 반박하려다 그냥 빨리 끝내고 돌려보내자는 생각에 깊은 한숨만 내쉬며 등을 돌렸다.
“됐고, 끼어들지나 마.”
방 내부는 어두웠다.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술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안쪽 커튼이 드리운 곳 너머로 침대에 기대 잠든 신연형의 모습이 보였다. 테이블에 펼쳐진 건 몇 병인지 세기도 힘든 술병들.
“살판났네.”
대놓고 들어왔는데도 인기척이 없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혀를 차며 포션을 꺼내려다 뒤를 돌아봤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서 있던 성산하가 계속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안 나가냐?”
“그건 뭐지?”
“네 알 바 아니니까 신경 끄고 꺼지…….”
“멍멍아.”
저 또라이 새끼…….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나를 강의진으로 의심하는 놈 앞에서 포션을 꺼내 들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도 나갈 것 같지 않는 모습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건…….”
신연형의 목에는 검은 밴드가 둘려 있었다. 왜인지 익숙한 형태에 기억을 뒤지다 내가 센터에서 눈을 뜬 첫날 채워졌던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뚜껑을 열자 짙은 냄새가 풍겨 왔다.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고 신연형을 제대로 눕히려 다가갔다. 손을 뻗는데 갑자기 자고 있던 놈의 눈꺼풀이 열렸다.
“으헉! 씨, 깜짝이야.”
“뭐…야, 주……호현? 네가 왜 여기…….”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나를 향했다.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길게 껌뻑이며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모습이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잘됐다. 깨 있을 때 먹여야지 몰라서야 되겠어?
“너 때문에 내가……!”
휘청이며 달려드는 신연형의 몸을 걷어찼다.
“커억, 큭.”
“울릉도 간다며? 축하한다.”
“씨……팔, 너 여기 들어온 거 알면 어떻게 될 줄 알아? 알려지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말해 새끼야. 내가 그거 겁냈으면 애초에 그 사단도 안 났지.”
포션을 들고 다가가는데 눈치는 빠른지 신연형은 내 손에 들린 포션을 보고 황급히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그거 무슨…!”
“이게 뭐냐면- 내가 친히 널 위해…….”
하나하나 설명해줄수록 시시각각 바뀔 신연형의 표정을 기대하며 입을 여는데 내 옆으로 큰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날 지나쳐간 성산하가 머리에 손을 올리자 신연형이 곧바로 정신을 잃고 털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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