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파업 선언 42.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가이딩도 무리 없이 해내니 이젠 원상 복귀해야지.”
“아직 기억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당장 전으로 돌아가기엔…….”
내 방으로 돌아가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솔직히 나도 꽤나 놀랐다. 하지만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은 갔다.
‘예성우의 짓이겠지.’
“강행하시겠다면 다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그 기억이 너와 같이 있으면 돌아오기라도 한다던가? 오히려 전과 같은 환경에서 기억을 찾는 게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주호현.”
갑자기 불린 내 이름에 힐긋 팀장을 바라봤다. 팀장이 내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내 의사가 궁금해 물은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시선이 절로 팀장 옆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예성우에게 향했다.
불안한 눈으로 제 앞에 대치한 에스퍼들을 보는 표정은 정말 그들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놈의 실체를 아는 내겐 어림도 없었다.
‘아마 팀장에게 말한 것도 예성우일 테고…….’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낚시에 걸려 줘야지.
“그렇게 할게요.”
“형!!”
“저도 이제 할 일 해야죠.”
한서진은 팀장의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라고 황당한 낯으로 돌아봤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선이 날 향했지만 고개를 작게 젓자 결국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팀장은 제가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잘 생각했다. 이젠 기억과 상관없이 빨리 적응하는 편이 네게도 더 나을 테니.”
대충 소강상태가 되자 팀장은 존나 구린 분위기 속에서 원래 목적이던 브리핑을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한서진은 문을 닫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거기서 알겠다는 대답을 왜 하는데.”
“그냥, 한번 지내봐도 좋겠다는 생…….”
“거짓말. 고급품에 안락하고 화려한 거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다락에 가겠다고 하면 누가 믿어요?”
“야, 내가 언제.”
일단 냅다 부정하긴 했지만 조금 찔렸다.
‘언제 이렇게 날 파악한 거지.’
“형. 무슨 생각인데요.”
“정말 잠깐 지내보고 싶어서 알겠다고 한 거야.”
“잠깐은 무슨……! 하, 겨우 그런 소리 할 거면 됐어요. 팀장한텐 내가 말할 테니까 짐 챙겨요.”
등을 돌려 나가려는 한서진의 모습에 급하게 팔을 잡았다.
“야! 뭘 말한다는 거야?”
“뭐긴요. 당장 숙소 나가겠다는 거지. 그래도 팀이라 마지막은 좋게 끝내고 싶었는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단호한 목소리에 입만 뻐끔댔다.
‘아씨, 어떡하지.’
한서진이 싫어할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 완고했다. 금방이라도 팔을 뿌리치고 나갈 것만 같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기억이 조금 돌아왔어.”
“……뭐라고요? 얼마나요? 어디까지.”
“그건…….”
예성우에게 술술 말이 나오던 것과 달리 한서진에게 말을 지어내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내가 원래 태어나길 정직하고 착한데 말이지.
“어디까지라 할 것도 없이 그냥 몇 개 기억나는 정도야. 여튼 그래서인지 팀원들이랑 부딪히는 게 달갑지 않아. 웬만하면 마찰은 피하고 싶어.”
이제 완전히 날 마주 본 한서진은 머뭇대다 잦아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윤 형에 대해서도 기억 난 거예요?”
“어어. 조금.”
류수윤이 뭐라고 다들 기억을 되찾았다 하면 걔부터 물어 대는 건지. 한서진도 주호현이 죽였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부딪히는 건 형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이 팀에도…….”
또다시 입을 여는 한서진이 결국 나가자고 설득할 것만 같아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을 끊었다.
“기억을 더 찾고 싶어서 그래.”
“기억을 더 찾고 싶다니 그게 무슨…….”
“혹시 내가 머물던 방에서 자면 돌아올까 해서.”
한서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푹 고개를 떨구곤 내 손을 꾹 쥐는데 내리깐 속눈썹 탓에 눈이 보이질 않았다.
잠시 후 한서진이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 좁아요. 좁은 데 싫어하잖아.”
“괜찮아.”
“추울걸. 매트리스도 안 좋고.”
“춥긴. 지금 날씨 따듯해.”
미안한 마음에 한서진의 걱정에 성실히 답해 줬다. 미적거리던 한서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문 열어 놓을 테니까. 방으로 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요.”
“그래. 고맙다.”
“형은 진짜……. 하아.”
“한숨 쉬면 빨리 늙어. 나와도 참아.”
날 흘깃 째려본 한서진이 옷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짐 옮기는 거 도와줄게요.”
“짐을 왜 옮겨? 옮길 것도 없어.”
“왜요. 그래도 잠옷이랑 씻으려면…….”
