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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39화 (39/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39.

식사가 끝난 후, 한서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내일 숙소로 돌아가야 해요.”

“숙소로? 왜. 여기가 편한데.”

“내일부터 첫 현장이잖아요. 팀 분위기도 있고 신연형도 처리된 이상 숙소를 나와 있을 명분도 없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뭐, 그래.”

한서진의 집이 편하긴 하나 퀘스트를 위해서는 숙소로 가야 하긴 했다. 슬쩍 퀘스트창을 열어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 메인 퀘스트 }

#1. 주호현의 사인을 밝혀라.

난이도 : A

제한 시간 : 25일 3시간 20분

보상: 중급 스킬 회복(특수/S급/SS급 제외)

실패 시 퀘스트·스킬 영구 삭제

※거부 불가능

‘25일…….’

언제 이렇게 됐지. 지금도 계속 줄어드는 시간에 괜히 초조해졌다. 그나마 유일한 실마리인 예성우를 족쳐야 하나 생각하는데 한서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연형은 내일 동트자마자 울릉도로 이송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아, 정말? 잘됐네.”

양심이 조금 찔렸지만 태연히 답했다. 낮의 일을 생각하자 자연히 떠오르는 성산하의 얼굴에 무의식적으로 목줄이 채워져 있을 부근을 더듬었다.

***

현장에 나가려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하던 중, 연승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한서진이 들어간 욕실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응.”

[호현 님.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하지만 방금 성분 검사 결과가 나와서요. 급한 것일까 봐 바로 전화드렸어요.]

“나왔어? 뭐래?”

[알약은 마나량 증가에 도움을 주는 가이딩 보조제예요. 불법 제조 약품이라고 생각하고 그쪽만 조사하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시판되고 있는 제품이었습니다! 이후에 주신 앰풀 역시 몰래 의뢰해 봤는데요, 호현 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독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그런데……. 성분 분석을 의뢰하자마자 곧바로 센터 기계가 감지해 내는 바람에 다른 것들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꽤나 강한 독이라는 사실 외엔……. 죄송합니다.]

앰풀은 생긴 것부터가 독 아니면 서운할 정도였기에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약은 저번에 네 스킬로 검사했을 땐 안정제라고 하지 않았어?”

[안정제 성능도 있습니다. 마나량을 촉진시키는 동안 무리가 가지 않도록 몸을 쉬게 해 주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원료라서…….]

결국 보조제가 맞다는 소리였다. 정말 예성우가 주호현을 걱정해 준 거라고? 그것도 강의진이 줬다고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대편에서 망설이는 연승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어떤 부분이?”

[제조사가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에요. 노바리온. 정식 등록된 회사긴 한데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가 없고 출시한 약이라고는 이 가이딩 보조제가 다라서요. 보조제는 효과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한 종 가지고는 회사 증명이 어려울 텐데…….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더 알아볼까요?]

“노바리온?”

역시 수상했다. 예성우가 내게 약을 주며 강의진이 만든 거라고 말했던 걸 보면 숨기고 싶었던 것 같은데…….

조금 마음에 걸린다고 한 말과 달리 연승연의 말은 끝도 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나와 같이 섬에 있는 연승연이 조사한다고 해 봤자 한계가 있을 것을 알아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 바쁜데 이런 잡일까지 늘려 주고 싶지 않아.”

[호현 님……!]

“어쨌든 약 자체엔 문제없다는 거지. 알았다.”

고생했다며 전화를 끊고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가장 큰 증거가 되어 줄 줄 알았던 알약에 아무 문제가 없다니.

“그럼 대체 어떤 수를 썼다는 거야.”

직접 건네받기까지 한 알약과 달리 앰풀은 예성우가 먹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힘들었다.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라도 알면 좋을 텐데.

퀘스트를 받고 주호현의 죽음에 대해 알아봤을 때, 한서진을 포함한 그 누구도 주호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현장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쓰러졌다고만 할 뿐. 주호현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거다.

“씨, 모양 빠지게 설마 단순 돌연사나 실족사는 아니겠지. ……퀘스트창!”

{ 메인 퀘스트 }

#1. 주호현의 사인을 밝혀라.

“예성우가 죽였다! 팀장이 죽였다! 신연형이 죽였다! 땅을 잘못 디뎌 미끄러졌다! 갑자기 놀라서 심장 마비가 왔다! 몬스터한테 당했다! 던전에서 독버섯을 따 먹고 독에 당했다! 누가 뒤에서 독침을 쐈다…….”

누운 채로 천장을 보며 내가 아는 온갖 죽음들을 읊었지만 퀘스트창은 미동도 없었다.

“젠장! 인과가 없으면 안 된다 이거지…….”

짜증에 침대에 누운 몸을 펄떡이는 사이 욕실 문이 열렸다. 한서진이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 몸부림치는 날 의아하게 바라보며 다가왔다.

“뭐 해요?”

“명상.”

“……그런 걸로 치고. 짐은 다 챙겼어요? 오늘 복귀하면 바로 팀 숙소로 갈 거니까 미리 챙겨 놔야지.”

