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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40화 (40/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40.

“우욱, ……발.”

“형. 괜찮아요?”

씨발, 뱃멀미라니. 내가 뱃멀미라니!!

몸의 이상을 인지한 건 브리핑 도중이었다. 무기를 배급받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앞에서 재수 없는 팀장 놈이 마이크를 들자마자 갑자기 치미는 욕지기에 입을 막고 뛰쳐나갔다. 달리 나오는 것도 없는 구역질을 수십 번 하고 나서야 내가 멀미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호현의 몸이 문젠지 내 정신이 문젠지도 몰랐다. 애초에 배를 타는 게 처음이었으니까.

쾌속선에 빠르게 스치는 바람을 맞는 게 그나마 버틸 만해 한서진과 내내 갑판에 나와 앉은 상태였다.

“우웨에엑!”

심장과 울대가 요상하게 울렁이며 토해라 토해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도 짜증 나는 것은 갈매기에게 랍스터깡을 던져 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돌고래를 구경하는 내 원대한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돌고래…….”

“여기 돌고래 없다니까.”

“걔넨 헤엄치는 애들이야. 바다에는 벽도 없잖아. 여기까지 안 올 거라는 편견을 버, 우욱!”

난간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자 한서진의 큰 손이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따듯한 온도가 일정하게 스치자 난리를 치던 속도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라 손길에 흐물흐물 몸을 맡겼다.

자연스럽게 내 몸을 받아 안은 한서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서 좀 누우라니까.”

“싫어. 바람 맞는 게… 그나마 나아.”

“……그래요. 그럼.”

나직한 목소리 이후에도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계속 이어졌다.

배는 한 시간여를 더 가서야 멈췄다. 무인도에는 큰 배를 정박할 만한 곳이 없어 따로 보트를 타고 가까이 진입해야 했다. 저 멀리 해안에 맞닿은 절벽 아래 요동치는 게이트가 보였다.

모두 해안가에 상륙하자 팀장이 인원을 살피며 말했다.

“미리 브리핑한 순서대로 게이트에 진입하겠다. 제한 시간은 세 시간. 임무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복귀한다.”

“네. 알겠습니다.”

브리핑을 못 들어 남 일처럼 바라보는데 팀원들의 눈초리에 우리 팀이 첫 번째 타자인 걸 알았다. 팀장의 싸늘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떨어졌다.

“가자.”

먼저 등을 돌린 팀장 놈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 그런가,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일렁이는 파장을 통과할 땐 몸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각자 위치로 바로 이동한다.”

통과하자마자 들려온 팀장의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과 암벽. 밖과 별달리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뒤에 서 있던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거울형?”

현실을 가져다 왜곡된 공간으로 비춘 거울형 던전은 지형이 익숙해 비교적 다른 곳보다 싸우기 편한 던전이었다.

“맞아요. 다른 유형보다 위험하진 않지만 형은 첫날이니까 방심하지 말고 제 옆에 붙어 있어요.”

“넌 싸우러 안 가냐?”

“저는 가이드 보호. 저보다 전투계가 나서는 게 효율적이라서요.”

가이드끼리 함께 움직인다니. 안 그래도 예성우를 살피고 싶었는데 잘됐다.

앞을 턱짓하는 한서진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몬스터들을 해치우는 에스퍼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

헌터들의 화려한 스킬과 달리 에스퍼들의 이능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인정한다. 솔직히 좀 멋있었다.

태우고 후려치고 터트리는 모습들은 하루 종일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마냥 바라보던 나는 손을 잡아당기는 힘에 정신이 들어 앞을 바라봤다. 웃고 있는 한서진의 얼굴이 있었다.

“길을 뚫은 사이 뒤처지지 않게 가야 해요.”

“알겠어.”

현장이 익숙한 박가인과 예성우는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앞장서 길을 뚫는 팀장을 따라 섬 반대편으로 향하며 한서진의 조언을 들었다.

“크게 어려운 임무도 아니라 에스퍼들 기력 소모될 일 없어요. 그러니까 가이딩은 부담 갖지 말고 오늘은 현장에 익숙해진다고만 생각해요. 다치지 말고.”

“그럼 가이딩은 언제 해?”

“대부분 성우 형이랑 가인 누나가 할 거지만 혹시 뒤로 빠지는 에스퍼 있으면 가이딩 부족하다는 뜻이니까 적당히 방사만 해 줘요.”

듣기론 던전에서 획득되는 부산물 등의 질이 낮아져 던전 관리 비용이 그를 상회하기 시작할 때, 센터는 더 이상 던전을 유지할 가치가 없다 판단하고 던전을 임시 폐쇄한다. 하지만 폐쇄는 인간의 기준일 뿐 던전 내부 생태계는 계속해 돌아가기에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한데 오늘이 바로 그 점검날이었다.

한서진의 말대로 새로운 던전을 깬다거나 보스를 처리하는 등의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뭐. 나타나는 몬스터들도 잘들 해치우고 있고.’