“무슨 소리야. 여기서 씻고 옷 입고 쉬고 다 할 건데?”
“네?”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는 한서진의 태도에 외려 내가 당황해 기겁했다.
“거기선 잠만 잘 거야. 왜 이래? 그 쓰레기 같은 방에서 어떻게 지내.”
“아…….”
“너 이참에 아주 나 쫓아내려고 한 거 아니지?”
“무슨… 그런 거 아녜요.”
한서진의 얼굴이 그나마 조금 밝아졌다.
밤이 깊고, 팔 양쪽에 각각 베개와 폭신한 이불을 든 나는 주호현의 방으로 향했다.
발로 밀어 문을 열자 다시 봐도 끔찍한 주호현의 다락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
이런 곳에서 자야 한다니. 사방이 벽으로 꽉 막혀 날 옥죄는 듯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매트리스 위에 이불을 던지자 폴폴 올라오는 먼지가 달빛을 반사하며 어울리지 않게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문까지 닫으면 정말 갇힌 느낌이 들 것 같아 차마 문은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활짝 열어 뒀다.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누이자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온 지 오 분도 되지 않아 한서진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함께 챙겨 온 하얀 약통을 꺼내 옆의 협탁에 올려 두는 게 마지막이었다.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눈을 감았다.
***
주호현의 방에서 지낸 지 삼 일이 지났다.
첫날 이후 비슷한 현장들이 매일같이 이어졌기에 숙소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뻗어 버렸다. 한서진과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접근해 올 거란 생각과 달리 예성우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나는 그냥 불편하게 자는 사람이 되었다.
‘아씨. 내가 잘못 짚었나.’
방사 가이딩을 하며 rp를 쓴다는 게 결국 체력과 마나를 소모한다는 거라 피로를 제때 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다락방에서 선잠을 자다 보니 피로가 풀리긴커녕 누적되기만 했다. 괜히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곤하니까 자긴 하지만 수면의 질이 영……. 한서진의 침대가 그리웠다.
“퀘스트창.”
{ 메인 퀘스트 }
#1. 주호현의 사인을 밝혀라.
난이도 : A
제한 시간 : 20일 5시간 47분
보상 : 중급 스킬 회복(특수/S급/SS급 제외)
실패 시 퀘스트·스킬 영구 삭제
※거부 불가능
“20일? 내일이면 벌써 앞자리가 바뀌네.”
흐르는 시간에 마음이 초조했다. 하지만, 오늘도 현장에서 가이딩을 하다 온 몸은 축 늘어졌다. 하품이 쩍쩍 나와 눈꼬리에 눈물이 고였다.
“하암……. 일단 내일 생각하자.”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 같은 고급 인력을 현장에 구르게 하다니. 이건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고…….
몰려드는 수마에 몸을 맡기고 잠을 청했다.
***
헬기에 올라타서도 꾸벅꾸벅 졸자 한서진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형. 이리 기대서 자.”
사방팔방으로 휘적대던 머리를 잡고 제게 끌어당기는 손길에 조금 잠이 깼다.
웅얼거리며 손을 내치고는 머리를 헬기 벽면에 기댔다. 프로펠러 탓인지 덜덜덜덜 흔들리는 헬기에 머리도 같이 떨렸다.
“형.”
“돼돼돼됐다다니니까아아아아.”
“…….”
“뭐머머머머머시시시시시바바바알.”
한심하게 바라보던 한서진이 손을 뻗었다. 머리를 감싸 제게로 끌어당기는 손길에 목이 푹 꺾였다. 어깨에 기댄 머리 위로 한서진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사십 분 정도 걸린다니까 좀 자 둬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았다.
팔짱 낀 채 한서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자세가 그다지 편하진 않아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잠시 감았던 눈을 뜨니 어느새 헬기가 착륙하고 있었다.
헬리포트에서 내려와 마지막 브리핑을 받았다. 조금 대기하다 안내인을 따라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초입부터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여태까지의 임무도 다른 팀들과 함께하긴 했지만 몇 배는 더 많고 북적거리는 현장에 의아하게 둘러보다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외부인……?”
내 중얼거림에 안내인이 혀를 차며 못마땅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최근에 국가 소유 던전에 바로 인접해서 신규 게이트가 열려서요. 하필 난이도도 낮은 탓에 개나 소나 몰려와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헌터들이 에스퍼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센터 사람들도 헌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는 안내인을 따라 헌터들이 모인 쪽을 돌아봤다.
그런데 그중 한 무리의 헌터들의 옷에 박힌 문양이 익숙했다.
‘잠깐, 저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길드였다. 테란이었던가.
녹스의 비공식적인 산하 길드 중 하나로 귀찮은 일들을 처리할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름이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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