한서진의 말에 표정을 왕창 구겼다. 이 좋은 집을 놔두고 팀 숙소로 복귀해야 한다니 새삼 기분이 저조해진 탓이다. 물론 여기나 거기나 한서진과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같았지만 퀄리티 자체가 비교도 안 된다고.

“챙길 짐도 없어. 준비도 다 했어.”

“먼저 내려가 있어요. 저도 바로 준비하고 내려갈 테니까.”

***

한서진의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섬의 뒤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항구에는 배가 한 척 정박되어 있었다. 나를 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이끄는 한서진에 놀라 물었다.

“우리 배 타?”

“네. 이번에 열린 게이트 위치가 무인도라 쾌속선 타고 이동할 거예요.”

배는 처음 타 본다.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가벼워지는 발을 알아챘는지 한서진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응. 난 바다가 좋아.”

“왜요?”

“그냥. 뻥 뚫려 있잖아. 안 답답하고.”

한서진도 그에 동의하는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쾌속선에 탑승해 선실 안으로 들어가자 꽤나 많은 인원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이번 미션 함께하는 팀들이에요.”

“팀들? 우리만 가는 줄 알았는데. 소수로 움직이지 않아?”

여태껏 던전에서 마주친 에스퍼들이 모두 그러했기에 의아하게 묻자 한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외부 팀이에요. 우리는 내부 팀.”

“둘이 뭐가 다른데? 나도 외부 팀 가고 싶어.”

한서진이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귀 끝이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한서진이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왜 했는데요?”

당연히 센터에서 나가고 싶으니까지. 팀도 개 같고.

하지만 그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말을 돌렸다.

“그냥. 그나저나 둘이 뭐가 다르냐니까?”

“내부 팀들은 국가 소유의 던전으로 파견돼요. 전방위를 관리하기 위해 여러 팀이 함께 움직여야 하고. 반면 외부 팀의 경우엔 게이트나 던전이 국가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점유할 순 없죠. 다른 헌터들과 경쟁도 해야 해서 외부 팀은 강한 에스퍼들로 구성해요.”

“아아. 어쨌든 난 못 간다는 소리네?”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이번엔 얼굴까지 분홍빛이다. 이상하게 바라보는데 한서진이 시간이 다 됐다고 웅얼거리며 다리로 향했다.

집결지로 향하는 걸음마다 마주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 같으면 팀에서 내보냈어.”

“와 씨, 대단하다. 류수윤에 순간이동 능력자에. 몇 명을 해치운 거냐.”

“메인 가이드 노린다던데 진짤까?”

“엑, 미쳤냐? 하급이 메인인 팀에 누가 남아. 나 같으면 사표 쓴다.”

소곤대는 내용들이 죄다 흥미롭기 짝이 없어 절로 귀가 쫑긋댔다. 혹시 전의 사건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한서진이 어깨를 감싸 쥐었다. 등 뒤로 뻗어진 팔이 안듯이 몸을 받치고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저딴 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딱히 신경 쓰진 않았는데…….”

팀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서야 날 잡은 한서진의 손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서진아 왔어? …호현이도 안녕.”

한서진이 최재희에게 지도를 건네받는 사이 박가인과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팀원들을 죽 둘러봤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반갑진 않았다.

‘팀장은 어디 갔지. 설마 오늘 같이 안 가나.’

기분 좋은 가정에 창틀을 잡은 손가락을 까닥이는데 옆에서 아니꼬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굳이 쟬 왜 데려온 거야? 가이딩도 못하는 거.”

역시나 우한세였다. 신연형을 날려 버려서 그런가 우한세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눈에도 날 향한 미약한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예성우 외에는 관심이 없어 시큰둥하게 바라만 보자 어느 면에서 화가 난 건지 우한세가 씩씩대며 목소릴 높였다.

“너 때문에 우리 팀 전력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는 알아? 가이딩 하나 제대로 못해서 발목 잡으면 그땐 내가 너 가만 안 둬.”

‘……방사 가이딩.’

속으로 생각하자마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활성화되며 일정 범위 내의 에스퍼들 이름이 모두 떠올랐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다중 선택 가능)

-근처 에스퍼

►한서진

►우한세

►우하윤

►최재희

►박현민

►최수연

.

.

“훗, 역시.”

그럼 그렇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얼굴이 시뻘게진 우한세가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주먹을 쥐었다.

“이 자식이!!”

삐이-.

그때 들려온 노이즈에 우한세가 멈칫했다. 소리가 들려온 건 기둥에 달린 확성기였다.

툭툭 마이크를 치는 소리에 이어 재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분 후 브리핑을 시작할 테니 전원 제1 선실로 집결하십시오.]

팀장 놈이 어딜 갔나 했더니 저것 때문이었군. 마침 지도를 든 한서진 역시 돌아왔다.

“형. 출발하면서 브리핑할 거예요. 같이 가요.”

“배 출발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투덜대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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