한서진은 엄폐물이 있는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린 여기서 대기하죠.”

“응…….”

별말 없이 저 멀리서 팡팡 터지는 몬스터들을 구경하던 중 요 앞 바위 사이에 난 풀이 눈에 걸렸다.

‘저건……. 덤불 은꽃 세이지 같은데.’

지금까진 채집된 형태만 봤던 덤불 은꽃 세이지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는 모습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흔한 거긴 하지만 대부분 말려서 들어오는데……. 살아 있으니 향도 더 진할까? 한번 냄새만 맡는 것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으아아…….”

은근슬쩍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가 무섭게 옆에서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어요.”

“뻐근해서.”

“여기 던전 내부예요. 어디서 뭐가 나타날 줄 알고. 사정거리에서 멀어지면 보호 어려워요.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잠깐 일어났다가 뒤지게 혼난 나는 입을 삐죽이며 다시 주저앉았다.

‘혼자서 다닐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짐이란 말이지.’

한서진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들지 않던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현장에 나오니 여실히 느껴졌다. 가이드는 짐이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는다 한들 던전에선 전투 스킬이 없는 각성자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가이드들은 가이딩 능력이 높으면 신체 조건이야 어떻든 에스퍼에 매여서 던전에 주렁주렁……. 말 그대로 에스퍼의 피주머니다. 그러나 가이드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건 에스퍼도 마찬가지. 가이딩을 조건으로 국가에 매인다니 노예 헌터라는 말도 딱 맞지 않나.

‘에스퍼만 아니었어도 가이드들이 던전에 끌려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 가이드한텐 에스퍼가

짐인가? 근데 던전에서 보호해야 하는 건 에스펀데……. 누가 누구의 짐인 거야.’

그렇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수준의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 보니 어느새 이쪽으로 복귀하는 에스퍼들이 보였다.

박가인과 예성우의 몸에서 저번에 봤던 것 같은 몽글몽글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에스퍼들을 향해 날아갔다. 예성우가 A급, 박가인이 B급으로 예성우가 등급이 더 높아서 그런지 빛의 수가 더 많았다. 기운을 갈급하게 흡수하는 에스퍼들을 바라보다 이게 한서진이 말했던 그 ‘때’라는 건가 싶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사 가이딩.’

혹시 안 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1g 정도 있었는데 그를 가뿐히 무시하고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다중 선택 가능)

-근처 에스퍼

►김태현

►한서진

►우한세

►우하윤

►최재희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한서진을 빼고 선택하려다 일반적인 방사 가이딩은 범위 내라면 누구든 가이딩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하마터면 의심당할 뻔했네.’

저 멀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우한세를 보곤 속으로 비웃으며 타겟을 설정했다.

‘우한세를 제외한 전부.’

에스퍼들의 머리 위로 타겟팅 표식이 떠올랐다.

가이딩 총량 (267rp)

타겟 [김태현]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한서진]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우하윤]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타겟 [최재희]에게 [___]rp로 가이딩한다.

전보다 rp 총량이 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다 내가 잘해서이지 않을까?

뿌듯하게 바라보며 rp 포인트를 균등 분배했다.

내게서도 빛이 뿜어져 나와 에스퍼들에게 흘러갔다. 한서진과 둘이 있을 땐 반짝거리는 내 기운들을 보고 내심 뿌듯했었는데 예성우, 박가인 옆에 있으니 달빛 앞의 반딧불이었다.

이렇게 작은 데도 에스퍼들은 기운을 구분하는지 가장 가까운 한서진을 시작으로 우하윤, 최재희. 팀장까지 차례로 나를 바라봤다.

“잘했어요.”

“이 정도야 뭘.”

한서진이 무릎을 도닥이며 칭찬했다. 더 이상 가이딩이 내 앞길을 막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쭐대는데 우한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야! 가이딩 안 하고 뭐 해?”

“뭐?”

“가이딩? 똑바로 하고 있는데?”

“뭐? 이게 장난하…….”

한서진이 나서기도 전에 우하윤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우한세를 막아섰다.

“피곤하게 뭐 하는 거야. 임무 끝난 지 오 분도 안 지났어.”

“지금 주호현이 가이딩을 안 하고 있잖아!”

“진짜……. 너 유치한 걸로 시비 좀 걸지 마. 가이딩 잘만 하고 있는데.”

“뭐?”

우하윤의 말에 우한세가 흔들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한서진 역시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다가갔다.

“형이 언제까지 네 어리광 받아 줘야 하는데. 팀원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 몰라?”

“무, 무슨…….”

“멀쩡히 가이딩 받으면서도 폄하할 정도로면 그거 악의야.”

“정말, 정말 가이딩 안 되고 있다고!!”

우한세가 억울하게 외치자 팀장마저 눈썹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우한세. 분란 일으키지 말고 자중해라.”

팀장에게까지 면박을 받자 우한세는 울상이 된 채 나를 돌아봤다. 마치 내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듯한 눈빛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빙긋 웃어 줬다.

‘하하.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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